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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에펠탑 올라갔을 때만해도 운무가 잔뜩 끼어 찌푸렸던 하늘이
가을 하늘처럼 해맑은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서 베르사유궁전의 황금빛 울타리가 더욱 찬란합니다.

베르사유궁전은 프랑스 절대왕정 '앙시앵 레짐'이 프랑스혁명으로 무너지기까지
17~18세기 절정을 치닫던 왕권의 본산입니다.
그곳 거울의 방은 프랑스 왕조의 영화와 몰락은 물론
독일제국의 영욕이 엇갈린 근현대사의 현장입니다.

유럽여행 아흐레째인 6월 5일, 파리 첫날 오후
몽마르트르를 거닌 뒤 파리 남서쪽 22km에 있는 베르사유로 갑니다.

파리 중심부에서 서남쪽으로 휘는 세느 강변도로를 따라갑니다.

1660년대 초 젊은 왕 루이14세가 재무장관 니콜라 푸케의 성에서 열린 파티에 갑니다.
웅장하고 화려한 성에 들어서자 숲속에서 요정으로 분장한 여인들이 나와 왕을 맞습니다.
성은 온갖 그림과 도자기로 장식돼 있고 훌륭한 요리와 멋진 공연이 펼쳐지지요.
루이14세는 자존심이 몹시 상합니다.
자기는 우중충한 파리 동남쪽 퐁텐블로 고성에 살며 너덜거리는 침대에서 자는데...

루이14세는 푸케를 부정부패와 반역죄로 투옥하고 재산을 몰수합니다.
푸케의 성을 설계하고 지었던 건축가 루이 르 보, 화가 샤를 르 브룅,
조경설계사 르 노트르를 데려와
푸케의 성보다 더 멋진 성을 지으라고 명령하지요.
아버지 루이 13세 때 왕의 사냥터였던 한적한 마을 베르사유에
50년에 걸친 공사 끝에 들어선 것이 베르사유궁전입니다.
1772년 피에르 드니 마르탱이 그린 베르사유궁 전경입니다.
저 안쪽 중앙 건물을 중심으로 양쪽에 날개처럼 달린
건물들을 계속 늘려 지은 형태로 돼 있습니다.
건물너머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정원을 만들었구요.

박석이 깔린 광장을 지나 궁으로 들어서면서 오른쪽으로 관리동이 보입니다.

프랑스엔 황금으로 장식한 궁과 건물과 조각상과 다리가 유달리 많았습니다.
루이14세가 태양처럼 빛나는 황금의 찬란한 이미지를
자신의 절대권력의 이미지로 활용했기 때문이지요.
그는 자신을 태양의 신 아폴로와 동일시하며 '태양왕을 자처했습니다.

그래서 베르사유궁 안팎 곳곳에 아폴로를 형상화한 황금빛 얼굴이 장식돼 있지요.
황금 울타리에도 아폴로와 루이14세를 함께 상징하는 이미지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루이14세는 젊어서부터 정치선전, 이미지 정치의 대가였습니다.
아폴로로 금빛 분장을 하고서 궁정 발레극에 출연해 춤을 춰보이곤 했습니다.
절대 군주의 힘을 확인시키는 퍼포먼스였던 셈이지요.
그는 귀족과 관리들을 수시로 궁으로 불러들여 왕과 왕족의 호화로운 삶을 보여주며
복종을 이끌어냅니다.

궁의 오른쪽 날개 부분, 저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선 곳이 관람객 입구입니다.

입구 옆에 솟아 있는 멋진 바로크식 교회는 궁정 예배당입니다.
루이14세 때 궁정건축가를 지낸 쥘 망사르의 마지막 작품이랍니다.
그는 파리 에펠탑에서 내려다보이는 앵발리드의 황금빛 돔 교회도 지었던 거장이지요.
1770년 이곳 예배당에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결혼식을 올렸답니다.

루이 14세는 초상화까지도 정치 선전 수단으로 삼았지요.
700점 넘는 초상화를 만들었고 지금 남은 것만 300점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는 초상화에 평상복을 입고 등장한 적이 없고 언제나
군주의 화려하고 장엄한 복장을 하고 서있습니다.
로마 장군처럼 갑옷을 차려입은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베르사유궁의 볼거리는 왕과 왕비가 살았던 본관 이층 15개 방에 집중돼 있습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층계참에 루이14세의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궁정화가 앙리 테슬랭이 그린 '회화와 조각의 왕실 아카데미 수호자 루이14세'입니다.

루이 13세가 결혼한 지 23년 만에 얻은 아들이 루이14입니다.
그래서 태어나면서부터 '신의 아들'이라는 호칭을 얻었답니다.
다섯 살 때인 1643년 아버지가 세상을 뜨면서 왕위에 올라 1715년 숨질 때까지
무려 72년이나 재위했습니다.
어린 왕을 대신해 섭정을 한 어머니 도트리슈가 재상 마자랭에게 국정을 맡기면서
귀족들이 일으킨 프롱드의 난을 만나 여기저기 피난 다니는 고난도 겪지요.
그래서 파리에 대한 애착이 없어진 것도 베르사유궁을 따로 짓는 이유 중에 하나였다고 합니다.
그는 스물 세살 때인 1661년 마자랭이 죽고서야 비로소 왕으로서 제대로 통치를 하게 됩니다.
앙리 테슬랭이 그린 '열살 무렵 루이14세'입니다.
어린 왕을 보다 위엄있게 보이도록 하려고
왕좌 아래에 2단 받침대를 그려넣어 루이14세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구도를 썼습니다.

초기의 루이14세는 국력이 약하고 내란으로 혼란스러웠던 프랑스의 어린 군주였기에
강한 모습으로 민중에 어필할 필요가 컸습니다.
왕의 권력은 신이 내렸다고 하는 왕권신수설을 내세우며 "짐은 곧 국가"라고 했지요.
그래서 초상화도 실물보다 크고 화려하게 묘사됐고
초상화가 걸리는 위치도 정교하게 계산됐습니다.
보는 사람이 언제나 왕을 우러러보도록 왕의 눈높이가 감상자 시선보다 높게 맞춰졌습니다.
1701년 루이14세의 공식 초상화로 지정된 이야생트 리고의 그림이
그런 구도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미술사에 기록됩니다.
하얀 담비 털로 안을 대고 황금빛 백합꽃이 가득한 푸른 망토를 걸친 대관식 차림의
루이14세가 관람자들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돼 있더군요.

이층 방으로 가는 복도에 조각상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9세기 서프랑크 왕국을 통치한 루도비쿠스 3세(루이 3세)의 조각상을 보며 왠 통화를 하냐구요?
우리말 안내가 나오는 단말기가 휴대전화기처럼 생겨서 저렇게 귀에 대고 들어야 합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는 이 조각상은 꽤 낯이 익은데.....

오른쪽에 18세기 초 프랑스의 위대한 대법관 앙리 프랑수아 다게소의 조각상이 서 있습니다.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이 나오는 사이에도 책을 썼을만큼
시간을 쪼개 쓴 사람으로도 유명하지요.^^;;

왕과 재상, 장군들의 조각상이 늘어서 있습니다,

보석이나 조개 껍데기에 양각으로 얼굴을 새긴 카메오처럼 묘사한
루이14세의 석회 부조도 걸려 있습니다.
참 다양한 초상화와 조각상을 남긴 군주입니다.^^

이제 이층 방 순례를 시작함니다.
오른쪽 입구에서 올라와 앞에서 본 복도를 지나면 방들이 나옵니다.

첫번째 헤라클레스의 방은 매주 월-수-목요일에 연회장으로 썼던 곳답게
1576년 베니스의 화가 파올로 베로네즈가 그린 '시몬 집에서의 만찬'이 걸려 있습니다.
그린 지 1세기 뒤 루이15세에게 선물로 들어온 작품이랍니다.
예수와 제자들이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두 개의 식탁에 나뉘어 저녁을 드는 동안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발을 씻어드리는 모습이 묘사돼 있습니다.

거구에 엄청난 대식가였던 루이14세는 코스별로 10가지 요리가 나오는 식사를
아침에 세 코스, 저녁에 다섯 코스씩 매일 먹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몇 접시를 먹은 건지 계산도 잘 안 됩니다.+_+
당시로는 드물게 77세까지 장수했지만 무절제한 탐식 때문에
죽는 날까지 편두통, 치통, 통풍, 당뇨에 시달리며 골골대다 죽었다네요.
화가 르 무안이 3년에 걸쳐 그린 천장화 '헤라클레스의 예찬'이 아름답습니다.

헤라클레스가 신의 대열에 들어서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이 화가는 어쩐 일인지 이 그림을 그리고 나서 얼마 안 가 자살했다고 하네요.

대개 천장화의 소재가 된 신의 이름을 따 방 명칭이 붙어있지만
그렇지 않은 '풍요(Abandance)의 방'입니다.
파티나 식사 장소로 쓰였다고 합니다.
방마다엔 왕가가 선물받거나 사들인 고대 다른 나라 골동품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비너스의 방' 천장엔 제우스의 세 딸인 '우미의 여신'에 둘러싸인 비너스가 그려져 있습니다.

방 중앙 벽감엔 로마 장군 차림의 루이14세 조각상이 서 있습니다.

왕들의 옥좌도 전시돼 있는데
휠체어에 아내를 태우고 나와 열심히 설명해주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비너스의 방에 딸린 왕자의 침실입니다.
저런 침대에서 자면 갑갑할 것 같네요.^^;;

'다이애나의 방'엔 사냥의 여신 다이애나를 묘사한 벽화와 천장화가 가득합니다.

이 방 중앙 벽엔 17세기 성베드로성당 건설을 지휘하며 제단을 조각했던 거장 베르니니의
'27세 된 루이 14세' 흉상이 놓여 있습니다.
루이14세의 조각품 중에 젊음과 장엄함, 왕의 권위를 가장 잘 발산하고 있다는 평을 듣습니다.

오른쪽 벽에 루이15세의 초상화가 걸린 '마르스의 방'입니다.
저녁 음악회가 열리던 방이라고 하네요.
천장엔 군신 마르스가 수레를 타고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인간세계로 내려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아프리카 추장의 의자쯤 돼보이는 골동품도 전시돼 있습니다.

핑크빛 샹들리에가 화려한 '아폴로의 방'입니다.
천장화에선 아폴로가 아참에 태양을 하늘에 걸기 위해 천사들의 배웅을 받으며
태양수레를 몰고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처음엔 왕의 침실이었다가 왕의 옥좌를 놓아두고
외국 대사들의 알현을 받던 방으로 썼다고 합니다.

베르사유궁의 하일라이트 '거울의 방'입니다.
복관의 북쪽 2층 전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회랑 형태 방으로,
궁정축제와 큰 행사가 펼쳐지곤 했답니다.
너비 10.5m, 높이 13m, 길이 73m에 이르는 회랑의 왼쪽 17개 벽면에 거울을 달고
오른쪽 정원 쪽으로는 17개의 창문을 내
햇빛이 들면 반사돼 온 회랑이 눈부시게 환해진다고 합니다.

1871년 프로이센이 보불전쟁에서 프랑스를 무참하게 짓밟은 뒤
통일 독일 출범을 선언하고 빌헬름1세가 황제로 즉위한 곳도 거울의 방입니다.
나폴레옹에게 짓밟혔던 아픔을 복수했던 것이지요.
남의 나라 황제 즉위식이 프랑스 왕조의 상징 베르사유궁에서 열렸으니
프랑스로선 그보다 치욕적인 일도 없었을 겁니다.
1783년 미국 독립전쟁 후 조인식도 여기서 열렸구요.
아래 사진은 1919년 1차 세계대전을 끝내는 베르사유조약을 맺는 장면입니다.
보불전쟁 승전국 독일은 50년 뒤 1차대전 패전국이 돼 같은 장소에서 굴욕을 당합니다.
거울의 방은 역사란 돌고 도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방 양쪽으로 여린 여인상이 받쳐든 커다란 샹들리에가 줄지어 서 있습니다.
여성학대 아닌가요? ^^;;

베르사유궁은 이 거울의 방을 중심축으로 삼아
양쪽으로 날개 건물을 이어붙여 건물 길이가 모두 680m에 이릅니다.

얼굴은 서양사람인데 흑인처럼 새카만 얼굴로 묘사된 흉상이 인상적이어서 찍어왔는데
아무리 찾아도 누군지 나오질 않습니다.+_+

서쪽 방들을 다시 구경합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아이들' 초상화가 붙어 있는 왕비의 방입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합스부르크가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로
열네 살에 한 살 위 루이16세에게 시집와
빼어난 외모 덕분에 '작은 요정'으로 불렸지요.
사치와 낭비와 향락에 빠져 산 음탕한 요부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나쁜 왕비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프랑스혁명 때 '국고를 낭비한 죄'와 '반혁명을 시도한 죄'로
남편과 함께 파리 콩코르드광장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왕비의 방에 걸린 그림은 1789년 선구적 여류화가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이 그린 작품입니다.

르브룅(1755~1842)은
여자는 고귀한 직업, 화가가 될 수 없었던 18세기에 화가의 딸로 태어나
빼어난 재능으로 스물세 살에 마리 앙투아네트의 공식 초상화가가 됩니다.
여왕의 여성적인 면을 따스하고 섬세한 필치로 잘 표현했다는 평을 듣지요.
평생 글을 쓰는 성찰의 삶을 살며 유럽 전역 왕가 왕족들과 깊은 교분을 맺고 활동했다고 합니다.
밀짚모자를 쓰고 화려하진 않지만 감각적인 옷을 입고
팔레트와 붓을 들고서 맑은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여인,
르브룅이 스물일곱 살에 그린 자화상입니다.

루이14세부터 루이16세까지 삼대에 걸쳐
모두 19명의 왕자와 공주가 탄생한
왕비의 침실입니다.
이 방을 마지막으로 썼던 마리 앙투아네트 시절 모습을 재현했다고 합니다.
침대 자수는 진짜 황금실로 놓았다고 하네요.
왕들은 베르사유궁에 사는 모습을 마치 공연하듯 귀족들에게 공개했는데
심지어 왕비가 아기를 낳는 장면까지도 구경시켰다고 합니다.+_+

황금빛 장식이 요란한 '귀족의 방'입니다.

이 방엔 루이 미셸 반루가 그린 루이15세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루이15세는 증조부 루이14세처럼 다섯 살에 루이14세로부터 왕이를 물려받았지만
예리한 감수성과 두뇌를 가졌으면서도 루이 14세와는 달리
소심하고 방탕하고 딱딱한 의식이나 정치를 싫어해 나랏일을 섭정 플뢰리에게 맡겼다고 합니다.

왕이 장관들과의 궁정회의를 주재하거나
귀족들로부터 충성 맹세를 받던 부속실입니다.

방마다 고대 이집트 유물도 여럿 전시돼 있었는데요,
이건 파라오쯤이 앉았을 것 같은 의자네요.

역대 재상과 장관들이 앉았던 의자도 초상화들과 함께 놓여 있습니다.

혁명 후 왕정이 복고된 뒤 루이 필립시대에 만든 길이 120m, 폭 13m의 회랑식 갤러리입니다.
프랑스 역사에서 중요한 전쟁 그림들이 전시돼 있구요.
그림 사이사이엔 그 전쟁에 참여했던 장군, 장관, 황태자들의 흉상이 배치돼 있습니다.

정면에 보이는 그림은 프랑수아 1세가 16세기 3만5천 군사를 이끌고
이탈리아를 공격해 대승을 거둔 마리냥(Marignan)전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프랑수아 1세는 이 승리로 밀라노를 통치하면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와 인문주의를 들여와
프랑스를 예술과 학문의 나라로 키운 군주입니다.

18세기 중반 루이 15세 때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에서
프랑스군이 영국-네덜란드-하노버가 연합한 "국본군"을 물리친 퐁트누아전투를 담은 작품입니다.
전화 거는 남자가 달랑 얼굴만 사진에 걸쳐 나왔습니다.^^;;

사실은 전쟁 갤러리보다는 그 앞 나폴레옹의 방을 갔어야 하는데
잠시 길을 잃고 허둥대다 빠뜨리고 집합시간 때문에 결국 못보고 말았습니다.+_+
다비드의 걸작 '나폴레옹 대관식'과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을 봤어야 하는데....
본관에서 내려다본 베르사유 정원입니다.
여기까지 포스팅하기도 너무 숨이 가빠
정원은 다음 포스트에 올리겠습니다.^^;;
베르사유궁전은 그 자체로 절대 왕권의 위세와 귀족 예술의 극치였습니다.
1979년 일찌감치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오를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루이14세는 절대권력을 유지하고 휘두르는 데 온 국력을 탕진해
결국 프랑스혁명을 불러들인 군주로도 기록됩니다.
루이 14세는 임종 때 어린 증손자인 황태자 루이15세에게
"나는 지나치게 전쟁과 건축에 몰두했지만
너는 충신과 학자의 조언을 잘 듣고 현명한 군주가 되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너무 때늦은 깨달음이었던 셈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