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키우기, 측정 가능한 목표치 정하라"
다수에게 절실한 문제부터 해결을
한국에 시급한 건 교육비·주택비 문제
과학자 양성에선 추진력 잃지 말아야
석학들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향후 5년간 리더십 코드로 3가지를 꼽았다. '국민의 공통적 어려움(common issue)에 집중하라, '추진력(drive)을 잃지 마라' '확실한 목표(target)를 정하라'이다.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마하트마 간디, 넬슨 만델라 같은 위대한 지도자들의 공통점은 국민 절대다수가 문제로 여기는 것부터 해결했다는 것"이라며 "새 대통령은 한국 국민 전체가 바라는 것을 찾아내 창의적이고 현명한 정책으로 이를 맞춰야 한다"고 했다.
한국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앤디 시에 이코노미스트는 "서울은 교육비·주택비·헬스케어 세 분야에서 세계 최고인데 그 비용을 낮춰야 한다"며 "독일이 글로벌 선도 국가인 한 이유는 세 분야의 비용이 낮다는 점"이라고 했다. 제프리 페퍼 교수는 "한국의 낮은 여성 노동참여율, 경력 단절 상태로 사는 고령화 인구 증가 등이 시급하다"고 했다.
전략이론의 대가인 로버트 버겔만 스탠퍼드대 교수는 새 정부가 임기 말까지 추진력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한국 경제가 성공할 수 있는 여러 요소 가운데 한국은 추진력이 관건입니다. 더 많은 벤처기업 등을 키우려면 강한 추진력을 끝까지 내야 해요. 미래창조과학부 출범은 그 바탕이 되는 과학자·기술자를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한국의 과학기술 교육시스템을 세계 수준(world class)으로 만드는 것을 겨냥해야 해요. 특정 기업이나 기술에 이익을 몰아주다가는 모든 게 물거품이 될 겁니다."
로저 마틴 교수는 "박 당선인이 '확실한 목표치'를 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5년 내 중소기업을 큰 중견기업 또는 대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확고하게 정해야지 지금처럼 '잠재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수준은 충분치 않다. 일례로 중소기업 매출이 증가할수록 소득세 감면 범위를 파격적으로 높이는 정책 등을 마련해 '중소기업·벤처 성장 정책'을 과감하게 실행해야 한다"고 했다.
인터뷰에 응한 세계 경제·경영 석학
▶교수 : 베리 아이켄그린(UC버클리), 타일러 코웬(미국 조지메이슨대), 판케즈 게마와트(스페인 IESE 경영대학원), 클레이 크리슨텐슨·토머스 데이븐포트(이상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제프리 페퍼·로버트 버겔먼(이상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로저 마틴(토론토대 경영대학원 교수), 스튜어드 다이아몬드(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컨설턴트 : 밥 베첵(베인앤컴퍼니 CEO), 잔메자야 시나(보스턴컨설팅그룹 아·태 회장), 앤디 시에(전 모건스탠리 수석이코노미스트)
입력 : 2013.02.02 03:06 | 수정 : 2013.02.02 10:31
"한국경제 50년 만의 터닝 포인트… 폐쇄문화·가족경영·중국편중 3대 관성을 깨라"
'7.4→5.0→4.3→2.9→?'
점점 낮아지는 이 숫자들은 김영삼 정부(1993~98년)를 시작으로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가 각 5년 임기 동안 달성한 평균 경제 성장률이다. 이달 25일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 성적표는 물음표 상태이다. '747 공약'을 내걸었다가 최악의 실적을 낸 현 정부 탓인지, 박근혜 당선인 측은 집권 중 거시경제 목표치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한국을 둘러싼 경제 여건은 악재(惡材)투성이다. 세계경제 위기 장기화와 일본의 엔저(円低) 공습은 물론 잠재 성장률 하락, 내수 위축, 중산층 감소와 소득분배 악화, 생산인구 감소…. 지난해까지 10년간 연평균 투자 증가율은 1%대, 작년 4분기까지 경제성장률(전분기 대비)은 7분기 연속 0%대에 각각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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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강영호
이런 상황에서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높이고 체력을 강화할 돌파구는 무엇일까?
Weekly BIZ가 2006년 10월 창간 후 최초로 '한국 경제 현안과 새 정부 5년 경제 정책 방향'을 주제로 글로벌 경제·경영 석학들에게 연쇄 전화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한 이유이다. 여기에 응답한 12명의 대가(大家)들은 하나같이 "한국 경제가 1960년대 초 산업화에 착수한 지 50년 만에 진정한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며 "중소·벤처 기업들을 적극 육성하며 가족 경영 체제를 적절하게 개혁하지 못한다면 지금보다 더 큰 위기에 놓일 수 있다"고 했다.
"여태 한국 힘의 원천은 대기업이었으나 이제는
'스타트업 컬처(startup culture·활발한 창업문화)'가 주역이 돼야 합니다"(베리 아이켄그린·UC버클리대 교수).
"한국기업의 조직운영은 100점 만점에 30점 정도입니다. '가족 경영'이 특출한 한국식 경영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해요"(제프리 페퍼·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
"지난해 GDP 대비 외국인 직접 투자(FDI) 비중을 보면, 한국은 140개국 중 122위입니다. 한국이 살려면 폐쇄 문화를 깨고 더 활짝 개방해야 합니다"(판케즈 게마와트·스페인 IESE경영대학원 교수).
수차례 한국을 찾아 실물 경제에도 정통한 이들의 한국 경제관(觀)은 예전의 '낙관'과 '찬사' 모드에서 '신중'과 '경고' 쪽으로 선회하고 있었다.
일례로 12명의 석학 가운데 7명은 한국이 일본식 장기 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현재로선 낮다고 했지만,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를 포함한 5명은 '높다'와 '불확실하다'를 선택했다. 한국을 '기적(奇跡)'적인 성공 사례로 극찬하던 이들이 한국의 성장 가능성에 의문부호를 달고 있는 것이다.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제2, 제3의 삼성전자·현대차 같은 후속 기업들이 없다"(밥 베첵·베인앤컴퍼니 글로벌 CEO)는 게 주된 이유이다.
12명 가운데 대다수(10명)는 박근혜 정부의 향후 5년 경제운용 노선으로 '성장과 분배의 조화 모델'을,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벤처·중소기업 육성'을 각기 꼽았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중소·벤처기업을 제대로 육성하면 빈부 격차를 해소하고 노동 유연성을 높이는 '일석이조' 효과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게마와트 교수는 "1970년대 박정희 정권과 금융회사의 전폭 지원으로 성장한 재벌들의 성장이 한계를 맞은 마당에 강력한 브랜드를 갖춘 중소기업들이 해외로 뻗어가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한국인의 의식 혁신과 진로도 조언했다. "한국이 중국·일본에 둘러싸인 상황을 행운으로 여겨라." "세계경제 권력의 축(軸)이 선진국에서 아시아로 이동하는 흐름에 올라타라"는 것이다. 특히 중국 편중에서 탈피해 세계 경제의 새로운 활화산인 아세안을 겨냥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감한 규제 완화·개방으로 서비스 산업을 고도화하는 동시에 제조업 기반의 수출을 한국 경제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핵심 동력'으로 계속 키워야 한다"(타일러 코웬·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충고도 나왔다.
입력 : 2013.02.02 03:06 | 수정 : 2013.02.02 10:47
"한국의 개방 수준, 아프리카 개도국보다 낮아… 싸이 같은 '컬처 프리 제품' 더 만들 수 있겠나"
- 가족경영 한국 기업의 조직운영은 30점
서열 중시하는 톱다운식 의사 결정 구조… 퇴물 된 잭 웰치 류 일방적 리더십 산물
전문가 중용하고 아래로 의사결정 분산을
- 중국은 더 이상 금광 아니다
중국은 계속 성장할 거란 생각은 착각… 성장해도 인접 국가 장악하려고 할 것
최근 떠오르는 아세안 시장 공략해야
Weekly BIZ의 인터뷰에 응한 경영·경제 분야 세계적 석학들의 한국 경제에 대한 시각은 "낙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최근 10년간 세계 최고 경제학자'(2011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 뽑힌 타일러 코웬 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현재 같은 상황에서 한국이 예전 같은 고(高)성장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고, 판케즈 게마와트 스페인 IESE 교수는 "4~5년 후에도 한국의 1인당 소득은 2만달러대에 머물 것"이라고 했다. 이는 '한국의 1인당 소득이 2017년에 3만달러를 넘을 것'이라는 IMF의 최근 전망보다 훨씬 어두운 것이다.
이들은 한국 경제가 3가지 고정관념에서 탈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 문화가 최고'라는 편견 ▲'가족 경영은 특출난 한국식 경영'이라는 환상 ▲'중국시장 진출과 대중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집착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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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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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방도 세계 100위권…'컬처 프리' 제품으로 승부하라"'세계 122위, 111위, 98위'.
122위는 한국의 GDP 대비 외국인 직접투자(FDI), 111위는 인구 대비 이민자 숫자, 98위는 1인당 국제통화 시간이다. 이들은 지난해
'글로벌 연결성 지수'(DHL global connectiveness index)에서 드러난 한국의 현 주소이다. 게마와트 교수는 "한국은 모잠비크, 나미비아 같은 아프리카 개발도상국들보다 개방 수준이 낮은데, 제로(zero) 성장을 모면하려면 문화적 개방 수준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한국이 생존하려면 문화적 색깔이 드러나지 않는
'컬처 프리' 제품을 만드는 게 요체라고 했다. "2012년 수백만개 한국 제품 가운데 '컬처 프리' 제품은
갤럭시 스마트폰과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두 개뿐입니다. 확실한 문화적 연결고리를 만들 수 없다면 문화적 색깔을 빼고 승부하는 게 효과적입니다."
코웬 교수는 "문화·엔터테인먼트 분야를 적극적으로 수출해 '한국 고유의 브랜드'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들 업종이 경제성장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만, 다른 서비스 수출 기업에 해외 진출 방향과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수출 동력의 기수(旗手)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기업가에 대한 과감한 규제 완화, 불필요한
국가 공인 직업 면허(occupational license)의 의무 취득을 줄이고 빠르고 쉽게 서비스업종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해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활성화해야 한다"고 했다. 토머스 대븐포트 하버드대 방문교수는 "한류(韓流)는 삼성의 스마트폰 못지않게 확실한 글로벌 가능성을 갖고 있는데, 글로벌 상품으로 만들려면 영어 실력 탑재가 절실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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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 조직 운영 30점 수준…'가족 경영'을 혁신하라"석학들은 한국 경제와 기업이 근본적인 성장을 위해 가족 경영 중심의 기업과 조직문화를 대폭 혁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HR 분야의 세계적 대가(大家)인 제프리 페퍼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한국의 기업 성장 모델은 미국을 모방한 것인데 미국 기업의 90% 이상은 한국처럼 비효율적으로 사업군을 영위하는 '그룹 경영'을 안 한다"며 "개인이 석유·IT·조선·자동차까지 전문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로저 마틴 토론토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가족 오너십은 빠른 의사결정과 안정된 재무 관리 같은 장점을 갖고 있지만, 경영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문어발식 그룹'을 전문 분야로 계열 분리하고 전문 경영인을 CEO로 중용해야 한다"고 했다.
페퍼 교수는 "한국 기업의 조직 운영 평점은 100점 만점에 30점 정도"라며 "'톱다운'식 의사결정이 '한국식 경영'의 강점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그것은 위계 서열주의의 한 표현으로 지금은 퇴물이 된 잭 웰치 류의 일방적 리더십의 유산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벤치마킹할 대상으로 미국 대형 식료품 체인점 홀푸즈마켓과 저가항공사 사우스웨스트에어라인의 조직 운영 모델을 꼽았다.
"홀푸즈와 사우스웨스트에어라인은 모두 최하위 직원들에게 의사결정을 분산합니다. 최하위 직원들이 신입직원을 채용하고 나(I)보다 우리(We)를 중시하는 팀 문화입니다. 직원들을 상·중·하로 구분하는 '강제평가제도'를 없애고 각 부서·팀별로 집단 평가를 합니다. 자사(自社) 주식에 투자할 수 있는 '수익 공유제'를 도입하는 등 직원 복지와 훈련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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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장, 더는 '금광' 아니다…아세안을 공략하라"한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인 중국을 보는 석학들의 시각도 냉정했다. 앤디 시에(謝國忠) 모건스탠리 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역사적으로 최저를 기록할 전망인데, 이것이 한국 경제의 최대 위협 요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수출·부동산·자동차 등 3대 성장 동력의 평균 성장률이 지난해 두 자릿수에서 올해는 한 자릿수로 추락할 것이며, 낮은 이익률은 한국 기업들에도 영향을 미쳐 투자 위축과 수익 감소를 낳게 될 것이란 분석이다.
코웬 교수는 "한국 경제가 지난해 갑자기 추락한 가장 큰 이유는 '중국만큼은 꾸준히 성장할 것'이란 착각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했고, 게마와트 교수는 "중국은 더 이상 '금광(金鑛)'이 아니며, 최근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경제인 아세안 시장을 공략 1순위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는 "10~20년 후 중국 경제가 성장할수록 인접 국가와의 무역관계를 모두 장악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쟌메자야 시나 BCG 아시아태평양 회장은 "시장 진입 비용의 최소화, 지역 파트너와 장기적인 협력, 갑작스러운 경기 악화에 대한 사전 대비를 염두에 두고 아세안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며 "중국·인도는 자국 내에서도 지역별로 소득과 문화적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매우 정교한 '맞춤형' 진출이 절실하다"고 했다.
오늘자
Weekly BIZ는 '한국 경제 특집호'입니다. 에네르콘(C2면)과 중국R&D(C3면) 기사 모두 한국 경제의 활로와 관련된 기획입니다. 우리 문제를 상자 밖에서(out of the box) 입체적으로 조망하며 객관적인 해법을 찾아보려 한 것이지요.
최근 2년간 저희가 직접 인터뷰한 석학 30여명을 접촉한 결과, "한국 경제의 사정을 잘 모른다"며 중도에 철회한 분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5000여만명에 세계 15위 경제대국이라고 우리는 어깨에 힘줄지 몰라도, 석학들에 눈에 비친 한국은 중국·일본에 가리워진 약소국이라는 증거입니다.
다행인 것은 대기업 일변도로 큰 한국 경제가 벤처·중소기업이란 새 성장엔진을 추가장착해야 한다는 데 안팎의 진단이 일치했다는 점입니다. 관건은 실천일 것입니다. 정부 지원, 금융 우대, 기업가정신 고취 등 역대 정권 초마다 쓴 정책들이 1~2년 후 소리 소문 없이 묻혀버린 기억이 생생합니다.
박근혜 정부는 지금 잡은 목표를 5년 후 이맘 때까지 뚝심있게 관철해 한국 경제의 구조를 업그레이드하는 업적을 남겼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