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로 변해 산자락에 잠든 1만 마리의 물고기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자니 호기심이 발동했다. 어떻게 생겼을까? 돌이 되기 전엔 물고기였으니 날씬한 유선형 돌들이 첩첩이 누워 있을 거란 상상이 잠깐 들었다. `추적추적 내리던 가을비가 그치고 햇빛이 비치자 돌 위에 앉은 빗방울들이 은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하는데, 느낌이 이상해 문득 뒤를 돌아보니 수 많은 물고기들이 저녁 햇살에 비늘을 반짝이며 산으로 올라 오고 있더라`는 대목에서는 온 몸에 약간 소름이 돋는 듯도 했다.
그래서 당장 확인해 보기로 했다. 일명 `만어산 암괴류` 혹은 `만어산 어산불영`이라 불리는 기이한 전설을 간직한 너덜겅(돌이 많이 흩어져 있는 비탈)을 찾아 경남 밀양으로 향했다.
밀양은 한자로는 빽빽할 밀(密)에 볕 양(陽)자를 쓰고, 영어로는 `Miryang`으로 표기한다. 영어표기가 좀 이상하다 싶어 알아보니 밀양의 `밀`이 용을 뜻하는 우리말인 `미르`에서 나왔기 때문이란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에서는 `빽빽할 밀`자가 갖고 있는 다른 뜻인 `숨기다`를 차용해 부제를 `비밀스런 빛(Secret Sunshine)`으로 해석했지만, `용`에 대한 전설이 많은 밀양에서 밀은 용을 뜻한다. 참고로 `청룡`의 순수 우리말은 `푸르미르`다. 참 멋스런 말이다.
이색적인 풍광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만어산 만어사 너덜겅
대구부산고속도로 삼랑진나들목을 나와 삼랑진초등학교를 지나 13번 지방도를 타고 만어사 방향으로 향했다. 2차선 도로가 끝나면서 좁고 구불구불한 소로가 이어진다. 집 몇 채가 있는 산골마을 지나 산 중턱쯤에 이르니 `돌무더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좀 특이하긴 하군`이란 생각을 하며 숲보다 하늘이 더 많이 보이는 곳에 다다르니 일만 만(萬) 자에 물고기 어(魚)자를 쓰는 `만어사`가 나타났다.

만어사는 해발 670m인 만어산 정상 언저리에 자리한 작은 사찰이다. 보물이긴 하지만 평범해 보이는 삼층석탑(보물 제466호) 하나와 전각도 몇 개 없는 작은 절집이 이토록 유명한 이유는 단 하나, 만어사 주변 산자락에 무리지어 널려 있는 수 만개의 돌 때문이다. 돌이 많이 흩어져 있는 비탈을 가리켜 `너덜`, `너덜겅`, `너덜지대`라 표현하는데, 만어사 주변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돌들도 이런 `너덜겅` 중의 하나다.


만어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가니 얘기로 듣던 그 너덜겅이 눈 앞에 펼쳐진다. `아~`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이색적인 풍경에 취해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풍경이 눈으로 보는 것보다 밋밋하게 나온다. 앗, 역광이다. `만어산 암괴`라 불리는 너덜겅이 만어산 자락 서쪽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늦은 오후엔 완벽한 역광이 된다. 깔끔한 사진을 얻고 싶다면 아침 일찍 찾는 것이 나을 듯하다.
`만어산 어산불영`, `만어산 암괴류`로 불리는 이 돌들은 두드리면 종처럼 맑은 소리가 나기 때문에 `종석` 또는 `경석`이라고도 불린다. 재차 솟구치는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해 몇 개 두드려 봤더니, 일반 돌처럼 둔탁한 소리가 나는 것도 있지만 제법 울림이 있는 맑은 소리가 나는 것도 있다. 돌마다 제각기 다른 소리가 나는데, 종소리라기 보다는 쇳소리에 가깝다. 물론 잘 고르면 종소리가 나는 것도 있을 법하다. 이 너덜겅은 1996년 3월 11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152호로 지정될 때는 `만어산 어산불영`이란 이름으로, 2011년 1월 13일 천연기념물 제528호로 지정될 때는 `만어산 암괴류`로 등록되었다.

만어산 암괴류에는 두 가지 전설이 전한다.
옛날 동해 용왕의 아들이 목숨이 다한 것을 알고 사후에 정착할 땅을 찾아 길을 떠나자 수 많은 물고기들이 왕자를 따라갔다. 길을 떠난 왕자가 머물러 쉰 곳이 `만어사`이고, 이후 만어사에 정착한 왕자는 커다란 미륵바위가 되었고 왕자를 따르던 수 많은 물고기들은 크고 작은 돌이 되어 너덜겅을 이루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동국여지승람`과 `택리지`에 기록되어 있다. 왕자가 변한 5m 크기의 미륵바위는 미륵전 안에 모셔두었다.
다른 하나는 가락국의 `옥지`라는 연못에 살던 독한 용과 만어산에 살던 나찰녀(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귀신)가 서로 사귀면서 벼락과 비, 우박을 일으켜 4년 동안 곡식의 결실을 방해하자, 수로왕은 인도의 부처님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에 부처님이 여섯 비구와 1만의 천인(天人)을 보내 용과 나찰녀를 항복시키고 가르침을 내려 모든 재앙을 물리치게 되었다. 그러자 수로왕이 부처님의 은덕에 감사하는 뜻으로 만어사를 지었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전해온다.
비가 오지 않아서 비늘처럼 반짝인다는 풍경은 보지 못했다. 구름도 없어 밀양8경에 든다는 `만어사 운해`도 못 봤다. 소원을 빈 후 들면 무거워진다는 특이하게 생긴 돌도 내가 할 때는 소원을 빌었을 때나 빌지 않았을 때나 똑 같았다. 역광이라 좋은 사진도 찍지 못 했다. 그래도 내려올 때는 가슴이 뿌듯했다. 우리 산야에 감춰진 비밀스런 풍경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먼 길을 달려온 피로가 싹 잊혀졌다.
◎ 만어사 :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 산4 [클릭] 만어사 사진 더보기
아름다운 누각, 영남루

멀리 밀양까지 와서 만어산 암괴류만 보고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영남제일루라는 `영남루`를 찾았다. 밀양강변 깎아지른 절벽 위에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우뚝 선 영남루(보물 제147호)는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대 누각으로 꼽힌다. 평양 대동강변에 있다는 부벽루는 직접 확인하지 못해 알 수 없지만, 진주 남강의 촉석루보다는 규모가 더 웅장하다는 느낌이 든다.
영남루는 조선시대 밀양군을 찾은 손님들이 머물던 `밀주관`의 부속건물로 정면 5칸, 측면 4칸에 좌우 익루(침류당, 능파당)를 거느리고 있다. 익루와 영남루를 연결하는 나무계단이 고풍스러우면서도 세련된 모습이다.
고려 말 밀양군수 김주가 신라의 사찰인 영남사 터에 누각을 지은 것이 영남루의 시작이었다고 전해지는데, 여러 차례의 증축과 화재로 인한 소실, 중건을 거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금의 영남루는 1844년에 밀양부사 이인재에 의해 다시 세워진 것이라 한다.

고풍스러우면서도 세련되고, 낡았지만 품위를 잃지 않는 당당한 모습을 통해 `영남제일루`란 명성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영남루`란 현판은 1844년 중건 당시 당대 최고의 명필로 꼽히던 성파 하동주가 썼다. 강 건너 맞은 편의 강변공원에서 보는 야경도 좋다.


영남루 맞은 편에 자리한 천진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7호)은 역대 왕조 시조의 위패를 모신 `공진관`의 부속 건물로 1665년(현종 6년)에 건립되었다. 1722년(경종 2년)부터는 공진관을 대신해 위패를 보관하며 객사의 기능을 담당했고, 일제시대에는 일본 헌병대의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단군을 비롯해 부여, 고구려, 가야, 백제, 신라, 발해, 고려, 조선을 건국한 왕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 영남루 : 경남 밀양시 내일동 40, 055-356-2452 [클릭] 영남루 사진 더보기
밀양 맛집
◎ 동부식육식당 : 돼지국밥, 밀양시 무안면 무안리 825-8, 055-352-0023 [클릭]
◎ 장성통닭 : 통마리치킨, 밀양시 가곡동 582-6, 055-354-8272 [클릭]
출처 : 리에또웹진
첫댓글 아 밀양에 이런곳도 있네요 ㅎ 밀양하면 얼음골만 생각나서 ㅎ ㅎ
만어사 가보지 못해서
ㅎㅎ
좋은 곳 입니다
가보고 싶네요
기회 있을 때 가요
우리
사진들이 너무 예쁩니다.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