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들꽃 이효상입니다.
며칠 전 어떤 글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공활하다'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니,
우리나라의 하늘을 생각했다고 하는 글을 ...
공활―하다(空豁―)[형용사][여 불규칙 활용] 텅 비고 너르다.
아이들에게 우리나라 하늘을 보여 주면 될 것이나
외국에서 우리글을 가르치시는 분이시니, 보여 줄 수는 없고,...
찾아본 말글의 뜻은 '텅 비고, 넓다'니 무어라 설명할 수 없었을 듯 합니다.
'텅 비고 넓다는 뜻이야!'
비다와 넓다는 말만 해서 무어라 줄 것을 준 듯 하지 않습니다.
마치 성경에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라는 글월에서
'어린아이'처럼...
우리는 아이들의 물음에 답할 때는
무언가 서로 연결지어 함께 살 수 있는 설명을 해주고 싶어하는 듯 합니다.
그냥 넓다, 비다라고 하면 생각의 흐름이 탁 막히는 경향이 생기기도 하구요.
'넓다'와 '비다'라는 그림씨에 무언가를 연결시켜야 합니다.
보통 무언가는 이름씨를 나타내 버릇되니, 설명이 안 되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는 보이는 이름씨로 가르쳐야 배움이 시작되기도 하구요.
보이는...
'보다'를 이야기하거나, '너르다'를 이야기하거나, '비다'를 이야기함은
또 이음쇠가 없습니다.
어떤 낱말이 생기면,
그 낱말이 담고 있는 의미가 우리가 살아감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생겼을 텐데
무어라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건 우리가 만들 수 없는 것이 이어져 있기 때문일테죠...
'보다'는 움직임은 보통 '눈'으로 합니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눈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시각의 범위가 있을테구요...
게다가 희한하게도 눈은 주인이 가진 마음의 크기만큼 보입니다.
이 마음은 화나거나 짜증나거나 신경질 날 때는
그 느낌이 일어난 대상에 대해서만 보입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과 함께 사는 마음에는 다른 사람과 관계되는 것들도 보입니다.
그럼, 묻는 사람에 맞춰서 이야기해야 함께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데,
아이들의 물음에 대꾸할 때는
아이들의 물음에 맞춰서 이야기하면 됩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느낌을 이야기해주면, 전달이 전혀 안됩니다.
가을하늘의 구름 한 점 없이 티없이 맑음을 대하는
그 느낌을 이야기해 줄 수는 없다는 거죠.
그저 '티없이 맑고 끝없이 넓다'고 이야기해주면 되겠지요.
그러면서 애국가를 가르쳐주면 됩니다.
'애국가 3절,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가을하늘이 높고 구름없이 공활하다.
여기서 '높고 구름없다'는 '공활하다'를 꾸며주는 그림씨입니다.
그러니까, '공활하다'는 '높고 구름없다'는 뜻이 되는 것이죠.
거기에 조금 마음이 커지기 위해 덧붙인다면,
일단, '마음이 커진다'는 것은
자기가 생각하는, 마음쓰는 범위가 생각하는 나를 껴안으며
생각하고 마음쓰는 나를 유지하기 위해 함께 있는
나와 같은 존재들을 생각하고 마음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한 번 돌아봅니다.
내가 하늘없이 살 수 있는가...
정신이나 영혼과 연관지어 하늘을 생각하는 건 저 산 옆에 제쳐두고,
몸이 사는데, 하늘없이 살 수 있는가...
지구 주위를 둘러싼 하늘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사람은 산소 없으면 숨쉴 수 없다하는데, 하늘을 벗어나면 산소를 얻기 힘든다고 해요.
지구외의 세계와 만나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막을 것은 막는
껍질과 문지기 역할을 하기도 하죠.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중력이 있고, 물이 만들어져 활동하는 것이겠지만,...
그 하늘에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이 있어요.
그것들이 모여서 하늘이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텅 비고 너르다'고 해석을 하였어요.
풀이한 것은 좋아요,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데 유익한 이야기, 철학이 들어가지 않은 낱말로 풀이되었어요.
그렇다면, '비다'에 철학을 주던지,
아니면, 다른 뜻으로 '공활하다'를 풀이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없이'
높고 구름없이 비어있는 듯 보여도, 수없이 많은 물질들이 그 안에 있고,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서로 협력할 수 있고,
협력의 큰 방편으로 서로 볼 수 있는 하늘...
너무도 맑아,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그런 뜻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애국가 3절의 그 다음 글월과도 잘 어울려요.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어두운 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느껴지는 것은 자신의 두려움 뿐인 그 밤하늘에
밝은 달이 구름 한 점 없어 바로 땅을 비추는,
그래서 서로 볼 수 있고 쉽게 협력할 수 있는 그런 가슴이 우리의 기상이라는 뜻이죠.
높다하는 것은 높은 대로, 낮다하는 것은 낮은 대로
그 자리 그대로 수줍음 없이, 창피함 없이 그대로 협력할 수 있도록
이 세상에 태어난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서로를 자신있게 이야기하며 협력하는 나라
그렇게 영원무궁하게 이어가는 나라로 바로 우리나라를 만들어가는 기상...
처음하는 것은 당연히 앳되고, 많이 할 수록 잘 하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가지고
지식의 많고 적음의 상태, 그대로 나와 똑같은 사람을 존경하는 나라 ...
외로움이라는 어둠을 비추어 함께 하는 빛곳으로 만드는 나라...
그 나라가 우리나라, 대한민국이고, 그 맑고 밝음이 우리나라의 기상입니다.
고요히 불러봅니다.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존하세."
좋은 하루^^
<애국가 (愛 國 歌)의 역사>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을 일깨워 주기 위한 노래.
국가(國歌)는 한 나라를 상징하는 국가적 차원의 공식적인 노래인데 비하여,
애국가는 공식.비공식 여부를 떠나 나라를 사랑하는 내용을 담은 노래라는 점에서
이 둘은 구분된다.
애국가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국가로 제정된 애국가는 나라를 상징하는 의식
음악으로서 구실을 하게 된다. 우리 나라의 애국가는 여러 종류가 있다.
즉,갑오경장 이후 각종 애국가가 성창되기 시작하여 1896년 무렵에 각 지방에서
불린 애국가만해도 10여 종류에 이른다.
1876년 일본과 병자수호조약을 체결한 이후 1882년에는 미국, 1884년에는 영국.독일.
이탈리아, 1889년에는 러시아와 프랑스, 1892년 에는 오스트레일리아.덴마크,
1901년에는 벨기에 등과 조약을 맺게 되었다. 이와같이 세계 열강국과 문호를
개방하고 새로운 문물을 접하게 됨에 따라 개화에 눈을 뜨게 되었고,
애국애족의 사상과 더불어 내용이 각각 다른 애국가가 도처에서 나오게 되었다.
이 시대에 나온 애국가를 살펴 보면, 1896년 나필균 작 <애국가>, 제물포 전경택의
<애국가>, 한명원의 <애국가>, 유태성의 <애국가>, 달성 예수교인들의 <애국가>,
새문안교회의 <애국가>, 최병희의 <애국가>, 평양 김종섭의 <애국가>, 배재학당
문경호의 <애국가>, 이용우의 <애국가>, 배재학당의 <애국가> 등이 있다.
이 중에서 배재학당 학도들이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 정초식에서 부른 <애국가>는
[악보1]과 같다.
그러나 1898년 독립협회가 독립문에서 가진 개국 기원 506돌 경축식에서 무관학도들이
부르고, 초10일 태황제 탄신일에 곳곳에서 부른 애국가는 [악보2]에서 보는 바와 같이
또 다른 내용으로 되어있다.
무관학도들이 부른 <애국가>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그런데 <<증보문헌비고>> 권 103 악고(樂考)에 1900년 시의 <대한애국가>가 소개되어
있다.
이 <대한애국가>는 에케르트 (Eckert, F.)가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에케르트는
광무 5년, 즉 1901년 2월 19일에 서울에 도착하여 그 해 3월 19일에 고종황제를
폐현(陛見)하였고, 1902년 4월 5일에 우리 정부와 용빙계약서(傭聘契約書)를 작성하
였으므로 에케르트가 작곡한 곡이 아님이 분명하다.
다시 말하면 배재학당 학도들이 부른 <애국가>는 스코틀랜드 민요인
의 곡조를 따서 부른 것이고, 1898년 무관학도들이 부른 <애국가>는
영국 국가인 <신이여 황제를 보호하소서 God save the king>의 가사내용과 곡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며, <<증보문헌비고>>의 <대한애국가>도 무관학도들이 부른
<애국가>와 같은 것이다.
에케르트는 독일인으로 그의 한국에 관한 조사보고서 가운데에 이 <대한제국 애국가>의
악보가 첨부되어 있다.
<대한제국 애국가>는 1902년에 에케르트가 작곡한 것이지만, 그 가사는 영국 국가
의 내용과 비슷하다. 또한, 1904년 5월 13일자 <<황성신문>>에
"학부(學部)에서 각 학교 애국가를 정리하기 위하여 각 학교에 신칙(申飭)하되 군악대
(軍樂隊)에서 조음(調音)한 국가를 효방(效倣)하여 학도를 교수하라 하난대 그 국가는
여좌(如左)하니, 상제(上帝)난 우리/황제(皇帝)를 도으소서/성수무강(聖壽無疆)하샤/
해옥주(海屋籌)를 산(山)갓치 사으소서/위권(威權)이 환영(환瀛)에 ㅅ덜치샤
/오천만세에/복록(福綠)이 무궁케 하쇼셔/상제난 우리/황제를 도으소셔.' 라는
기사가 있다."
이와같이 1902년 에케르트 작곡한 <애국가>는 군악대에서 주로 연주되다가 1904년부터
는 각급 학교에서 의문적으로 교수하도록 하였다. 그 뒤 에케르트가 작곡한 곡에
가사 내용을 달리한 <애국가>가 나왔는데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상뎨여 우리나라를
도으쇼셔/반만년의 역사 배달민족/영원히 번영하야/해달이 무궁하도록/셩디동방의
원류가 곤곤히/상뎨여 우리 나라를 도으쇼셔." 이 노래는 국치(國恥)의 을사조약
(1905)과 정미칠조약(1907) 이후에 1902년에 에케르트에 의해 작곡된 <애국가>의 가사
만 바꾼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 무렵에도 4,5종의 <애국가>가 전파되었는데,그 중에서 현행 <애국가>의
가사와 같은 것은 배종섭 소장 <<창가책>>과 강릉 이기재 소장 <<창가책>> 사본에서
볼 수 있고,"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후렴구는
이미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 정초식 때 배재학당 학도들이 부른 <애국가>에서부터
등장한다.
현행 <애국가>의 가사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윤치호가 지었다는 설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까지는 스코틀랜드 민요인 에
이 가사를 붙여 불렀으나, 정부수립 이후부터는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가 대한민국
국가로 준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국의 애국가 가사는 다음과 같다.
1절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후렴 :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2절 :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3절 :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4절 :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삶과 사랑이 있는 한 너무 늦은 것은 없다.
꿈은 꾸는 것, 꿈은 찾아가는 것,...
용서할 수 있는 힘만큼 스스로의 일을 할 수 있다.
한 끼를 굶으면 평생을 못 찾아 먹는다.
저장하지 않으려면, 일하지 말자.
머리가 들어가면, 몸은 따라 들어간다.
작은 것을 버리면, 큰 것을 얻을 수 없다.
지금 가지는 느낌이 '나'라는 믿음이 생기면 움직일 수 있다.
♡♥♡♥♡♥♡♥♡♥♡♥♡♥♡♥♡♥♡♥♡♥2002. 12.16. 들꽃 이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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