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천절
올해 4월 23일(화, 음력 3월15일)이 '어천절' 이다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대종교의 4대 경절에 모두 참석하여 크게 기렸다. 이중 '어천절' 기념식에 참여한 인물 중 주로 신문지상에 언급된 분들만 소개해 보면,
1920. 5. 3. 상해거류민단 사무실에서 김가진(金嘉鎭, 1846-1922, 개식), 김규식(金奎植,1881-1950, 기념사), 박은식(朴殷植, 1859-1925, 강연), 이화숙(李華淑, 1893-1978, 신가)25), 조완구(趙琬九, 1881-1954, 연설), 신규식(申圭植, 1880-1922) / #독립신문
1921. 4. 22. 상해임시정부 의정원에서 홍진(洪震, 1877-1946, 개식), 신규식(축사), 조완구, 김원식(金遠植, 1885-?,신가 병창)2, 조완구(강연), 이승만(李承晩, 1875-1965, 찬송사) / #독립신문
1924.4. 13. 상해 남양학교에서 여운형(呂運亨, 1886-1947, 사회), 조완구(강연) / #독립신문
1920. 5. 5. 서울 가회동 남도본사에서 강우(姜虞, 1862-1932, 제식집례), 김성(金誠, 제식집례), 유근(柳瑾, 1861-1921, 경하식집례), 엄주천(嚴柱天,1897-1975, 경하식집례) 권덕규(權德奎, 1890-1950, 강도) / #매일신보
1921.4. 22. 서울 수송동 각황사에서 송진우(宋鎭禹, 1887-1947), 박일병(朴一秉,1893-1937, 연설) / #동아일보
1923. 4. 30 성주 시교당에서 성세영(成世英, 1878-1958, 사회)28), 송수근(宋壽根, 1896-1969, 개식원도), 유수영(기념사), 이병규(신사기 봉독), 이*호(교회 상황 포고), 송규선(宋圭善, 1880-1948, 대교진리 강연), 박상인 (개식원도) / #조선일보
1921년 4월 22일 임시정부 의정원 건물에서 열린 '어천절' 기념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대통령 #이승만 은 찬송사를 발표하였다.
“온 세상이 캄캄할 때에 우리에게 나타내시사 빛과 터와 글을 주시니 알음과 지킴과 행함이 넉넉하였도다. 그 힘을 보이시고 도로 가시샤옜 자취를 머무시니 정신과 살음과 즐김이 영광과 평안과 행복을 얻어 문체롭게 건전하게 널리 사랑하여 꿋꿋하게 이어 왓도다. 우리 황조는 거룩하시샤 크시며 지혜로우시며 힘지시샤 이를 쫓아 배우며 베푸시니 인류의 한배시며 임검이시며 스승이셧다. 허물며 그 핏줄을 이으며 그 가르침을 받아온 우리 배달 민족이리오 오늘을 맞나 기껍고 고마 운좋게 두렵고 죄많음을 더욱 느끼도다. 나아가르치신 본 뜻이며 고로 어르신 깊은 사랑을 어찌 잊을 손가 불초한 승만은 이를 본받아 큰 집을 메고 연약하나마 모으며 나아가 한배의 끼치심을 빛내고 질기과져 하나이다.“ (#독립신문,1921.4. 30.)
일제강점기, 국내외에서 거행한 '개천절' 행사는 많이 알려져 있으나, 어천절은 많이 연구되지 않았다. '개천절'이 단군 한배검이 조선을 개국하고 문명화를 이루었다는 것을 기념하였다면 '어천절'은 단군이 소멸하지 않고 하늘로 돌아간 것을 기념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이 다하면 거창한 말 대신 '돌아가셨다'라는 말을 한다.
다시 말해 '어천절'은 삼신의 영원성을 종교적 신앙으로 믿었다는 것을 말한다. 국내, 상해, 만주에서 '어천절'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대종교'만의 행사는 아니었다. 상해에서는 이승만을 비롯한 많은 임시정부 요인들이 참석하여 기념사를 하였다. 이들의 기념사는 단군의 은총과 천손들의 잘못, 국가를 되찾겠다는 책임의식을 강조하였던 임서정부의 공식의례였다.
대한민국은 헌법전문에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천명하였다. 그렇다면 무릇 '개천절'과 '어천절'은 정부차원에서 성대히 기려야 마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