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전도사님께
무척 무더운 날씨입니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대개 날씨 이야기부터 꺼내곤 합니다. 지구온난화나 기후변화 같이 머릿속에서 떠올리던 이야기들이 이제는 점점 피부로 느껴집니다. 지난해에는 가장 추운 겨울이라며 떠들썩했는데, 올해는 가장 더운 여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날씨를 함께 고민하기보다 에어컨만 불티나게 팔리는 것 같아 올해 여름이 더 힘겹습니다. 이렇게 전도사님께 보내는 편지에서도 날씨 이야기부터 쓰려니 전도사님이 계신 그곳이 떠오릅니다. 이곳의 무더위는 작은 바람도 함께 나누어 써야 하는 그곳의 더위에 비할 바가 아니겠지요.
내 방의 더위를 밖으로 버리기만 하면 된다는 에어컨의 논리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꼭 닮아 있습니다. 사실 요즘 서울은 에어컨 때문에 너무 춥거나 덥습니다. 날씨도 사람들을 따라가는 걸까요. 날씨까지 봄과 가을을 버린 채 극단적으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제가 살았던 성동구치소는 봄과 가을이 무척 짧았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쉽게 느낄 수 없었지요. 그래도 담장 너머로 봄이 오고 여름이 가는 변화를 무던히 기다렸지요. 감옥보다 계절이 가는 것이 반가운 곳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사람들 모두 그래서 콘크리트 담장과 바닥 사이로 스며드는 초록을 참 좋아했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여름에는 옆 사람의 체온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요. 신영복 선생님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단지 옆 사람을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한다”고 썼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신 선생님은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 나가는 원시적 우정과는 비교되는 형벌”이라고 하셨지요. 전도사님은 어떠신가요. 저는 여름 내내 이 이야기를 실감하며 가을이 오기를 기다렸는데 말입니다. 이 더위에 옆 사람의 체온이 고마울 수 있을까요.
더위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여름의 강정마을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분명 계속되는 공사와 경찰의 무자비한 행태로 강정마을의 여름은 어느 해보다 더 덥고 힘들겠지요. 공사 차량의 진입과 부당한 재판은 분명 주민과 활동가들에게 커다란 부담일 겁니다. 혹시 이런 고통과 어려움들이 내부를 향해 소리 지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듭니다. 함께 싸울 때는 몰라도, 서로 고통을 나누고 위로를 하는 데는 서툰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요. 저는 감옥에서 쉬이 그런 모습들을 마주하곤 했습니다. 문제는 무더운 날씨지만 당장 미워지는 것은 바로 옆 사람의 체온이듯이 갈등과 미움은 쉽게 바로 옆 사람에게 전이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왜 멀리 있는 이들보다 가까운 사람들을 더 쉽게 미워할까요. 혹시 전도사님의 그 좁은 방에서도 이 무더위는 평화를 시험하는 리트머스지가 아닐까요. 기도해 주세요. 저는 쉽게 이런 무더위와 고통을 함께 이겨 나갈 지혜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전도사님, 혹시 지난해 강정마을을 방문했던 오키나와의 활동가들을 기억하시는지요? 휠체어에 앉은 채로 늘 호탕하게 웃던 토미야마 상과 하얀 턱수염의 토미타 상은 지난해 강정마을 평화캠프에 함께하기 위해 오키나와에서 왔었지요. 일본 남쪽에 위치한 오키나와는 사람도, 자연환경도, 그리고 역사도 우리네 제주와 참 많이 닮은 곳입니다. 저는 얼마 전 다시 오키나와를 다녀왔는데요. 매년 방문하는 오키나와지만 강정마을 때문인지 이번 방문은 더 특별했습니다. 몇 해 전 오키나와를 방문했던 제주의 환경활동가 김동주도 제주와 강정 두 섬은 닮은 곳이 정말 많다고 말합니다. 김동주는 두 섬이 각각 4·3 사건과 오키나와전쟁을 겪으며 가족 혹은 이웃의 한둘쯤은 잃어야 했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고, 한국과 일본의 최남단에 위치한 채 평화로울 때는 별다른 개발도 하지 않고 관광지로 이용되다가,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군사기지로 이용될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오키나와는 해양 스포츠와 수려한 자연환경으로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미군기지와 자위대 기지로 유명한 군사기지이기도 합니다. 일본 국토의 1%도 채 되지 않는 면적에 75%의 주일 미군기지가 집중되어 있고, 일본에서는 태평양전쟁 중에 유일하게 지상전을 경험하고 4만 명이 목숨을 잃은 곳입니다. 전쟁의 향방이 정해진 뒤에도 일본이 천황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들의 목숨을 버리면서 미국과 협상을 벌였던 것이죠. 오키나와에 가면 소위 ‘가마’라고 불리는 동굴들이 있습니다. 이 가마들 중에는 오키나와 전쟁 당시 ‘집단 자결지’로 알려진 곳들이 많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이 가마에 숨어 있다가 미국에 포로로 잡히는 대신 자결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신민화 교육이 이와 같은 집단 자결의 참화를 낳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군의 잔인성을 배우며 일본의 군국주의 아래 집단 자결을 끊임없이 교육받은 결과인 셈이지요. 병영 사회, 매순간 국민을 군인으로 만들려 하는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아, 이번에 오키나와에 갔더니 전도사님을 기억하는 활동가들이 내년 5월에 꼭 전도사님을 초대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매년 5월 15일 커다란 집회와 평화 행진이 열리곤 하는데요. 그날은 저 같은 외국 활동가나 일본 본토의 많은 활동가들도 오키나와를 방문하곤 합니다. 이날은 과거 중국의 일부였던 류큐 왕국이 일본에 강제로 편입된 날이기도 하고, 태평양전쟁 이후 미군정의 지배를 받던 오키나와가 1972년 일본에 다시 반환된 날이기도 합니다. 저는 오키나와전쟁으로 수많은 목숨을 잃어야 했던 이 작은 섬이 1972년까지 미국의 영토처럼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 본토로 오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고 하니까 말이지요.
오키나와에 꼭 소개시켜드리고 싶은 곳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헤노코에 전도사님과 꼭 함께 가 보고 싶습니다. 헤노코는 오키나와에서도 제주 강정마을과 가장 닮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해군기지는 아니지만 미군의 해병대 활주로가 바다 위에 건설되고 있고, 아름다운 바다와 자연의 생명들을 버릴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지요. 헤노코 농성장에는 마치 예전 구럼비 앞바다의 천막처럼 커다란 천막과 함께 헤노코 투쟁 과정을 보여 주는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저는 강정마을 농성장보다 이곳 헤노코의 농성장을 먼저 보았는데요. 얼마 전에 가 보니 어느새 투쟁 일수가 3000일이 훌쩍 넘어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헤노코는 해상 활주로 건설을 막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보트와 카누를 타고 공사를 막아냈던 걸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전도사님이 함께하신 강정SOS해상팀의 활동과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오키나와 이야기를 쓰다 보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전도사님께 보내는 이 편지를 빌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오키나와를 소개하고 싶은 욕심도 생기거든요. 군사기지 문제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고민하다 보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곳이 바로 오키나와이기 때문인가 봅니다. 이 이야기는 꼭 하고 싶은데요. 몇 해 전 한국에도 많이 소개되었던 일본의 헌법9조수호운동을 보면서 조금 불편했습니다. 물론 당연히 ‘군대 없는 나라’를 명시한 일본의 평화 헌법이 지켜지길 바라면서도 그것이 역사적으로 가능했던 구조, 군대가 없는 일본이 유지될 수 있었던 그 구조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되지 않았던 것이 무척 아쉬웠거든요. 바로 한국과 오키나와에 집중된 미군기지가 그것이지요. 일본의 경제성장은 일정 부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같은 전쟁 특수와 거대한 군대를 유지하지 않아도 되었던 전후 평화 헌법의 구조 안에서 가능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제는 자위대가 거대해졌지만, 그동안 이웃 한국과 일본 변방 오키나와의 엄청난 군사기지가 일본의 평화 헌법을 지켜주었던 셈이지요. 저는 이런 일제 침략의 과거사뿐만 아니라 냉전과 군사분업적 역사의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낼 때에만 동아이사의 평화가 가능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전도사님, 저는 8월 중순쯤 다시 제주를 방문할 듯합니다. 지난번에는 교도소 앞까지 갔다가 어처구니없게 신분증을 가지고 오지 않아서 혼자 밖에서 기다려야 했었는데요. 이번에는 전도사님 얼굴을 꼭 뵙고 싶습니다. 이번 제주 방문은 전도사님처럼 재판을 받기 위해 가는 것입니다. 지난해부터 때때로 제주를 오가다 보니 기다리는 것은 재판뿐이네요. 그래도 늘 함께했던 친구들과 재판을 받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지는 않습니다. 앞으로도 재판을 받으러 제주를 방문해야 할 것 같아 아무래도 정기적으로 전도사님 얼굴을 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농도 잠시 해 봅니다.
홀로 재판을 기다리셔야 하는 전도사님의 마음은 어떠신지요. 많은 개척자들 형제자매들이 이번 달에는 전도사님이 꼭 나오실 거라고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도 유리벽을 마주하기보다 직접 얼굴을 뵙고 싶은 마음이 크네요.
제주에서 뵙겠습니다. 담장 너머에도 평화의 시간이 머물기를 기도하겠습니다.
2012. 8. 8.
박정경수 드림
|
|
|
▲ ⓒ난영 |
경수 형제님
편지 잘 받았습니다. 몇 차례의 태풍에 지리했던 여름이 힘겹게 밀려가는 것 같습니다. 올해처럼 태풍을 기다린 해도 없습니다. 동반하는 비바람에 날도 선선해지고, 강한 파도로 해군기지 건설 작업이 잠시나마 중단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태풍이 불 때면 바람과 파도를 일으켜 해군기지 건설을 막아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감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막막합니다.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밀려오고, 내가 속한 소수가 옹호하는 가치를 무시하고 짓밟는 다수의 횡포 앞에서 좌절감이 찾아올 때마다 외로움을 느낍니다.
엊그제 미사 도중 경찰의 군화에 짓밟힌 성체를 붙들고 오열하셨던 문정현 신부님이 오늘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어쩌면 오늘이 제게는 마지막 접견이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수감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자유인입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자연 유산을 지키고, 그에 기식하고 있는 하나님의 피조물들의 생명을 보호하며, 이 땅에 전쟁과 대량 살상 무기들이 판치지 못하도록 막으려고 싸웠습니다. 저는 저의 행동에 어떤 후회나 개선의 의사도 없습니다. 이 감옥에서도 저의 자유를 실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문 신부님께서는 제가 수감을 거부할 경우 앞으로 교도소에서 겪게 될 고통을 일러 주시며 교도소에 순응해 줄 것을 간청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문 신부님의 분부를 거역한 적이 없지만, 이번만큼은 마음속에서 흘러나오는 저의 내면의 소리를 따르려고 합니다. 이제는 제 아버님께도 저의 수감 소식을 알려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구속이 연장되어서 추석 연휴에도 찾아뵐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형제님, 오키나와에서 오셨던 토미야마 상과 토미타 상의 소식을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애가 있는 토미야마 상은 휠체어를 끌고 강정마을까지 와서 열정을 다해 ‘반전 평화’의 힘을 보태 주셨습니다. 오키나와와 제주도는 닮은 구석이 많습니다. 제주도가 옛날 탐라국이란 독립 왕국이었듯이 오키나와도 독립된 류쿠 왕국이었습니다. 또한 두 섬이 모두 2차 대전의 희생 제물이었던 비참함도 너무 닮았습니다. 그렇기에 제주도와 오키나와의 반전 평화 활동에는 깊은 공감과 연대가 생긴 것이지요. 최근에는 하와이의 주민들까지 제주도의 강정마을을 방문해서 하와이가 미군기지로 인해 겪고 있는 고통을 호소하며, 진정으로 하와이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하와이가 제주도처럼 군사기지 없는 평화의 섬으로 변모하는 것이라고 전해 주었습니다.
아름다운 하와이의 오아후 섬 진주만에 군사기지가 들어선 이후 이제 더 이상 이곳에서 진주조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와이의 군사기지 전문가 백구한 씨는 강연에서 “하와이의 물은 기지에서 방출한 수많은 발암물질과 방사성 폐기물로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오염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제주도에 민군복합항으로 해군기지를 건설하면 하와이 같이 될 수 있다’고 발표했던 박근혜 씨에 대해서 “그녀는 하와이에 관해 매우 무지했거나 해군기지를 받아들이도록 사람들을 속이고 있거나 둘 중 하나라고 밖에 볼 수 없다”며, “제주의 몇몇 사람들은 하와이처럼 되길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실은 하와이 사람들이 강정처럼 되길 원한다는 것이다! 하와이 사람들은 다시 깨끗한 물을 갖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하와이(Hawaii)의 ‘와이(wai)’는 물이란 뜻입니다. 하와이는 물의 섬입니다. 하와이의 원주민들은 ‘부(wealth)’도 풍부한 물이라는 뜻의 ‘와이와이(waiwai)’라고 했습니다. 강정(江汀)이 ‘물 강(江), 물가 정(汀)’인 것처럼 제주도에서 가장 물이 풍부한 마을입니다. 그것 자체로 강정마을은 제주도의 하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군기지가 들어서면서 지하수는 벌써 오염되기 시작했고, 구럼비바위를 뚫고 솟아오르던 맑고 깨끗한 용천수 샘들은 시멘트로 막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맑은 물줄기를 막아 버리고, 아름답고 성스러운 바위를 부셔 버립니다. 이 물과 바위에 기식하던 희귀한 동식물들이 몰사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법정이 나를 엄벌에 처한다고 위협해도,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내 행동을 금지하는 엄명을 내린다 해도 나는 우리 조국의 자연 유산을 지켜내기 위해서 결단코 내 뜻을 굽히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군사기지·탄약고·무기고가 아니라, 맑고 깨끗한 물이고 오염되지 않은 신선한 공기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자연환경과 인권, 민주주의와 같은 소중한 가치들을 희생시키면서 군부의 몸집 불리기와 재벌들의 수익을 챙겨 주고 있습니다. 수단과 목적이 도치된 기막힌 현실 속에서 강정마을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경수 형제님, 나는 감옥에서 꿈을 꾸고 있습니다. 앞으로 석방이 되면 돛배를 구해서 오키나와와 하와이로 항해를 할 겁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군사기지로 땅과 바다를 잃어버린 희생자들을 만나 평화를 위한 결속과 연대를 더욱 굳게 만들어 동병상련으로 맺어진 국제적인 협력을 발전시키는 것이지요. 섬 주민이야말로 국가주의의 광기에 가장 쉽게 희생당할 수밖에 없는 약자입니다. 누구도 돌보지 않는 비정한 현실 속에서 고립된 채 정부의 공권력에 무참하게 당할 수밖에 없는 작은 섬들의 주민들이 함께 뭉치지 않는다면 온 세상의 섬들은 언제든지 군사주의의 희생 제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도양의 외로운 섬 디에고가르시아가 영·미에 의해 그렇게 희생되었고 남중국해의 수많은 섬들도 주변국들의 군사력 앞에 똑같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나는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의 시민들과 함께 이런 위기에 처한 고독한 섬들을 향해 돛을 올리고 싶습니다.
바다는 모든 인류가 공유하는 푸른 대륙입니다. 누구도 이를 사유화할 수 없고 배타적인 소유권 주장을 할 수 없습니다. 오키나와나 하와이의 군사기지에서 흘러나오는 오염 물질이나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출된 세슘 성분이 어느 날엔가는 제주 앞바다에서 살고 있는 자리돔을 통해 우리의 밥상에 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언젠가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에서 지낼 때 바닷가에서 파도에 떠내려 온 쓰레기들을 치우고 있었습니다. 그때 바닷가에 동동 떠 있는 흰 막대를 발견하고 집어 들어 보니 긴 형광등이었는데 놀랍게도 그 끝에 ‘번개표’라는 한국어 표기가 선명했습니다. 이 막대 등이 바다의 조류를 타고 먼 인도네시아까지 떠내려온 것을 보고 다시금 바다는 모든 인류의 것이고 내 나라의 앞바다는 지구 끝의 다른 나라의 앞마당과 연결되어 있다는 자각으로 전율했습니다.
경수 형제님, 어떤 때는 제가 화성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기독 청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외딴 별에 고립된 느낌이지요. 대한민국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휘청거리고 있는데 젊은이들의 움직임이 눈에 잘 안 띄네요. 김정은의 등장과 그로 인한 사회 변화 속에서 새로운 남북 협력과 통일의 가능성을 열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패기를 보고 싶습니다. 또 이런 변화가 예기치 못한 퇴보로 진행되며 돌출될지도 모를 중국과 미국의 무력 충돌의 가능성도 신랄하게 토론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나는 기독 청년들이 푸른 바다를 누비며 군사기지 건설로 고향에서 쫓겨난 주민들과 함께 군대를 쫓아내고 ‘비무장 평화의 섬’을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오염되고 파괴된 푸른 바다 속으로 들어가 다시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모여들 수 있도록 인공 산호들을 장치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나는 우리 기독 청년들이 고리원전 1호기처럼 원전이란 이름의 위험한 원자폭탄을 하루 빨리 가동 중지시키기 위해 냉각탑을 점령하는 용감한 행동을 보고 싶습니다. 이런 호연지기(浩然之氣)로 가득 찬 패기 있는 기독 청년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요?
경수 형제님, 평화 헌법에 관한 이야기로 끝을 맺어야 할 것 같습니다. 형제님은 일본의 헌법 9조에 명시된 영구적인 군대와 침략 전쟁의 포기가 가능했던 이유가 오키나와나 한미의 군사적 부담에 무임승차를 할 수 있었던 역사적 정황 때문이 아니었느냐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다하더라도 일본이 계속 헌법 9조를 굳게 수호하기를 바랍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과 중국, 러시아도 일본과 같은 평화 헌법을 채택하기를 바랍니다. 물론 법만으로 평화가 실현되지는 않지만 만일 일본에 헌법 9조가 없었다면, 지금 일본은 경제성장에 상응하는 강력한 군사 대국이 되어 다시금 동북아시아의 주변 국가를 위협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기독 청년들이 취업이나 비정규직, 반값 등록금 등 많은 문제들에 짓눌려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과 더불어 세상을 바꾸는 꿈을 품으셨던 것처럼 교회와 캠퍼스에서 도원결의와 같은 의기투합을 하기를 바랍니다. 자꾸만 작아지고 소심해지는 젊은이들의 포부와 기상을 바라보며 안타깝기만 합니다.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일에 생애를 걸 수 있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저는 이제 감옥에서 무죄를 주장할 뿐 아니라 그런 믿음을 갖고 죄인이 아닌 것처럼 살아갈 겁니다. 그것도 곧 처벌로 다가올 것입니다. 어쩌면 접견이나 서신 연락조차 허락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법정에서 처벌받아 교도소까지 와서 교도소의 규정에 의해 또 다시 이중으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도 나는 나의 자유를 실천하고 싶습니다. 나의 존엄성을 지켜야 할 책임은 누구보다도 먼저 내 자신에게 있으니까요. 멀리 보이는 한라산 정상에는 이내 가을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한라산 중턱의 교도소의 새벽녘은 서늘한 기운조차 느껴집니다. 어느덧 여름의 끝자락에 와 있나 봅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2012. 8. 13.
한라산 자락 검은오름 아래 제주교도소에서
송강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