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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고야43 원문보기 글쓴이: 고야
고구려의 땅을 찾아 떠나는 여행 제6일(연길-심양-서울, 2009.6.20.토)
. 사실상의 고구려유적탐방은 어제 로서 끝이 나고 이제는 서울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 어제 뜨지 못한 심양행 비행기는 12시간이 지난 20일(토) 10시 50분에 있다고 한다. 예정에 없는 연길에서의 하룻밤이 지나고 아침시간은 여유로웠다. 이미 심양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 있어야 할 시간에 연길공항에서 탑승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었다. . 승객의 대부분이 어제 공항에 있었던 사람들, 그 중에는 탐방 도중에 여러 번 마주친 팀들도 있지만 크게 걱정되는 표정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각 팀의 인솔자들은 인천행 비행기 표를 어떻게 구해야 할지 서로 정보를 구하는 모습들이다. . 심양-인천 간의 비행기가 하루에 두 편이 있는데 오후 비행기의 좌석을 확보할 수 없다는 소식이 연길공항 대기실에 앉아있는 우리들에게 들려왔다. 그런데 우리의 일행 중에서 어제 그 분이 또 희미한 미소를 짓는 바람에 심양에 하루 머무는 것을 좋아하는 유일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혔다. 그 분은 심양에 친구가 있다고도 했다. . 이 날 서울 가는 것을 단념하고 모두 서울에 연락을 취했다. “비행기 때문에 나 오늘 못가거든.” . 연길에서 심양 가는 비행기의 내 좌석 옆으로는 통화-이도백하 간의 열차에서 본, 그리고 다시 백두산, 용정에서 마주쳤던 체험학습협회 소속 아주머니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심양에 가면 오후 일정으로 박물관 등 유적지탐방 계획표를 이미 만들어 논 상태였다. . 심양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인솔자 오회장으로부터 오후 일정에 대하여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오늘 오후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라도 있는 것일까? 아니면 가이드에게서 좌석 확보에 대한 언질을 받은 것일까? 조금 후, 현지 사장의 노력으로 3시 50분에 뜨는 인천행 비행기 좌석을 확보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 로밍해온 세 사람의 전화가 바쁘게 움직였다. “나 오늘 서울에 가게 되었거든.” . 공항 옆 건물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공항 청사로 들어올 때까지 짐 들고 다니느라 힘들었다. 더 힘들게 한 것은 가이드의 태도다. 아직 표를 100% 확보한 것이 아니고 10%는 불확실하다며 끝내 티켓을 움켜쥐고 있다가 짐 붙이는 순간에 표를 내어주는 그 응큼함이 참으로 서글프다. . 마침내 면세구역으로 입성했다. 이제는 서울로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제 여러 시간을 기다리고도 돌아서야 했던 일, 작년 계림에서 서안 가는 비행기가 2시간 이상 지체되었던 일(서안에 눈이 많이 오기는 했지만)로 중국 민항기를 신임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욱 지루해졌다.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싶어졌다. . 오회장, 민감사, 딸랑이와 같이 면세구역 끝에 있는 커피숖으로 갔다. 값도 제대로 확인해 보지도 않고 커피를 주문했다. 한국에 가면 중국 동전은 환전도 제대로 안된다며 주머니를 털어 동전, 잔돈 등을 꺼내어 모았다. 그 때, 딸랑이가 메뉴판을 보더니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 “아! 여기 맥주도 있네요.” 그래서 맥주로 바꾸어 주문했더니 조그마한 맥주병 4개를 들고 나왔다. . 계산이 어떻게 되느냐고 아가씨에게 물었더니 말이 안 통하니까 계산기를 보여준다. ‘320’ 3.2위한은 맥주 한 캔 값이니 말이 안 되고, 32.0위안은 6,000원 정도니까 이게 맞는 것이라며 동전 나부랭이 이외의 값을 지불하려고 지갑을 펼쳤다. 그런데 이 아가씨는 내 지갑의 발간 돈을 가리키며 손가락 세 개를 편다.
‘허걱!! 320위안, 조그마한 병맥주 4병에 60,000원이 넘는다고?!’
‘이걸 어쩐다?! 참으로 낭패다.’ 그 순간, 천우신조(天佑神助)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병마개를 따오지 않은 것이 천우신조였다. 체면 불구하고 손으로 X자를 해 보이며 네 사람은 그 집에서 쏜살같이 뛰어 나왔다
개찰이 시작되었다. 김부회장이 여행 내내 들고 다녔던 가방, 인천공항에서 산 초콜릿과 명품 점퍼가 든 가방, 그 가방을 비행기 안으로 들고 온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우리 일행 중 가장 늦게 들어온 김부회장은 가방이 없는 것을 알고 초콜릿은 괜찮지만 점퍼가 불쌍하게 되었다고 펄쩍 뛴다. 늘 여러 사람이 번갈아가며 들고 이동해 왔기 때문에 그저 누가 들었겠거니 하는 생각이 불러온 사태다. 다행이 공항직원의 도움으로 면세구역의 우리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의자 밑으로 기어 들어간 가방을 찾아왔다. ‘명품 점퍼야! 공주마마인 네 주인을 다시 만나 기쁘겠구나.’ . 자칫 모두가 찜찜해질 수 있는 가방 사건이 해피앤딩으로 끝나 편안해진 마음으로 심양공항의 이륙을 지켜 볼 수 있었다. 먼 여정의 끝자락에서 마음은 착 가라앉는다. . 눈을 감으니 두만강과 뱃사공과 달밤과 님이 오버랩 된다. . 1.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간 그 배는 어디로 갔소 . 후렴: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 2. 강물도 달밤이면 목메어 우는데 눈물진 두만강에 밤새가 우니 떠나간 그 님이 보고싶구려 . 3. 님 가신 강언덕에 단풍이 물들고 님 잃은 이 사람도 한숨을 지니 추억에 목메인 애달픈 하소 .
6일 동안 참으로 많은 곳을 스쳐왔다. 고구려 박작성인 호산장성, 압록강의 단교, 주몽이 세운 오녀산성, 집안의 국내성, 장수왕이 잠든 장군총, 천하를 호령한 광개토대왕의 릉과 비, 5회분5호묘, 환도산성,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 백두산 정기어린 장백폭포, 선구자의 노래로 익숙해진 일송정, 해란강, 용문교, 민족의 얼을 키운 대성중학교, 남북을 잇는 관문인 도문철교와 두만강. . 남의 땅에서 가련한 꽃처럼, 그러나 향기를 잃지 않는 수많은 고구려의 유적, 어쩔 수 없는 분단 앞에서 연민의 정만 피어오르게 하는 아픔의 현장들을 뒤로 하고 비행기는 서울을 향해 높이 날고 있다. . “통일이 되는 그 날까지 모두 잘 있거라!!” “안녕!~~~·” . <끝> .
<후기> . 길고도 먼 힘든 여행이었습니다. 덜컹 거리는 버스를 벗 삼아 때로는 산을 넘고 때로는 강을 건너 이 도시 저 고을을 발로 뒤며 조상들의 발자취를 보고 왔습니다. 이미 힘들었던 기억은 차츰 사라지고 정말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여행이었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 특히 이번 여행기를 쓰는 기간 동안은 다시 중국의 동북을 또 한 번 답사하는 기분에 젖어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그래서 저는 같은 돈으로 두 번 여행을 다녀 온 셈입니다. 그 분위기 속으로 들어가기만 한다면 앞으로도 몇 번이라도 더 다녀올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 역사교실의 학우들끼리 다녀온 답사답게 늘 편안한 마음으로 지냈던 일들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우리의 곁에 있을 것입니다. 모두 건강들 하시죠? . 저의 탐방기 쓴 글 이외에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혼자 간직하지 마시고 글로 올리시던가 여의치 않으면 댓글로라도 많은 사람들이 공유했으면 좋겠습니다. . 재미없는 글을 계속 읽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끝으로, 글을 쓰는데 많은 성원과 힘을 실어주신 세리님, 도토리님, 달개비님, 竹心님, 딸랑이님, 초원님, 바둑이님(카페 고야43 회원)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아~ 이제야 하늘이 보입니다. . 2009. 7.13 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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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야 님! 5박 6일 동안의 여행기를 쓰시느라고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너무나 일정을 자세하게 기록하여 읽는 동안 이번에는 5 박6일동안 말을 타고 고구려 유적지를 답사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역사적인 사실을 통한 사진 설명도 너무나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