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 잼(Pearl Jam)은 90년대 초반 미국 시애틀(Seattle)에서 결성된 5인조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 밴드이다.
마더 러브 본(Mother Love Bone)의 멤버였던 기타리스트 고사드(Gossard)와 베이시스트 제프 아멘트(Jeff Ament)는 데뷔 앨범 발매 후 일주일만에 보컬리스트인 앤드류 우드(Andrew Wood)가 헤로인 과용으로 사망하자 리드 기타에 마이크 맥크리디(Mike McCready), 드럼에 데이브 크루센(Dave Krusen), 보컬에 에디 베더(Eddie Vedder)를 영입하여 새로이 밴드를 결성했고, 데뷔 앨범 발표 후 탈퇴한 크루센의 후임으로 데이브 애브루제스(Dave Abbruzzese)를 거쳐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와 일레븐(Eleven)의 드러머였던 잭 아이언스(Jack Irons)를 영입하여 현재의 5인조의 라인업을 갖추었다.
펄 잼으로 개명한 후 에픽(Epic)을 통해 힘이 넘치면서도 멜로디가 풍부한 데뷔 앨범 [Ten](91)을 발표했다. 자체적으로 프로듀싱한 이 앨범은 데뷔 앨범으로서는 완성도가 뛰어난 것으로 'Alive'에서 드러나듯이 정통성을 계승한 곡들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다음 해까지 그다지 눈에 띄는 판매고를 올리지는 못했으나 너바나(Nirvana)로 인해 얼터너티브 록이 메인 스트림 록 라디오 방송에서도 수용되자 너바나의 앨범을 능가하는 판매량을 보였다.
펄 잼의 사운드는 무거운 리프를 중심으로 한 70년대 스타디움 록(stadium rock)에 80년대포스트 펑크(post-punk)의 거친 면과 분노가 녹아 있으면서도 멜로디와 코러스를 무시하지 않은 사운드였다. 'Jeremy', 'Evenflow', 'Alive' 등은 신선한 수혈을 고대하고 있던 라디오 방송계가 원하던 바와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
MTV와 라디오에 연속적으로 등장하고 2번째 롤라팔루자(Lollapalooza) 투어에 참가하면서 계속 지지자들이 늘어갔다. 이들은 "MTV unplugged"와 매트 딜런(Matt Dillon)이 출연한 영화 [Singles]에서 시티즌 딕(Citizen Dick)이라는 그의 밴드로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당시 로큰롤 슈퍼스타라는 자신들의 위치에도 불구하고 음악산업계의 일반적인 관습에 굴복하기를 거부했고 너바나의 앨범이 발매된 후 곧바로 발표한 2집 [VS.](93)에서는 단 한 곡의 싱글이나 비디오 발매도 거부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상반된 평가와 함께 정상을 차지하며 앨범 차트에 등장했고 발매 첫 주에 백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멀티 플래티넘의 성공을 거두었다.
다음 해 이루어진 전미 투어 기간 중 이들은 일반적인 스타디움 규모의 공연은 하지 않고 대학 캠퍼스를 포함한 보다 작은 규모의 공연만을 결심하였다. 또한 고가의 입장권 가격을 요구하는 티켓마스터(Ticketmaster) 때문에 입장권 가격이 20달러를 초과하는 사실에 불만을 나타냈다. 결국 그 해 여름 공연을 취소했고 티켓마스터 측을 불공정 거래로 고소했다.
이 소송이 진행되는 도중 녹음된 다음 앨범 작업이 끝난 후 드러머인 애브루제스를 해고하고 후임으로 잭 아이언스를 영입했다. 3집인 [Vitalogy](94)는 서민들에 대한 진실성을 다시 입증하듯이 발매 후 2주 동안 LP 한정판으로만 구할 수 있었다.
그 상황에서도 차트 60위에 등장하는 기염을 토했고 CD와 카세트가 발매되자마자 차트 정상을 차지하면서 멀티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이 앨범은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의 죽음이 직간접적으로 언급되어 있는 앨범이기도 했다.
티켓마스터와의 싸움은 95년에도 계속되었고 결국 법원의 판결은 펄 잼의 패배였다. 새 앨범은 닐 영(Neil Young)과 함께 녹음이 진행되었다. 그 동안 베더는 영의 사이드 프로젝트인 호버크래프트(Hovercraft)의 공연에 참여했고 고사드는 독립 레이블을 설립했다.
마이크 맥크리디와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의 레인 스탤리(Layne Staley)가 함께 한 프로젝트 밴드 매드 시즌(Mad Season)은 첫 앨범 [Above](95)를 발표했다.
닐 영의 곡들이 수록되어 영의 이름으로 발매된 [Mirror Ball]에는 멤버들이 모두 참여했으나 법적인 이유로 펄 잼의 이름은 수록되지 않았고 대신 이들은 세션 곡들 중 발췌하여 수록한 싱글 'Mirkin Ball'을 95년에 발표했다.
96년 여름에 발표된 4집 [No Code](96)는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차트 정상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들이 시도한 기묘한 실험정신은 팬 기저층을 실망시켰고 차트에서도 곧 하락했다. 티켓마스터와의 싸움과 대규모 공연을 거부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97년 내내 이들은 새로운 곡 작업으로 공적인 자리에 등장하지 않았고 고사드는 자신의 사이드 프로젝트인 브래드(Brad)의 2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펄 잼은 그 해 말경 보다 더 하드한 새 앨범인 5집 [Yield](98)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발매되자마자 열광적인 호평을 받았고 상당한 추종자들에 의해 발매 첫 주만에 2위로 앨범 차트에 등장하긴 했으나 곧 차트에서 하락하는 등 상업적인 면에서는 그다지 성과가 없었다.결국 이들은 전면적인 여름 투어를 시작했고 공연 실황 앨범 [Live on Two Legs](98)를 발매했다.
펄 잼의 새앨범 [Binaural](2000)을 접하는 팬들 중 민감한 사람들은 아마도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할지도 모르겠다. 펄 잼 사운드의 뿌리 중 하나가 닐 영(Neil Young)이며 90년대 중반부터 에디 베더(Eddie Vadder)가 닐 영의 프로젝트에 참가해왔고 최근에는 밴드가 닐 영과 함께 투어를 벌이는 등 유난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때문인가. [Binaural] 앨범에는 펄 잼 특유의 하드록 사운드와 함께 포크의 분위기가 기저에 두텁게 깔려있다.
더욱이 앨범 발매 하루전에 먼저 공개한 이들의 첫 싱글이 'Nothing As It Seems'라는 사실도 많은 사람들을 아연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펑크와 하드록이 적절히 믹스된 'Breakerfall'이나 'Gods' Dice'가 아니라 블루지한 미드 템포 넘버인 'Nothing As It Seems'라니. 앨범 팔아먹기에 급급하지 않고 차트 성적에 목매지 않는 펄 잼의 이런 행동과 선택은 사실 갑자기 돌출된 의외의 해프닝은 아니다.
수년전부터 펄 잼은 팬들의 주머니를 울궈먹으려는 티켓 마스터의 과도한 콘서트 입장료 책정에 반발하여 법정에서의 일전을 불사했었고(패배로 끝나고 말았지만) 음질도 좋지않은 불법 음원을 고가로 판매하는 부틀렉 업자들을 막기 위해 자신들의 라이브 공연을 누구라도 자유롭게 녹음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또 각종 자선공연 참여를 비롯해 환경운동과 인권운동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활동을 벌이는 등 그들은 항상 자신들의 의지와 신념대로 진지한 자세를 지켜왔다.
펄 잼의 음악적 커리어 또한 용기가 필요한 끊임없는 변모의 과정이었다. 국내에서는 너바나(Nirvana)나 다른 그런지 밴드들과 비교하며 펄 잼이 정치적인 성향을 교묘하게 이용하였다면서 이들에게 상업성의 의혹을 드리우는 경향이 있는데 엄밀히 말해 그것은 엄청난 앨범 판매라는 결과만 놓고 본 편협한 곡해의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데뷔앨범을 비롯해 발표하는 앨범마다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슈퍼스타가 되었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안티스타적 태도와 음악산업 시스템과 제도권력에 대한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Binaural]에 대한 이해는 이런 토대 위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펄 잼의 멤버들은 첫 싱글로 'Nothing As It Seems'를 고른 것이 팬들에 대한 존경의 표시라고 밝힌 바 있다. 외지의 평론가들은 진정한 얼터너티브가 죽어버렸다고 얘기되는 지금 시점에서 팬들을 이용하지 않는 펄 잼의 이런 반상업적인, 얼터너티브한 태도에 대해 찬사를 보내고 있다.
원래 펄 잼의 앨범은 싱글 위주로 제작되지 않는 편이다. 앨범에 수록되는 모든 곡이 고르게 평균을 웃도는 뛰어난 수준을 유지하기 때문에 어느 곡 하나를 떼어놓고 듣기보다 앨범 전체를 소화하며 듣는 것이 펄 잼의 음악을 제대로 맛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은 이번 앨범에서도 마찬가지다. 앨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3집 [Vitalogy](94)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 한데 다만 [Vitalogy]처럼 착 가라앉아 있지는 않다.
펄 잼은 시애틀 사운드를 대표하는 밴드 중 하나로 티켓마스터와의 싸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매우 서민적인 밴드이다. 가장 섹시한 목소리로 선정되기 한 베더의 카리스마적인 보컬로 그런지(grunge)가 한풀 꺾인 음악계에서 아직도 살아 남아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