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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문고량주라는 술이 있다. 맛과 향이 탁월한 고량주의 지존으로 각종 월드 술 경연대회에서 1등 상을 휩쓸고 있는 대만의 대표 술이다. 이 술을 소개하는 국내자료에는, 술을 만드는 환경이 아주 깨끗하고 물이 좋은 것이 명주의 비결이라고 칭송을 하는데, 그곳 금문도를 다 함께 가보자. 이른바, 술 익는 마을이 아닌 술익는 섬..금문도를 소개한다.
금문도로 가는 비행기는 타이페이, 타이중, 까오슝에서 날개를 펴고 접는다. 그 중 대만 남쪽의 항구도시 까오슝을 먼저 스케치하자. 항구도시 까오슝 그 곳이 어디든 항구 도시에는 생명력이 있다. 그것은 방금까지 바다 속을 유영하다 갓 잡아올린 생선의 싱싱함이다. 까오슝은 그런 곳이다. 기분 좋은 번잡함과 현지 사람들의 삶의 의지가 태양처럼 충만한 곳. 우리에게 서울과 부산이 있듯, 대만에는 타이페이와 까오슝이 있다. 모두 그 나라를 상징하는 첫 번째 도시이자 그 뒤를 잇는 두 번째 도시라는 공통점이 있고, 특히 부산과 까오슝은 국제적인 항구도시를 꿈꾸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나 닮은 꼴이다. 까오슝은 홍콩, 싱가포르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컨테이너 항구를 가지고 있다. 관광지로서의 까오슝은 얼마간 여행자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꽤 긴 시간 동안의 단교 이후 타이페이로 여행자가 집중되는 우리나라의 경우, 까오슝은 분명 언저리다. 그 생소함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역할을 함으로써, 주저함과 호기심의 다른 측면으로 여행자에게 다가온다. 다만, 어느 특별한 날, 특별한 계획 없이, 충동적으로 떠날 수 있는 여행지로서 까오슝은 분명 새로움이 있다. 타이페이와는 또 다른, 좀 더 함축적이고 농도가 짙은 중국 문화의 다양한 색깔이 -남들이 주목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펼쳐지고 있는 곳이 까오슝이기 때문이다. 타이페이가 그러하듯 카오슝에서 단연 여행자의 발길을 분주하게 하는 곳은 야시장이다. 연평균 기온 24도, 한여름에는 35도까지 올라가는 아열대성 기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태양이 숨을 죽이는 새벽과 밤에 활동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먹고살기 위한 것이 삶이라는 그 단순성을 야시장만큼 명료하게 보여주는 곳이 또 어디에 있을까? 게다가 책상과 비행기와 사람을 빼놓고는 다 먹는다는 중국 음식들의 좌판 행렬은 시장이 아니라 쇼룸을 연상시키는 진풍경이다.
연지담(蓮池潭)은 여행객은 물론 까오슝 시민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는 곳이다. 길이 1.4km, 폭 400m의 이 아름다운 연못에는 도교와 불교를 숭상하는 대만인의 종교관이 춘추각의 관세음보살, 삼태자 등의 형상체와 용호탑등으로 구현되고 있어 독특한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특히 용호탑은 용의 목으로 들어가 호랑이의 입으로 나와야 하는 입출의 표식이 재미있다. 용호쌍박의 대립이 아니라 용호화합의 상생이 행운을 가지고 온다는 해석.
춘추각 바로 앞에는 계명당(Chi-Ming-Tang)이라 불리는 3층 사찰이 하나 있다. 옥황상제와 관운장 등을 모시는 곳으로 중국문화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화려한 색의 무리가 사찰 전체를 채우고 있어 현기증을 느낄 만큼 독특한 분위기를 뿜어대고 있다. 애하(愛河)는 그 낭만적인 이름만큼이나 까오슝의 밤을 로맨틱하게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크루즈를 하면서 바라보는 도시의 야경은, 비록 강물이 아직 완벽하게 정화되지 않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여행자의 가슴에 설레임의 바람 한 줄기를 만들어낼 만큼 충분히 아름답다. 그 외, 대만에 있는 19개의 공자묘중 가장 큰 규모라는 공묘, 담쟁이가 이국적인 구 영국영사관, 시립박물관, 미술관 등이 대표적 관광지이며 겨울에는 특히 골퍼들이 즐겨 찾는다. 술이 익어가는 섬, 금문도 까오슝에서 비행기로 45분. 금문도 공항을 빠져나오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풍사얍이라 불리는 바람사자할아버지다. 제주도의 돌하르방을 연상시키지만 금문도는 제주도보다는 백령도쪽에 성격이 가깝다. 중국 푸젠성(복건성) 아모이섬의 동쪽에 위치한 이 섬은 동서길이 약 20km, 남북길이는 5∼10km의 자그마한 면적을 가지고 있다. 1949년 공산당과의 내전에 패배한 국민당의 장개석이 대만으로 내몰린 후, 이듬해 1950년 바로 이 금문도에서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진다. 사흘 동안 본토에서 날아온 50만 개의 포탄 공격에도 불구하고 장개석은 금문도를 중국에 빼앗기지 않는다. 그렇게 금문도는 본토 연안에 있는 땅이면서도 우리의 백령도처럼 대만의 최전방 군사요충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금문도는 밤 10시가 되면 섬 전체가 쥐죽은 듯이 잠이 들고, 주요한 관광지는 전쟁 유적지거나 전쟁 박물관이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해인사를 보기 위해 올라가는 태무산의 바위들에도, '무망재거', 즉 "잃어버린 땅을 잊지 말자"와 같은 총통의 글씨와 사령관의 훈시 등이 섬뜩함이 느껴지는 붉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그러나 금문도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전쟁의 섬에서 본토와 대만을 잇는 교두보이자 관광객을 위한 섬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70년대 말부터 불기 시작한 중국과 대만간 교류의 중심에 금문도가 있다. 통상(通商) 통우(通郵) 통항(通航) 등 이른바 小삼통의 무대가 바로 금문도인 것이다. 특히 복건성 샤먼에 공장을 둔 대만사업가에 한해 금문도를 통한 본토 입성이 허용됨으로써 금문도는 본토로 가는 가장 빠른 관문이 되었다. 전쟁의 섬이 관광의 섬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물건은 바로 칼이다. 금문고량주, 설탕과 함께 금문도의 3대 명물이라 불리는 칼은, 바로 중국이 금문도에 쏟아 부은 공포탄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포탄을 잔뜩 쌓아놓고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뚝딱 날카로운 칼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과정은, 이 섬에 찾아오는 평화의 물결이 얼마나 빠르게 밀려오는지를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금문도는 온통 녹색이다. 금문주의 재료가 되는 수수가 햇빛을 받아 녹색으로 반짝인다. 알콜 도수 58도의 이 술은, 중국 고량주가 가지고 있는 독특하고 짙은 특유의 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떠한 화학적 첨가물을 넣지 않은 순수 그 자체가, 목으로 넘어갈 때도 미끄럼틀을 타 듯 걸림 없이 넘어가다가 배 안에서 짜릿하게 용암을 터트린다. 독주임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주량을 쉽게 넘기며 취할 수 있다는 것과 다음날 거짓말처럼 숙취의 흔적이 없다는 점이, 왜 그토록 많은 주당들의 입에서 금문고량주가 회자되는지를 짐작케 하는 증거들이다.
금문고량주의 공장 앞에 있는 거대한 술병 조형물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냄새만으로 취할 정도의 강한 술내음이 잠깐 어지럼증을 느끼게 하며, 공장 내부는 시음장과 고량주를 소개하는 시청각실, 쇼핑몰 등이 있다. 허가를 받으면 뒤쪽의 공장에서 고량주를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볼 수도 있다. 실용성을 중시하는 중국인들의 속성 때문일까? 고량주의 명성에 비해 그 술을 담아내는 술병은 지극히 소박하다. 마치 우리 어렸을 때 어르신들이 마시던 소주 됫 병을 연상시키는 병이 진열장 안에 가득 들어있을 뿐이다. 만지기조차 겁나는 화려한 위스키, 꼬냑 등을 보다가 금문고량주의 외형을 보게 되면, 선물용으로 한 병 사가는 것이 주저될 정도다. 그러나 혹 금문도를 방문한다면, 이러한 주저함이 여행 후에 얼마나 큰 후회를 만드는지를 꼭 기억하자. 한국에서 10만 원이 넘게 판매되는 이 술이 금문도에서는 불과 1/5도 안 되는 가격에 살 수 있다는 것과, 술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술 하나를 선물 받았을 때 그가 보여주는 기쁨의 강도가 얼마나 센지는 , 한국에 돌아와 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금문도는 평화의 섬일 수밖에 없겠다. 여행자들이 여행 내내 고량주에 취해 다니는 취중의 섬에, 평화가 아니라면 무슨 단어를 대입할 수 있으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