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의원회관. 의원과 보좌진이 머무르며 입법 사항을 다루고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곳이다. 여야가 대치하는 민감한 시기나 국정감사 기간에는 24시간 불이 켜져 있는 경우도 많다. 민원인들과 피감기관들이 찾아와 민원을 제기하는 등 온갖 현안이 이곳에서 다뤄진다.
장유유서 원칙
몇 달 동안 특별한 용건도 없이 의원회관을 뱅글뱅글 돌면서 나는 회관 안내도우미가 다 되어 있었다. 복도를 걷다 보면 나를 가장 아는 척해주는 사람들이 지역구에서 올라온 민원인들이다. "아가씨. ○○○ 의원실을 찾아가려고 하는데 어디요?" "580호가 어느 쪽이요?" 아는 대로 방향을 설명하기도 하고 가는 방향이면 모셔다드리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로 같은 의원회관에서 초행길에 길을 찾기란 신의 능력에 가깝다.
당선인 딱지를 뗀 현역 의원들이 4년 동안 머물게 될 보금자리는 301호부터 1024호까지. 공평하게 가나다순도 아니고 지역구별, 정당별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방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해주는 것일까.
우선 국회사무처는 당 의석수 비율에 맞춰 정당별로 의원실을 정해 각 당 원내 행정실에 전달한다. 각 당 원내 행정실에서는 의원들로부터 희망하는 방을 접수받는다. 희망하는 방이 겹칠 경우에는 불꽃 튀는 경쟁을 해야 한다. 원칙은 몇 선 의원인지 가리는 '선수(選數)'를 가장 우선으로 하고 선수가 같은 의원이라면 '나이'순으로 정한다. 이렇게 배정표를 작성해 국회사무처에 제출한다.
특히 2012년 19대 국회는 기존의 비좁은 의원회관 건물을 증축 공사하면서 방의 크기는 물론 호수, 위치까지 모든 것이 뒤바뀌어 방 배정의 새로운 역사를 남겼다. 그동안은 층수별로 전망이 어떤지, 환기는 잘 되는지 정도만이 고려 대상이었다면, 증축된 의원회관은 건물 가운데를 정원으로 두고 기존의 ㄷ자 형태의 건물에서 ㅂ자로 바뀌었기 때문에 방 선택 기준이 더욱 까다로워졌다. 일단 자리를 잡으면 4년을 지내야 하는 곳인데, 하루 종일 볕도 들지 않고 시끄러운 소음에 시달려야 하는 방이라면 우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당에서 정한 의원회관 방 배정 원칙도 남다르다. 최고의 전망권은 국회 분수대와 잔디가 마주 보이는 정면이고, 그다음은 후생관 쪽 측면, KBS 쪽 측면, 당산동 방향 순으로 매겼다. 등급별로는 6층을 로얄층으로 정해 배정한다. 또한 같은 층에서는 중앙에서 좌우측 순서로 순번을 나눴다.
구관이 명관?
과거 의원회관 로열층은 2~3층이었다. 계단으로 걸어다니기 부담 없는 저층을 중진 의원들이 선호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당이 중심이 됐기 때문에 의원회관 활용도가 낮았고 그래서 풍광보다는 접근성이 중요했다. 이 때문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썼던 방을 중심으로 상도동계가 2층에, 동교동계가 3층에 포진됐다. 자민련 김종필 총재를 비롯한 실세들도 2층을 썼다.
시대의 흐름과 함께 신 로열층도 생겨났다. 19대 국회에서 의원회관은 기존의 구관, 새로 증축한 신관으로 나뉘는데, 독립된 동을 지은 것이 아니라 기존의 건물 벽을 터서 이어붙인 식이어서 건물이 하나로 통한다. 신관은 지하 5층, 지상 10층 규모의 크고 쾌적한 환경을 자랑한다. 신관에만 192개 방을 갖췄다. 300명의 의원들 중 나머지 108명은 구관을 이용하게 되는 셈이다. 국회 개원 당시 신관의 인기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1989년에 세워진 구관에 비해 의원실은 두 배 가까이 넓어졌고, 의원방 안에는 별도의 침실과 화장실이 있다. 민원인 대기실이나 간담회장으로 활용 가능한 회의실이 마련되고 책상이나 텔레비전 등 모든 비품이 새것으로 채워졌다.
3선 이상의 다선 의원들이 이 신관에 포진됐는데, 그중에서도 한강과 양화대교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6층에서 10층까지의 북향 로열층에 지원자가 몰렸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과 친해 친박계로 분류되는 실세들이, 민주당은 원내지도부와 당권주자들이 각각 이곳을 배정받았다. 이 중에서도 6층 620호는 박근혜 대통령이 썼던 방을 중심으로 왼쪽 오른쪽 모두 당시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이 자리 잡았다. 대각선 방향에는 원내대변인이 포진해 그야말로 실세층으로 불릴 만했다. 민주당 역시 원내대표, 원내수석부대표가 나란히 6층 로열뷰에 앉았다.
신관에만 인기가 집중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구관이 명관'이라며 기존 방을 고수하는 의원들도 있다. 7선의 정몽준 의원은 국회에서는 최고 어른이어서 의원실 방 배정에 있어 일순위 권한을 갖고 있지만 기존에 사용하던 762호를 고수했다. 최경환(3선), 박주선 의원(4선)도 신관으로 옮기지 않고 쓰던 방을 계속 쓰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최상의 조망권을 가진 방에 입주할 수 있는 중진 의원들이 시설 좋은 신관으로 옮기지 않고 굳이 구관을 고수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첫째는 의원의 방을 기억하고 있는 지역구 민원인을 위한 배려이고, 둘째는 새집증후군에 대한 우려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국회의원실의 정치학
의원회관 리모델링 공사는 생각보다 일이 복잡하다. 2,700명가량의 직원들을 한꺼번에 옮겨놓고 공사할 수 없기 때문에 구역을 나눠 단계별로 진행했다. 옆방이 공사하는 동안 소음과 먼지 날림을 감수해야 했고, 내 방이 공사하는 동안은 임시 회의실로 컴퓨터 책상을 옮겨야 했다. 그런데 의원들이 처음부터 넓게 지어진 신관을 마다하고 임시 의원실에서 메뚜기 생활을 하면서도 구관, 자신이 쓰던 방을 고집하는 데에는 나름의 애틋한 사연이 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에게 615는 단순 숫자조합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남북 6·15 공동선언의 주역이라는 의미를 살리기 위해 2008년 18대 국회 때부터 615호를 고수하고 있다. 당초 신관 평면도에서는 615호가 한강이 보이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앞방과 번호를 바꿔달면서까지 615호를 고수했다. 박지원 의원의 615 사랑은 인터넷 곳곳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이메일은 물론 개인 홈페이지 주소까지 모두 jwp615다.
6선을 지낸 이상득 전 의원은 초선 때부터 4·19혁명에서 따온 419호를 썼다. 한편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은 17년 만에 구관 412호를 떠나 신관으로 옮겼다. 412호는 아버지인 남평우 전 의원(14, 15대)이 사용한 방이라 그로서는 애착이 남달랐지만 리모델링되는데다 층수도 바뀌어 더 이상 그 방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한다. 또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신관 325호에 들어갔다. 조금은 낮은 층에 위치한 이유, 방 번호를 거꾸로 하면 5·23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일로 그 의미를 찾는다면 찾을 수 있겠다.
장수방, 낙선방, 실세방
4년 후 여의도 재입성을 위해 뛰어야 하는 국회의원들에게 과거 방주인의 당락 이력은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정보다. 우선 643호실은 입주한 의원마다 중도에 짐을 싸서 나가게 된다는 괴담의 진원지로 유명하다. 2000년, 16대 국회 때 이 방에 들어간 당시 새천년민주당 박주선 의원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어 임기 5개월을 남겨두고 방을 나가야 했다. 또 4년 뒤 17대에선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이, 또 그 4년 뒤 18대에선 한나라당 홍장표 의원이 잇따라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으면서 방 주인들을 줄줄이 단명시켰다.
이와 함께 428호와 444호도 비슷한 이유로 의원들이 기피하는 방 중 하나로 손꼽힌다. 17대 국회에서 428호를 썼던 한화갑 전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했다. 김홍업 전 의원이 재보선에서 당선되어 방을 물려받았지만, 18대 공천에서 탈락했고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낙선했다. 또 4자가 반복되고 있는 444호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무덤으로 불린다. 이 방을 썼던 16대 김낙기 의원과 17대 정종복 의원이 모두 낙선했다. 정종복 의원은 2009년 재보선에도 출마했지만 또다시 떨어졌다. 이 같은 이유로 기피되던 방은 2008년 18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민주당 원혜영 의원 자리로 돌아갔다. 원혜영 의원은 14대 국회에서 이 방을 쓰면서 자신이 원내대표까지 지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모두가 안 들어오려고 한다면 내가 쓰겠다"고 말했다.
반대로 머물렀던 의원들이 모두 재선, 3선, 4선에 성공하면서 기운 좋은 장수방으로 통하는 곳들도 몇몇 있다. 4선의 민주당 임채정 전 의원과 정세균 의원이 쓰던 방이다. 그런가 하면 청와대 정무수석을 줄줄이 배출한 방도 있다. 3선을 지낸 정진석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재선 때까지 쓰던 310호가 그곳이다. 이후에 들어온 김효재 의원도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발탁되면서 방 물려주기 인연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현직 대통령이 썼던 방 중 YS가 썼던 방은 8년 만에 국회로 돌아온 강창희 의원이, MB가 썼던 방은 정의화 의원이 사용하고 있다.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19대 상반기 국회의장 자리를 놓고 격돌했는데, 결과는 강창희 의원의 승리. 이를 놓고도 'YS가 MB보다 기가 센 것 아니냐'는 농담이 있었다. 하지만 19대 국회 들어 의원회관 신관이 등장하면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배출한 구관의 방들 몇몇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렇게 25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의원회관 방 곳곳에 저마다 사연과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볕이 잘 들지 않는 후미진 방에 자리 잡게 된 의원들은 먼저 풍수지리부터 따진다는 것이다. 풍수가가 직접 의원회관으로 왕림하기도 한다. 엘로드 검사를 한 뒤 수맥이 잡힌다, 기운이 안 좋다는 소리를 듣고 당에 방 교체를 요구하거나 가구 배치를 바꾼 의원실도 있다. 실제로 한 의원실은 예전 방주인이 쓰던 가구를 들어내니 방 모서리마다 수맥 잡는 동판이 붙어 있었다고도 한다.
방 전쟁, 그 유치함에 대하여
대통령 명당 자리, 로열 라인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은 개원 초기마다 반복된다. 방 배정에 불만을 품은 의원들은 실무를 담당하는 원내 당직자들을 붙잡고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미리 좋은 방을 배정받기 위해 원내대표, 원내수석부대표를 찾아가 읍소하는 상황도 빚어진다. 특히 의원회관 방 배정의 새로운 역사를 쓴 19대 국회에서는 일부 의원들의 유치 행태가 더 눈에 띄었다. 리모델링 공사를 거치면서 누군가는 임시 사무실을 써야 하기 때문에 회관뿐 아니라, 국회의사당 본관에도 45평대 사무실을 가진 의장단, 상임위원장 20여명이 나중에 의원회관 사무실을 양보하는 것으로 여야가 합의했다.
그런데 막상 1차 리모델링 공사 후 약속한 시일이 다가오자 일부 힘 있는 의원들이 딴소리를 하면서 일이 틀어졌다. 일부 다선 의원들이 괜히 신관 방을 뺐다가 나중에 리모델링이 완성된 사무실로 둥지를 틀 때 지금처럼 좋은 방에 배정받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이유로 버틴 것이다. 대체로 고층 로열 박스권을 꿰찬 의원들이다. 4년 동안 매일같이 드나들어야 하는 곳이니 좋은 곳에 터를 잡고 싶은 심정이야 이해하지만, 문제는 이 때문에 피해를 본 의원들이 생겨났다는 점이다. 한 초선 의원은 지금의 사무실에 안착할 때까지 1년 동안 세 번이나 짐을 싸고 풀었다. 처음 이사한 곳도 회의실을 궁여지책으로 급조한 곳이었다. 그 사이 우편물 배달을 위한 주소는 물론 명함을 세 번이나 다시 제작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었다.
국회 의원회관. 의원과 보좌진에게는 단순한 사무실 이상의 공간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이 어디서 일을 하느냐보다 어떤 일을 하느냐가 국민들에게는 더 중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