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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얼마나 걸릴까.... 요게 제일 먼저드는 생각입니다.ㅋ 하지만 역시 무박입니다. 전...ㅋㅋ 마지막 단풍이라도 보시려는지 가야산 일대는 등산객이 많습니다. 차량이 막혀 들머리에 좀 더 늦게 도착해 산행시간이 빠듯한게 부담이었지만 무사히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만 알바로 인해 박민기형님은 개별적으로 상경을 하셔야해서 버스로 오는내내 마음이 거시키했습니다. 하지만 무사히 오셨다니 다행이었습니다. 선답자들의 산행거리가 길어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짧아 산행시간을 맞춰 다행이었고 의상봉 및 우두산등 조망이 좋았던게 감사하네요. 암릉이 곳곳에 있어 산행의 재미가 배가되었고 날도 좋고 하늘도 좋고 또 유명한 산행로라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알바는 하지 말자구요...ㅋ 진행구간 별 시간: 마장동 도착(들머리, 11:26)~산행시작(11:27)~출입금지 안내판(11:33)~큰재(11:49)~ 큰재 안내판(11:52)~단지봉 갈림봉(12:02)~1030m봉(12:05)~작은가야산(1064m, 12:15)~ 작은가야산(1030m, 12:21)~소바위(1040m, 12:37)~폐헬기장(12:53)~죽전 안내판(12:57)~ 우두산(13:09)~점심(13:12, 약 10여분)~고견사갈림길 안내판(13:34)~의상봉(13:40)~우두산(13:59)~ 코끼리바위(14:01)~주차장갈림길 안내판(14:04)~973m봉(14:11)~주차장갈림길 안내판(14:23)~ 867m봉(14:32)~마장재(14:39)~857m봉(폐헬기장, 14:44)~1094m봉(15:15)~폐헬기장(15:16)~ 뒷들재(15:34)~1095m봉(15:46)~철계단(15:53)~구름다리(16:08)~비계산(거창, 16:11)~ 비계산(합천, 16:24)~도리갈림길 안내판(16:28)~통천문(16:44)~너덜지대(17:06)~묘지(17:19)~ 621m봉(17:24)~616.2m봉(17:35)~산제치(17:39)~산행종료(17:44) 산행시작: 11:27 ~ 산행종료: 17:44 -- 총 산행시간: 6시간 16분, 산행거리: 15.29km 가는길에 있는 대장경 테마파크 담엔 함 가봐야겠습니다. 도로가 차량으로 좀 막히기에 무엇인가 했더니 도로에서 매표를 하느라... 우린 해인사 근처도 안가는데 1인당 3000원씩.... 오히려 차만 막히고, 이 많은 돈이 .... 해인사 유래.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산 해인사는 화엄종에 입각한 화엄십찰의 하나로 세워진 신라 시대 고찰이자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이다. 한국 불교 최초의 총림으로 선원, 율원, 승가대학(강원)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불보사찰(佛寶寺刹) 통도사, 승보사찰(僧寶寺刹) 송광사와 더불어 한국의 삼보 사찰로, ‘팔만대장경’을 보존하고 있어서 법보사찰(法寶寺刹)이라고 부른다. 해인삼매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한없이 깊고 넓은 큰 바다에 비유하여, 거친 파도 곧 중생의 번뇌 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 속에(海)에 비치는(印) 경지로, 이렇게 여실(如實)한 세계가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모습이요, 우리 중생의 본래 모습이니, 이것이 곧 해인삼매라는 가르침을 나타내고 있다. 해인사가 부처님 법을 기리는 법보사찰로 성지화된 계기는 ‘고려대장경’이 봉안된 삼보 사찰이고, 대한불교조계종이 최초로 지정한 해인총림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화엄 도량으로서 해인사는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1399년에 강화도 선원사에 있었던 ‘고려대장경’을 이전 봉안하면서 법보사찰의 위상을 갖게 됐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파돼 융성하던 시기인 중국 당나라 양무제 때 지공 화상이 임종에 앞서 '동국답산기'라는 책을 제자들에게 건네주면서 "내가 죽은 얼마 후에 신라에서 명승이 찾아와 법을 구할 터이니 이 책을 전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과연 이후 신라에서 순응, 이정 스님이 오자 지공 화상 제자들은 순응, 이정 스님에게 ‘동국답산기’를 전했다.
두 스님이 그 말을 듣고 지공 스님의 묘소에 찾아가서 "사람은 고금이 있거니와 법에야 어찌 앞뒤가 있겠습니까?" 하면서 밤낮으로 이레 동안을 선정에 들어 법을 청하였다고 한다. 어느 날 무덤 문이 저절로 열리면서 지공 화상이 나와서 법을 말씀하고 의발과 신발을 전해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 나라 우두산 서쪽에 불법이 크게 일어날 곳이 있으니, 너희들은 본국에 돌아가 별 비보 대가람 해인사를 세우라"하고는 다시 무덤 문 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사냥꾼들이 알려준 물 고인 데(지금의 바로 대적광전 자리)가서 풀을 깔고 앉아 선정에 들었는데, 이마에서 광명이 나와 붉은 기운이 하늘에 뻗쳤다. 그때 마침 신라 제40대 애장왕의 왕후가 등창 병이 나 어떠한 약을 써도 효력이 없자 고승의 구호를 찾고 있었다. 임금의 명을 받은 사신이 지나가다가 하늘에 치솟는 붉은 기운을 바라보고, 이상한 사람이 있는가 여겨 산 아래에 이르러 숲을 헤치면서 들어가다 한창 망설이고 있었는데, 때마침 여우가 바위 위로 지나가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여겨 따라가다가 두 스님이 선정에 들어 방광하는 것을 보았다. 이에 왕궁으로 함께 가기를 청하였으나 두 스님은 다만 "이 실 한끝은 궁전 앞에 있는 배나무에 매고, 다른 한 끝을 아픈 곳에 대면 병이 곧 나으리라"라고 하고 수행을 계속했다고 한다. 등창 병난 왕후를 위해 스님이 말한 대로 시행하자 과연 배나무는 말라 죽고 병은 나아 임금이 감격하여 해인사를 창건토록 하는데 이때가 애장왕 3년 802년 10월 16일이고 애장왕이 친히 절에 와서 당시로써는 거액의 전답 2500백결을 시주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3000원을 내고 사찰은 구경도 안했습니다... 주차료까지 일괄징수를 합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절집 근처도 안 갔습니다...ㅠㅠ 마장동으로 들어가는 길은 외길이라, 암튼 알록달록 단풍이 예쁩니다. 마장동 진입도로는 이렇습니다. 대형버스가 들어가니 두어번 차량을 통제하고 비켜가느라 시간이 더 소요됩니다. 산행은 언제하누....ㅋㅋ 버스로 마을회관에서 좀 더 들어와 삼거리에서 하차를 합니다만 이미 버스에서 다 준비는 되었고 마음이 바빠 모두가 분주합니다. 예상보다 더 늦게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벌써 진행을 하시는 분도 있고, 앞 두분은 사진상 좀 그렇습니다만 볼일을 보는게 절때 아닙니다...ㅋ 가야산과 단풍이 참으로 곱네요. 전 회차엔 참 예뻣는데 사진을 대충... 아쉽네요. 그러고 보니 매번 산행을 하지만 정작 꽃철이든 단풍철이든 구경 한번 제대로 못하는 역설...ㅋㅋㅋ 가을이 가득합니다. 어느 추억을 함께 가져 가는지는 모르지만, 곱습니다. 손이라도 잡아봐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도로종점 이자 출입금지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바록 직진, 본격적인 등로로 들어섭니다. 평이한 접속구간을 올라갑니다. 오늘같이 차량이 막힐줄 알았다면 차라리 어인쪽에서 올라오는 것도 괘안하겠네요. 큰재. 지맥 마루금을 따라 좌측으로, 산경표에서도 큰재가 더 뒤에 있어서 전 회차에서도 좀 더 앞까지 진행했다 빽도했었는데, 이곳에 큰재 안내판이, 단지봉 갈림봉. 등로는 살짝 9부 능선으로 돌아가지만 혹 무슨 안내판이도 있나하고 올라 왔더니 암것도 없네요. 1030m봉 작은가야산 정상 안내석 이곳도 등로는 9부 능선에 있는데 무슨 봉인가 확인차 올라왔더니...ㅋㅋ 우회 등로에서 우측 바위 앞으로 띠지가 있는데 직진은 우회로 좌측으로 올라가면 작은가야산. 날은 좀 흐리지만 그래도 조망은 좋습니다. 마루금 조망도 좋고 가봐야 할 의상봉도, 작은가야산 가야산과 매화산도 보이고, 이곳에도 작은가야산이라고 안내판을 걸어 두었습니다. 지도상 맞지 않는데요. 앞에선 사모바위같았는데 뒤에서 찍으니 좀 다르네요. 원숭이 얼굴 같기도 하고, 가야 할 마루금과 좌측으로 죽전저수지가, 암봉을 넘어 오는데 종이와 연필형님이 밟고 있는 바위는 흔들흔들... 위험합니다. 1040m봉에서 본 소바위. 폐헬기장 죽전안내판 지나온 마루금을 다시 돌아보고, 이젠 저수지가 확실히 보이네요. 우두산 정상 안내판 우두산 정상 안내석 《신증동국여지승람》합천군 산천조에, “가야산(伽倻山)은 일명 우두산(牛頭山)이며, 야로현(冶爐縣) 북쪽 30리에 있는데, 서쪽으로 뻗어서 월류봉(月留峰)이 되었다.” 라는 기록에서 거창에 우두산(牛頭山)은 합천 가야산(1,430m)의 별칭으로 소명된다. 《대동지지》거창 산수조에, “우두산은 동북쪽으로 50리에 있다. 합천 가야산에서 서쪽의 지맥으로 바위와 산골짜기가 맑고 기이한 수석이 그윽하다 (牛頭山 東北五十里 陜川加耶山西支巖壑淸奇水石窈窕).” 라고 산세를 기록했다. 지리산의 남쪽 기슭인데, 형상이 소가 엎드린 것과 같아서 이름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정상석 조금 아래서 점심을 먹기로 합니다. 시간도 그렇고 마음도 급해 대충 점심을 먹고 전 의상봉으로 고고씽~~ 여 형님들은 패쒸...ㅋㅋㅋ 뒤로 의상봉이 빼꼼... 고견사갈림길 안내판 및 가조 1경 안내판. 우두산(牛頭山)에 자리한 고견사(古見寺)는 해인사(海印寺)의 말사로 신라 문무왕 7년(667년)의상,원효 스님이 창건하였다고 하며, 고견사(古見寺)라는 이름은 원효 대사가 절을 창건할 때 이곳에 와 보니 전생에 와 본곳임을 깨달았다는 데서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지는데 견암(見庵) 견암사(見庵寺) 견암선사(見庵禪寺)라고도 불리어졌다. 고견사(古見寺)는 해인사(海印寺)의 창건주 순응(順應),이정(理貞) 스님과 중창주 희랑 대사가 머물다간 곳이며,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의 발자취가 담겨겨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조선 왕실에서는 고려 왕씨들의 명복을 빌기위하여 밭 100결을 하사하고 대궐의 향을 내려 해마다 2월과 10월에 수륙재(水陸齋)를 지내게 한 원찰로도 유명하다. 고견사(古見寺)는 1988년 9월 10일 전통사찰로 등록되었으며 대표적 문화유산으로는 고견사 동종(보물 제1700호)고견사 석불(경남도 유형문화재 제 263호)과 조선 숙종대왕이 내린 강생원의 운영당(雲影堂) 현판이 있다. 의상봉 정상 안내석. 등산객이 많았는데 정상에 올라 갈땐 사람이 적어 살짝 편안했습니다. 의상봉(해발1016m)은 우두산 서쪽지맥으로 가조면 수월리에 위치한다. 의상봉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 대사가 참선하던 곳이며, 주변 경관이 빼어나고 아름답기 때문에 다른 봉우리에 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암봉(巖峰)으로 이루어진 의상봉에 올라가면 가야산·덕유산·지리산을 비롯해 장군봉·상봉·비계산(1,126m)·처녀봉·박유산 등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의상봉에서 본 지남산과 장군봉 우두산도 한번 보고, 비계산과 오도산도 살짝. 오도산 통신탑도 땡겨보고, ^^*~~~ㅋ 우두산으로 돌아왔습니다만 아무도 없고 언능 따라갑니다. 제가 의상봉을 내려올때 뵙던 박민기형님은 이후로 다시 못 보았습니다. 비계산을 넘으며 알바로 성기리쪽 59번 국도로 떨어지고, 일행과 헤어져, 우린 상경을 했는데 많은 걱정때문인지 마침 승용차를 얻어타고 대구까지 나올 수 있었다네요. 저도 혼자서 땜방을 할땐 많이 승용차를 얻어 탓었는데 정말 다행힙니다. 모두들 시간에 쫓겨 올라가면서도 마음이 매우 불편했었는데... 누군진 모르지만 그 분은 복 많이 받을겁니당~~~ㅋㅋ 코끼리바위. 주차장갈림길 안내판 넓은 공터에 밴치까지, 암릉이 많아 산행에 좀 속도는 안 나지만 산행이 즐겁습니다. 973m봉 바위 상부는 꼭 얼굴같은, 모지요, 뭉크의 절규는 아니더라도...ㅋㅋ 가야 할 마루금과 비계산도, 병아리같아요...ㅎㅎ 합천 대전리방향 저보다 먼저 의상봉을 다녀가신 후상누님을 다시 만납니다. 주차장갈림길 안내판 아래 고견사에서 우두산 일대의 산행코스가 많아 주차장으로 연결된 등로가 많습니다. 꽃철엔 더 바글바글할텐데...ㅋ 867m봉 마장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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