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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고창 41코스 제2부
동호교차로-애향갯벌로-방풍 해송림길-서해안바람공원-계명산-
계명마을-람사르고창갯발센터-마산마을-심원면행정복지센터
20230308
1.취하라, 고창의 진면목이 어디에 있는가?
서해랑길 41코스 후반 구간(동호교차로-서해안바람공원-심원면 행정복지센터)을 탐방한다. 고창군 심원면 동호리에서 해리천의 동호 배수갑문교를 건너 고전리로 넘어갔다. 칠산바다가 곰소만 입구에서 고창군 심원면 동호리와 고전리 사이 해리천 하구로 깊숙하게 들어온다. 이 지역을 간척하여 염전을 일군게 삼양염전인데, 그 역사가 오래다. "삼양사의 창업주 수당(秀堂) 김연수(金秊洙)(1896~1979)는 1924년 삼수사를 창업하여 1927년 줄포에서 처음으로 간척 사업을 시작하였다. 1931년에는 회사 이름을 삼양사로 변경하였다. 삼양사는 1936년 4월부터 1937년 6월까지 14개월에 걸쳐 해리천 하구를 방조제로 막아 간척지를 만들고 구릉지의 작은 골짜기에 궁산저수지를 만들어 해리농장이 되었다. 삼양사는 해리염전 개설 인가를 받아 염전 축조 공사를 1947년 3월 시작하여, 1949년까지 염전지를 축조하여 그해 처음으로 천일염을 수확하였다."(고창문화대전) 그 역사의 현장을 건너간다. 이곳에 모여든 노동자들이 간척공사를 위해 모여들어 신동호마을을 형성하였고, 간척농지에 농사를 짓기 위해 농민들이 모여들어 삼양동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 마을이 지금도 남아서 역사의 현장을 증언한다.
배수갑문교를 건너 고전리 들판 너머로 바라보니 경수산(鏡水山)이 솟아 있다. 오늘의 목적지는 경수산 아래 심원면 행정복지센터가 있는 곳이다. 경수산을 처음에는 선운산으로 알았다. 그런데 경수산은 선운산의 한 산봉우리이며 가장 높은 산봉우리라고 한다. 그래서 선운산의 상봉으로서 경수봉이라 불러야 하는데 경수산이라고 불리고 있어 바로잡아야 한다고 한다. 선운산 주봉은 도솔봉 또는 수리봉, 능선의 산봉은 경수봉·비학봉·개이빨봉·청룡봉으로 불려야 하는데, 현재 도솔산·경수산·비학산·개이빨산·청룡산으로 불리고 있다. 선운산은 주봉인 도솔봉과 상봉인 경수봉을 중심으로 하여 비학봉·개이빨봉·청룡봉이 이어지는 산줄기이다.
동호 배수갑문에서 경수산 아래 목적지까지 10km 거리가 되지 않지만, 41코스 구간의 핵심 '고창갯벌'의 진수가 탐방객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해안사구 해송방풍림, 서해안바람공원, 닭울음산(鷄鳴山), 고창갯벌을 만나러 발걸음이 빨라진다. 해안사구 행송방풍림 입구에 설치된 생태문화탐방로 이정목 날개가 '검은머리물떼새'로 조형되어 있다. 예쁘다. 탐방로에 조성된 이정목 날개 조형물은 고창갯벌을 찾아오는 철새들로 조형된 것 같다. 모두가 예뻤다. 검은머리물떼새를 비롯하여, 황조롱이, 큰고니, 노랑부리저어새 등 조형물의 새 이름을 확인하며 문화생태탐방로를 따라가는 즐거움도 크다.
해안사구 해송방풍림은 길게 조성되어 있다. 그 길에서 바다의 독특한 퇴적지형인 쉐니어(Chenier)가 길게 형성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쉐니어 지형이란 태풍이나 조류에 의해 갯벌 위에 모래와 자갈이 육지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만들어지는 독특한 퇴적지형으로,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다양하게 모습이 변한다고 한다. 둥그런 활 모양으로 길게 이어진 모랫등이 어떻게 변하는지 길손은 궁금하였지만 그것은 실제 보아야만 해결될 일이다.
줄포만은 이제 곰소만 지명을 주로 사용하는 것 같다. 줄포만 입구가 되는 곳이 고창군 동호항과 부안군 궁항인 것 같다. 그 입구에 대죽도와 소죽도, 쌍여도가 있고, 그 뒤쪽에는 칠산바다의 북쪽 끝에 해당하는 위도가 있다. 이 풍경이 멋지지만 미세먼지 탓에 위도 풍경을 감상하지 못했다. 서해의 칠산바다는 북쪽 부안군 궁항과 남쪽 고창군 동호항 사이로 밀려와 동쪽 끝에서 남쪽 고창군 흥덕면 신덕리에서 북쪽 부안군 줄포면 우포리로 이어진다. 좀더 구체적으로 곰소만에 대해 알아보면, 고창군 해리면 동호리 동호항에서, 곰소만 남쪽 해안선이 시작되어 심원면과 부안면을 거쳐 흥덕면 신덕리에서 부안군 줄포면 우포리로 넘어가며 곰소만의 남쪽 해안을 형성한다. 곰소만은 부안군 줄포면 우포리에서 변산반도를 휘돌아 곰소항, 왕포항, 모항,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궁항으로 이어지져 곰소만 북쪽 해안선을 형성한다.
고창 곰소만 해안사구 해송방풍림 해안길에서는 곰소만의 해안 풍경을 잘 조망할 수 있는데, 특히 맞은편의 변산반도 해안과 내변산 산줄기가 멋지게 조망된다. 그 해송림길에는 전망대와 풍차 등 여러 설치물들이 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해안사구 해송방풍림 동쪽 끝에 '세계자연유산 고창갯벌 전망대'와 '서해안바람공원' 그리고 닭울음산(鷄鳴山)이 있는데, 곰소만 풍경과 이곳에서의 풍경 조망이 방풍림해송길의 절정을 이룬다. 곰소만 동·서·남·북 사방의 해안 풍경, 고창군 심원면 일대의 드넓은 간척농지, 선운산 산줄기와 경수산, 이 풍경에 가슴이 뛰었다. 고창군과 변산반도 남쪽 곰소만 해안선이 그리움으로 달려들었다. 선운산, 그 너머의 미당과 인촌의 생가, 눈 앞에서 살랑살랑 어른거린다. 실학자 반계 유형원이 실학 정신을 실천한 변산 우반동과 반계서당, 허균과 매창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 곳, 내소사 앞의 송림과 내소사의 창살문, 변산바람꽃 자생지, 이들이 그리움으로 피어오른다. 청림동 변산바람꽃이 지금은 피었겠지? 올해는 변산아가씨를 만나지 못하겠는걸.
고창을 얼마나 아는가? 고창에 몇 번이나 와보았는가? 고창의 선운산 산행, 선운사와 동백꽃, 미당 서정주 시인의 생가와 시비 '선운사 동구', 동아일보 설립자이며 고려대학교 인수자인 인촌 김성수 생가, 풍천장어와 복분자술, 길손에게는이런 것들만 고창 지역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고창은 오직, 선운산과 선운사 동백꽃, 그것을 읊은 미당의 詩 '선운사 洞口'만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 그런데 이번 서해랑길 고창 40~41 구간을 걸으면서, 고창 해안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하고 말았다. 고창의 내륙 풍경만을 알고 있던 길손은 고창의 해안 풍경에 넋이 나갈 정도로 푹 빠져 취하고 말았다. 마한시대에 모로비리국이라 불렸던 고창, 계명산에서 닭이 울면 당나라 산동성까지 들렸다는 얘기가 허풍이 아닌 것 같았다. 줄포만 계명산 아래 만돌 바다에 당나라 배들이 떠있다. 계명산에서 울리는 닭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이 깨어난다. 닻을 풀고 돛을 올려 배들이 움직인다. 만돌마을 사람들이 당나라로 떠나는 남편과 아들에게 손을 흔든다. "여보, 너무 고집부리지 말고 적당한 값으로 물건 모두 팔고 잘 돌아오세요.", "아들아, 일 잘 배우고 무사히 돌아오너라."
고창갯벌이 국내에서는 제주도에 이어 두 번째로 2011년 '한국의 갯벌'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음을 알았다. 갯벌은 여자만 갯벌, 무안과 신안의 갯벌을 최고로 알았는데, 고창갯벌이 그 이름을 드높이 날리고 있음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아쉽지만 고창갯벌 탐방로를 따라가지 못했다. 멀리서 갯벌을 살피며 갯벌식물원 설명안내판을 읽었을 뿐 고창갯벌의 진수를 확인할 기회를 다음으로 미루었다. 갯벌을 근거지로 살아가는 조류, 저서동물과 염생식물 등 고창갯벌의 생물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생태탐방로 이정목의 날개 조형물인 '검은머리물떼새, 황조롱이, 큰고니, 노랑부리저어새'를 통하여 고창갯벌 조류의 아름다움을 간접확인했다. 그중에서도 검은머리물떼새와 노랑부리저어새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한다.
무엇에 허걱거렸는지? 제한시간에 쫓겨서 발버둥치며 탐방길을 허둥거렸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러나 그 허둥거림에도 아름다움에 취하는 순간이 있어 행복했다. 취하지 못하면 삶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특히 탐방길에서는 그 취함의 순간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이번 탐방에서 고창의 진면목이 무엇인가? 그것에 취하였는가? 제한시간의 압박 속에서도 순간, 순간, 풍경과 역사의 유래와 추억의 흔적에 빠져 넋을 놓았다. 그 순간의 행복이 지금도 울렁거린다.
시간의 압박을 잊는 방법은 무엇일까? 결국은 도취와 몰입이다. 프랑스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1821~1867)는 이에 대해 이렇게 노래했다. "언제나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다. 그대의 어깨를 짓누르고, 땅을 향해 그대 몸을 구부러뜨리는 저 시간의 무서운 짐을 느끼지 않으려면, 쉴 새 없이 취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에? 술에, 시에 혹은 미덕에, 무엇에나 그대 좋을 대로 아무튼 취해라. 그리하여 때때로, 궁전의 섬돌 위에서, 도랑의 푸른 풀 위에서, 그대 방의 침울한 고독 속에서, 그대 깨어 일어나, 취기가 벌써 줄어들거나 사라지거든, 물어보라. 바람에, 물결에, 별에, 새에, 시계에, 달아나는 모든 것에, 울부짖는 모든 것에, 흘러가는 모든 것에, 노래하는 모든 것에, 말하는 모든 것에 물어보라, 지금 몇 시인가를. 그러면 바람이, 물결이, 별이, 새가, 시계가 그대에게 대답하리라. “지금은 취할 시간!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라, 끊임없이 취하라! 술에, 시에 혹은 미덕에 무엇이든 그대 마음대로.”(보들레르의 '취하라' 전문)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20.21km 중 9.51km
전체 소요 시간 : 4시간 54분 중 1시간 50분
일반적으로 동호 배수갑문이라 부르는 듯. 배수갑문교를 건너 심원면 동호리에서 고전리로 넘어간다.
이곳이 서해 칠산바다와 곰소만이 만나는 후미라는 곳인 듯. 후미는 산길이나 물가의 굽어서 휘어진 곳을 이른다. 중앙 오른쪽에 소죽도와 대죽도, 그 왼쪽에 동호항과 구동호마을, 그리고 동호항 언덕에 영신당이 있다. 해안 왼쪽의 삼양동마을은 1946년 삼양사에서 간척한 간척지에 농사를 짓기 위해 형성된 마을이라고 한다.
"고창군의 서해와 곰소만이 만나는 후미는 1936년 4월부터 1937년 6월까지 14개월에 걸쳐 방조제로 막아 7.3㎢의 간척지를 만들고 구릉지의 작은 골짜기에 궁산저수지를 만들어 해리농장이 되었다. 해리농장은 1949년 이래 일부가 염전으로 전환되어 삼양염전으로 바뀌었으나 중국산 소금을 수입하면서 경제성이 떨어져 1992년부터 임대 체제로 전환하였다." - 디지털고창문화대전
동호리 신동호마을은 1940년 간척 공사로 전국 노동자들이 정착한 마을이라고 한다.
해리천 위쪽에 삼양염전(三養鹽田)이 자리하고 있으며, 중앙 왼쪽 뒤에 선운산의 산줄기 상봉인 경수산이 솟아 있다.
"삼양염전은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동호리와 심원면 고전리에 걸쳐 있는 염전이다. 삼양사의 창업주인 수당(秀堂) 김연수(金秊洙)[1896~1979]는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당시 부안면 인촌리) 출신으로 1924년 삼수사를 창업하였으며, 1927년 줄포에서 처음으로 간척 사업을 시작하였다. 1931년에는 회사 이름을 삼양사로 변경하였다. 김연수가 고창군 해리면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36년으로, 해원농사주식회사라는 일본인 회사가 간척 공사권을 따내고도 5년여 동안 방치한 것을 이어받으면서부터였다. 1946년 ‘전매 제2호’ 발령으로 민간 염전이 허가되면서 삼양사는 해리염전(삼양염전) 개설 인가를 받았다. 염전 축조 공사는 1947년 3월 시작하였으며, 1949년까지 94만 4132.23㎡가 축조되어 그해 처음으로 천일염을 수확하였다. 현재 존재하는 염전사무소와 소금창고는 1939년 김연수가 지은 것으로 당시에는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였다. 건물 중 일부는 1950년 6·25전쟁 와중에 소실되었으나 이후 신축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해리염전은 좌익과 우익의 각축장이 되었는데, 전쟁이 나기 전부터 좌익의 염전 공격이 있었기 때문에 사무소 안에는 청원 경찰이 배치되었다. 1950년 7월부터 인민군 치하에 들어갔다가 9·28 서울 수복으로 삼양사가 다시 운영권을 되찾았으나, 이때부터 1년 동안 염전은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인민공화국의 접전이 되풀이되는 장소가 되었으며 이 와중에 132명이 사망하였다. 부산에 피난하였던 김연수는 1951년 2월 차남 김상협(전 고려대학교 총장, 국무총리)을 해리 주재이사로 임명하여 생산과 염전 확장을 지휘하게 하였다. 이때 염전 중앙 수로에 설치한 경비 망루가 지금도 남아 있다. 삼양염업사는 1992년부터 삼양염전을 임대 체제로 전환하였는데, 직영 때는 염전 종업원 수가 400여 명에 달하기도 하였다. 삼양염전은 2010년 현재 99만 1735.54㎡가 운영되고 있다. 총 6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하루 천일염 생산량은 3천 가마 정도이다. 삼양염전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은 색상이 순백색이고 알맹이가 굵으며, 6개월 이상 자연 탈수하여 소금 표면에 있는 마그네슘, 수분, 협잡물 등을 없애 품질이 우수하다. 전라북도는 소금 창고를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 디지털고창문화대전
삼양염전이 위쪽에 있고, 그 아래에 해리천이 흐른다. 왼쪽의 물은 염전저수지인 것 같다.
"海里川은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월림리 산기슭에서 발원하여 해리면을 관류, 심원면 궁산리까지 14.1㎞를 흘러서 서해로 들어가는 하천이다. 해리천 유역의 동쪽은 할뫼에서 청룡산으로 이어져 있고, 남쪽에는 송림산과 한제산이 있다. 또한 유역의 서쪽에는 조지산이 위치하고 있고, 북쪽으로는 서해 곰소만[줄포만]과 맞닿아 있으며, 동호해수욕장 및 삼양염전이 인접하고 있다. 해리천은 해리면의 북부를 북서~남동 방향으로 지나고 있기 때문에 면의 이름을 따서 해리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해리면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청해면과 오리동면을 합쳐 해리면으로 변경되었다. 해리천은 무장면 월림리의 무장읍성 부근에서 발원하여 지류인 송계천과 합류하고, 농경지 구간을 관류하다가 지류인 고성천·군보천 등을 합류하며, 궁산저수지로 흘러든 뒤 북서쪽으로 흐르다 하구의 배수 갑문을 통하여 서해로 유입된다. 해리천의 지류는 송계천(松溪川)·고성천(古星川)·행산천(杏山川)·임해천(臨海川)·송곡천(松谷川)·군보천(軍步川) 등이다. 해리천이 서해로 들어가기 직전에 있는 심원면 궁산리는 면소재지에서 남쪽으로 6㎞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마을이 마치 활[弓] 모양으로 되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궁산리는 1930년대 삼양사에서 간척 사업을 시작할 때 1937년 궁산저수지 축조를 착공하면서 마을이 수몰됨에 따라 현재의 위치로 이주하였다." - 디지털고창문화대전
위쪽에 배수갑문에 막힌 해리천이 유수지가 되어 드넓은 갈대군락지가 형성되었고, 바로 앞은 염전저수지인 듯.
예전에 염전이었다가 이제는 버려졌다. 왼쪽 뒤에 구동호마을과 동호항, 중앙 뒤에 소죽도와 대죽도가 보인다.
심원면 고전리로 들어와 애향갯벌로를 따라 고창컨트리클럽 앞으로 향한다.
"高田里는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전리는 마을보다 주변에 있는 밭이 지대가 높아 고전(高田)이라 하였다. 고전포, 고전호라고도 한다. 김해 김씨(金海金氏) 목경파(牧卿波) 김영하(金永夏)의 6세손 김관승(金寬承)이 정착하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 조선 시대 무장군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예동(禮洞), 만돌(萬突), 고전, 주산(珠山), 두어(斗於) 각 일부를 병합하여 고전리라 하고 심원면에 편입하였다.
고전리는 심원면의 서북부에 있다. 고전리·진주리·예동리·염전리 4개의 행정리와 고전·진주(일명 준지메)·옥동·예동·염전(鹽田)·부등(阜嶝)(일명 불뜽, 부등도(阜嶝島))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에 방죽안·송현·떡적골·호룡동(虎龍洞) 등의 마을도 있다. 고전에는 삼양사가 경영하는 삼양염전(三養鹽田)이 있다. 진주는 옥동 남쪽 산 밑에 있는 마을로, 풍수지리상 마을 뒷산이 진주옥반형(珍珠玉盤形)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염전은 삼양염전 옆에 있어서 붙인 이름이다. 방죽안은 오리방죽 안쪽에 있어 붙인 이름이고, 송현은 고전 동북쪽 산 밑에 있는 작은 마을로 과거 소나무가 울창하여 붙인 이름이다. 떡적골은 부체뜽 남쪽에 외따로 있는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부등은 염전 서쪽 갯가에 있는 마을로 해풍에 밀려 온 모래가 섬처럼 쌓여 있던 곳을 개간한 마을이다." - 디지털고창문화대전
중앙 왼쪽 뒤에 경수산이 솟아 있다. 염전저수지 위쪽 일대는 모두 삼양염전인 것 같다.
"고창컨트리클럽은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고전리에 있는 골프장. 고창컨트리클럽은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 일일생활권이 가능해진 고창의 골프 문화 증진을 위하여 건립되었다. 2004년 6월 22일 면허 승인을 받아 2006년 6월 15일 골프장 등록을 하였고, 그해 6월 20일 개장하였다. 총면적은 76만 330.58㎡로, 18홀 파72 대중 골프장과 3홀 파12 골프장이 있다. 부대시설로 라커룸과 사우나 시설이 구비되어 있으며, 골프용품 판매점, 레스토랑, 대연회실 및 소연회실이 갖추어져 있다." - 디지털고창문화대전
고창 비치호텔을 지나 곧바로 애향갯벌로에서 왼쪽 해안사구 방풍림 뎈길로 진입한다.
서해안바람공원 2km 지점의 서해랑길 이정목에서 애향갯벌로와 헤어져 해안사구 방풍림 뎈길로 이어간다.
이정목 날개가 '검은머리물떼새'로 조형화되어 있다.
방풍림 해송이 빽빽하게 조성되어 있다. 그 사이로 난 뎈길을 따라 서해안바람공원까지 이어간다.
폐염전인 듯. 염전 둑방을 이어서 갯벌탐방로를 조성하는 것 같다. 건너편에 구동호마을과 동호항, 등대가 보인다.
동호항과 등대, 그 왼쪽에 구동호마을이 건너편에 있다. 이곳은 서해 칠산바다 곰소만 입구라고 볼 수 있다.
"고창군 해리면 동호리 및 장호리, 상하면 구시포에는 지금부터 70여 년 전 동호(冬湖), 장호(長湖), 구시포(九市浦)라는 석호가 있었다. 서해안과 동해안 석호의 차이는 밀물과 썰물의 해수위 차이(조차) 때문이다. 조차가 큰 서해안에서는 밀물 때만 물이 차서 호수로 느끼기 어렵다. 서해안의 석호는 썰물 때 바닥이 드러나는 갯벌로 염전과 간척지를 만들기에 적합한 지대여서 거의 전부 간척되어 그 흔적은 현재 이름으로만 남아 있다. 동호 자리는 삼정염전으로 이용되다가 현재는 내수면수산연구소, 장호는 간척되어 농경지, 구시포는 구시염전으로 이용되다가 현재는 폐염전으로 남았다. 고창군의 서해와 곰소만(줄포만)이 만나는 후미(산길이나 물가의 굽어서 휘어진 곳)는 1936년 4월부터 1937년 6월까지 14개월에 걸쳐 방조제로 막아 7.3㎢의 간척지를 만들고 구릉지의 작은 골짜기에 궁산저수지를 만들어 해리농장이 되었다." - 디지털고창문화대전
왼쪽 뒤에 미여도가 보인다. 앞의 소죽도와 대죽도를 합하여 외죽도라 부르고, 줄포만 동쪽에 있는 섬은 내죽도라 이른다.
"고창군에는 5개 섬이 있다. 고창군 심원면 만돌리 미여도(쌍여도)·고창군 상하면 자룡리 가막도·고창군 심원면 만돌리 소죽도는 무인도, 고창군 심원면 만돌리 대죽도·고창군 부안면 봉암리 내죽도는 유인도이다. 섬 전체 면적은 2㎢으로 아주 작은 편이다.
소죽도는심원면 만돌리 산3번지에 있는 무인도이다. 면적은 0.021㎢이고 심원면 만돌리에서 약 3㎞가 떨어져 있고, 해리면 동호해수욕장에서 약 1.5㎞ 떨어져 있다. 개인 어선으로 이동 가능하고, 간조 때 갯벌이 드러나 경운기 및 도보로 접근이 가능하며 20분정도 소요된다. 대죽도와 남측으로 50m 정도 떨어져 있다. 섬 높이가 25m이며 곰솔군락, 억새군락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청동기 시대에서 고려 시대의 소죽도 패총이 있는데 주로 해안 단애면에서 확인된다. 패각의 폭은 60㎝ 정도고 수습된 유물은 무문토기저부편, 점토대토기편, 청자편, 석가여래판불 등이다. 대죽도는 심원면 만돌리 산1번지에 있는 유인도이다. 2010년 11월 현재 면적은 0.117㎢이이며 1세대에 남자 1명이 살고 있다. 내죽도(內竹島)는 부안면 봉암리 618번지 외에 있는 유인도이다. 2010년 11월 현재 면적은 0.049㎢이며 28세대에 60명[남 29명, 여 31명]이 살고 있다." - 디지털고창문화대전
줄포만이 고창 해안에서 건너편 변산반도 해안으로 이어지고, 바다에 독특한 퇴적지형인 쉐니어(Chenier)가 길게 이어져 있다.
고전리 해안가에는 약 1.3km 길이에 40~70m의 폭을 가진 쉐니어 지형이 발달하고 있습니다. 쉐니어란 태풍이나 조류에 의해 갯벌 위에 모래와 자갈이 육지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만들어지는 독특한 퇴적지형으로,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양하게 모습이 변합니다.
왼쪽 뒤에 미여도(쌍여도), 바로 앞에 소죽도와 대죽도가 있다. 맨 오른쪽 뒤는 변산반도 궁항일 것이라고 가늠한다.
"미여도(쌍여도)는 무인도이고, 심원면 만돌리 산1-1에 있다. 면적은 0.012㎢이고 심원면 만돌리에서 약 6.8㎞가 떨어져 있고, 해리면 동호해수욕장에서 약 4.5㎞ 떨어져 있다. 섬에서 서쪽으로 300m 떨어진 곳에 암석으로만 이루어진 소규모의 바위섬이 위치하고 있다. 섬 동북단에는 간조시에 연결이 가능한 바위섬이 있다. 대부분 억새군락으로 덮여 있으며 보리밥나무군락 등이 분포한다. 2010년 11월 현재 공군 사격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 디지털고창문화대전
앞에는 독특한 퇴적지형 쉐니어(Chenier)가 길게 이어져 있고, 뒤쪽에 변산반도 줄포만 위쪽에 내변산 산줄기가 벋어 있다.
맨 왼쪽은 궁항, 그 오른쪽은 모항, 중앙 내변산 아래는 왕포항일 것이라 가늠한다.
서해안바람공원이 앞쪽에 보인다. 건너편 변산반도 줄포만(곰소만) 오른쪽에 곰소항이 있을 것이라 가늠한다.
"곰소만을 줄포만(茁浦灣)이라고 한다. 전라북도 고창군과 부안군에 걸쳐 있는 곰소만(灣)의 주변 지역은 만내에 비교적 넓은 갯벌이 존재하며, 만(灣) 입구는 남북 방향으로 해안선을 따라 길게 분포되어 있다. 전라북도 전체 갯벌의 5%를 차지하고 있다. 전라북도 갯벌의 특징은 서해안에서 제일 단조로운 해안선을 이루고 있으나, 금강·만경강·동진강 등 큰 강의 하구가 있어 전형적인 하구 갯벌들이 잘 발달해 있다. 전라북도 갯벌 현황을 보면 금강 하구는 하구댐의 영향 및 군산, 장항 항만 개발 사업이 계속적으로 추진 중에 있으므로, 이 부근은 앞으로 갯벌 조성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만경강과 동진강의 하구와 고군산 군도를 연결하는 33㎞의 세계 최장의 새만금 방조제는 착공 후 17년 만인 2010년 4월 27일 준공식을 가졌으며, 현재는 내부 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새만금 간척 사업이 진행되는 지역은 전형적인 하구 생태계가 있는 곳으로서 하구 내의 다양한 서식지를 따라 색다른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조개류·어류·철새·해변식물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자연을 조성하는 곳이다. 특히, 백합은 곰소만[줄포만]의 가장 유명한 수산물이며, 이런 종들은 독특한 환경 특성을 가진 하구 갯벌에서 주로 생산된다. 그밖에 바지락으로 유명한 내만 갯벌로 곰소만[줄포만] 갯벌 등이 있다.
곰소만이라는 명칭 중 ‘곰’은 곰처럼 생긴 포구의 ‘곰섬’에서 왔으며, ‘소’는 곰섬 앞바다의 깊은 소(沼)에서 유래한다. 한자명 검모포의 검모는 ‘거무=곰[熊]’을 의미한다. 따라서 곰소를 웅연(熊淵)이라 하기도 한다. 곰소만의 다른 명칭은 줄포만이다. 줄포는 『고려사』에 주을포라고 기록하고 있고, 이는 백제의 부흥운동의 왕성인 주류성의 중요한 거점 포구인 주류포(周留浦)의 전사(轉寫)[글이나 글미 따위를 옮기어 베낌]에서 나왔다. 일제 강점기에는 전라북도에서 군산 다음으로 큰 어항이었다. 1960년대 이후 줄포에 토사가 쌓여 갯골 수심이 얕아져서 곰소항에 중심 어항의 역할을 넘겨주게 되었다. 1958년 어업조합 부두노동조합 등이 줄포에서 곰소로 옮겨지며 곰소항은 군산에 이어 전라북도에서 두 번째로 큰 항구로 성장하기도 했다.
곰소만[줄포만]은 변산반도와 선운산 사이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 곰소만[줄포만]을 따라 후포·줄포·곰소·송포·지지포·난포·고사포·격포·석포 등이 있고 주변에 넓은 대륙붕과 간석지가 있어 새우·민어 등의 어족 자원과 백합·바지락 등 어패류의 수산 양식이 발달해 있다. 삼양염전·곰소염전 등에서 질 좋은 천일염이 생산된다. 곰소는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인근에 산업 단지나 공장이 없어 갯벌이 깨끗할 뿐만 아니라 강물의 유입이 적어 염분이 높다. 바닷물이 깨끗하고 영양분이 풍부하여 질 좋은 소금을 생산하고 있다. 현재는 곰소항도 줄포항처럼 퇴색되어 격포항이 발달하였으나, 곰소젓갈과 소금이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곰소만[줄포만]에는 갯벌의 골을 따라 포구가 발달해 있어 썰물 때에도 배가 다닐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다. 해산물 유통망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에는 곰소만은 기후와 갯벌이 소금 생산에 적합해서 굴비와 젓갈 제조에 필요한 소금을 공급하던 최적지였다.
하지만 번창하던 줄포항이 폐항됨에 따라 1938년 곰소항이 서해 어업 전진 기지로 개항되었다. 그러나 줄포항처럼 주변의 하천에는 토사가 쌓여 곰소항도 퇴색되고, 1987년 1종 항구로 승격된 격포항으로 주요 시설이 옮겨져 갔다. 2010년 2월 1일 고창부안갯벌이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로 인정받아 총 45.5㎢가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었다. 고창갯벌습지보호구역 10.4㎢와 부안 줄포만 습지 4.9㎢ 외에 고창군 주변갯벌 30.2㎢이 포함된 면적이다. 이곳은 다양한 저서동물과 염색식물, 흰물떼새·검은머리물떼새·민물도요·큰고니 등 천연기념물과 멸종 위기종의 서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고창군에서는 폐양식장과 폐염전을 복원하기 위해 고창군 심원면~부안군 부안면 일대의 연안을 2012년까지 복원한다는 계획과 갯벌 복원이 끝나는 2013년 이후에는 대단위 생태공원을 조성한다는 구상도 가지고 있다." - 디지털고창문화대전
암탉과 장닭 그리고 세 마리 병아리 조형물, 만돌이야길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왜 닭 조형물일까?
닭울음산(鷄鳴山)에서 닭이 울면 중국까지도 들린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고 한다.
방풍림 끝이 부등도, 왼쪽 뒤에 바다로 돌출한 동항과 구동호마을, 오른쪽에 소죽도와 대죽도, 그 사이로 미여도가 보인다.
변산반도 곰소만(줄포만) 맨 왼쪽에 궁항, 중앙 왼쪽에 모항, 중앙 내변산 아래에 왕포항을 어림한다.
계명산과 풍차, 고창갯벌 전망대를 서해안바람공원이라 이르는 것 같다. 그러나 해안사구 방풍림을 포함해도 괜찮을 듯.
서해안바람공원은 전북 서해안권 국가지질공원에 속하며 고창군 전역은 생물권보전지역에 속한다고 한다.
"생물권보전지역은 유네스코가 생물다양성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을 조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인간과 생물권계획(Man and the Biosphere progamme, MAB)에 따라 지정한 전세계적으로 뛰어난 생태계 대상지역을 말한다."
칠산바다가 품고 있는 고창갯벌은 유네스코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소중한 보물이다. 고창갯벌에는 다양한 저서생물이 살고 있어 생태계의 보고를 이루고 있다. 게만 하여도 모래구슬을 잘 만드는 엽낭게와 달랑게, 고창갯벌에서만 만날 수 있는 귀한 범게와 밤톨을 닮은 밤게, 닮은 듯 서로 다른 꽃게와 민꽃게, 무리지어 사는 칠게와 한쪽 발이 큰 농게는 예로부터 맛있는 젓갈의 재료로 인기였다. 게뿐 아니라 동죽, 큰구슬우렁이, 괴물유령갯지렁이 등 다양한 갯벌생물이 있고, 도요새 종류와 같이 이들을 먹이로 하는 새들도 많이 찾는다. 마을사람들도 고창갯벌에 정치망 10여 개를 놓아 숭어, 학꽁치, 중하, 조기, 농어, 민어, 서대 등 다양한 어종의 생선들을 잡고 있다.
만돌마을은 1850년대만 하여도 바다였다. 정동마을 언덕까지 바닷물이 들어왔고, 고전마을에서는 후릿그물로 물고기를 잡았다. 만돌마을과 두어마을 사이에 지금은 사라진 신월리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그곳에 살던 광산 김씨 후손들이 지금의 자리로 이주하면서 만돌마을을 형성하였다. 현재 만돌마을은 난호리, 계명리, 정동리 3개의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만돌'이라는 이름은 '만 개의 굴뚝이 솟을 땅'이라는 뜻으로 풍수에서 유래되었으며, 만돌마을에는 약 220세대의 가구수가 있고, 433명이 거주하고 있다. (조사시점 2017.05) 주 특산물은 지주식 김, 천일염, 동죽 등이며 갯벌체험으로 유명하다.
마을 해안가에 있는 해발 28.9M의 작은 봉우리로 '닭울음산'이란 뜻을 담고 있다. 옛날에는 '달구지'라고 하였으며 만돌마을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만돌마을에서 닭이 울면 중국에서도 들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계명산 정상에는 마치 닭벼슬처럼 오래된 때죽나무가 있어 5월 하순이면 하얗게 만개한 꽃을 볼 수 있다. 두어리 인근의 옛날 신월리가 있던 자리에도 작은 봉우리가 있는데, 그것은 크기가 작아 '작은달구지'라고 하였다.
갯벌은 물의 흐름으로 운반되는 모래나 점토와 같은 작은 입자가 파도가 잔잔한 물속에서 오랫동안 쌓여 생긴 평탄한 지형을 말합니다. 고창의 갯벌은 인천강 하구를 통해 다양한 퇴적물과 영양염류를 공급받는 지형·지질학적인 특성의 퇴적환경입니다. 고창갯벌에서는 다양한 생물들과 연흔을 관찰할 수 있으며 모래갯벌, 펄갯벌, 혼합갯벌과 같이 다양한 종류의 갯벌들도 볼 수 있습니다. 고창갯벌은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갯벌의 연흔 : 갯벌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물결자국을 연흔이라 합니다. 연흔은 물결 모양에 따라 아래쪽으로 불룩하게 쌓인 퇴적 구조로 갯벌과 강가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물리적인 힘에 의해 강바닥이 패이거나 쌓이는 부분이 생길 때 이러한 물결자국이 생성됩니다.
목재계단을 오른쪽으로 올라가 계명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오르며 목재계단에서 심원면 일대를 조망한다.
왼쪽에는 드넓은 갈대습지가 조성되어 있고 그 뒤에 고창컨트리클럽이 있으며, 오른쪽에 해안사구 방풍림이 있다.
앞쪽은 만돌리, 오른쪽 중간 지점 뒤는 고전리, 왼쪽 뒤는 주산리라고 가늠한다.
앞쪽은 만돌리, 왼쪽에 만돌어촌체험마을 건물이 있다. 오른쪽 뒤가 주산리, 중앙 뒤쪽이 도천리일 것이라 가늠한다.
"만돌 서북쪽 갯가에 있는 마을 난물 서쪽에 산세가 닭이 울고 있는 형국인 계명산(鷄鳴山)(일명 달구지), 신월리에 작은달구지가 솟아 있다. 난호염전(蘭湖鹽田) 북쪽에 밀물 때면 물에 잠겨 거미만큼 조그맣게 보이는 거무여, 거무여 동쪽에 가막바우 등의 바위가 있고, 대섬(일명 죽도) 남동쪽에 도구여(일명 도구녀), 대섬 서쪽 3㎞ 지점에 큰쌍여·작은쌍여 등의 암초가 있다. 난물 뒤 갯가에 해풍과 바닷물에 밀리어 쌓인 분등이라는 모래톱이 있다. 넙벌(일명 잉벌) 뒤에 뒷번던, 만돌 북쪽에 새태, 난물 동쪽 큰 둑 안에 큰언안, 큰언안 남쪽 작은 둑 안에 작은언안, 서당태 등의 들이 펼쳐져 있고, 정동(井洞) 북쪽에 장군수(將軍水), 대섬 뒤쪽 골짜기에 재비샘이 있다. 재비샘은 음력 3월 3일부터 물이 나오다가 9월 9일쯤에는 물이 나오지 않고, 이듬해 3월 3일까지는 부안면 대섬에 있는 샘에서 물이 나온다고 한다. 대섬 서북쪽에 있는 늪인 용추(龍湫)에서 기우제를 지낸다." - 디지털고창문화대전
앞쪽은 만돌리, 오른쪽에 만돌어촌체험마을과 왼쪽에 수산업체, 그 왼쪽 만돌마을, 그 뒤쪽이 난호마을인 듯. 오른쪽 뒤는 도천리, 왼쪽 뒤는 두어리, 정면의 경수산 아래는 월산리와 연화리인 듯.
"만돌리는 심원면의 북부에 있다. 난호리·계명리·정동리 3개의 행정리와 난호·죽도(대섬)·계명·정동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졌다. 난물·넙벌·대섬·뒷뜸(일명 작은뜸)·큰뜸·만돌·신계뜸·월계뜸 등의 마을도 있다. 난물은 만돌 서북쪽 갯가에 있는 마을이고, 넙벌은 정동 서쪽 넓은 벌 옆에 있어 붙인 이름이다. 대섬은 대섬에 있는 마을로 전에 대가 많이 났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뒷뜸은 난물 뒤에 있는 작은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고, 큰뜸은 작은뜸보다 큰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신계뜸은 넙벌 옆에 새로 형성된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월계뜸은 넙벌 서쪽 냇가에 있는 마을이고, 정동은 만돌 동쪽에 있는 마을로 북쪽에 장군수가 있다. 난물 앞에는 난호염전이 있고, 대섬에는 대섬당이라는 산신당이 있어 해마다 정월 보름에 산신제를 올린다. 정동 북쪽에는 서당이 있던 서당태가 있다. 만돌리에 만돌갯벌체험학습장이 있고 아래로 군도 7호선이 지난다." - 디지털고창문화대전
쉼터정자와 폐초소가 있다.
계명산은 높이 28.9M의 작은 봉우리이며, '닭울음산'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옛날에는 '달구지'라고 하였다. 두어리 인근 옛날 신월리가 있던 자리에도 작은 봉우리가 있는데, 그것은 크기가 작아 '작은달구지'라고 하였다. 앞에 보이는 작은 두 섬은 대죽도와 소죽도인데 이 두 섬을 합하여 외죽도라고 한다. 외죽도 뒤에 길게 드러누운 섬은 부안군에 속한 위도인데, 옛날 조기파사가 유명했다. 왼편 방풍림 끝에는 모래가 쌓여 형성된 모랫등인 부등도가 있는데, 지금은 육지가 되었다. 여기서 닭이 울면 그 소리가 중국에까지 들렸다고 한다. 만돌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산동성 옌타이(煙臺)까지 거리는 약 390km인데, 닭울음 소리가 중국까지 들렸다는 것은 만돌마을 사람들의 기개가 높고 마을 번영의 염원이 담겨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만돌마을이란 이름도 '만 개의 굴뚝이 설 정도로 마을이 번창한다'는 풍수사상에서 나온 이름이다.
앞쪽이 만돌리, 그 뒤쪽이 두어리, 오른쪽 뒤가 도천리, 맨 왼쪽은 하전리, 선운산 바로 아래는 연화리, 그 앞쪽에 심원면행정복지센터가 있는 곳이 월산리이다. 바로 아래 왼쪽은 계명마을과 만돌마을, 오른쪽에 수산업체, 그 뒤 왼쪽이 난호마을인 것 같다.
"心元面은 전라북도 고창군에 있는 행정 구역. 산의 지형이 ‘마음 심(心)’자, ‘으뜸 원(元)’자와 비슷하여 심원이라 하였다. 삼한시대에 마한(馬韓), 백제시대에 상로현(上老縣), 고려시대에 장사현(長沙縣)에 속하였고, 1417년(태종 17) 장사현을 무송현과 통합하여 무장현(茂長縣)이라 하였다. 1914년 3월 고창군 심원면이 되어 난호(蘭湖), 만돌(萬突), 두어(斗於), 고전(高田), 예동(禮洞), 주산(珠山), 죽곡(竹谷), 도천(道川), 내궁(內弓), 두마(斗馬), 도산(陶山), 월산(月山), 사등(沙嶝), 화산(花山), 하전(下田), 상전(上田), 용기(龍基)의 17개리를 관할하였다. 1965년 3월 10개리 24개 마을로 개편하였고, 1990년 1월 10개리 26개 마을 3개 도서(대죽도, 소죽도, 미여도)로 개편하였다.
해리천이 해리면과 경계를 이루며 흐르고, 주진천(인천강)이 부안면과 경계를 이루며 흐른다. 만돌리에는 계명산이 솟아 있고, 도천저수지·연화저수지·궁산저수지 등이 있다. 동쪽으로 선운산 도립공원이 심원면과 아산면에 걸쳐 있다. 심원면은 고창군의 서부에 있다. 201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0.11㎢이며, 2016년 7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1,427세대에 2,775명[남 1,392명, 여 1,38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만돌리·두어리·고전리·주산리·궁산리·도천리·월산리·연화리·하전리·용기리의 10개 법정리 26개 행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동쪽으로 부안면·아산면, 남쪽으로 해리면과 이웃하고, 서쪽과 북쪽으로 바다와 잇닿아 있다. 바다와 잇닿은 곳에는 삼양염전·난호염전·홍해염전 등이 있고, 고전리에는 동호클럽하우스가 있다. 공공기관으로 심원파출소·심원우체국·심원보건지소·심원 농업기술센터 상담소가 있고, 교육기관으로 심원초등학교·심원중학교가 있다." - 디지털고창문화대전
변산반도 곰소만 맨 왼쪽에 궁항, 중앙 왼쪽에 모항, 중앙 오른쪽 내변산 아래가 왕포항일 것이라 가늠한다.
곰소만이 고창군 심원면과 부안면 해안에서 건너편 부안군 변산반도로 이어진다. 맨 오른쪽에 내죽도, 그 앞쪽이 곰소항일 것이며 왼쪽 내변산 아래가 왕포항일 것이라 가늠한다. 서해랑길은 계명산을 내려가 오른쪽 해안길 만돌2길을 따라 이어진다.
곰소만이 고창군 해안을 따라 부안군 변산반도로 둥글게 돌아간다. 아래는 만돌리 계명마을과 만돌마을, 건너편 변산반도 중앙 왼쪽에 곰소항, 중앙 끝쪽은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와 봉암리인 듯.
"만돌리는 심원면의 북부에 있다. 난호리·계명리·정동리 3개의 행정리와 난호·죽도(대섬)·계명·정동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졌다. 난물·넙벌·대섬·뒷뜸(일명 작은뜸)·큰뜸·만돌·신계뜸·월계뜸 등의 마을도 있다. 난물은 만돌 서북쪽 갯가에 있는 마을이고, 넙벌은 정동 서쪽 넓은 벌 옆에 있어 붙인 이름이다. 대섬은 대섬에 있는 마을로 전에 대가 많이 났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뒷뜸은 난물 뒤에 있는 작은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고, 큰뜸은 작은뜸보다 큰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신계뜸은 넙벌 옆에 새로 형성된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월계뜸은 넙벌 서쪽 냇가에 있는 마을이고, 정동은 만돌 동쪽에 있는 마을로 북쪽에 장군수가 있다. 난물 앞에는 난호염전이 있고, 대섬에는 대섬당이라는 산신당이 있어 해마다 정월 보름에 산신제를 올린다. 정동 북쪽에는 서당이있던 서당터가 있다. 만돌리에 만돌갯벌체험학습장이 있고 아래로 군도 7호선이 지난다." - 디지털고창문화대전
바로 아래 만돌리 계명마을이 있으며 그 뒤쪽은 두어리(斗於里)로 넘어간다. 오른쪽에 수산업체, 그 뒤 왼쪽에 만돌마을과 난호마을이 있다. 뒤쪽 경수산 아래는 심원면 연화리와 월산리, 맨 왼쪽은 하전리, 왼쪽 뒤는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와 송현리 일대이다.
"萬突里는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만돌리는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장차 굴뚝이 만 개가 솟을 것이라는 예언이 있어서, 만돌(萬突)이라 하였다고 한다. 광산 김씨(光山金氏) 양간공파(良簡公派) 김진(金璡)의 손(孫)이 만돌과 두어 사이에 정착하여 살면서 마을이 점차 형성되었다. 조선 시대 무장군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난호(蘭湖)(일명 난물), 만돌, 두어(斗於) 일부를 병합하여 만돌리라 하고 심원면에 편입하였다." - 디지털고창문화대전
만돌2길 계명마을 입구의 국가생태문화탐방로 이정목 날개 조형물은 '황조롱이'이다. 오른쪽에 계명마을이 보인다.
정미소였는지 떡방앗간이었는지 이제 폐건물로 남아 있다.
갈매기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맞은편 부안군 변산반도 곰소만 맨 왼쪽에 궁항이 보인다.
정면에 경수산, 오른쪽은 양식장과 염전, 염전저수지가 있다. 갯벌생태지구 탐방로를 따라 돌아나가면 곰소만의 갯벌을 살필 수 있지만, 시간에 쫓겨 만돌2길을 따라 그대로 직진한다.
곰소만 고창 해안과 변산반도 해안이 양쪽에서 서해 칠산바다를 받아들인다. 갯벌생태지구 탐방로이정목 날개 조형물은 '큰고니'이다. 뒤쪽에 계명산, 만돌2길 왼쪽에 계명마을과 수산업체 건물이 보인다.
국가생태문화탐방로 이정목 날개 조형물 '노랑부리저어새'가 멋지다. 람사르고창갯벌센터 1.2km 지점이다.
만돌2길을 걸어오며 농경지, 염전, 왕새우양식장을 보았다. 간척지가 농지→염전→양식장으로 변화하는 모습이다.
"곰소만(줄포만)과 그 남쪽 일대의 만입지(후미, 산길이나 물가의 굽어서 휘어진 곳)는 만입지의 간척→농경지→염전→새우 양식장으로 토지 이용이 변화된 곳이 많다. 그러나 이렇게 토지 이용이 변화되는데도 갯벌, 북서계절풍, 방조제와 해안 사구 및 사초와 소나무 숲에 의해서 해안 사구는 계속적으로, 특히 겨울철에 내륙 쪽으로 전진하고 있다." - 디지털고창문화대전
정면에 선운산 산줄기의 상봉인 경수산이 솟아 있으며, 왼쪽 고창갯벌 습지에 고창갯벌식물원이 조성되어 있다.
갯벌생태지구 탐방로를 따라가면 염생식물들을 살여야 하지만, 시간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그냥 지나친다.
유네스코 고창 생물권보전지역 고창갯벌식물원 : 과거 고창의 연안은 자연 해안선이 살아 있는 아름다운 갯벌이었다. 갯벌에 대한 이용이 많아지면서 고창의 연안은 축제식 양식장으로 변했다. 간척사업을 통해 갯벌이 훼손되면서 갯벌환경 또한 변해갔다. 이곳 갯벌식물원 또한 과거 축제식 양식장으로 이용되다가 방치된 곳이었다. 막혀 있던 둑을 터주고 갯벌을 복원시켰다. 물길이 터지자 바닷물이 다시 흐르고 칠면초, 해홍나물, 퉁퉁마디, 갯개미취, 갈대와 같은 염생식물이 다시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고창갯벌식물원은 고창갯벌의 종 다양성을 유지하고 갯벌생물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연구하기 위한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람사르고창갯벌센터 570m 지점, 두어리 간척농지가 펼쳐져 있고, 뒤쪽 황학산 자락에 두어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斗於里는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두어리는 풍수지리상 마을 형국이 누에머리와 같다고 해서 잠두(蠶頭)라고 불렀다. 한편, 마을 앞 바다 속에 검은 가마귀 바위가 발견되었는데, 누에는 가마귀에게 먹힌다는 설이 있어서 지명을 두리(斗里)라고 바꿨다. 마을 뒤 고개가 풍수지리상 머리 형상이리서 두리(斗里)라 한 것이다. 물고기라 많이 잡힌다 하여 두어(斗漁)라고도 하였는데 어감이 좋지 않아 두어(斗於)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강릉 유씨 옥천부원군의 유창(劉敞)의 14세손인 유달중(劉達重)이 1870년대 마을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조선 시대 무장군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두어(斗於)(일명 두어물, 두어촌)·고전(高田) 일부를 병합하여 두어리라 하고 심원면에 편입하였다. 작은두어(일명 상두어上斗於) 남쪽에 나무가 없어 노란 학처럼 보였다는 황학산(黃鶴山), 두어 남서쪽에 긴 담뱃재의 대통을 엎어놓은 것 같은 대통산(일명 대통재)이 솟아 있다. 황학산 위에 농금바우(일명 농금암弄金巖)가 있고, 갯논(일명 앞골논, 앞골) 앞에 밀물 때면 바위 대부분이 물에 잠기고 조금 남는 부분의 모양이 까마귀가 앉아 있는 것 같다는 가막바우(일명 오암烏巖)가 있다. 너매 앞에 예전 도둑들이 살면서 망을 보던 초소가 있었다는 감적골, 두어 남동쪽에 예전 망해사가 있어 중이 많이 살았다는 중든골 등의 골짜기가 있다. 두어 앞 갯가에 갯논, 너매 서북쪽에서 홍해염전(洪海鹽田) 앞까지 누에 모양을 한 누에물 등의 들이 펼쳐져 있고, 가막바우 남쪽 개 안에 목새밭이라는 모래톱이 있다.
두어리는 심원면의 북부에 있다. 두어·동산 2개의 자연 마을이 있고, 그 외에 너매· 작은두어·황어리(일명 너머황어리) 등의 마을도 있다. 너매는 두어 서북쪽 산 너머에 있는 마을이고, 작은두어는 두어 남쪽 큰길 위에 있는 마을이다. 황어리는 황학산 밑에 있는 마을로 도천리의 황학산 너머가 된다. 두어에 홍해염전이 있고, 홍해염전 앞 둑 가에 있는 소금밭인 언안은 예전에 논이었다. 홍해염전은 현재 거의 폐허 상태인데, 일부는 태양열발전소로 개발되었다." - 디지털고창문화대전
두어2길을 따라 람사르고창갯벌센터로 이어간다. 오른쪽은 예전에 홍해염전이었는데 태양광발전소로 조성되었다.
오른쪽 둑 뒤는 논이었다가 염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오른쪽 뒤에 경수산이 솟아 있고, 맞은편은 심원면 월산리 사등마을이고 맨 왼쪽 지역은 심원면 하전리 일대 마을인 듯.
길 양쪽은 농경지였는데, 염전으로 바뀌었다가 이제 폐염전으로 남아 습지가 되었다. 앞쪽에 람사르고창갯벌센터가 있다.
농경지가 홍해염전으로 바뀌었다가 이제 버려져 있다. 중앙에 경수산이 우뚝하고, 왼쪽에 월산리 사등마을이 있다.
람사르고창갯벌센터 가는 길 오른쪽에 서해랑쉼터라고 불리는 '고창 갯벌오토캠핑&글램핑' 야영장 입구가 있다.
서해랑쉼터라고 하지만 '고창 갯벌오토캠핑&글램핑' 야영장이라 불리고 있다.
고창갯벌은 2011년 7월 31일 '한국의 갯벌'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국내에서는 두 번째라고 한다.
생태문화탐방로 이정목 날개 조형물은 '검은머리물떼새', 탐방로는 갯벌탐방로, 해양조망코스, 옛소금길, 숲길탐방로가 있다.
앞에 '세계자연유산 고창갯벌 표석'이 세워져 있다. 건물은 2015년 완공, 2016년 임시 개관, 2018년 11월 정식 개관하였다.
세계자연유산 고창갯벌 : 고창갯벌은 2011년 7월 31일 '한국의 갯벌'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국내에서는 2007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등재된 이후 두 번째다. 고창갯벌은 다양한 갯벌 분포와 그 지형지질학적 특성으로 인해 생물다양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멸종위기 철새들의 기착지로서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현재 고창군은 지역민들과 함께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55.31㎢의 고창갯벌의 가치를 보전하고 이를 미래세대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표석 뒷면에는 안내도가 새겨져 있다. 표석문 내용은 표석 앞면과 동일하다.
서해랑길 41코스 종점이 가깝다. 경수산 오른쪽 아래 월산리 마산마을 심원면 행정복지센터 앞이 종착지이다.
앞의 다리는 담암천에 놓인 농게교이다. 왼쪽 건너편 마을은 심원면 월산리 사등(沙嶝)마을이며, 최초의 여류 명창 진채선陳彩仙(1847~?)의 출생지로, 생가 터가 있다고 한다.
"陳彩仙(1847~?)은 본관은 여양(驪陽), 1847년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월산리에서 태어났다. 진채선은 신재효(申在孝)의 문하에서 음률과 가무, 판소리를 배웠다. 풍류·가곡(歌曲)과 무용에 탁월하고, 여성임에도 웅장한 성음(聲音)을 자랑하였으며, 기량도 풍부하였다. 20대에 경복궁 낙성연에서 판소리를 불러 좌중을 감탄하게 했는데, 이때 신재효가 지은 「성조가(成造歌)」를 불렀다는 설이 있다. 여류 명창으로 흥선대원군의 총애를 받았으며, 신재효 역시 진채선을 위해 「도리화가(桃李花歌)」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고 한다. 「도리화가」는 현재 가사체로 전하고 있다. 판소리 중에서도 특히 「춘향가」와 「심청가」를 잘했는데, 「춘향가」 중에서 기생 점고(点考)하는 대목이 출중했다. 진채선이 여자로서는 최초의 판소리 명창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이후 허금파(許錦坡)·강소춘(姜笑春) 등 여류 명창 등이 배출되어 오늘날 여자 명창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게 된 계기를 만들었다." - 디지털고창문화대전
심원면 두어리에서 담암천의 농게다리를 건너 월산리로 넘어간다. 선운산의 상봉인 경수산과 월산리 마산마을이 보인다.
"心元面 月山里는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산리는 풍수지리상 마을 뒷산이 마치 반달 모양을 하고 있어 ‘월산(月山)’이라고 하였다 한다. 1898년 밀양 손씨(密陽孫氏)와 김녕 김씨(金寧金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월산리(月山里)·사등리(沙嶝里)·화산리(花山里)·도천리(道川里)의 각 일부가 병합되어 월산리가 되었고, 심원면에 편입되었다. 지형은 대체적으로 평지이며, 남동쪽에 100~300m 내외의 산지가 일부 있다. 서쪽과 북쪽은 서해와 접하고 있고, 남서쪽에는 도천천이 바다와 만나는 하구가 있다.
월산리는 심원면 북부에 있다. 월산리·사등리 2개의 행정리와 월산·사등·검당·죽림 4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교육 기관으로는 심원초등학교가 있다. 주요 기관으로는 심원면사무소, 고창경찰서 해리지구대 심원치안센터, 심원소방대, 해리농협 심원지점 등이 있다. 문화 유적으로는 월산마을에 밀양 손씨의 사당인 경모사(景慕祠) 등이 있고, 수령이 약 300년, 높이 약 15m의 느티나무가 모정 옆에 있다. 사등마을은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선사가 소금을 굽는 법(火鹽法)을 알려준 계기로 조성된 마을이며, 보은염(報恩鹽) 이운(移運) 의식을 갖고 있다. 최초의 여류 명창 진채선의 출생지이며, 생가 터가 있다. 또한 정월 대보름에는 주민들이 모여 당산제를 올리고 있다. 월산마을 입구 도로 인근의 농경지와 심원면 소재지 인근에는 고인돌 31기가 각각 분포하고 있으며, 월산리 중앙을 국도 22호선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지나고, 이외에도 크고 작은 도로가 나 있다." - 디지털고창문화대전
담암천의 농게다리를 건너 월산리로 넘어왔다. 왼쪽 뒤에 황학산, 오른쪽에 람사르고창갯벌센터가 보인다.
생태탐방로 이정목 날개 조형물은 '노랑부리저어새', 하전체험마을 방향의 중앙 날개가 부러졌다. 심원면사무소 0.85km 지점.
공사기간 2006년 12월 22일~2008년 12월 21일, 심원 공공하수처리시설이 완공되었다.
봄을 알리는 큰개불알꽃이 활짝 피었다. 이름을 봄까치꽃이라 고쳐 부르고 있다.
오랜 연륜의 팽나무들이 운치있게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다.
왼쪽에는 심원면 농촌체육공원 올라가는 목재계단이 있다. 중앙 뒤에 경수산이 우뚝하다.
봄을 맞이하여 마산마을 감나무농장에 거름을 놓았다. 중앙 뒤에 선운산의 상봉인 경수산이 우뚝하다.
농민이 1차 밭갈이를 끝낸 밭에서 봄농사를 준비하고 있다.
선운산의 상봉인 경수산이 마을의 주산으로 우뚝 솟아있고, 왼쪽에 심원초등학교, 오른쪽에 심원면 행정복지센터가 있다.
"心元初等學校는 1935년 5월 1일 심원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으며, 1981년 3월 7일 심원국민학교 병설유치원을 개원, 1994년 3월 1일 주산국민학교를 통폐합하였다. 1996년 3월 1일 심원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2016년 2월 12일 제77회 졸업식을 포함하여 6,738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교가 "서기 어린 경수봉 구름에 솟고/ 서해의 푸른 물결 파도치는 곳/ 호남에서 역사 깊은 배움에 동산/ 횃불도 밝아라 진리와 이상/ 아 아 희망의 우리의 심원/ 아 아 찬란한 우리의 전통" - 디지털고창문화대전
왼쪽에 심원면 보건지소, 오른쪽에 심원 치안센터가 있다. 뒤에는 경수산이 우뚝하다.
마산길에서 심원로로 나와 심원 치안센터 앞을 거쳐 심원면 행정복지센터 앞 목적지로 진행한다.
심원로 왼쪽(북쪽)은 심원면 월산리, 도로 오른쪽(남쪽)은 연화리. 심원면 행정복지센터 앞에 서해랑길 42코스 안내도가 있다.
심원면 행정복지센터 앞에 서해랑길 고창 42코스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41코스는 전체 거리 19.7km, 소요 시간 6시간 30분으로 적혀 있다. 실제 탐방거리 20.21km, 4시간 54분이 걸렸다.
국도22호선 심원로 남쪽은 심원면 연화리이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월산리(月山里)와 연화리(蓮花里)로 나뉜다.
1994년 준공된 건물이라고 한다.
심원면 행정복지센터 앞에서 서남쪽 연화리 심원중학교 방향을 살폈다. 도로 왼쪽은 심원면 연화리, 오른쪽은 월산리이다.
심원면 행정복지센터 앞 알림막 설치대에 여러 알림막들이 걸려 있고 중앙에 서해랑길 고창 42코스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선운산의 상봉인 경수봉이 앞에 솟아 있다. 일반적으로 경수산(鏡水山)이라고 부른다. 건너편은 심원면 연화리이다.
鏡水山은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와 심원면 월산리에 걸쳐 있는 선운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경수산에서 바라보는 곰소만(줄포만)의 바닷물과 주진천(인천강)의 물이 거울같이 맑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지리산은 전체를 지칭할 때는 지리산이라 하고, 그 산에 소속된 모든 봉우리들은 산으로 부르지 않고, 주봉은 천왕봉, 제2봉은 반야봉·중봉·하봉·바래봉·제석봉 등으로 부른다. 하지만 선운산은 봉우리마다 ‘산’과 ‘봉’을 함께 쓰고 있어 혼선이 온다. 따라서 산 전체를 지칭할 때는 선운산, 그리고 선운산에 소속된 봉우리들은 모두 ‘봉’으로 표기해야 옳다고 여겨진다. 예컨대 선운산 주봉은 도솔봉 또는 수리봉(도솔산, 336m), 상봉은 경수봉(경수산)·비학봉(비학산)·개이빨봉(개이빨산)·청룡봉(청룡산)으로 고쳐야 한다.
경수산은 고창 선운산 도립공원에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로 주진천(인천강) 하구를 가운데 두고 높이가 같은 소요산(444.2m)과 나란히 솟아 있다. 선운산의 경수산은 소요산과 높이가 같아서 형제봉으로도 불리고 있다. 산줄기는 호남정맥 내장산 까치봉과 백암산 중간 지점의 순창새재에서 서쪽으로 분기한 영산기맥(영산강 분수령)의 구황산에서 북쪽으로 갈라져 나온 선운지맥(선운산 줄기)이 삼태봉-왕제산-선운산 청룡봉-천마봉-개이빨봉-도솔봉을 거쳐 경수산에 닿는다. 물줄기는 북동쪽은 줄포만(곰소만)과 주진천(인천강), 남쪽은 도솔천이 주진천(인천강)에 합류한 뒤 줄포만(곰소만)으로 흐른다. 경수산의 높이는 444.3m이다. 경수산 일대는 선운산 도립공원의 최북단으로 주변에는 소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경수산의 북쪽으로는 줄포만(곰소만)과 변산의 산줄기, 서쪽으로는 위도와 칠산어장, 남쪽으로는 선운산의 구황산·비학봉·청룡봉·투구바위와 도솔계곡이 있으며, 동쪽으로는 주진천(인천강)과 소요산이 바라다 보인다. 산행 코스는 선운산관리사무소-중촌마을-계곡-경수산-마이재-도솔봉-개이빨봉(견치봉)-소리재-천마봉-용문굴-관리사무소 구간으로 거리는 12.2㎞이며, 약 5시간 정도 소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