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설교(57)
밭에 감추인 보화
마13:44
올 초 흥미로운 보도가 나왔습니다.
탈북자 김모 씨가 한국전쟁 당시
대구 팔공산에 있는 동화사 뒤뜰에
금괴 40㎏을 묻어뒀다는
양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찾기 위해 탈북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대구 동화사의 동의를 받아
지난 1월 문화재청에 굴착 허가를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올 6월 굴착 허가를
내 주었답니다.
정말 금괴가 있을까요?
요즘이야 재물이나 보화가 생기면
(간혹 부정한 돈은 장롱이나 땅속에
보관하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은 은행을 이용합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달랐습니다.
은행이나 금고가 없었기 때문에
항아리에 넣어 땅에다 묻어 두었습니다.
특별히 전쟁이 나거나 난리를 당할 때에도
이 방법이 재물을 가장 잘 보관할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이었습니다.
마25장의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그것을
땅에 묻어두었다고 했는데
이는 보관을 잘하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과히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일제시대)에서도 놋그릇 놋수저 등을
전쟁물자 등으로 빼앗기지 않기 위해
땅에 묻어두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보물을 항아리에 담아
땅에 숨겨두는 일은 일면
안전한 것 같지만
가장 위험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주인이 죽을 수도 있고
살던 지역에서 쫓겨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아무도 보물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한 채
보물은 땅에 묻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또 땅에 보물을 묻어 둔 주인이
구두쇠여서 부인이나 자식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죽어 버리면
그 보물은 영원히 땅에 묻히고 마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일들이
당시에는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천국 비유 - 밭에 감추인 보화>
예수님은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천국을 ‘밭에 감추인 보화’에 비유하여 설명하십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마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어느 날 농사를 짓던 농부의 곡괭이에
무엇이 걸려 파 보았더니
보물단지가 발견되었습니다.
당시의 관례에 의하면
주인 없는 보물은 찾는 자가 임자였습니다.
그런데 자기 땅이 아닌 남의 땅을 빌려서
농사할 경우에 보물이 발견되면
땅 주인이 반을 가지고 발견한 사람이
반을 가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농부는 주인과 나누어
가질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그 보물을 땅에
그대로 숨겨 두고 돌아와서
자기의 재산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다는 것이 오늘 비유의 내용입니다.
이 사람의 행동이 도덕적이냐 아니냐는
오늘 비유의 주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몇 가지 강조점이 있습니다.
첫째, 천국을 보화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보화의 가치가 크듯이
천국의 가치가 크다는 것입니다.
농부가 발견한 보화는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재산을 다 팔아 그것을 살만큼
가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천국은 그것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귀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둘째, 보화가 밭에 감추어 있듯이
천국도 감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는
말씀은 천국은 보화와 같이 가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연히 발견>
오늘 비유에 보면 이 농부는 우연히
이 보화를 발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농부가 보화를 캐내려고
백 년 묵은 산삼을 캐듯이 여러 산을 헤매고
다니는 것처럼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똑같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생활 속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전혀 예기치 못하게 괭이에 보화가 걸린 것입니다.
그야말로 우연히 발견한 것입니다.
이것은 천국을 발견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비교> 다음 시간에 공부할 쌍둥이 비유
‘진주를 찾아다니는 장사꾼의 비유’와는
정반대입니다.
둘 다 천국에 접근하는 방법입니다.
성경에도 보면 천국을
우연히 발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째, 베들레헴 부근의 양 치는 목자들입니다.
어느 날 밤 그들은 산에서
양들을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천사가 나타났고
다음과 같은 음성이 들렸습니다.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라”(눅2:11).
목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은 천사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갑자기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들려주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온 인류 가운데
가장 처음으로 마굿간에 나신 예수님을
방문하고 경배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요4장에 수치스러운 삶을 살고 있던
한 여자가 나옵니다.
남편을 다섯이나 가진 여자,
아니 진짜 남편이 하나도 없는
외로운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사람 만나기가 무서워
아무도 오지 않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정오에만
우물가에 물을 길러 오곤 했습니다.
날마다 반복되는 무의미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녀는 그곳에 예수님을 만나러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바로 그 시간
그 우물가에 계셨던 것입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우연한 만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만남을 통해서
이 여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을 발견하게 되었고,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외치는
전도자의 삶으로 뒤바뀌고 말았습니다.
셋째,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고 죽이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울입니다.
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여
죽이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아주 우연히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홀연히 빛이 나타났을 때
그는 무릎을 꿇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주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사울은 거기서 예수님을 만나
그의 생에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름이 큰자(사울)에서 작은자(바울)로 바뀌고
남은 일생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전도자(사도)가 되었습니다.
넷째, 구약에 보면,
아브라함이 어느 날 정오에 천막 앞에 있다가
지나가는 나그네 세 사람을 만나
장막으로 초대하게 됩니다.
그들을 잘 대접하여 주다가
자기 몸에서 약속의 자식이
태어날 것을 확인받게 됩니다.
존 웨슬리 : 어느 날 우연히 거리를 걷다가
조그마한 교회의 수요 집회에 참석했다가
예배 인도자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루터의 로마서 서문에 읽을 때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생애 한 가운데서,
눈물과 고통과 절망의 한 가운데서
그분은 예기치 않게 찾아오십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생활의 연속성 속에서,
권태로운 삶의 반복 속에서,
나는 준비하지 않았고 나는 특별한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그분이 나에게 오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편에서는 준비된 만남이었겠지만
인간의 편에서 보면 정말 뜻하지 아니하게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시집을 갔는데 우연히 예수 믿는 집안이었다든지,
직장에 들어갔는데 사장이 예수 믿는 사람이어서
코가 꿰어 따라다니다가```.
친구 따라 놀라갔는데 와보니
교회 수련회였다든지...
오랫동안 무의미하게 교회에 다닌
사람이(찬송도 많이 알고 성경도 많이 아는데)
구원의 확신이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구원의 감격’이 넘쳐나는 체험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은 숨겨져 있지만 때로
이와 같이 우연히 발견되기도 합니다.
셋째, 보화를 발견하면 기뻐하듯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과 길을 발견한 사람은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보화를 찾았을 때
그 기쁨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보물을 발견한 농부는
‘그것을 그대로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왔다’고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기치 않게 구원의 은혜(천국)를 발견한 사람은
그 기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얼마나 감격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기뻐한 것처럼,
예수님을 발견한 사람은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으로 가는 길’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생명’(영생)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더군다나 이것이 예기치 않던 만남이었기에
더욱 값지고 감사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뻐해야 할 이유입니다.
넷째, 그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보화가 감추인 밭을 사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화를 발견한 농부는 기뻐하기만 했습니까?
그것으로만 만족했습니까?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그것을
소유하려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마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농부는 돌아가서
‘자기 소유를 모두 팔아서까지 밭을 샀다’고
하였습니다.
밭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보물에 관심이 있어서입니다.
너무나 소중한 보물(보화)이였기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 보물을 소유하기 위해
그 농부는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삶에 적용>
이것을 오늘 우리들은 어떻게 적용해야 합니까?
저와 여러분도 ‘우연히’ 보화(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보화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화를 보화로 보지 못하면
귀한 줄을 모르게 되고,
심지어는 쓰레기 취급을 하게 됩니다.
보화를 보화로(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발견하였다면 모든 것을 동원(포기)하더라도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 세상에서
사랑하던 모든 것을 포기하여야 합니다.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팔아서라도
‘천국’을 소유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빌3:7-9에서
자신의 삶에 적용하였습니다.
빌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태양을 발견한 사람은
더 이상 촛불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삶의 가치가 완전히 변합니다.
삶의 우선순위가 바뀝니다.
희생이 어렵습니까?
봉사가 어렵습니까?
아직 참 보화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맺는 말씀 : 예수를 보배로 발견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천국을 발견하셨습니까?
예수님이 여러분의 가장 큰 보화이십니까?
축복하기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저와 여러분이
찾은 가장 값진 보화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분을 믿음으로 소유하는 것이
곧 천국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화를 소유하여
여기에서부터 천국을 누리시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