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진군[甕津郡]의 설화·민요
이 고장 사람들의 생활은 많은 부분 바다와 관계하고 있기 때문에 설화의 배경으로 바다를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 고장에 전승되고 있는 설화는 지명유래담이 많고, 임경업·이성계(李成桂)·도선대사(道詵大師)·무학대사(無學大師)·유성룡(柳成龍)·강감찬(姜邯贊) 등이 등장하는 인물전설이 있다. 이 밖에 효행전설·아기장수설화·고수레유래담·도깨비이야기 등이 널리 전해지고 있다. 지명유래담으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신라가 당나라와 동맹을 맺기 위해 사신을 보낸 출발점이 덕적도였다. 이곳에서 출발한 배는 당나라 서울 장안까지 왕래하였다 한다. 나당연합군을 편성하기 위해 당나라의 소정방이 대군을 이끌고 덕적면 소야리에 들어왔으며, 신라왕은 왕세자 법민에게 140여 척의 배를 거느리고 덕적도로 나아가 소정방과 연합하도록 하였다. 소야리는 소정방이 도래한 곳이라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임경업에 얽힌 일화가 이 지역에 널리 전하고 있는데, 임경업이 배를 타고 연평도 옆을 지나갈 때의 이야기이다. 같은 배를 탄 선원들이 식량이 다 떨어졌다고 하자, 임경업은 연평도에서 보리수 가지를 꺾어다가 그 잎사귀를 뿌리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그 잎사귀가 모두 조기로 변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이곳에서는 풍어제를 지낼 때 임경업장군을 모시고 치성을 드린다고 한다.
이 밖에 백제의 수호신이었던 용을 나당연합군이 잡았을 때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용바위전설」, 동네 부녀자들을 바람나게 한다는 「갓쓴비석전설」, 장수가 손으로 짚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장수바위전설」, 단종이 영월로 유배당하자 관직을 버리고 백령도에 정착한 어떤 선비가 꿈에서 계시를 얻어 평양까지 가서 가져다 심었다는 「진촌리느티나무전설」 등이 있다. 구비전승되는 노래로는 「뱃노래」·「방아소리」·「시집살이노래」, 그리고 타령요 등이 있다.「뱃노래」가 많은 것은 이 고장 사람들이 생활의 많은 부분을 바다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며, 타령요가 많은 것은 경기도지방의 일반적 특징이다. 덕적도에는 인근의 사정을 소재로 한 「아리랑」이 불리고 있는데, “덕적산 넓이는 사방오리/그너머 동리는 여덟일세/문갑소야리 승황빼알/굴업울도 못섬일세/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와 같다. 「뱃노래」는 가락이 단조롭고 구성지며, 후렴은 노를 젓는 데 힘을 돋우는 것이기 때문에 힘차다. 가사의 내용은 거친 파도와 싸우며 고기를 잡는 모습과 고기를 많이 잡아서 즐겁게 살아보자는 소망 등을 담고 있다. “……암해 수로를 맛마쳐 노니 밋띄 미암이 신작로로다 지화자 좋다/에헤 이에와요 이어차디요/달둘러 이마도 바다로 조기 잡으러 가자/연평 칠산 다 뒤져 먹고 어영도 바다로 돈 실러가세…….” 「방아소리」는 김매기할 때 경기도지방에서 널리 불리는 노래인데 방아찧을 때도 불린다. 김매기에 「방아타령」·「방아호」·「방호」·「방개소리」와 같이 「방아소리」계통의 소리를 널리 부르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중남부지방에서는 「상사소리」를 널리 부르고 또 「에헤요」·「어후양」·「아용」과 같이 「에헤야」계통 소리를 부른다. 이 고장에서는 “……에헤 에라 방호/에헤 에라 방호/뻘구당 쿵쿵 열듯이…… 얼럴럴 상사디여/일락서산에 해는 지고/…….”와 같이 부른다. 「시집살이노래」는 “시집간지 삼일만에 놋덩어리 하나를 깨뜨렸네/시어머니 알으시면 노발대발 어이하나/시어머니 나오신다 시어머니 나오신다/아가아가 며늘아가 너의집에를 가거들랑/앞뒤전답 다팔아가지구 놋덩이 하나를 사오너라/아이구어머님 그말씀마오…….”와 같다. 그 밖에 「노랫가락」·「초한가」·「산염불」 및 시조창으로 부르는 「친구가」 등이 불리고 있다.
산업·교통
도서지역인 관계로 수산업이 발달되어 있으나, 대부분 반농반어의 특성을 보이고 있어 상대적으로 농업생산에 비해 그 비중이 약하다. 또한, 수산업 인구는 점차 줄어들고 있으나 덕적도와 영흥도 인근 어장에서는 꽃게·새우·민어·피조개 등과 대청도·연평도 등 서해5도 일대에서는 조기·홍어·까나리·우럭·복어·꽃게 등이 어획되고 있다.
특히, 연평도 근해의 조기어장은 예로부터 유명한데, 1967년에는 약 5만 톤이 어획되는 등 30년 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조기가 가장 많이 잡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주항인 연평항에는 4∼6월이 되면 우리나라 전역에서 어부와 상인들을 태운 어선들이 몰려들어 ‘조기파시(波市)’가 형성되었었다. 그러나 현재에는 어족의 고갈로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다. 꽃게의 경우 현재에도 이 지역의 특산물로서 자리 잡고 있으며, 많은 양이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다. 이 외에도 굴·바지락·김 양식도 이루어져 어민 소득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또한 서해바다의 특성을 살려 천일제염도 과거에는 활발했으나 현재에는 염전들이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농업은 산지가 많아 경지율은 낮지만 토지가 비옥하여 쌀·맥류·서류·채소류 등 다양한 작물이 재배되고 있으며, 산지에서도 밤·대추·도토리·표고버섯과 각종 약초류 등이 채취되고 있다. 임야의 면적은 123.52㎢이고, 총경지면적은 28.54㎢로서 경지가 총면적의 17.4%를 차지하며, 경지면적 중 논과 밭의 비율은 각각 42%, 58%로 밭의 비중이 높다. 가축은 산양·염소·토끼 등을 사육하는 축산업도 소규모로 행해지고 있다. 광산도 비교적 활발하여 23개소의 광산에서 철·규석·석회석 등의 광물이 채굴되어 왔으나 2007년 이후 생산되지 않고 있다. 상업활동은 인구수가 작아 자체적인 발달이 미약하다. 그러나 포구를 중심으로 소규모 상점이 있을 뿐, 대부분은 인천에 의존하고 있다. 백령면의 진촌장은 이 지역의 유일한 시장이다. 교통은 인천과의 해상교통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나 군내 도서들간의 자체 연결망은 미약하고 따라서 각 도서내 육상교통망의 발달도 미약한 실정이다. 인천∼백령도간에는 쾌속선이 운항 중에 있으며, 이외에도 주요 도서인 연평도·대청도·소청도·영흥도·덕적도·자월도·북도 등으로 인천 연안부두에서 출항하는 정기여객선과 행정선이 운항되고 있다.
관광
곳곳에 피서관광지를 이루는 여러 해수욕장들이 산재해 있는데, 여러 해안 지역에 기암괴석과 희귀한 식생 등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덕적면 서포리 해수욕장은 1.5km에 이르는 넓은 백사장과 노송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절경을 이루고 있다. 이외에도 북도면 시도리에 해수욕장이 있으며, 영흥도·자월도에도 해수욕장이 개장되어 있다.
수도권에 인접한 이 곳 해수욕장들은 해상교통의 발달로 인해 최근에 들어 여름 피서지로서 뿐만 아니라 바다낚시터로서도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또한, 서해의 해금강으로 알려진 백령도 두무진(頭武津)의 해안절경과 넓은 모래사장도 유명하다. 이 밖에도 크고 작은 아름다운 빛깔의 콩돌이 모여 있는 콩돌해안과 단단한 모래로 이루어진 사곶천연비행장 등이 볼거리이다. 백령면 진촌리에는 반공유격전적비, 무명용사전적비 등 한국전쟁과 관련된 각종 기념물이 있다. 특히 1992년부터 인천과의 사이에 대형괘속선이 운항되기 시작하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두무진에서는 눈앞에 바라보이는 장산곶과 함께 심청이가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도 있다. 대청도와 소청도 해안의 암석경관도 뛰어난 절경을 이루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나무도 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2-12-05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