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94] 기장 대변 멸치젓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섬발전지원연구센터장
입력 2022.04.20
멸치젓/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figcaption>
4월은 김장용 멸치젓을 준비하기 좋은 계절이다. 그래서 멸치젓으로 유명한 대변항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싱싱한 멸치회와 멸치조림으로 봄맛을 즐기고 김장용 멸치젓을 준비하기 좋은 곳이다. 부산 기장에 있는 대변은 멸치뿐 아니라 미역과 다시마로도 유명하다.
그물에서 멸치 털어내고 있다.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figcaption>
대변에서는 유자망(流刺網)으로 멸치를 잡는 배가 10여 척이 있다. 유자망은 배와 함께 떠다니는 그물로, 떼를 이뤄 이동하는 물고기를 그물코에 꽂히도록 해서 잡는다. 대변항 유자망은 그물코가 커서 봄철에는 한 뼘에 이르는 멸치가 잡힌다. 멸치는 잡는 방법에 따라 유자망 멸치, 낭장 멸치, 정치망 멸치, 죽방 멸치, 권현망 멸치 등으로 구분한다.
여수, 진도, 신안에서는 강한 조류에 자루그물이 밀려가지 않도록 닻으로 고정한 낭장망(囊長網)을 많이 이용하고, 남해와 사천에서는 죽방렴으로 잡는다. 남해 앵강만에서는 정치망(물고기가 다니는 길목에 어망을 닻으로 고정시켜 잡는 그물)으로 잡기도 한다. 통영과 거제에서는 두 척의 배가 대형 그물을 끌어 잡는 권현망도 이용한다.
대변항에서 멸치를 구입하면 즉석에서 천일염과 섞어 젓갈을 담아준다./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figcaption>
이렇게 잡는 방법에 따라 멸치의 선도(鮮度)가 다르고 쓰임새가 차이가 나며 가격도 다르다. 그런데 왜 대변항에서 유자망으로 잡는 멸치로 담은 젓갈이 김장용으로 좋은 것일까. 그 비밀은 멸치를 터는 과정에 숨겨져 있다. 그물에 꽂힌 멸치를 털어내는 모습은 흥미로운 구경거리지만 선원들에게는 가장 힘든 노동 과정이다. 어획량이 많을 때는 일을 마치고 배에서 잠을 청하고 곧바로 다음 날 조업을 나가기도 한다.
젓갈을 담아 판매하는 멸치젓/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figcaption>
그물을 털 때는 여러 명이 박자를 맞추어 손목의 힘으로 그물을 당기고 내리치기를 반복해야 한다. 한 사람이라도 엇박자를 낸다면 힘은 더 들고 멸치를 그물코에서 떼어낼 수 없다. 그래서 박자도 맞추고 힘든 것도 잊기 위해 불렀던 노래(후리소리)가 전해진다. 그물에 꽂힌 멸치가 하늘로 치솟았다가 떨어지면서 머리가 떼어지고 내장이 터지기도 한다. 육질보다 잘 삭은 육즙이 필요한 김장용 젓갈에 딱 맞는 멸치가 준비되는 것이다. 부산이나 거제나 통영에서는 이 ‘멜젓(멸치젓의 경남 방언)’을 이용해 섞박지나 배추김치를 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