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향기가 빛을 찾아가듯
크레이그 푸루어스의 <붓다의 염송>
김진묵(음악평론가, 정신세계 2001년 3월호)
흐르는 시냇물, 새소리, 불어오는 바람.
'더없이 아름다운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최고의 축복이다.
'우리는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내적인 충만감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곧 삶에 대한 찬양이다.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은 세상을 찬양하는 작품으로, 베토벤은 존재의 기쁨을 찬양하고 있다.
이 기쁨을 통해 우리의 에너지는 변환된다.
<전원 교향곡>은 우리에게 축복을 내려주고, 지치고 병든 심신을 치유한다.
이렇듯 음악에는 축복과 치유의 힘이 있다.
명상에너지가 지닌 조화와 치유의 힘
베토벤은 자아의 표현과 예술의 완성을 위해 음악을 만들었다.
그 완성체에는 더할 수 없는 향취가 배어 있다.
지고한 예술성과 자연미, 이것이 베토벤의 위대함이다.
그러나 명상음악은 자아의 표현이나 예술의 완성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 반대 극에 있는 음악이라 할 수 있다.
'예술'이라는 개념은 물론 '자아까지 소멸된 상태의 음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의식의 세계는 아니다.
지고한 축복으로 가득 찬 상태를 지향하는 음악이라고 할까.
그러니 명상음악을 감상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빛을 찾아가는 여행이라 하겠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혹은 ‘옴 나마 시바’ 등 만트라(진언)는 그 자체로 노래다.
티베트 만트라나 불교의 범패, 그레고리오 성가 역시 다를 바 없다.
이러한 만트라들은 주술적인 의미와 힘을 지닌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수도사들이 집단으로 성경을 봉독하는 것이다.
주문을 읊조리거나 경전을 외우는 것이기에 주제의 발전이나 재현 등 고도의 음악적 형식은 없다.
음악적인 발전이란 긴장을 말한다. 긴장은 명상과 함께 존립할 수 없다.
만트라는 오히려 음악적 형식을 거부하고 단순성을 추구한다.
단순하게 반복되는 주문은 주술자(행위자) 혹은 이를 듣는 자를 이완시키는 힘이 있다.
내적인 상태가 고요하고 은총이 넘칠 때, 다시 말해 가장 자연적인 상태일 때,
이러한 상태는 남에게 전이되는 힘이 있다.
조화와 긴장 사이로 깊이 빠져드는 경험은 존재의 변형을 가지고 온다.
침묵, 고요의 확장, 기다림, 환희 그리고 축복으로 변하는 명상 에너지는
조화로운 효과를 드러내기에 치유의 힘을 지닌다.
음악인이 이러한 상태에서 음악을 만들어 낼 때도
비슷한 효과가 듣는 이에게로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이는 찔레꽃 향기가 바람결을 따라 계곡에 퍼지는 것과 같다.
평화로운 상태가 지속되고 평안과 만족이 따른다.
그 결과 빠른 생활양식에서 비롯되는 현대인의 스트레스가 새로운 에너지로 변형되는 것이다.
명상, 호흡수련, 요가훈련에 음악을 활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그 심도(퀄리티)와 긴장감은
높은 수준의 사트바(순수)를 경험한 음악가만이 조절할 수 있고, 또 그러해야 한다.
그렇게 구성된 음악이 음악가 자신의 성장은 물론
듣는 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만트라를 닮은 주술적 음악
본 앨범은 불교 만트라를 소재로 만든 뉴에이지 찬트이다.
‘바즈라 구루 만트라’(옴 아 훔 바즈라 구루 파드마 시디),
‘부담 샤라남’(부담 샤라남 가차미 생감 샤라남 가차미 예나 담만 프라바티캄 탐 샤라남 가차미),
‘옴 마니 반메 훔’, ‘옴 타라’(옴 타라 투 타레 투레 사바) 등
4개의 만트라가 현대적으로 새롭게 창작되어 있다.
승려들이 집단으로 외는 만트라를 일단의 남성코러스로 표현하고
이에 약간의 음악적 컬러를 덧칠한 형태를 띠고 있다.
단순함과 경건함, 그리고 현란하지 않은 색채가 있다.
힌두교 혹은 티베트 불교의 은은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향이라도 사르며 들으면 좋을 앨범이다.
앨범에 수록된 4곡 가운데 두 번째 트랙에 수록된 ‘부담 샤라남’이 특히 압권이다.
16분이 넘는 방대한 작품으로 세 부분 형식으로 되어 있다.
단순 반복되는 진행 속에서 정靜 -동動 -정靜의 대비를 통해 음악적 감흥을 살렸다.
산스크리트어로 반복되는
‘부담 샤라남 가차미 생감 샤라남 가차미 예나 담만 프라바티캄 탐 샤라남 가차미’라는 주문이 묘한 종교적 경건함과 설렘을 안겨 준다.
내용은 ‘불법승 삼보(부처님과 가르침과 승려)에 귀의한다’는 만트라.
하지만 '만트라는 원래 그 뜻하는 바를 알 필요가 없다.'고 한다.
에고를 죽이는 데는 맹목이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음악의 형식과 구성은 만트라의 특성을 살려 철저히 단순 반복적이다.
이러한 무無 구성성이 오히려 앨범 전체에 종교적 색채를 더해준다.
그리고 부드러운 남성 저음을 코러스로 활용,
이완 상태를 만들어 내는 수법은 철저히 서구 뉴에이지적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흔히 수도사들의 강한 목청을 드러내지만 어느 면에서는 일치감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점이 대중으로 하여금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요인이다.
'일반인이 티벳 만트라 자체를 음악으로 즐기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점을 감안하여, 크레이그 푸루어스는 이를 적절히 배합하여 수준 높은 음악을 만들어 낸 것이다.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각성한다
이 앨범이 제안하는 음악 감상법은 다음과 같다.
‘사운드 시스템이 있는 방에 두서너 개의 촛불을 켠 후 전화도 끄고 완전히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편안하게 앉아 눈을 감고서 느리고 깊게 호흡을 한다.
매 날숨마다 몸의 긴장을 푼다.
다섯 번 정도 반복한 후에 평상시 호흡으로 돌아와 이 음악을 튼다.
사운드가 통하도록 몸을 내맡긴다.
감정이나 사고에 머물지 않고 이완의 상태를 유지한다.
이렇게 음악이 흐르는 동안 주위에는 고요와 각성의 장이 형성된다.
음악이 끝난 후에도 5분에서 10분 정도 그대로 앉아 음악의 미묘한 진동이 몸에 남아있는 것을 느낀다.
2~3분 후 서서히 눈을 뜨고 될수록 고요히 움직인다.’
이런 상태로 일상에 다가서면 모든 것이 맑고 여유로와진다.
이런 점에서 이 앨범은 귀로 듣는 감상용 음악이 아니라 명상 수행을 돕는 기능음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음악감상 용으로 활용해도 아주 좋다.
크레이그 푸루어스의 음악적 아이디어가 워낙 뛰어나기 때문이다.
크레이그 푸루어스는 미국 출신으로, 1973년까지는 영국에서 작곡, 편곡, 레코드 프로듀서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전문 음악인으로 활동했다.
클리프 리차드, 사라 브라이트만, 데프 레퍼드 등의 앨범을 프로듀스했고 영화음악과 텔레비전 음악을 많이 만들었다.
14살부터 프로페셔널 재즈 아티스트로 활동하던 그는 MIT에서 철학, 전자음악 등을 공부했다.
또한 케냐 나이로비에서 아프리카 음악을 연구했고, 1973년부터 인도 라가의 음악적 구조에 대해 깊이 연구했다.
1977년부터는 자신의 독립 레코드 회사 ‘HEAVEN ON EARTH MUSIC’을 설립,
자신이 만드는 레코드의 모든 과정을 직접 조종, 제작하고 있으며,
1984년에는 그레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다양한 전통을 지닌 음악을 서로 결합시켜 새로운 퓨전음악을 만들어내는데 능통하다.
서양의 클래식에 민속음악을 결합하는가 하면, 인도의 고전, 아프리카 혹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리듬과 멜로디를 차용하고 그들의 악기도 많이 활용한다.
결과적으로 이는 그의 음악에 독자적인 컬러를 입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