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일 개교기념일,
채석강과 선운사를 찾았습니다.
예년 같으면 개교기념일 전날 오후 설악산 쪽을 찾아 한계령을 넘어 오색그린야드호텔에 숙소를 잡은 후,
밤길을 달려 38선휴게소까지 나아가 단골 횟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밤바다의 파도 소리를 듣고 호텔로 돌아와,
다음날 주전골로 들어가 용소폭포까지 산행을 한 후 7번 국도를 타고 푸른 바다를 보며,
영동고속도로로 해서 서울로 돌아오는 것이 정례화(定例化)된 우리집 개교기념일 풍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손수운전 대신 동백여행사 관광객이 되어 선운사 코스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기독교 집안이지만, 이상하게 절집 분위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선운사만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선운사로 가기 전 먼저 채석강부터 들렀습니다.
민박집 바람벽에 기대앉아 잠 오지 않는다. / 밤바다 파도 소리가 자꾸 등 떠밀기 때문이다. /
무너진 힘으로 이는 파도 소리는 / 넘겨도 넘겨도 다음 페이지가 나오지 않는다. /
아 너라는 책, / 깜깜한 갈기의 이 무진장한 그리움. *
---------------------------------------------------- 문인수 시인의 [ 바다책, 다시 채석강 ]
변산반도 서쪽 끝 격포항과 그 오른쪽 층암 절벽과 바다를 가리키는 채석강은 절벽과 바위의 모습이,
마치 수만권의 책을 쌓은 듯 층층이 겹겹으로 쌓여 있어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해 줍니다.
" 달아 달아 밝은 달아"의 시인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 강물에 비친 달빛이 너무 아름다와 ,
달을 건지려고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비슷하다 하여 같은 이름이 붙여졌는데,
오십이 넘어 보이는 여행사 가이드는,
"책 모양을 한 바위"라서 "책석강"인데 오늘날 "채석강'으로 글자 모양이 바뀌었다고 또다른 유래를 들려 주었습니다.
해안 절벽 앞에는 먼 바다에서부터 깎여들어온 암반이 넓다랗게 펼쳐져 푸른 바다 앞에서 아름다왔습니다.
옆에 있던 청년에게 촬영을 부탁하자,
아내는 손가락으로 V자부터 그리고 동심(童心)으로 돌아가는 포즈를 취하더니,
이어서 책바위 위에 엎드려 독사진으로 한 장 더 찍었습니다.
* 채석강 해안에서,
선운사는 매표소부터 대웅전까지 가는 길이 더 매력적입니다.
폭이 넓은 시내는 양쪽 다 고목(古木)들이 늘어서서 그늘이 깊은데,
그늘 사이로 몸을 굽혀 바라보면 시냇물이 흐르는데도 나무와 어우러져 조용하면서도 그윽한 분위기를 자아내
우리들의 마음도 차분히 가라 앉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운사 길이 바로 여기입니다.
- 선운사 골짜기로 /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이러 피지 않했고 /막걸리집 여자의 / 육자배기 가락에 /
작년 것만 상기되어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서정주 시인의 [ 선운사 동구(洞口) ]
* 서정주 선생님과 함께,
쉬운 언어로 씌여졌으면서도 시어(詩語) 뒤를 뒤지면,
<서편제>처럼 질펀한 사연이 엮일 것 같은 <선운사 동구>가 새겨진 시비(詩碑) 앞을 지나노라니,
대학 시절 어두운 강의실에서 에밀졸라의 <목로주점> 한 구절을 느릿느릿 읽어주시다가,
가끔씩 돋보기 너머로 우리들을 바라보시던 서정주선생님의 얼굴이 흐릿하게 떠올랐습니다.
그 시절 사당동 집에서 작은 종을 흔들어 사모님을 부르시던 모습은 영화의 한 컷처럼 선명한데,
선생님은 선운사에도 없고 이 세상에도 없는 사람이 돼버렸습니다.
그래도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선생님도 시가 되어 남았습니다."
* 선운사 대웅전 앞과, 곰소항의 메밀꽃밭에서,
선운사를 그냥 지나쳐 도솔암으로 먼저 향했습니다.
선운사에서 3.2 Km 더 위에 자리 잡은 도솔암에는,
'꽃무룻'이라 불리는 상사화(相思花)가 군락으로 피어 있어 선운사만큼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 당깁니다.
내 너를 사랑하는 것은 / 너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다 /
지나는 바람과 마주하여 / 나뭇잎 하나 흔들리고 /
네 보이지 않는 모습에 / 내 가슴 온통 흔들리어 /
네 또한 흔들리리라는 착각에 / 오늘도 나는 너를 생각할 뿐 /
정말로 내가 널 사랑하는 것은 / 내 가슴 속의 날 지우는 것이다.
---------------------------------------------------------- 구재기 시인의 [상사화(相思花)]
8~9월이면 선운사 일대와 마애불이 있는 도솔암까지 3km에 이르는 골짜기 주변에서 피어 장관을 이루는,
선운산의 또 하나의 명물(名物)이 상사화입니다.
새벽녁엔 핏빛이라 일컬을만큼 붉은 색깔이 특징인 상사화는 마치 사랑의 숨바꼭질을 하는 연인(戀人)처럼,
잎이 나오면 꽃이 지고, 꽃대가 나오면 잎이 말라 버리는,
서로를 그리워 하지만 만나지 못하는 상사병에 걸린 연인 같은 꽃이라서 상사화라 불리며,
그래서 꽃말도 '이룰수 없는 사랑'입니다.
아내의 발은 아직 수술의 후유증이 남아 있어 무리를 하면 탈이 나기에,
도솔암으로 가는 우리 부부의 발걸음은 느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대신 나무며 야생화며 시냇물이며 바위들에 친근한 시선을 보내며 ,
처럼 한가하게 정감(情感) 어린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되어 기쁨이 컸습니다.
힘 들면 바위에 앉아 쉬기도 하고, 계곡물에 손을 담그기도 하고, 잠자리가 날아다니는 가을 하늘도 올려다 보고,
앞질러 가는 사람들도 구경하느라 기분 좋은 늑장을 부렸습니다.
급기야 도솔암을 겨우 300 M 앞두고 산 아래로 그만 발길을 돌리는 만용(蠻勇)^^^까지 저지르기에 이르렀습니다.
선운사에서 여기까지 우리가 본 상사화가 대부분 져버렸으니 도솔암의 상사화도 다 지고 말았을 것이라는 핑계를 대었지만,
아무래도 도솔암의 상사화까지 무리해서 보는 것은,
속세(俗世)의 욕심을 부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는 생각이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 상사화
선운사로 들어가기 전, 다리 앞에 있는 고목(古木)의 그루터기에 앉아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루터기와 이어진 나무뿌리들이 땅 속을 뚫고 나와 용틀임 형상으로 사방으로 구불구불 뻗어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새삼 자연이 주는 경이감에 고개를 숙이며 보잘 것 없는 인간의 분수를 지키며 얌전하게 그루터기에 앉았습니다.
드디어 사천왕께 인사를 드리며 선운사 경내(境內)로 들어섰습니다.
늦은 오후,
사람이 적어 호젓한 경내를 거쳐 대웅전 앞에 선 아내는 부처님께 합장배례를 드립니다.
선운사에 세 번째 들르는 길이지만 뒤편 동백나무 숲은 푸르기만 하지,
서정주선생님 제자답게 나는 이번에도 그 유명한 동백꽃 구경은 인연이 없어 하지 못했습니다.
대웅전 옆,
바위 위에 앉아 건너편 산 봉우리와 하늘을 바라보자니 참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우리 부부가 이제까지 들러본 내소사와 백양사와 화엄사와 내장사와 여기 선운사 모두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큰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절은 말이 없지만,
절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살았느냐?",
"어떻게 살겠느냐?"
그것이 부처님의 자비인지,
우리들 마음 속에 자리잡은 불심(佛心)인지,
아니면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인지 구별할 수 있는 눈은 없지만,
우리 부부는 "존재와 삶"에 대한 깊은 침묵에 잠기며 허락하는 시간까지 여기 선운사에 오래오래 머무르고 싶었습니다. ****
* 선운사 큰 나무 그루터기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