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11.
쌍계사 금당
갑자기 날씨가 더워졌다. 교육생 숙소 방바닥에 가만히 누워있으면 세상과는 거의 단절되는 수준이다. 텃밭에 물주는 호수릴 풀리는 소리가 간간이 들리는 것이 유일하다. 쉴 틈 없이 울려대던 휴대폰 벨 소리도 차가운 겨울바람 따라 떠난 지 오래다. 자동차 소음이나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조차도 없다.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이럴 때는 독서라도 해야된다.
남명이 유두류록을 남겼다. 한자로 쓴 기행문이라서 글이 짧은 나는 읽을 수도 없다. 오래전 경남 진주 사람 강정화 작가가 <남명과 지리산 유람>이라는 제목으로 이해하기 쉽게 쓴 책이 있다. 최근 들어 이상영 작가가 남명의 유두류록을 주해한 책이 출간되었다. <조식의 지리산 유람기, 유두류론>이다. 남명이 고전에서 차용한 글과 숨은 이야기를 속속들이 설명한 책이다. 독서 후 기억에 남는 게 쌍계사 이야기다.
쌍계사는 금당과 본당의 영역으로 나뉜다. 의상대사의 제자 삼법과 대비가 당나라 육조 혜능의 정상(머리)을 가져와 723년 창건했다는 설화가 있다. 금당의 칠층석탑이 혜능의 정상을 모신 건지는 알 수 없다. 진감국사 혜소가 쌍계사를 번창시키고 큰 법력을 가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본당 영역의 진감선사대공탑비는 고운 최치원이 글을 짓고 비석에 썼다고 한다. 국보 제47호로 인정받을 정도로 내용과 필체가 대단하다.
남명은 쌍계사에서 4박 5일을 묵었다. 1558년 4월 16일 쌍계사 금당 옆 서방장에서 쉬었고 진감선사대공탑비와 팔영루를 본 소감을 적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대웅전은 없었던 듯하다. 임진왜란 후에 벽암 선사 각성이 본당을 확장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남명의 유두류록으로 16세기 중반의 쌍계사를 그려볼 수 있어 참 좋다. 기록이라는 것은 사소한 일기 한 장일지라도 무한한 힘을 가졌음을 이미 알고 있다. 매천야록이 그렇고 난중일기가 그러했다.
추사가 금당을 다녀갔다고 한다. 금당에는 그 흔적이 있다. 오른쪽에는 세계일화조종육엽(世界一花祖宗六葉), 왼쪽에는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이라 현판을 걸었다. 금당 안에는 부처님의 모습을 대신한 칠층석탑이 있다. 19세기 어느 날 추가가 만허 스님에게 차 한잔 공양받으려고 쌍계사에 들러 일필휘지로 적었으리라. 답사해야 할 것들이 참으로 많다. 이제 쌍계사에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여전히 덥다. 창으로 보이는 실외 교육장에는 유월의 뜨거운 여름이 가득하다. 폭염주의보가 방송을 장악할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더위가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