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사무처장 성효 스님
‘성숙한 정점’에서 깨달음의 꽃 핀다‘
믿고, 정진하라!
▲ 성효 스님은 “부처님을 닮고 싶다면
부처님께서 닦아간 체계를 거쳐야 한다”며 수행의 절대성을 피력했다.
1980년 5월 광주!
철학에 뜻을 둔 청년도 그날 그곳에 서 있었다.
1980 광주민중항쟁 때, ‘민주화’ 갈망했던 청년
시민·군인 모두 내 형제, 2년 행자 후 사미계 수지
선·양자역학 관통시킨
자신만의 선적언어 탁월
불법 밀도있게 전하고자
과학·심리·법학 외전 탐독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가 흘렀고
‘목련보다 더 희고 정갈한 순백의 영혼들이 꽃잎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생의 끝자락에서 마주해야 했던 건 붉은 피뿐이었던 사람들,
마지막 숨을 거두며 최후의 눈물을 떨군 사람들. 그들 모두 내 형제고 내 누이었다.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한 가슴을 더 미어지게 하는 건
M16 소총과 진압봉을 든 군·경 또한 내 형제라는 사실이었다.
“나도 군인이라면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가?”
5월의 함성을 뒤로한 청년은 상인 스님이 머물고 있는 광주 관음사로 향했다.
“왜 왔느냐?” “출가하겠습니다!”
관음사에서 시작된 행자 생활은 백양사, 신륵사를 거쳐 2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세속에서 끌고 온 업장이 그만큼 두터워서였을 것이다.
짊어진 짐을 내려놓고 자신을 추스를만 했던 1982년,
조계종 단일계단에서 사미계를 수지했다. 성효 스님이다.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화두 하나 들고
전국 제방선원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5월의 목련이 떨어질 때마다 들려왔던 총소리는 아스라이 멀어져갔고,
가슴 한편을 물들였던 붉은 피도 조금씩 씻겨갔다.
통도사 극락암에서 차디찬 겨울을 나고 있던 어느 날,
마음에 둔 것이라고는 ‘만법귀일 일귀하처’의 하나(一) 뿐이었는데
‘묘한 환희심’이 밀려왔다. 하룻밤을 지새웠음에도 전혀 버겁지 않았다.
삼매의 연속이었을 터다.
‘모든 현상의 본질과 작용은 서로 융합하여 걸림이 없다’는
즉입(卽入)의 경지를 경험 했던 것일까?
선지식들이 그토록 말해왔던 자성(自性)을 여실하게 보았던 것일까?
이른 아침 가부좌를 풀고 포행에 나섰다. 설원의 영축산에 햇살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순간 새로운 세계가 목전에 펼쳐져 있음을 확인했다.
어제 보았던 통도사가 아닌 7보(七寶)로 장엄된 통도사였다.
직감으로 알아차렸다. 대중처소에 머물 때가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혼자 머물 공간을 당장 마련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여,
극락암 조사전(祖師殿) 문을 열어젖혔다.
성효 스님의 수행이 증장되기 시작된 건 세납 26살의 바로 그 때부터다.
산에서 내려 온 성효 스님은 사판의 길을 걷고 있다.
용인 용덕사 주지를 비롯해 조계종 총무원에서 재정·문화 국장을 수행했고,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사무국장·단장, 14대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
15대 중앙종회 사무처장, 제주 관음사 주지를 역임했다.
현재는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사무처장을 맡고 있다.
2017년 1월부터 12월까지 법보신문에 매월 1회 연재된
‘성효 스님의 그림이 있는 선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선화·선시를 관통하는 중요 키워드 하나가 양자역학(量子力學)이었기 때문이다.
5월 작 ‘대상을 보는 것은 영점에서’를 보자.
‘본다라는 이치가 확연하다면/ 현상이 이러함에 무슨 의미가 있으랴/
이는 상대세계와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같은 범위 안에서 느껴지는/
일시적 현상일 뿐이라// 수행자여 존재와 비존재는/
현상적 홀로그램일 뿐이니 속지마시라/
보지 못하였는가? 무엇이 꽃이 되는 것을!’
제목에서 보인 ‘영점’을 다소나마 이해해야 올곧이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영점(零點)은 절대온도 0도(K), 즉 영하 섭씨 273.16도를 이른다.
전자·양전자(전기적으로는 쌍극자)는 절대온도 환경에서도 생성·소멸하며
전자기장을 발생하기에 영점장(零點場)이라고 한다.
양자학계에서는 물질(아원자)이 갖고 있던 정보가 영점장에 담겨 있다고 보고 있다.
영점장은 허공 즉 우주 전체에 퍼져있다.
이론물리학자 디랙(Dirac), 붐(Bohm)은 “허공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아원자들이 들끓고 있는 장(場)이요, 초양자장(superquantum field)이 꽉 채우고 있다”고 했다.
아원자 관점에서는 우리 또한 ‘에너지를 띤 전하’다.
따라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영점장의 정보와 끊임없이 교환(성장)하는 양자 덩어리다.
이 세계에서는 에너지장만 존재하기에
아(我)와 비아(非我), 사람과 호랑이간의 구별은 있을 수 없다.
결국 우주는 ‘에너지 바다’요 ‘광대한 양자장’인 셈이다.
▲ 선화 ‘시작과 끝이 있으랴’. 나와 우주만물과의 충돌·조화, 그에 따른 변화양상을 담았다.
이 계통의 과학자들은 놀랄만한 주장들을 펴고 있다.
우리의 몸과 의식을 컨트롤하는 뇌와 DNA는
영점장에서 얻은 양자 정보를 전달, 해석하는 일종의 변환기이며,
기억 또한 우리의 뇌가 아니라 영점장에 저장되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인간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생물(만물)은
우주와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동양학의 기(氣), 불교의 윤회를 영점장·양자장 관점에서 분석한 관련 논문도 나오고 있다.
다소 앞서가는 얘기지만 이러한 학설이 어느 정도 검증된다면
기도 효험, 숙명통 등은 더 이상 비현실적으로만 들리지 않을 것이다.
“우주는 홀로그램과 같은 영상”이라 한 데이빗 붐은
또한 우주를 물질적 실체로 보는 것은 인간의 감각기관에서 일어나는 ‘착각’이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 사실은
감각기관을 통해 입수된 정보로 만들어진 가상현실이라는 뜻이다.
어쩌면 성효 스님은 과학적 ‘영점장’을 들어 ‘형상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다’는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忘)’을 드러내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전법을 하는데 있어 애써 과학을 취하려 하는 연유는 무엇일까?
동국대 법인사무처에서 만난 성효 스님에게
‘영점장’, ‘초양자장’ 개념이 작품에 투영된 게 맞는지 여쭈어 보았다.
성효 스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 그림과 글 기저에는 양자역학의 세계가 깔려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여쭈어 보았다. 과학이라는 외전이 왜 필요한지.
“불교의 정수를 좀 더 쉬우면서도 밀도 있게 풀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인드라망적 연관성과 중중무진의 우주구조를
양자역학만큼 상세하게 설명해 낼 수 있는 분야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경전이나 선어록 상의 일구에만 천착할게 아니라는 뜻이다.
원자물리학과 열역학을 독파한 성철 스님도 에너지보존법칙을 들어
‘반야심경’의 불생불멸 부증불감(不生不滅 不增不減)을 설명했고,
양전자와 음전자가 쌍으로 나타났다가 쌍으로 사라지는 현상을 예로 들어
중도의 핵심인 ‘쌍차쌍조’를 설명했다.
이러한 과학적 논리를 바탕으로 성철 스님은 법석에서
“우주는 상주불멸(常住不滅)이며 상주법계(常住法界)”라 일갈한 바 있다.
성효 스님도 ‘영점장·양자장’을 통해 불법의 정수를 전하려는 것이다.
“저는 영점장이나, 초양자장이라는 언어를 쓰는 대신 기장(氣場)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서양에서 출발한 양자장과 동양학에 뿌리를 둔 기장과의 상관관계는
학계에서도 연구 중이므로 현재로서 ‘같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성효 스님은 둘 사이의 맥락은 같은 것이라 보고 과감하게 ‘기장’을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옛 선지식들은 공부가 잘 안 되는 제자에게
‘태백산 어디로 가라!’, ‘가야산 어디로 가라!’ 했습니다.
그 곳의 기운과 제자의 기운이 맞아 떨어질 것이라 보았기 때문입니다.
주변 환경과 인식작용의 상호원리를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던 겁니다.
큰 선지식(도인)이 출현했다고 하면
수행인들은 토굴이라도 파서 선지식 주변에 머무르려 합니다.
왜일까요? 선지식이 자연스럽게 뿜어내는 기장(氣場) 속에서
정진의 힘을 키워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큰 산에서 큰 도인 나온다’는 말은 결코 헛말이 아닙니다.”
선지식들도 기(氣)의 흐름을 정확히 알고 활용했다는 뜻이다.
성효 스님은 자신의 작품에서 ‘각각의 생명 현상이
극에 달하는 틀의 구조 속에 있음을 보라’했다. ‘틀’이란 무엇인가?
“선지식이 일러 준 곳으로 간 제자는 목숨마저 내놓는 정진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품고 있던 에너지를 모조리 쏟아 부어서라도 뜻한 바를 이루려 하지요.
그런데 일정 단계를 넘어서서는 어떤 틀을 구축해 놓고 정진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중생을 제도하지 않고는
자신도 결코 성불하지 않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큰 틀의 대표적 모델을 제시해 주신 겁니다.”
성효 스님이 말하는 틀은 원력이다.
가능하면 자신의 안락뿐 아니라 타인의 안락도 도모할 수 있는 원력을 세워보라고 한다.
성효 스님은 부처님을 닮고 싶다면 부처님께서 닦아간 체계를 거쳐야 한다고 단언했다.
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라는 뜻의 다름 아니다.
“깨달음의 전제조건은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 즉, 믿음입니다.
나도 될까, 정말? 이런 의식으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보이신 길입니다. 선지식이 증명해 낸 사안입니다.
‘선가귀감'에도 ‘목마른 사람이 밥 생각하듯,
갓난아이가 엄마 생각하듯 하면 반드시 투철하게 깨칠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작품 ‘때가 되니’를 통해 ‘나무가 수분을 대하니 가지 끝에서 꽃이 핀다’고 한 연유를 알겠다.
겨울과 봄 사이에 매화가 피듯 ‘그 때’는 분명 온다.
그렇다고 막연한 기다림 속에 그 때가 오는 건 아니다.
“새싹에서 꽃은 피지 않습니다, ‘성숙한 정점’에서 드러납니다.”
아직도 공부해야 할 외전이 남아 있는지를 물으니 미소만 짓는다.
지난 학기까지 심리학을 공부했던 성효 스님은 새 학기부터 법학을 공부하겠다고 한다.
사진 촬영 중 언뜻 책상을 보니 플라스마(plasma) 연구 서적이 펼쳐져 있었다.
외전을 향한 성효 스님의 열정은 당분간 지속될 듯하다.
그 열정이 빚어낼 ‘성효 스님만의 불법(佛法)’이 벌써부터 궁금하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성효 스님은
1980년 입산, 1982년 사미계 수지
14대 중앙종회 의원, 15대 중앙종회 사무처장 역임
용덕사· 제주 관음사 주지 역임
한국불교문화사업단장 역임
현재 학교법인 동국대 사무처장
2018년 3월 7일
법보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