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를 고치는 이적을 행하시다
누가복음 11장 14-23절 / 14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15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16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 17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18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19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20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1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22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23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한 제자 - 열 두 제자 외의 또 다른 제자 그룹에 속한 한 제자 - 가 세례 요한이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어 기도에 있게 한 것을 들어 자신들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실 것을 예수께 청하므로 예수님은 그들이 구할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기도는 예수께서 산상설교에서 열 두 제자에게 이미 가르치셨던 것으로‘주기도’로 불리는 기도에 있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기도를 가르치심으로 기도에 나타내신 하늘의 하나님이 뜻하신 바가 이 땅에 있는 그의 백성들에게 이루어질 것을 구함에 있게 하셨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예수님은 귀신들려 벙어리가 된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그가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한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이 이적은 앞서에서 있은 예수님이 제자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를 말씀해 주시는 것에서 한 벗의 비유를 들어 그들이 구한 바의 간청을 들어주실 것과 함께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여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구함을 들어주시기 위해 성령을 보내실 계획을 가지신 것을 알려 주시는 일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말이죠. 이제 예수님과 함께 하시는 그 성령이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에 있어 그들이 구하는 것에 하나님이 들어주실 응답(성취)을 바라봄에 있는 제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성령이 하시는 일과 그 성령이 행하시는 권능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해 주시는 일을 하시는 것에서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에게서 귀신을 내쫓으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귀신들려 벙어리 된 한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어 고치는 이적을 행하신 사건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와 함께 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벙어리가 된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니 그가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의 벙어리 된 자는 나면서부터 벙어리였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벙어리로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래 그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벙어리가 될 만한 무슨 큰 질병을 앓았거나 또는 큰 충격을 잃어서 말하는 기능이 안 되므로 말을 잃었거나 또는 사고를 당해서 혀를 잃어 말을 못하거나 하는 후천적인 이유가 있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가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가 된 것은 귀신이 그를 억압하여 말을 하지 못하도록 벙어리 상태에 있게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에게서 귀신이 나가면 언제든지 그는 예전처럼 말을 잘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에게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귀신의 힘이 그가 말을 할 수 없도록 강력하게 사로잡고 있으며, 이런 귀신을 이길 힘을 지닌 자는 없는 까닭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예수께서 벙어리 된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그러자 벙어리 되었던 자가 다시 예전처럼 말을 하였습니다. 이 광경을 예수님의 곁에 모여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보고 크게 놀라워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수군거려 말하기를“저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에게서 힘을 얻어 귀신을 쫓아내고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누군가는 벙어리 된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예수님에게서 자신들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서도 믿지 못하여 예수님의 권능을 부인하는 것에서 설마하니 저가 하늘에서 보내신 자가 아니고서야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표적을 행할 수 있겠는가 하여 예수님을 시험하는 의도에서“하늘에서 오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 모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하는, 그래서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이 하나님의 권능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것으로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며 믿지 않는 것에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예수님 그러한 그들의 악한 생각을 아시고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망하여 황폐하여질 것이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진다.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하면 사단과 사단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 그들끼리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겠느냐? 만일 사단이 저들끼리 서로 갈라져서 싸운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의 나라가 온전히 있을 수 있겠느냐? 서로 치고 박으며 싸우니 그의 나라가 성하지 못하고 황폐하여지지 않겠느냐? 그런데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들도 바알세불에 붙들려서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어 너희가 내게 공연히 생트집을 잡고 있다는 것을 밝혀주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일을 보아라. 내가 벙어리 된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낸 것이 과연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서 한 것이냐? 이 사람 어디에서 사단이 스스로 분쟁하여 황폐하여진 꼴을 보느냐? 내가 이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냄으로 벙어리 되었던 그가 말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일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이 한 짓이냐? 아니면 하늘의 하나님이 하신 크신 일이냐? 내가 이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낸 것이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한 것이라면 그를 사로잡고 있던 사단이 내게 굴복한 것이며 그의 나라는 망하고 그에게서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세워진 것이지 않겠느냐?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의 소유가 안전하되 그보다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의지하여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눈다. 그렇다. 나는 사단에게 사로잡혀 그의 소유가 된 벙어리 된 자에게서 사단을 굴복시키고 그에게 사로잡혔던 자를 빼앗아 내 백성 삼아 내 나라가 그의 나라가 되게 하였다.”
그리고서는 예수님은 결론으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예수님은 자신과 함께 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임을 말씀하며 예수님과 함께 모으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헤치는 자, 곧 흩어지게 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의 광경을 가지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는 목동(목자)이 양떼를 모으는 광경이요(요 10:12), 다른 하나는 추수하는 광경입니다(요 4:35-37). 예수님은 이 두 가지의 광경을 가지고 사단과 싸워 그의 소유가 되어 있던 자를 그에게서 빼내어 하나님의 나라에로 모으는 일을 하는 것으로 설명하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벙어리 된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성령의 권능을 나타내시어 이적을 행하신 것이 그 일을 하시는 것인데, 만일에 그러한 사실을 눈으로 보면서도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는 자라고 하면 누구든지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이며,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을 하나님의 나라에로 모으는 일을 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들을 하나님의 나라에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흩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말씀을 하시는 것을 통해서 예수님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이 들렸다고 비난하여 말함으로 예수님이 행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부정하고,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는 것은 모두 예수님을 반대하여 배척하는 것에서 하는 말들로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심도 믿지 않고 예수님이 행하시는 이적이 하나님의 권능이심도 믿지 않는다고 하는 그들의 악함을 드러내어 책망함으로 부끄러움에 두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악함으로 결코 하나님 나라의 의의 빛 가운데 있어보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그들에게서 악한 사단이 지배하는 어둠이 짙어가고 있을 때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에게서는 그들이 결코 어둠에 갇혀 있지 않도록 주기도를 가르치시는 것과 함께 말씀하신 성령의 권능으로 악한 사단으로부터 빼내어 하나님 나라의 의의 빛에로 나아오게 하여 한 데 모으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하시며,‘주기도’로 불리는 기도를 가르치신 것은 이 일이 그들이 따르는 주님과 그리고 주님과 함께 하시는 성령의 권능에 의해서 있을 것이기에 이를 언제나 인식하고 있게 하며 그 구함에 있게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의 구함에 있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그들이 따른 주님이 십자가에서 행하신 구속 사역과 생명의 부활, 그리고 성령의 강림하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단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한 자가 됨으로 하나님의 나라에로 불러들이는데 아무런 걸림이 없었습니다. 주께 굴복한 사단은 그들을 놓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에 따라서 우리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한 그대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에로 받아들여졌으며 그렇게 주의 이름을 부르는 믿음에 있는 것 외에 어떤 것도 없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와 있어“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란 복을 누림에 있습니다.
사람은 경치 좋은 곳만 봐도 가슴이 벅차며, 그곳에서 있고 싶어 하며, 그곳에 사는 것으로 참으로 행복해 합니다. 어쩌다 바람 한번 쐬러 가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즐거워할 수가 없잖아요. 멀리 가지 못하더라도 가까운 동네의 노래방에 가서 자신이 좋아하고 즐겨 부르는 노래 한 두 곡만 불러도 행복에 겨워합니다. 과연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그것도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에는 견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것의 행복함이 없이는 잠시 잠간의 행복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 안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함으로 우리가 행복함이 잠시 잠간에 지나지 않고 있습니다. 설사 잠시 잠간의 행복함을 어쩌다가 맛보든지 또는 그조차 누릴 기회를 가져 보지 못하고 살지라도 우리 믿음의 주님과 그분의 나라로 말미암은 행복에 있는 우리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예수님을 생명의 주로 인식하고서 그분을 따르는 믿음에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잠시 잠간의 행복일지라도 그 행복을 붙들려고 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려고 하며, 그럼에도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는 참으로 아쉬워하고 안타까워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세상의 것으로는 일말의 아쉬움도 안타까움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빌 1:21) 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사는 것이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라면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 바울이 그리스도 외의 것을 행복한 기쁨으로 알고 살았겠는지요. 그러니 우리가 그리스도 외의 것을 기쁨이 되는 행복한 것으로 여기고 살겠는지요.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에서 권능을 행하신 성령께서는 제자들이 구함에 있게 하신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에 우리를 두고서 이것에 소망을 품고 살아가게 하십니다. 오늘 그러했듯이 또한 우리에게 내일이 주어지면 내일을 그렇게 살게 할 것입니다. 그 날을 봄에 있는 눈에 있는 우리는 참으로 복 있습니다. 귀신들려 벙어리 된 한 사람에게서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행하신 예수님과 함께 하시는 성령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며 우리를 그렇게 복 있게 권능으로 일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