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갈2:14절)
구약성경을 설교하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크게
외치며 사람들에게 강한 신념을 불어넣는 것이 은혜로운 설교로 인정된 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기억으로는 목회초기에 레위기와 성막론을
그리스도의 그림자로 설교를 했으며 시편 잠언 전도서는 하나님의 약속의
완성적인 차원이므로 설교를 하고 거의 구약의 본문을 설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유대인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외쳐도 어떤 과정을 거쳐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다윗의 여호와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인지 설명이 되지
않으면 그건 정신교육일 뿐 구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유대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과 영광의 구주가 되심을
예언한 사53장을 금서로 여기고 또 신약성경을 무시하므로 이방인의 구원이 다
이루어지기 전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복음이 진행하는 진로를 보면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중동 아프리카 다음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유대인답다는 건 구원에 있어 큰 모독인 겁니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탈무드를 금과옥조로 내 세우는 교회가 많았고,
거기다가 공자, 장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의 철학자의 글들을 인용하는 사례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이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에 대한 모욕적인 일입니다.
지금 사순절이 지난 다음에 부활절이 등장하는 일에 저는 참 답답합니다. 물론
사순절은 오순절을 맞는 절기가 아니라 교회가 부활절을 지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절기라고는 하지만 왜 사순절 다음에 오순절이 아닐까요? 부활절은 크게 부각
시키면서 왜 오순절 성령 강림은 있는 둥 없는 둥 지나치고 마는 것일까요? 사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으로 다시 살아나신 사건보다 주님께서 신신 당부하고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신 오순절의 사건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오셔야만 주님께서 다시 살아나셔서 보좌에 앉으신 사실을 확인하고 그 부활과
생명이신 주께서 내 안에 계시는 새 언약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비록 오순절 날 성령의 임재로 베드로가 다윗의 신앙을 실체화시키는 설교를 했지만
그에겐 아직 유대인의 누룩이 끼어있어 이방인과 함께 밥을 먹다가 유대인 할례자들이
오니 슬쩍 자리를 피하는 외식을 드러냈습니다(갈2:12) 바울에겐 못마땅한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유대인 앞에서 베드로를 면책을 했습니다(갈2:11) 소위 수제자라고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나타내신(갈1:16) 바울의 복음의 진리의 실력 앞에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베드로가 자신이 원치 않는 자리로 남이 띠를
띠워 캐토릭의 1대 교황에 앉혀지고 말았습니다(요21:18) 얼마나 길게 천주교는
베드로를 우려먹었겠습니까? 심지어 로마 베드로 성당의 그의 동상의 발이 닳아질
정도라고 하니 천주교의 한계가 어떠할지 우리는 짐작을 하고 남습니다. 그 유대적인
잔재가 종교개혁이 되긴 했지만 개신교에 이어져 유대인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으로
바로 당겨 믿으려는 설교가 난무하여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에 가두고 만 겁니다(히6:1)
베드로가 그물을 던지다가 부름을 받은 것처럼 유대와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의 문을
연 다음에 사도행전이 바울에게 넘어가서 바울서신으로 인해 복음이 세계화가 된 겁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반드시 로마서를 위시한 바울의 서신에 능통해야만 합니다. 신약을 알고
나서 바울과 같이 구약이 열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쭉 열리는 계시를 받아야 합니다.
이를 테면 예수를 먼저 배워 십자가를 따르려고 하지 말고 우리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복음의 진리를 먼저 듣고 믿어 성령의 인침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이 되고 확정이 된 자로서 주의 행적과 말씀과 십자가의 고난과
다시 살아나심과 승천하시고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소급하여 그 동선을 좇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계시는 복음의 진리를 전하는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야고보나 게바와 요한은 할례자의 사도로 사역을 분담하게 된 것입니다(갈2:9) 따라서
이방인인 우리는 바울서신을 먼저 배우고 난 다음에 4복음서를 공부하는 것이 맞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약과 3복음서에 머물므로 오직 하나님, 오직 예수 하고는 유대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닌 어정쩡한 베드로와 같은 스텐스를 취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성지 순례 또는 유대인의 신앙의 전통 등을 벤치마킹하려고
외화를 낭비를 하며 이스라엘에 가서 고고학밖에 아닌 유물을 붙잡고 그들의 신앙을
중계방송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 아무리 노력해도 유대인 신앙수준일 뿐입니다.
구원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을 하면서 시간과 돈을 허비하고 있는 중입니다.
설교자이십니까? 반드시 바울의 로마서적인 구원에 대해 진력하세요. 물론 베드로도
나중에 유대인의 누룩을 완전히 벗고 그 이름만큼 반석과 같은 베드로 전 후서를
기록했고, 요한 또한 진리(truth)가 참(true)이 되는 요한서신을 쓰고 계시록을 썼지만
우리 같은 이방인에게는 로마서가 구원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교과서입니다. 따라서
반드시 로마서적인 구원에 능통하시길 간곡히 부탁합니다. 꼭 그래야만 3복음서와
요한복음 그리고 구약성경과 다른 서신과 히브리서 이후의 성경말씀이 보이게 됩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그리스도께서 구주가 되심을 찬양합니다.
성경안에서의 깊고 오묘한 생명길을 목사님께 드러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경외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