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감
계 용 묵
1만 5천 원 월급으로 네 식구가 한 달 동안 사는 재주는 없었다. 아무리 바득바득 악을 써 보았댔자 그건 턱에도 당치 않는 노력이었다. 그래도 좀 피울 날이 있겠지 하고 당치도 않은 예산을 우겨 가며, 이것저것 옷가지를 팔아대어 보았으나, 피울 날은커녕은, 이젠 그나마 뒤조차 대일 여유도 없다. 이제 남았다는 건 꼭 벨벳 치마감이 하나 의장 밑에 덩실하니 들어 있을 뿐이다. 이건 남편도 모르게 깊숙히 간직하고 아끼던 치마감이다. 여기엔 차마 손이 나가지 않았다. 그러니 이것까지 마저 팔아먹으면 무얼 입고 나다녀야 되나, 지금도 아내는 혼자 속으로 내일은 또 팔아야 할 쌀 걱정을 하다가, 문득 무슨 묘책이나 떠오른 듯이 고개를 번쩍 들며,
“여보.”
하고, 책을 뒤적거리는 남편 곁으로 한 무릎, 앉은걸음을 바싹 다가 놓는다.
“우리 저어 건넌방, 당신 서잴, 셀 주문 어때요? 서잴, 이 방으로 옮기문 애들 때문에 방핸 되겠지만 어찌우. 이즘 방 한 칸에 보증금이 5만 원이나 된다는데 그걸 받아서 돈놀이래두 좀 해 봤음…….”
그리고는 남편을 바라보며, 이 뒤에 사는 누구는 돈 10만원 본전으로 그 이자를 따서 아이들의 학비를 댄다는 둥 누구는 놀구 앉아먹는다는 둥 한참 늘어놓는다.
남편의 귀에는 이 소리가 잘 들어오지 않았다. 변놓이를 하는 것도 사람 나름이지, 당당히 제 돈을 꾸이고도 필요한 때 내란 말 한마디 뻐젓이 못 해 보는 자기다. 게다가 변까지 내어라, 어림도 없는 생각이다. 그런 용기가 있더라면 지금 이런 군색을 왜 보아.
‘흥 변놓이!’
아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수긋하고 그대로 앉아서 뒤적이던 책장만 그냥 넘기고 있었다.
“왜, 변놓인 못해요? 굶기보다야 안 나으리요.”
“글쎄 허긴 뉘가 허는데?”
“누군, 제가 하지요. 그런 거 허는 사람은 뭐 배 안에서 배워가지고 나왔나요? 신용 있는 자리에 주기만 허문 영락없대요.”
아내 역시 할 수 없어, 이런 궁리까지 내어 보기는 하는 것이겠지만, 그 성질의 적 부적은 차치하고, 그런 걸 족히 감당해내게끔 그렇게 마음이 영악하게 생겨먹지를 못했다. 바로 무슨 장사면 그건 혹 모르거니와 돈놓이란 얼토당토 않은 궁리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손 싸매고 그대로 앉았을 수는 인젠 정말 없긴 없는 처지다. 겉인즉 막다른 골목에 들었다. 되건 안 되건 무어든 해 보긴 해 보아야 될 형편임은 남편 역시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신이 서재만 내놓으신다문 전 아무래도 그걸 한번 해 볼 테에요, 남들이 남들이라구 그런 변놓이루 밥 먹겠어요?”
거듭 따지고 한 무릎 다시 나앉을 때 남편은 더 할 말이 없었다. 가장으로 앉아서 가족을 벌어먹이지 못하는 자신이 실상은 부끄럽기도 했던 것이다. 하자는 대로 아니 내맡겨 볼 수도 없었다.
이튿날 아침 남편의 서재는 안방 윗목으로 옮아오고, 뒤이어 건넌방 전세 5만 원이 손으로 들어왔다. 아내는 이제야 살통이 생긴 듯이,
“글쎄, 열흘마다 5천 원씩 이잘 받으면 한 달에 꼭 일만 5천 원이 아니에요? 다들 이런 식으로 계산을 한답디다. 그럼 우리 월급과 신통히두 같은 수입이야. 10만 원을 가졌음 살어는 가요.”
하고, 벙글거리며 뒷집 마님의 소개로 양키 장사를 한다는 젊은 청년에게 그날 아침으로 그 돈 5만 원을 열흘마다 이자 5천 원씩 계산으로 다 놓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생각과 같이 그렇게 척 쉽게 들어맞는 것이 아니었다. 약속 기일인 그달 그믐날을 밤이 깊기까지 기다려서도 원금은커녕 이자도 한푼 이렇단 말이 없었다. 날이 밝자 일찌감치 찾아가 보았으나 ‘며칠만 좀더’ 하던 대답이 며칠을 지나서도 역시 ‘며칠만 좀더―’ 였다.
이 ‘며칠만 좀더 ―’ 가 그대로 계속만 되어도 희망은 있을 것이, 어느 겨를에 홀짝 한 달이 넘는가 보다고 여기던 어느 날부터는 채근해 볼 상대조차 없어지고 말았다. 날마다 가 보고 경위를 엿보고 해도 그가 거처하던 방엔 일체 들어오는 사람이 아니었다. 소개를 했다고 뒷집 마님을 붙들고 찾아내랬으나 ‘난들 그럴 줄이야 알었소.’ 하고 잡아떼는 데는 그저 기만 막히는 노릇이었다. 돈 값에 물건이라도 떼어왔으면 그만일 것이나, 그의 세간이란 늘 륙색에 지고 다니는 것이 그 전부였다. 사람이 없어졌으니 륙색인들 있을 리 없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하지도 못하고 혼자 속으로 끄응끙 앓으며 그저 그 사람이 장사를 하다가 실패를 보아서 이렇게 돈이 천연 세월 된다고 하고 정 못 받게 되면 물건으로라도 받아오겠노라고 어물어물 지나는 오나,
“자, 봐요. 그것두 해먹는 사람이 따루 있지. 누구나 다 하는 게 아니라니깐. 잃었지, 잃었어.”
하고, 처음엔 이맛 정도의 말에 그치던 것이, 이제 건넌방 사람이 나간다고 돈을 내라면 그 돈을 무얼로 어떻게 구처를 해얀단 말인가 하고 생각을 할 땐, 슬그니 땀이 나서,
“아, 장담하고 준 돈을 못 받아와?”
하고, 별로이 들어 보지 못하던 높은 음성이 끌을 채고, 고막에 와 부딪칠 때, 아내는 더는 어물어물 넘길 수가 없었다. 남편의 입도 입이려니와, ‘배 안에서 배워가지고 나온 사람이 있나요?’ 하고 장담을 하던 자기의 위신도 우선 회복시켜야 할 일이었다.
“있다 또 가 보겠어요. 오늘은 물건이라도 떼 와야지!”
하고, 아침에 남편을 회사로 보내 놓고는 마지막 남았던 그 벨벳 치마감을 의장 밑에서 들어내 신문지에다 싸 놓았다가 저녁에 남편이 돌아오는손 그걸 내놓았다.
“에이 시언해. 양키 시장까지 따라가서 이걸 받어 왔지, 치마감에요.”
“자식! 돈이 없으면 물건으로라도 진작 갚을 게지. 그게 5만 원짜리가 되긴 되나?”
남편도 적이 시원한 눈치였다.
“되다니요? 이게 시장에서 6만 5천 원짜리에요. 벨벳 중에서두 제일 고급으루 가져왔는데 ― 우리 이걸 팔까요?”
“팔문 멀 해. 물가는 자꾸 올라가는데 물건으로 두는 게 나을걸.”
아내는 남편의 의견을 존중이나 하는 듯이 동의를 하며, 풀어 놓았던 신문지를 다시 싸느라고 수선이었다.
(庚寅 5月)
〔발표지〕 《한성 일보.》 (1950)
〔수록단행 본〕 『신한국문학전집』 제6권 (어문각. 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