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유산 '양동마을'을 가다
지난 12일, 경주 양동마을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은 자동차 안까지 파고들었고 피서 차량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양동마을에 도착한 건 서울을 출발한 지 꼬박 일곱 시간 후. 그러나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피곤함은 말끔히 사라졌다. 고색창연(古色蒼然·예스러운 풍치나 모습이 그윽함)한 기와집과 소박한 초가집, 그리고 정겨운 돌담길….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교 마을은 마치 잘 가꿔진 영화 세트장처럼 정갈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정작 빼어난 건 건축물이 아니라 수백 년간 마을을 이어온 정신이었다. 2010년 8월 현재 양동마을 주민은 157가구 380여 명. 유네스코가 인정한 ‘살아있는 유산’ 양동마을, 놓쳐선 안 될 곳들을 ‘콕’ 집어 소개한다.
●성주봉 전망대 : 양동마을을 한눈에 담다
좁은 시골길을 따라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기와와 초가집 몇 채가 눈에 띈다. 야트막한 산자락 아래 아담한 마을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와’ 하는 감탄사를 내뱉게 하지만, 눈에 보이는 건 양동마을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마을회관 옆 숲길을 따라 10여 분만 수고하면 성주봉 전망대에서 마을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양동마을은 예로부터 ‘마을이 들어서기에 가장 좋은 조건’으로 여겨져온 배산임수(背山臨水·뒤로는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물에 면해 있음) 지형에 자리 잡고 있다. 뒤로는 설창산과 성주봉으로 둘러싸여 있고, 앞으로는 형산강으로 이어지는 안락천이 흐른다. 성주봉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설창산에서 뻗어내린 물(勿)자 모양의 능선과 골짜기에 157채의 한옥과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다.
유학과 풍수의 원리를 철저히 따르는 이 마을 전통은 철로도 우회(迂回·곧바로 가지 않고 멀리 돌아서 감)시켰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 마을 앞으로 철로가 지나려 하자, 기찻길이 ‘일(一)’자로 이어지면 마을 구조가 ‘혈(血)’자로 바뀌어 피를 흘리게 된다며 반대에 나서 기어이 우회시킨 것. 그래서 훗날 마을 입구의 양동초등학교도 드넓은 들판을 놔두고 산을 마주 보게 됐고, 뾰족 첨탑 교회는 초등학교 쪽으로 옮겨 낮게 지어졌다.
찬찬히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한옥과 초가집의 조합이 신기하다. 언덕 위 기와집 한 채마다 아래쪽에 초가집 3~5채가 딸려 있는데, 기와집들은 담장이 없다. 문화관광해설사 김명순 씨는 “이곳 양반들은 하인을 집안이 아닌 외부에 따로 거주하게 했다”며 “하인이 살던 집을 ‘가랍집’이라고 하는데, 이것들이 한옥의 담장 구실을 했다”고 설명했다.
1984년 마을 전체가 통째로 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된 이곳엔 국보 1점, 보물 4점을 비롯해 총 24점의 문화재가 있다. 200년 이상 된 가옥이 54채, 500년 이상 된 가옥이 5채나 된다. 우리나라에 있는 500년 이상 된 가옥 10채 중 절반이 이곳에 있는 셈이다.
●관가정 : 검소하지만 품격 있는 주택
중종 때의 청백리(淸白吏·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이 곧고 깨끗한 관리) 우재 손중돈(1463~1529년)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 누마루에 올라보면 곡식이 무르익는 들판과 강의 모습이 드넓게 펼쳐진다. 좁은 면적(약 165㎡·50평)에 비해 대청이 유난히 넓은 게 특징. 김명순 문화해설사는 “종갓집에서 가장 중요한 게 제사 때 필요한 공간 확보인데, 이를 위해 후대로 오며 집 구조가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담과 대문은 1981년 수리하면서 새로 만든 것. 원래는 없었다. 하인 집들이 대신 담장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관가정(觀稼亭)이란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보듯 자손들이 커가는 모습을 본다는 뜻이다. 보물 제442호.
●향단 : 지붕이 아름다운‘마을의 상징’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화려한 지붕구조를 가진 아름다운 건물. 건축학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회재 이언적(1491~1553년)이 경상도 관찰사로 있던 1543년 어머니의 병환을 돌보라며 중종이 지어준 집이다. 원래는 흥(興)자 모양의 99칸이었으나, 6·25전쟁 때 43칸이 폭격당해 현재 56칸만 남았다.
1970년대 수리를 거쳤지만 아픈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당시 해체 수리를 하면서 기둥의 썩은 부분을 30cm 이상 잘라만 내고 덧대지 않은 것. 그런 까닭에 가장 위쪽에 자리 잡은 안채의 지붕은 밖에서 보이지 않는다. 口자 형태의 2개 정원은 나무 한 그루 없이 텅 비어 있다. 이곳(口)에 나무(木)를 심으면 습하고 피곤해진다(困)고 해 깨끗이 비운 것이다. 원리원칙을 중시하고 폐쇄적이었던 영남학파의 특징을 보여준다. 보물 제412호.
●무첨당 : 간결하고 세련된 별채
1508년에 지은 여강 이씨의 종가. 뒤쪽 높게 서 있는 건물이 사당, 동쪽 건물은 안채·사랑채·행랑채로 이뤄졌다. 제사를 지내는 기능이 강화된 게 특징. 남성들의 독서와 휴식, 손님 접대를 위한 공간으로도 쓰였다. 오른쪽 벽엔 대원군이 집권하기 전 이곳을 방문해 썼다는 좌해금서(左海琴書·영남의 풍류와 학문)란 액자가 걸려 있다. 무첨당(無添堂)이란 이름은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는 뜻. 보물 제411호.
●서백당 : 양동마을 최고의 명당
마을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1457년) 손씨의 종택으로, 규모와 격식을 갖췄다. 이곳에 얽힌 이야기는 지금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집터를 잡아준 풍수가가 이 터에서 세 명의 위대한 인물이 태어날 거라고 예언했는데, 청백리 손중돈 선생과 동방오현(東方五賢·조선시대 성리학의 학문적 체계를 만든 다섯 명의 학자를 일컫는 말) 중 한 명인 이언적 선생이 이곳 산실(産室)에서 태어났다. 손씨 종가에선 딸이 해산하러 친정에 와도 절대 이 산실은 내어주지 않는다. 세 번째 인물을 기다려서다. 부정이라도 탈까 봐 방문객에게도 공개하지 않는다.
사랑채 마당에 서서 바라보는 경관이 빼어나다. 사당 앞에 서 있는 향나무도 장관이다. 600년 된 이곳의 향나무는 여느 향나무와 달리 마치 분재를 보듯 가지가 꾸불꾸불 꼬였다. 이곳에서 만난 조성호 군(서울 양진초등 4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는 소식에 가족여행차 왔는데 기대 이상”이라며 “이렇게 오래된 집이 잘 보존돼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감탄했다. 중요민속자료 제23호.
▨관람예절, 이것만은 지켜주세요!
유교마을이며 실제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므로 몸가짐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 양동마을 보존위원회 이동주 위원장은 “‘출입금지’ ‘올라가지 마세요’ 등의 표지가 있는 곳엔 절대 들어가면 안 된다”며 “문화재 소유자가 거주하는 내당엔 특히 들어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마을이 워낙 크다 보니 하루 만에 돌아보긴 무리다. 그렇다고 차량으로 골목길을 누비는 건 다른 관광객들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것도 절대 금물이다.
▨해설 프로그램 들어보세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는 마을이니만큼 많은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다. 전문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 이해에 도움이 된다. 매일 10시·11시·13시·14시·15시·16시·17시 등 일곱 차례에 걸쳐 마을 입구 ‘해설사의 집’에서 전문가의 맛깔스러운 설명이 펼쳐진다.
▨불편한 점도 있어요
최근 양동마을을 찾는 관광객은 하루 평균 2500여 명. 예년 이맘때에 비해 다섯 배나 늘어났다. 그러나 양동마을의 기반·편의시설은 지난해와 변함이 없다. 공용 화장실은 임시 시설을 포함해 마을 전체에 단 세 곳뿐이고 식당이나 쉼터도 부족하다. 문화재 안내 시설이나 주차 공간도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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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인문학 탐방 길', 경주 양동마을~옥산서원에서 열려
뉴시스
입력 : 2010.08.30 11:13
- ▲ '길위의 인문학 탐방 길'행사 참가 문학인들 경주 양동마을 방문
경주시는 우리나라 전통 가옥인 한옥의 아름다움과 전통생활을 잘 보전하고 있는 양동마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념해, 27일 양동마을에서 옥산서원까지 탐방하는 '길 위의 인문학 탐방 길'프로그램을 마련하고 행사를 가졌다.
이 프로그램은 조선일보와 국립중앙도서관, 교보문고가 주관하는 것으로, 대학생 및 젊은 연인, 은퇴한 노부부까지 참가자들의 나이와 직업은 다양했으며,160(서울120,경주 40)명이 참가했다.
이날 행사를 진행한 경주시립도서관 김문일 관장은, “인문학을 삶 속으로 가져와 현장을 같이 걸으면서 느끼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나누는데 오늘 행사의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탐방 코스는 경주시립도서관에서 출발하여 양동마을 관가정 → 향단→ 성주봉 등반 → 서백당 → 무첨당 → 영귀정 → 옥산서원 → 독락당을 순으로 진행되었으며, 탐방 해설은 <한국의 건축>, <법주사>, <화엄사>등의 책을 쓴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김봉렬 교수가 도움을 주었다.
김 교수는 50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경주(월성) 손씨와 여주(여강) 이씨 종가가 전통을 지켜온 우리나라의 전통마을 가운데서도 가장 큰 규모와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가옥의 목조건축 구조와 문화방식과 더불어 올해 '만해 대상 평화상'수상자인 이동건 전 국제로타리 회장의 고향도 양동마을이며, 현재 생가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건축의 스트레스>, <56억 7000만의 고독>등 다수의 책을 쓴 시인 함성호 문학가가 한국 성리학의 기틀을 닦은 뛰어난 성리학자이자 한국사상의 독자적인 학문 세계를 개척한 '회재 이언적'선생의 철학과 사상에 대해 설명했다.
이날 경주 탐방의 하이라이트는 포시즌 유스호텔에서 민속악 연주단의 '선풍 동네방네 음악회'로 판소리와 창작음악을 경주탐방 참가자들과 함께 공연이 펼쳐져 '추억의 탐방행사'가 되면서 의미를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