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말 <序>
어떤 사람이 “선禪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가?” 하고 물으면,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럼 “선禪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가?” 하고 물으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어째서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은 위로 제불諸佛의 마음에 계합契合하는 것이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은 아래로 중생-sattva 有情을 제도하는 것이다. 만일 이치를 내세우되 말을 한다면, 설說함이 없이 설하고, 설說하되 설함이 없는 것이 제일의제第一義諦 <진리,실상,진여는 모든 법가운데 제일>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선禪에 조사선, 여래선, 문자선, 언어선은 물론이고 갈등선, 죽반선, 야호선, 납탑선, 두피선 등 말을 하자면 끝이 없는 갖가지 선禪이 생겼고, 삿된 풍조가 날로 부채질 하여 선禪의 등불이 꺼질 지경이 되었다. 이것은 세간에 명안종장明眼宗匠이 부족한 까닭이다. 명明.청淸대에도 선문禪門의 종장이 드물어 손가락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지난 백 년 안에는 나의 스승 허운虛雲노화상이 사람들을 위해 세상에 나오면서 선禪의 등불이 다시 타오르게 된 것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찬양하는 바이다.
그 수십 년간 말씀하신 법어와 하신 일들은 문하 제자들이 일련의 책으로 기록, 법휘法彙제1집에 편입.간행하여 유통되고 있다. 계사년[1953년] 초봄 스님께서는 상해上海 옥불사玉佛寺의 청에 응하여 선칠禪七을 거행하셨다. 彙 모을 휘 그때 가르치신 법요法要는 제1집에서 다 말씀하지 못한 것들도 있고 더 정밀하게 경책하는 것이어서, 참으로 세상을 구하는 금침金針이자 선禪 수행의 표준 지침이다. 당시 옥불사에서 간행하여 유통시킨 것은 이미 소진되어 해외의 승속僧俗 불자들이 구求해서 읽어 보려 해도 그럴 수 없었다, 이번에 노화상의 큰 제자인 지정知定 스님이 새로이 정리. 편집하고 간행하여 배우는 이에게 이익 되게 하면서 서문을 써 달라고 하기에, 합장하고 찬탄하면서 글을 지어 머리말로 삼는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각기 금강金剛 Vajra의 눈동자를 갖추고 만 리밖에서도 허운虛雲노화상의 진면목을 본 것일 터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이 조사선이냐 두피선豆皮禪이냐고 묻는다면, 노화상은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띤 채 말씀이 없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아둔하므로 삼평三平시자 스님이 대신 답하는 말씀을 삼가 배우는 바이다. 이르기를 “이렇게 말씀하든 저렇게 말씀하든, 말씀이 있든 말씀이 없든, 부처님 말씀이 아니면 곧 마군魔mara의 말이며, 모두 허튼 소리다.“ ”할“ 만약 실법實法이라는 견해見解를 가지면 쏜살같이 지옥에 들어갈 것이다!. 불력佛歷2981년 갑오甲午[1954] 음력 시월 순덕順德 잠학려岑學呂 관현觀賢 삼가 씀書 §. 이 법문은 허운스님이 상해 옥불사玉佛寺에서 위방葦舫스님을 비롯한 여러 스님과 거사들의 요청에 따라 1953년[음] 1월 9일 부터 15일 까지 초칠初七과 16일 부터 23일 까지의 차칠次七을 주관하신 기간 소참법문小參法門이다. 1959. 120세 入寂.○
기칠법어 [起七法語] 새해癸巳 새달에 선칠禪七을 하니, 선불장選佛場이 무위無爲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무위는 필경畢竟무위이니, 어떤 무위라고 말하는 것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물에 무심無心해지면 온갖 사물이 신령한 기틀을 드러냅니다. 단사무심어만물 물물두두현령기 但以無心於萬物 物物頭頭顯靈機 새 봄에 새 불법을 널리 선양하니, 새 부처를 뽑아 뭇 근기의 중생을 제도할 수 있겠지요. 지금 선칠禪七을 시작하는 일구一句는 뭐라고 합니까? <양구良久 하시고> 부들방석에 앉아 허공을 부수고 웃으니, 슬며시 향판을 드는데 둥근 달이 빛나네. 포단좌파허공소 蒲團坐破虛空笑 향판점출월륜소 香板點出月輪輝 * 향판香板: 경책용 판자/죽비 <禪堂法器> 시작합니다 기起! 선칠법문[七期法門]
초칠初七 첫째 날 법문 여기 계신 위방 스님은 아주 자비로우시고, 여러 반수班首 스님들은 도道를 깨치겠다는 마음이 간절하십니다. 그리고 여러 거사님들은 도道를 사모하는 마음이 지극하다 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발심發하여 고요히 선칠禪七을 하러 오셔서 저에게 주칠主七소임 맡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또한 하나의 수승殊勝한 인연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다만 제가 근년에 병病을 앓아서 이야기를 많이 햘 수 없습니다.<世壽114세> 세존世尊께서는 40여 년간 법을 설하면서 현교도 말씀하시고 밀교도 말씀하시고, 그 가르침이 무려 삼장三藏<經.律.論>12부十二部에 이릅니다. 저에게 설법을 부탁했지만 제 이야기는 불조佛祖가 남긴 몇 마디 말씀을 빌어 쓰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종문의 한 법<禪>에 관해 보자면, 결국 부처님께서 마지막에 법좌座에 올라 대범천왕大梵天王<Brahman>이 바친 금단목화金檀木花를 대중에게 보이실 때 , 좌중의 인천人天 대중이 아무도 그 뜻을 모르는데 오직 마하가섭摩訶迦葉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에게 있는 정법안장<正法眼藏> 열반묘심<涅槃妙心> 실상무상<實相無相>을 그대에게 부촉咐囑하노라." 하셨습니다. <부촉咐囑: 부탁하여 맡김> 이것이 바로 교외별전敎外別傳 불립문자不立文字인데, 바로 그 자리에서 알아차려야 하는 위없이 묘한 법문<無上妙門>입니다. 후세 사람들은 두루뭉술하게 다 선禪이라고 하지마는 『대반야경大般若經』에서는 선을 무려 20여 가지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禪은 모두가 구경究竟이 아닙니다. 오직 종문의 선禪만이 수행의 단계를 <階級> 밟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깨쳐 견성성불 <直指人心 見性成佛> 하는 위없는 선<無上禪>인 것입니다. 무슨 선칠禪七을 하고 말고가 있겠습니까? 다만 중생의 근기가 날로 둔해져 妄念이 너무 많기 때문에, 여러 조사 스님들이 특별히 방편법을 내어 그들을 섭수攝하려 한 것입니다. 이 종문은 마하가섭으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6~70대代에 이르렀습니다. 당唐.송宋 때<619~1278>에는 선풍禪風이 천하에 두루하여 말할 수 없이 창성盛했습니다만, 지금은 너무나 쇠미해져서 금산사金山寺, 고민사高旻寺, 보광사寶光寺등지에서 겨우 문호門戶를 지탱해 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지금 종문宗門에서 나온 인재가 아주 적고, 이 때문에 타칠打七을 하지만, 대개는 명실상부名實相符하지 못한 실정입니다. ☞ 선칠[禪七]: 타칠打七이라고도 하며, 대중이 기한을 정하고 모여 가행정진加行정진을 하는데 첫 주를 초칠初七, 둘 째주는 차칠次七이라고 한다. 7☓7일[49일] 계속하는 것이 타칠打七인데, 중국에서는 동안거 때 흔히 한다. ♧ ☞ 부처님은 부다가야 네란자라 강이 흐르는 전정각산前正覺山에서 다섯 수행자와 함께 6년간 고행을 하며 정진했지만 깨닫지 못하자 이 길이 아님을 알고 고행을 그만뒀다. 수자타의 유미죽 공양으로 기력을 회복하시고 핍팔라<보리수>나무 아래서 49일간의 용맹정진 끝에 음력 12월8일 새벽 별을 보는순간 마침내 무상정등정각 無上正等正覺 을 얻었다. 이때가 부처님 나이 35세인 기원전 531년이다.♧ 지금 우리는 근기가 열약劣弱합니다. 그래서 여러 큰 조사스님들이 부득이 방편으로써 일구화두를 참구하게 한 것입니다. 송나라 이후로 염불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여러조사祖師 스님들이 '염불하는 것은 누구인가『念佛是誰』?'를 참구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지금 각지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 한 법을 참구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이 공부법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이《염불시수 念佛是誰》라는 화두를 입안에 달고 끊임없이 생각으로만 지어갑니다. 그러면 하나의 염화두念話頭가 되어 버리는데, 이것은 화두頭를 참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구參究한다'는 것은 ‘찾아 살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선방禪房마다 의례히『조고화두 照顧話頭』라는 네 글자를 벽에 붙여 놓는 것입니다. '조照‘ 라는 것은 '돌이켜 비추는 것<反照>'이고 '고顧' 라는 것은 '돌아보는 것'입니다. 즉, 자기의 성품을 돌이켜 비추는 것<反照自性>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늘상 '바깥으로만 치달리는 마음'을 안으로 돌이켜 비출 때<廻光返照> 비로소 '화두를 본다<看話頭>고 할 수 있습니다. 화두話頭, 즉 '염불하는 것은 누구인가?' 라는 것은 한 마디의 말인데, 이 말을 아직 하기전의 그 때를 ‘화.두話.頭’ 라고 말하며, 이미 말하고 나면 ‘화.미話.尾’ 가 되어 버립니다. 우리가 화두를 참구할 때는 바로 이『누구誰』라는 한 마디가 일어나기 전에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참구參究해야 합니다. 비유比喩하자면 제가 여기서 염불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묻기를, “여보시오 허운虛雲!, 염불하는 것은 '누구'요?” 하면 저는, “염불하는 것은 나요.”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묻기를, "염불念佛하는 것이 당신이라면 당신은 입으로 염念하오, 마음으로 염念하오? 만약 입이 염念한다면 당신이 잠들었을 때는 어찌 염念하지 못하며 만약 마음으로 염念한다면 당신이 죽었을 때는 왜 염念하지 못하오?" 합니다. 우리는 바로 이 하나의 질문에서 의심疑心이 있게 되는데, 그 의심이 있는 곳에서 계속 그것을 추구해야 됩니다. ‘이 말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가?, 이것이 어떤 것인가?’ 아주 자세하게 돌이켜 비추고 면밀綿密하게 살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성을 돌이켜 듣는 것’<反聞自性>이기도 합니다. 행선行禪을 할 때는 목을 옷깃에 대어<목을 곧게 펴> 발걸음은 앞 사람을 바싹 좇아 걸으면서, 마음이 평안하고 고요한 상태로, 좌우살피지左顧右眄말고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돌이켜 비추어야 합니다.
좌선坐禪을 할 때는 가슴을 너무 당겨 펴지 마십시오. 기氣를 위로 끌어 올리지도 말고 밑으로 내리 누르지도 말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따라가야 합니다. 오직 육근의 입구<六根門> 를 잘 단속하고 모든 생각을 놓아 버린 채,<放下着> 또렷하게 화두를 돌이켜 비추면서 화두를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거칠면 안 됩니다. 거칠면 화두가 들떠서<浮起>, 화두가 자리를 잡지 못하게 됩니다. 너무 미세해도 안 됩니다. 미세微細하면 혼침昏沈이 오고, 이내 공망空亡에 떨어집니다. 이렇게 해서는 모두 얻는 게 없습니다. 만약 화두를 비추어 살피는 것<照見>이 잘 되면 공부가 저절로 쉽게 익어지고 습기習氣가 저절로 쉬어집니다. 처음 공부하는 사람은 이 화두를 잘 비추어 살피기가<照見> 쉽지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겁을 내면 안 되고, 깨닫기를 바라거나 지혜를 구하는 따위의 생각을 해서도 안 됩니다. 이 타칠打七이 바로 깨닫기 위한 것이고 지혜慧를 구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다시 한 생각을 내어 그런 것을 구한다면 그것은 머리 위에 머리를 얹는 격<頭上安頭>입니다. 우리는 지금 알았으니, 곧바로 또렷이 일구화두만을 들고 곧바로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만약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화두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절대로 조급해 하면 안 됩니다. 오직 온갖 생각을 다 비워 버리고 아주 면밀하게 비추어 살피기만<照顧>해 가야 합니다. 망상妄想이 오면 오는 대로 내버려 두고, 아예 그것에 신경 쓰지 않으면 망상은 자연히 그치게 됩니다. 이른바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다만 알아차림이 늦는 것만 두려워 하라'는 것입니다. <不怕念起 只怕覺遲> 두려워할 파怕 더딜 지遲 망상이 오면 항상常 깨어서 비추는 것<覺照>으로써 힘껏 이 화두를 붙들고, 만약 화두를 놓쳤으면 바로 다시 드십시오. 처음 한 두 시간의 좌선은 망상과 싸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화두가 힘을 얻게 됩니다. 힘을 얻은 때는 여러분이 한 입선入禪시간에 화두를 한 번 들면 놓치는 법이 없습니다. 그것은 곧 화두를 장악掌握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모두 부질없는 말이니 공부를 잘 하십시오!. 초칠初七 둘째 날 법문
타칠打七이라고 하는 이 한 법이야말로, 기한期限을 정하고 깨달음을 얻기에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근기가 명민明敏하고 예리해서 이 방법을 늘 쓰지는 않았고, 송나라 때<宋朝>에 와서야 점차 쓰이기 시작하여 청나라<淸朝> 옹정擁正 연간<1722~1735>에 이르러 크게 성행한 것입니다. 옹정제擁正帝는 황궁皇宮 안에서 늘 타칠打七을 했습니다. 그는 선종禪宗을 가장 존중했고, 그의 선정禪定도 대단히 훌륭했습니다. 그의 수하에서 도道를 깨친 이도 십여 인이나 되었는데, 양주 고민사高旻寺의 천혜天慧 철徹 조사도 그의 회하會下에서 도道를 깨친 분이었습니다. 선문禪門의 모든 규칙과 법제도 그가 한 번 대대적으로 정리했습니다. 이때부터 선풍이 크게 일어나서 인재人材도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규칙이란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처럼 기한을 정하고 깨달음을 도모하는 법제는, 유가儒家사람들이 과거시험장考試場에 들어가서 제목題目에 따라 글을 짓고 그 글에 따라 합격자가 가려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여기에는 일정한 시간제한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타칠打七 제목은 참선입니다. 그래서 이 방을 선당'禪堂'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禪 이란 범어로 선나禪那dhyana라고 하는데, 중국말로는 정려靜慮라고 합니다. 선에는 대승선, 소승선, 유색선, 무색선, 성문선, 등이 있지만, 종문宗門의 이 한 선禪은 이름하여 무상선無上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이가 이 선방에서 의정疑情을 꿰뚫어 명근命根을 앉은 자리에서 끊어 버리면 그는 바로 부처와 같아집니다 <如來> 그래서 선방을 선불장選佛場이라 하고, 반야당般若堂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우는 법은 모두 무위법無爲法입니다. 무위라는 것은 '작위作爲가 없다'<無作無爲>는 뜻입니다. 즉, '한 법도 얻을 수 없고, 한 법도 지을 것이 없습니다 <無一法可得 無一法可爲> 만약 함이 있다면 모두 생멸이 있고, 만약 얻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잃어버릴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경楞嚴經에서 이르기를, “단지 말들이 있을 뿐, 모두 실다운 뜻이 없다”<但有言說 都無實義>고 한 것입니다. 경전을 외고, 예불 참회 등은 모두 유위有爲이며, 가르침 중에서 방편적 수단에 속합니다<方便權巧> 선종禪에서는 여러분에게 그 자리에서 바로 알아차리라고 하므로, 많은 언설이 필요 없습니다. 예전에 어느 학인이 남전南泉普願 스님을 참례하고 "어떤 것이 도道입니까?" 하고 묻자, 말하기를 "평상심이 도다."<平常心是道>했습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옷 입고 밥 먹고, 나가서 일하고 들어와 쉬는 이 모든 것이 도道 가운데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어디에서든 얽매이고 집착하여, 자기 마음이 부처임을 알지 못할 뿐입니다. 옛날에 대매법상大梅法常선사가 마조馬祖道一대사를 처음 참례하고 묻기를,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如何是佛> 하니, "바로 그 마음이 부처다" <卽心是佛> 했습니다. 법상 스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대오大悟 했습니다. 그리고 곧 마조馬祖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고, 사명산四明山에 옛날 매자진梅子眞이 은거하던 곳으로 들어가 띠집茅舍을 엮고 살았습니다. 당唐 정원貞元 연간<785~805>에 염관鹽官선사 문하의 한 스님이 벽에 걸어두는 지팡이 나무를 구하려고 산山에 들어갔다가 길을 잃고 법상 스님 암자庵子에 이르렀습니다. 그 스님이 법상 스님에게 묻기를, "스님께서는 여기에 얼마나 오래 사셨습니까?" 법상 스님이 답하기를, "주위의 산이 푸르렀다 누르렀다 하는 것만 보았습니다." 다시 묻기를, "산을 빠져 나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합니까?" 법상法常 스님이 답하기를, "물을 따라 가십시오." 했습니다. 그 스님이 돌아와서 이 일을 보고하자, 염관 스님이 말하기를, "내가 강서<마조 회상>에 있을 때 한 스님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뒤로는 소식을 모른다. 혹시 이 스님이 아닌지 모르겠다." 했습니다. 그래서 스님을 보내어 모셔오라고 했는데, 법상法常스님은 게송으로 이렇게 답했습니다.
부러진 마른나무 추운 숲에 의지해 있나니 摧殘枯木依寒林 마음 변치 않고 맞이한 봄이 몇 번이더냐. 幾度逢春不變心 나뭇꾼이 지나쳐도 거들어 보지 않거늘 樵客遇之猶不顧 대목수가 어찌 힘들게 쫓아와서 찾는가 郢人那得苦追尋 한 못의 연잎이면 몸 가리기 충분하고 一池荷葉依無盡 몇 그루의 소나무 꽃이면 먹고 남는다. 數樹松花食有餘 바야흐로 세인들에게 사는 곳 알려지면 剛披世人知住處 다시 띠집을 옮겨 더 깊이 들어가리. 又移茅舍入深居 *영인郢人: 당나라 때 영주郢州 사람들이 가장 좋은 집들을 지니고 살았기 때문에 대목大木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마조馬祖가 법상法常스님이 띠집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한 스님을 시켜 이렇게 묻게 했습니다. "스님께서 마조 대사를 뵈었을 때 무엇을 얻었기에 이 산에 살고 계십니까?" 대매법상스님이 말했습니다. "대사께서는 저에게 '바로 이 마음이 부처'<卽心是佛>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 와서 살게 된 것입니다." 그 스님이 말했습니다. "대사의 요즘 불법은 다릅니다." "어떻게 다릅니까?" "요즘은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고 하십니다." 그러자 대매스님이 말했습니다. "이 노장이 사람을 헷갈리게 하기를 그칠 날이 없군! 그 분이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고 하든 말든, 저는 '바로 이 마음이 부처다‘ <卽心是佛>만 돌보겠습니다.“ 그 스님이 돌아와서 마조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자 마조는, " 매실이 익었구나." 했습니다. <梅子塾也>이로써 고인이 어떻게 깨쳤고, 어떻게 공부했는지 그 면모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근기根機가 하열하여 망상이 너무 많기 때문에 여러 조사 스님들이 하나의 화두를 참구하도록 가르치신 것인데, 이것은 부득이한 것입니다. 영가永嘉玄覺 스님이 말했습니다. "실상實相을 깨달으면 사람도 없고 법도 없고, 찰나에 무간지옥의 업阿鼻業을 소멸하네. 만약 내가 허망한 말로 중생을 속인다면, 혀를 뽑는 지옥拔舌地獄에 떨어져 헤아릴 수 없는 겁劫을 보내게 될 것이다." 고봉 원묘高峰原妙 스님은 말씀하시기를, "학인이 공부할 때는 기왓장 하나를 깊은 연못에 던지면 멈추지 않고 곧장 바닥으로 가라앉듯이 하는 것이 좋다." 했습니다.
우리가 화두話頭를 볼看 때에는 일구화두를 가지고 그 밑바닥까지 곧장直 파고들어 이 화두를 간파할 때까지 해야 합니다. 고봉스님은 또 발원願하시기를, "만약 어떤 사람이 하나의 화두를 들어 두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칠일七日 안에 도道를 깨치지 못한다면, 내가 영원히 발설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했습니다. 단지 우리의 믿음이 실實답지 못하고 수행이 견고하지 못하여 망상妄想을 놓아 버리지 못할 뿐입니다. 만일 생사심生死心이 간절하다면 일구화두를 부주의 하게 놓쳐버리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위산潙山靈祐 스님이 말하기를, "만약 세세생생에 물러나지 않을 수 있으면, 부처의 경지를 틀림없이 기약 할 수 있다." <生生若能不退 佛階決定可期> 하였습니다. 초발심자는 아무래도 망상이 많고 다리도 아프고,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모릅니다. 그러나 오직 생사심이 간절하여 일구화두를 물고 늘어지면 행주좌와行住坐臥를 가리지 않고 아침부터 밤까지『 누구誰 ?』라는 이 한 마디를 비추어 살피기를, 마치 맑은 물에 가을 달 비추듯 밝고도 또렷하게 비추어, 혼침이나 도거에 떨어지지 않게 한다면, 어찌 부처의 경지를 얻지 못할까 걱정하겠습니까! <何愁不開悟> 만일 혼침이 오면 눈을 부릅뜨고 허리를 조금 들어 올려 주면 정신이 자연히 맑아질 것입니다. 이때 화두를 너무 느슨하게 하거나 너무 미세細하게 하면 안 됩니다. 너무 미세하면 공空이나 혼침에 떨어지기 쉽습니다. 일단 공에 떨어지면 한 조각의 청정함一片淸淨 밖에 알지 못하고, 깨어나면 상쾌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 때, 이 일구화두를 잃어버리면 안 되고, 잃어버리지 않아야 비로소 백척간두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망空亡에 떨어져서 구경究竟을 얻지 못합니다. 그리고 너무 느슨하면 망상이 쉽게 밀고 들어옵니다. 망상이 한 번 일어나면 도거를 조복伏 받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에는 거친 가운데서 세밀하게, 세밀한 가운데서 거칠게<粗中有細 細中有粗>해야 합니다. 그래야 공부가 힘을 얻을 수 있고, 비로소 동정動靜이 일여一如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금산사 등지에서 포선<跑香 빨리 걷는 행선>을 할 때 유나維那스님이 포선을 시작하라고 하면 두 다리가 날듯이 가뿐했습니다. 스님들은 정말 뛰었는데, 멈추라는 참판站板을 두드리면 마치 죽은 사람 같았습니다. 그러니 무슨 망상이나 혼침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하는 포선 같은 것은 그때와 너무 큰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좌선할 때 절대로 이 화두를 위로 들어 올리지 말아야 합니다. 위로 들어 올리면 곧 혼침에 빠질 것입니다. 또한 가슴에 가로놓지도 마십시오. 가로 놓으면 가슴에 통증이 올 것입니다. 화두를 아래로 뚫고 내려가게 하지도 마십시오. 아래로 뚫고 내려가면 배가 부풀어 음한 경계陰境에 떨어지고 갖가지 병이 생기게 됩니다. 오직 마음이 평온하고 기운이 고요하게 하여 아주 또렷또렷하게 《 누구인가 誰? 》 하는 한 마디를, 마치 닭이 알을 품듯이,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잘 돌이켜 비추어야 합니다.<回光返照> 돌이켜 비추는 것이<觀照> 힘을 얻게 되면 명근命根이 저절로 문득 끊어질 것입니다. 이 한 법은 공부에 처음 동참한 도우道友님들에게는 당연히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시시각각 마음을 써야 합니다. 제가 다시 비유喩를 들겠습니다. 수행은 부싯돌에서 불火을 얻을 때와 같이 어떤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방법을 모르면 설사 여러분이 그 돌을 다 부순다 해도 불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 방법이란 한 장의 부싯깃과 하나의 부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싯깃을 부싯돌火石밑에 놓고 부시<火刀>로 돌을 치면 돌에서 생긴 불이 바로 부싯깃에 옮겨 붙어 이내 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일정一定한 방법이란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자기, '마음이 부처 佛 buddha' 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지만, 그것을 확인 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이 일구화두를 불覺을 일으키는 부시方便로 삼는 것입니다. 옛날 세존께서 밤에 샛별明星을 보시고 활연히 도道를 깨치신 것도 이와 같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불을 얻는 법<화두를 참구하는 법>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면전에 본래구족本來具足한 자성을 분명히 알아차리지覺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성自性은 본시 부처와 둘이 아니지만 단지 망상과 집착 때문에 해탈을 얻지 못할 뿐입니다. <人人本具 箇箇圓成> 그래서 부처는 여전히 '부처'고, '나'는 여전히 '나' 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방법을 알았으므로 능能히 스스로 참구하실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수승殊勝한 인연입니까! 여러분은 노력하여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다시 한 걸음 나아가십시오. 모두 이 선당選佛場에서 뽑히면<견성하면>, 위로는 불은佛恩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중생有情을 이롭게 할 수 있습니다. 불법佛 문중門에서 인재가 나지 않는 것은 단지 여러분이 노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을 하니 저도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납니다! 만일 영가永嘉玄覺스님과 고봉원묘高峰原妙스님이 우리를 위해 서원을 발發한 앞의 이야기를 깊이 믿는다면, 우리는 반드시 모두 도道를 깨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힘써 참구參究하십시오.!
혜능대사[六祖慧能]
깨달음은 본래 형상이<나무> 없고 밝은 거울엔 테두리가<臺> 없다네. 부처의 성품은 항상 맑고 깨끗한데 어느 곳에 티끌<망상>이 있으리오. 보리본무수 명경역무대 菩提本無樹 明鏡亦無臺 불성상청정 하처유진애 佛性常淸淨 何處有塵埃
<초칠初七 셋째 날 법문>
세간世間의 세월歲月이 정말 빨라, 타칠打을 이야기하기 무섭게 벌써 3일이 지나갔습니다.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은 화두를 잘 비추어 살피는 사람으로 어떤 진로塵勞 망념妄念도 밑바닥 까지 아주 맑게 꿰뚫어보아 바로 집에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인古人이 말씀하기를, "수행이라고 별다른 수행이 있는 것이 아니고, 공부길路頭만 알면 된다. 공부길을 제대로 알면 생사가 일시에 쉬어진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공부길에서는 무거운 짐<妄執> 내려놓기만 하면, 고향은 바로 지척咫尺입니다. 육조慧能 스님이 말하기를, " 앞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 마음이고, 그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 부처다.<前念不生卽心 後念不滅卽佛>" 하였습니다. 우리는 본시 사대四大가 空하고 오온五蘊이 없는 것인데, 망상과 집착으로 인해 세간의 허망한 현상들에 애착하여 얽매일 뿐입니다. ▷오온[五取蘊]: 사람을 구성하는 육체色와 정신작용<受.想.行.識>다섯 가지에 집착執着하여 에고<집짓는 자>를 '나' 자신과 동일시 하므로 고통의 원인이 된다. *신체色蘊, 느낌受蘊, 상념想蘊, 행위行蘊, 의식識蘊 < 照見-五蘊皆空 > 그래서 사대四大를 텅 비우지 못하고, 생사死를 끝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일 한 생각의 덩어리가 일어나도 남이 없다면 <一念體起無生> 석가 부처님이 말씀하신 이런 법문法門들도 아무 쓸데가 없게 되는데, 어찌 생사가 쉬어지지 않겠습니까? 이런 까닭에 종문에서는 이 한 법이야말로 참으로 " 광명이 무량하여 시방세계를 비춘다 <光明無量照十方>"고 하는 것입니다! 옛날 덕산조사德山는 속성俗姓은 주周씨였습니다. 20세에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뒤 율장을 깊이 공부했고 법성종法性宗과 법상종法相宗에 이르기까지 여러 경전經의 핵심을 꿰뚫었습니다. 늘『금강반야경』을 강의했기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은 그를 ‘주금강周金剛’아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일찍이 함께 공부한 도반들에게 말하기를, "터럭 하나가 바다를 삼켜도 성품의 바다에는 어그러짐이 없고, 흙 먼지를 칼끝에 던져도 칼끝의 예리함에는 변함이 없다. 배우는 단계와 배울 필요가 없는 단계를 오직 나만이 안다."고 했습니다. <一毛吞海 海性無虧 纖芥投鋒 鋒利不動 學與無學 唯我知焉> 이지러질 휴虧 칼끝 봉鋒 그런데 남방에서 '자기 마음이 참부처인 줄 모르고 마음 밖에 부처가 있다고 생각하여 밖으로 도道도 구한다면 수많은 세월 수행하고 보내고 애써 경전을 베끼며 끼니를 잊고 경經을 외우더라도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같아서 보람도 없이 수고롭기만 하다'며 선禪宗이 번성한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출가자沙門는 천겁 동안 부처님의 위의威儀를 배우고 만 겁劫 동안 부처님의 세행細行을 배워도 성불할까 말까 한데, 남방의 마구니들이 감히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마음을 보아 성불한다<直指人心 見性成佛>고 이야기 한다. 내 마땅히 이들의 소굴을 쓸어 버려서 이런 부류를 소멸시키고 부처님의 은혜를 갚겠다."
마침내 그는 덕산德山 조사는 『청룡소초靑龍疎鈔』를 짊어지고 촉蜀땅을 떠나 예양禮陽에 이르렀는데, 길에서 떡을 파는 할머니를 만나자, 잠시 쉬면서 떡을 사서 점심을 먹으려고 했습니다. 할머니가 바랑을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이 속에 든 것은 무슨 책입니까?" 스님이 말했습니다. "청룡靑龍소초疎鈔입니다“ " 무슨 경을 해설하는 것입니까? "『 금강경金剛經 』입니다."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 제가 하나 여쭈겠습니다. 만약 스님이 답을 하시면 점심點心을 시주하겠고, 답을 못 하시면 딴 데로 가 보십시오『금강경』<一體同觀分>에 '과거심도 얻을 수 없고, 현재심도 얻을 수 없고 미래심도 얻을 수 없다'고 했는데, 스님은 어느 심心에 점點을 찍으시겠습니까?" <過去心不可得 見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 점심點心을 먹겠다는 말에 착안하여 이렇게 물었습니다. 덕산 스님은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금강경金剛經을 거꾸로도 읽고, 모로도 외워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떡장수 할머니의 말 한마디에 꽉 막혀 버렸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이 근방에 큰 스님이 어디 계십니까?" 하니 "이리로 가면 용담원에 숭신 스님이 계십니다." 점심도 먹지 못하고 곧 용담으로 숭신스님을 찾았다. 이윽고 스님은 용담에 와서 법당에 이르러 말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용담龍潭이라고 들었는데 이제 와 보니 용龍도 없고 담潭도 보이지 않는구나" 하니 용담龍潭崇信스님이 몸을 일으키며 말하기를, "자네가 용담에 바로 왔네" 하였습니다.
주周금강은 또 할 말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이곳에 머물렀습니다. 어느 날 저녁에 용담 스님을 모시고 섰는데 용담스님이, "벌써 밤이 깊었는데 왜 들어가지 않는가?" 하니, 스님이 조심스럽게 나가려다 말고 돌아보면서 말하기를, "밖이 깜깜합니다." 용담 스님이 종이초紙燭에 불을 붙여 스님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스님이 받으려고 하는데 용담 스님이 도로 훅 불어서 꺼버렸습니다. 그순간 스님의 마음이 확 열렸습니다. 여기서 바로 엎드려 용담 스님에게 절을 했습니다. 용담龍潭 스님이 물었습니다, "그대는 무슨 도리를 보았는가?" 子見箇甚麽道理 스님이 답하기를, "이제부터 천하 노화상의 말씀을 다시는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다음 날 용담스님은 법좌에 올라 대중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한 사나이가 있는데, 이빨은 칼 숲 劍樹과 같고 입은 맹수의 시뻘건 입과 같습니다. 웬만한 몽둥이에는 돌아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가 훗날 높은 산꼭대기에서 저의 도道를 드날릴 것입니다." 덕산德山 스님은『청룡소초靑龍疎鈔』를 바로 법당 앞에 놓고서 불을 붙이며 말했습니다. "여러가지 현묘한 말씀들을 궁리해도 태허공에 터럭 하나 놓는 격이요, 세간의 중요한 이치를 전부 다 알았다 할지라도, 거대한 산골짜기에 물 한 방울 떨어지는 것과 같다." <窮諸玄辯 若一毫置於太虛 竭世樞機 似一滴投於巨壑> 竭 다할 갈 樞 지도리 추 壑 골 학 <窮諸玄辯 若一毫置於太虛 竭世樞機 似一滴投於巨壑> 竭 다할 갈 樞 지도리 추 壑 골 학
그런 다음 그 책들을 다 불사르고 말았습니다. 스승께 작별 인사를 한 덕산 스님은 바로 위산潙山으로 갔습니다. 바랑을 옆에 끼고 법당으로 올라간 그는 서쪽에서 동東쪽으로, 다시 동쪽에서 서쪽으로 왔다 갔다 하다가 조실스님 방을 돌아보면서, "있나?" "있나?"했습니다. 위산 스님은 앉은 채로 전혀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덕산 스님은, "없다, 없다" 하고 바로 나가다가 산문 앞에 이르러 말하기를, "그렇기는 하지만 대충 해서는 안 되지,"하고는 위의威儀를 갖추고 다시 들어와서 인사를 했는데, 문턱을 막 넘자마자 좌복坐具를 치켜들면서 "스님."하고 불렀습니다. 위산 스님이 불자拂子를 집어 들려고 하는데, 덕산 스님은 할喝 하고는 소매를 털치고 나가버렸습니다. 위산스님은 저녁이 되자 수좌首座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새로 온 그 스님 이 있는가?" 수좌가 답하기를, "그 때 법당을 등지고 짚신을 신더니 나가버렸습니다." 위산 스님이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나중에 고봉정상高峰頂上에 초암草庵을 얽어 짓고는 부처와 조사를 욕하게 될 것이다."하였습니다. 덕산 스님은 예양禮陽에 30년간 머물렀는데, 당唐 무종武宗의 폐불廢佛를 만나 독부산獨浮山의 석실로 피난 갔습니다. 대중大中연간 초<847>에 무릉태수太守 설정망薛廷望이 덕산정사德山精舍를 다시 중수하여 고덕선원古德禪院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눈 밝은 선지식<哲匠>으로 주지住持를 찾아 구하는데, 스님의 도행道行이 뛰어남을 듣고 거듭 청했지만 스님은 산을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설정망은 속임수를 써서 관리를 보내어 스님이 茶와 소금을 불법적으로 구해다 썼다는 구실로 스님을 모셔 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스님을 뵙자 그 선원의 주지로 살면서 종풍을 크게 떨쳐 주기를 끈질기게 청請했습니다. 그래서 후인들이 ‘덕산 방德山棒, 임제 할臨濟喝’이라고 말하게 된 것입니다. 덕산 스님처럼 이렇게 한다면, 어찌 생사를 쉬지 못할까 염려하겠습니까? 덕산 문하에서 암두巖頭, 설봉雪峰이 나왔고, 설봉 문하門에서 운문雲門 법안法眼과 덕소국사德韶國師 영명永明, 수壽 조사 등이 나왔는데, 모두 한 몽둥이一棒에서 나온 것입니다. 중국 역대 왕조의 불법은 모두 종문의 대조사大祖師스님들이 그 뼈대를 지탱해 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타칠打七을 하고 있으니, 모두 이 깊고 깊은 최상의 도리를 몸소 터득하여 바로 그 자리에서 알아차리고 생사를 벗어나도록 하십시오.<了脫生死> 이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만일 아이들 장난처럼 시작한다면 필사적으로 달려들지 못합니다. 하루 종일 빛과 그림자 세계에서 괴상한 것을 보거나見鬼, 아니면 문자굴文字窟속에서 꾀를 냅니다. 그렇게 해서는 생사가 쉬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힘써 정진精進하십시오!
<窮諸玄辯 若一毫置於太虛 竭世樞機 似一滴投於巨壑> 竭 다할 갈 樞 지도리 추 壑 골 학 <窮諸玄辯 若一毫置於太虛 竭世樞機 似一滴投於巨壑> 竭 다할 갈 樞 지도리 추 壑 골 학
그런 다음 그 책들을 다 불사르고 말았습니다. 스승께 작별 인사를 한 덕산 스님은 바로 위산潙山으로 갔습니다. 바랑을 옆에 끼고 법당으로 올라간 그는 서쪽에서 동東쪽으로, 다시 동쪽에서 서쪽으로 왔다 갔다 하다가 조실스님 방을 돌아보면서, "있나?" "있나?"했습니다. 위산 스님은 앉은 채로 전혀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덕산 스님은, "없다, 없다" 하고 바로 나가다가 산문 앞에 이르러 말하기를, "그렇기는 하지만 대충 해서는 안 되지,"하고는 위의威儀를 갖추고 다시 들어와서 인사를 했는데, 문턱을 막 넘자마자 좌복坐具를 치켜들면서 "스님."하고 불렀습니다. 위산 스님이 불자拂子를 집어 들려고 하는데, 덕산 스님은 할喝 하고는 소매를 털치고 나가버렸습니다. 위산스님은 저녁이 되자 수좌首座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새로 온 그 스님 이 있는가?" 수좌가 답하기를, "그 때 법당을 등지고 짚신을 신더니 나가버렸습니다." 위산 스님이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나중에 고봉정상高峰頂上에 초암草庵을 얽어 짓고는 부처와 조사를 욕하게 될 것이다."하였습니다. 덕산 스님은 예양禮陽에 30년간 머물렀는데, 당唐 무종武宗의 폐불廢佛를 만나 독부산獨浮山의 석실로 피난 갔습니다. 대중大中연간 초<847>에 무릉태수太守 설정망薛廷望이 덕산정사德山精舍를 다시 중수하여 고덕선원古德禪院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눈 밝은 선지식<哲匠>으로 주지住持를 찾아 구하는데, 스님의 도행道行이 뛰어남을 듣고 거듭 청했지만 스님은 산을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설정망은 속임수를 써서 관리를 보내어 스님이 茶와 소금을 불법적으로 구해다 썼다는 구실로 스님을 모셔 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스님을 뵙자 그 선원의 주지로 살면서 종풍을 크게 떨쳐 주기를 끈질기게 청請했습니다. 그래서 후인들이 ‘덕산 방德山棒, 임제 할臨濟喝’이라고 말하게 된 것입니다. 덕산 스님처럼 이렇게 한다면, 어찌 생사를 쉬지 못할까 염려하겠습니까? 덕산 문하에서 암두巖頭, 설봉雪峰이 나왔고, 설봉 문하門에서 운문雲門 법안法眼과 덕소국사德韶國師 영명永明, 수壽 조사 등이 나왔는데, 모두 한 몽둥이一棒에서 나온 것입니다. 중국 역대 왕조의 불법은 모두 종문의 대조사大祖師스님들이 그 뼈대를 지탱해 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타칠打七을 하고 있으니, 모두 이 깊고 깊은 최상의 도리를 몸소 터득하여 바로 그 자리에서 알아차리고 생사를 벗어나도록 하십시오.<了脫生死> 이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만일 아이들 장난처럼 시작한다면 필사적으로 달려들지 못합니다. 하루 종일 빛과 그림자 세계에서 괴상한 것을 보거나見鬼, 아니면 문자굴文字窟속에서 꾀를 냅니다. 그렇게 해서는 생사가 쉬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힘써 정진精進하십시오!
<초칠初七 넷째 날 법문>
7일의 아침햇살이 이미 4일째로 접어들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약간의 게송詩偈을 지어서 저에게 가져와 묻기도 했습니다. 이 또한 얻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이런 공부자세는 제가 지난 이틀 동안 이야기한 것을 다 잊어 버린 것입니다. 어제저녁에, 수행修行에는 별다른 수행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공부길만 바로 알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화두話頭를 참구하고 있는데 화두는 바로 우리가 당연히 가야하는 공부길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성불하여 생사를 끝내는 것입니다. 생사를 끝내려면 바로 이 화두를 금강왕 보검寶劍으로 삼아, 마군이 오면 마구니를 베고 부처가 오면 부처를 베어, 한 생각에도 머무르지 않고<一情不留>한 법도 세우지 않아야 합니다. <一法不立> 그런데 어디에 그러한 허다한 망상이 있어 시詩를 쓰고 게송을 지어, 공空을 보느니 광명光明을 보느니 하는 경계를 이야기합니까? 만약 이런 식으로 공부하면 여러분의 화두가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릅니다. 구참 스님은 말할 것도 지만, 초발심자들은 유념하십시오. 저는 여러분이 노력하지 않을까 염려慮하여, 지난 이틀간 타칠打七수행이 시작된 내력과 종문의 이 한 법<참선>의 가치, 그리고 공부하는 방법方을 하나 하나 이야기한 것입니다. 우리의 공부 방법은 일구화두一句話頭를 또렷이 들되, 아침저녁 스물네 시간 흐르는 물처럼 이어져 사이 없이間斷 하는 것입니다. 신령스럽게 밝아서 정신精이 어둡지 않아야 하고, 분명하게 항상 알아차리며, 일체의 범부 생각과 성스럽다는 견해를 단칼에 끊어야 합니다. 고인이 말하기를, " 도를 배우는 것은 자금성紫禁城을 지키는 것과 같아서 성문城門을 단단히 지키면서 한바탕 싸움을 치러야 한다. 추위가 한 번 뼈 속까지 스미지 않고서야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를 얻으랴." 했습니다. <學道猶如守禁城 緊把城頭戰一場 不受一番寒徹骨 怎得梅花撲鼻香> 怎어찌 즘 撲칠 박 이것은 황벽黃檗希運 선사가 말씀하신 것으로 전후 네 구절로 되어있는데,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앞의 두 구절은 비유로서, 우리 공부인은 이 일구一句화두話頭를 지키기를 황제皇帝가 사는 자금성紫禁城을 지키듯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황제를 천자天子라고 해서 지극히 고귀하게 여기고, 나쁜 사람들이 해치려드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사는 궁전은 밖에 해자垓子가 있고, 해자 안쪽에 다시 견고한 성벽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성城이 있는데 이것을 자금성紫禁城이라고 합니다. ▷ 해자垓子: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을 둘러 파서 못으로 만든 곳 이 성은 황제의 허락이 없이는 누구도 출입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지키는 것이 매우 엄밀嚴하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나 하나의 심왕心王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摩訶大法王 無短亦無長 本來非皂白 隨處現靑黃> - 冶父 道川 이 심왕이란 것은 바로 제 8식八識<아뢰아식alaya vijnana 藏識>을 말합니다. 제 8식 바깥에는 7식, 6식 그리고 전前 5식五識이 있습니다. 앞쪽에 있는 이 5식識이 바로 눈귀코혀몸眼耳鼻舌身의 5적五賊,이고, 제 6식은 의식意識이며, 제 7식은 말나식末那識manas입니다. 말나식은 하루 종일 제 8식識 중의 보는 부분見分을 '나我‘라고 집착하면서, 제 6식을 이끌고 전 5식을 거느리며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티끌 경계塵境를 탐애하고, 계속 미혹에 얽매입니다. 그래서 8식識 심왕心王은 너무 피곤하여 몸을 가누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 일구화두<金剛寶劍>를 빌려 저 도적들을 없애 버림으로써, 8식은 바뀌어 대원경지大圓鏡智가 되고 제 7식은 바뀌어 평등성지平等性智가 되며 제 6식은 바뀌어 묘찰관지妙觀察智가 되고, 5식은 바뀌어 성소작지成所作智가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긴요緊要한 점은 제 6식識과 제 7식이 먼저 바뀌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다른 식識들을 이끄는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의 힘은 잘 분별하고 헤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시詩를 짓고 게송을 지으며, 공空을 보고 빛을 보는 것은 바로 두 가지 식識<6.7식>이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일구 화두를 빌어 분별식 分別識<6식>이 묘관찰지妙觀察智가 되게 하고, 나와 남을 따지는 마음<7식>이 평등성지平等成智가 되게 하면, 이것을 일러 '식을 돌이켜 지혜를 이룬다<轉識成智>', '범부를 돌이켜 성인을 이룬다<轉凡成聖>'고 합니다. 줄곧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6境대상>에 탐착貪着하는 도적<識>이 침범하지 못하게 해야하고, 그래서 '금성禁城을 지키는 것과 같다'고 한 것입니다.
뒤에 나오는 두 구절은 "추위가 한 번 뼈 속까지 스미지 않고서 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香를 어떻게 얻겠는가?" 하는 비유인데, 이것은 곧 우리들 삼계의 중생衆生들이 생사의 바다에 빠져서 오욕<財色食名睡>에 얽매이고 진로塵勞<6진>에 미혹되어 해탈하지 못하는 까닭에 매화를 들어 비유한 것입니다. ▷ 진로塵勞: 6진塵<6境>대상을 따라 세속적 욕망으로 마음에 8만4천 번뇌<견해>가 수없이 일어나서 극도로 피곤하게 되므로 번뇌를 진로塵勞라 함.<勞倦> 매화梅花는 눈이 오는 날에도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무릇 만물은 모두 봄에 나서生 여름에 자라고 가을에 익고 겨울에는 갈무리藏하는 것입니다. 겨울은 날씨가 추워서 모든 곤충과 초목들이 얼어 죽거나 아니면 안으로 갈무리됩니다. 흙먼지塵土는 눈에 덮여 차고冷 서늘하여 공중으로 날아오르지 못합니다. 이들 곤충, 초목, 먼지, 재거름 따위는 우리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망상妄相 분별分別, 무명無明 질투嫉妬등삼독번뇌三毒<貪瞋痴> 흡사합니다. 우리가 이것들을 치워 버리면 심왕心王이 저절로 자재해집니다. 이것은 곧 매화가 눈 속에서 피어 향기를 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 매화 <마음 꽃>는 빙천설지氷天雪地에서 능히 피어나지, 따뜻한 봄바람이 부는春光明媚 화창한 날씨에 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마음 꽃이 피어나기를 바라지만, 이 역시 희.로.애.락.喜怒愛樂과 인.아.시.비.人我是非<相>속에서는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여덟 가지 마음이 한 번 흐리멍덩해지면 곧 무기성無記性이 되고, 만약 한번 악을 지으면 악을 짓는 성품이 되며, 만약 한번 선을 지으면 선을 짓는 성품善性이 되기 때문입니다. 무기無記에는 몽중무기夢中와 공망무기空亡가 있습니다 몽중夢무기란 바로 꿈을 꾸면서 혼미할 때입니다. 꿈속의 허망한 경계幻境가 있을 뿐, 일상적으로 우리가 하던 것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독두의식獨頭의 경계이며, 이것을 독두무기라고도 합니다. ▷독두의식獨頭意識 : 제6의식이 전5식과는 별도로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상태, 공망무기空亡無記라는 것은 우리가 지금 좌선하면서 있을 때 정중靜中에 이 화두를 놓쳐 버린 경우와 같이, 텅 비어 흐리멍덩한 가운데 아무것도 없이 단지 청정한 경계만을 탐貪하는 상태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공부할 때 가장 나쁜 선병禪病입니다. 이것이 바로 공망무기空亡無記입니다. 우리는 밤낮으로 화두일구를 잡되, 신령스럽게 밝아 흐릿하지 않고 또렷하게 늘 지각하면서<靈明不昧 了了常知> 말 할 때나 말 없을 때 걸을 때나 머물 때, 앉거나 누을 때도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영가永嘉玄覺 스님이 말하기를, "다녀도 참선이고 앉아도 참선이니, 말할 때나 침묵 할 때, 움직일 때나 안 움직일 때나 본체가 편안便安하다."고 했습니다. 行也禪 坐也禪 語默動靜 體安然 <증도가證道歌>
또 한산寒山조사祖師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높고 높은 산정에 올라 사방을 돌아봐도 그 끝이 없네 조용히 앉으니 아는 사람 없고 달빛 홀로 샘에 비치네. 高高山頂上 四顧極無邊 靜坐無人識 孤月照寒泉 달은 물 속에 있는게 아니라 푸른 하늘가운데 있다네. 노래 한곡 읊지만 노래 속에 있는 것은 선이 아니라네. 泉中且無月 月是在靑天 吟此一曲歌 歌中不是禪
저와 여러분은 모두 인연因緣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공부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하는 것입니다. 힘써 정진하고, 쓸데없는 일에 마음을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거듭 여러분에게 공안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전에 계족산鷄足山 실단사悉檀寺의 개산조사開山는 출가한 뒤로 제방諸方을 참례參禮하면서 도를 깨치기 위해 노력하며 열심히 정진했습니다. 하루는 여관에서 자는데, 벽 너머로 두부 만드는 집 여자가 이런 노래를 부르는 것이 들렸습니다. "장張씨 집 두부, 이李씨 집 두부, 베갯머리에서 생각이 천 갈래, 내일 아침이면 그전처럼 그 전처럼 두부를 만들 것을," 이 때 이 스님은 마침 좌선하고 있다가 이 여자가 노래하는 소리를 듣자 바로 마음이 환하게 열렸습니다. 이로써 옛사람들의 공부는 결코 선방禪房에만 앉아 있어야 공부가 되고 도를 깨치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행하고 공부하는 일은' 한 마음'을 귀貴하게 여깁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산란散亂하게 마음을 나누어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내일 아침에도 그 전처럼 두부를 만들게 될 것입니다. <초칠初七 다섯째 날 법문>
수행이라는 이 한 법法은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실제로 어렵습니다. 쉽다는 것은 여려분이 놓아버리고<無所住> 실實답게 믿어서 견고한 마음과 장원심長遠心을 내기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렵다는 것은 우리가 수고로움을 겁내어 안락을 꾀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세간의 유위有爲法도 한 번은 잘 배우고 익혀야 비로소 성공할 수 있는 것인데, 하물며 우리가 성현賢을 따라 배워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려는 마당에 어떻게 대강 해서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참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사심 生死心,<생사가 목전에 걸려 있다고 느끼는 다급하고 절박한 마음>이 간절해야 하며, 동시에 장원심長遠心<오래도록 꾸준히 밀고 나가는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사심이 간절하지 않으면 의정疑情이 일어나지 않으며 공부가 제대로 향상되지 않습니다. 또한 장원심이 없으면 마치 하루 볕을 쬐고 열흘 추운 것과 같아서 공부가 조금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첫째로 견고堅심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수행하여 도를 깨치려는 사람은 아무래도 마장魔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장이란 어제 이야기한 색성향미촉법등 진로塵勞의 업경계業境입니다. 이런 업경계들이 우리의 생사 원수입니다. 그래서 매양每樣 많은 강사스님들이 이러한 경계 속에서 꿋꿋이 버티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도심道心이 견고하지 않는 것이 원인입니다. 그 다음으로 장원심을 발發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세간에서 한량없는 업karma을 짓는 것인데, 생사에서 해탈解脫하려면 어떻게 수행을 하여 하루아침에 습기習氣를 일시에 다 놓아버릴 수 있겠습니까? 예전의 조사 스님들, 가령 장경長慶慧稜 선사는 앉아서 좌복 7개를 닳아 해지게 했습니다. 또 조주趙州從諗 스님은 80세에도 여전히 바깥으로 행각하면서 40년 동안 무無자字 하나를 보아看, 쓸데없는 일에 마음을 쓰지 않은 끝에 대철대오大徹大悟 했습니다. 연燕나라 왕과 조趙나라 왕은 스님을 숭배하여 갖가지 공양을 올렸습니다. 청대淸代에는 옹정황제雍正皇帝가 스님의 어록이 대단히 뛰어난 것을 보고 고불古佛에 봉封했습니다. 이 분들은 모두 한 평생 고생을 통하여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습기習氣의 병을 통째로 놓아버리고 맑고 맑은 일념一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불조佛祖와 동등해질 수 있습니다.
『능엄경楞嚴經』에 말하듯이, “흐린 물을 맑히려고 할 때, 깨끗한 그릇에 담아 오래도록 고요하게 움직이지 않게 하면 흙과 모래는 저절로 가라앉고 맑은 물이 나타나는 것을일러 ‘처음에 객진번뇌를 조복받는다‘고 하고, <如澄濁水貯於淨器. 靜深不動沙土自沈. 淸水現前名爲初伏客塵煩惱> 진흙을 제거하여 물을 순수하게 하는 것을 일러 ’영원히 근본무명을 끊는다‘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去泥純水名爲永斷根本無明> 우리의 습기習와 번뇌煩는 질흙 찌꺼기와 같습니다. 그래서 화두話頭를 사용해야 합니다. 화두는 명반明礬과 같이 흐린 물을 능히 맑혀줍니다. <번뇌를 항복伏받음>공부인의 몸과 마음이 일여한<心身一如>단계에 이르러 고요한 경계가 나타날 때는 주의해야 합니다. 우물쭈물 하면서 앞으로 나가지 않고 있으면停 안 됩니다. 이것은 초보적 공부상태 이지 번뇌, 무명無明이 끊어진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번뇌심을 따라서 청정함에 이른 것으로 마치 흐린 물이 깨끗해져 맑아진 것과 같습니다. 비록 맑아지기는 했으나 물 밑의 진흙 찌꺼기가 아직 제거 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아직은 더 노력하여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고인古人이 말하기를, “백척간두에 앉아 있는 사람은 비록 본 것 같기는 해도 참된 것은 아니다. 간두에서 다시 나아갈 수 있다면“<百尺竿頭進一步>시방세계가 통째로 드러날 것이다 했습니다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화성化性을 자기 집으로 아는 것이며, 번뇌는 여전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료한自了漢<자기만 아는 사람>도 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진흙<客塵煩惱>을 제거하고 물淸淨水만 남겨두어야 근본무명無明을 영원히 끊게 되고, 그래야 비로소 성불成佛한 것입니다. 무명無明을 영원히 끊어 버린 때가 되면, 여러분 마음대로 시방세계에 몸을 나투어 설법 할 수 있습니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32응신應身을 나투듯이, 어떤 특정한 몸으로 제도할 사람에게는 특정한 몸을 나투어 설법하게 됩니다. 여러분 마음대로 창녀의 방이든, 술집이든, 소나 말 노새의 태胎 속이든, 천당이든 지옥이든 어느 곳이나 자유자재하게 다니며 조금도 걸림이碍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 생각 차이로 육도<지옥獄,아귀餓鬼, 축생畜,아수라,인간,천상>에서 윤회하게 됩니다. 예전에 진회秦檜는 일찍이 지장보살地藏菩薩 앞에서 향등香燈 소임을 했던 적이 있었으나, 장원심을 내지 않았던 고로 무명無明번뇌를 다 끊지 못했고, 그래서 진심瞋心의 해害를 입은 것이 그 한 예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신심信心이 견고堅固하고 장원심이 퇴보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어떤 평범平凡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바로 그 몸으로 성불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 장주漳州의 어떤 가난한 사람이 출가를 했습니다. 출가出家를 하였지만 수행을 어떻게 하는지 몰라 답답했고 물어볼 데도 없었고, 그저 날마다 힘들게 일만 했습니다. 하루는 어느 행각승行脚僧이 그곳에 와서 유숙留宿하게 되었는데, 그 스님이 그가 날마다 바쁘게 일만 하는 것을 보고 일상日常 중에 어떤 공부를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대답했습니다. "저의 하루하루는 이런저런 힘든 일을 하는 것입니다. 부디 스님께서 수행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스님이 말했습니다. "염불하는 것은 누구인가?<念佛是誰>를 참구參究해 보시오!" 이렇게 해서 그는 바로 그 객스님이 가르쳐 준대로 하루 종일 일하는 중에도 이 “누구인가”[誰]를 마음 속에 잘 간직하면서 비추어照살폈습니다. 나중에는 바위굴에 숨어 살며 수행했고, 풀 옷을 입고 나무 열매를 먹으며 지냈습니다. 이 무렵 그의 집에는 어머니와 누님이 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가 섬의 바위굴에서 힘들게 수행修行한다는 것을 알고 누님을 시켜 베 한 필匹과 약간의 음식을 그에게 보내왔습니다. 누님이 섬에 와 보니 그는 바위굴에 앉아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불러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누님은 화가 나서 가지고 온 물건들을 동굴洞窟에 놓아두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줄곧 동굴에 앉아 수행만 했습니다. 그러기를 13년年이 지났습니다. 그의 누님이 다시 그를 보러 갔습니다. 가서 보니 그 베가 원래 놓아둔 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나중에 어떤 사람이 난亂을 피避해 도망갔다가 그곳에 이르렀습니다. 배가 몹시 고팠던 그는 이 스님이 다 헤어진 옷을 입고 바위굴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다가 와서 먹을 것이 있으면 좀 달라고 말했습니다. 스님은 바위 곁의 돌멩이 몇 개를 주워 가마솥鼎에 넣고 한참 삶더니 꺼내서 같이 먹자고 했습니다. 먹어 보니 감자와 비슷했습니다. 그 사람은 배불리 먹고 갔는데, 떠날 때 스님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부디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말아 주십시오." 얼마 후 그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 수행을 여러 해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결연結緣을 맺어야 하겠구나.' 이리하여 섬을 나와 하문厦門에 나와 큰길가에 띠집茅蓬을 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차를 대접 했습니다.
이때가 명明나라 만력萬曆연간<1573~1619>이었습니다. 황제는 어머니인 황태후皇太后가 죽었으므로 고승을 청해서 불사佛事 <천도재>를 하고 싶었습니다. 황제는 먼저 북경北京에 있는 스님을 청하려고 생각했지만, 이때는 서울에 대덕 고승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황태후가 만력황제의 꿈에 나타나서 복건福建 장주漳州에 고승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황제는 사람을 복건 장주로 보내어 많은 스님들에게 서울로 올라와서 불사를 해 달라고 초청했습니다. 이 스님들은 모두 행장行裝을 꾸려 서울로 올라가는데, 마침 이 토굴 스님이 사는 길가를 지나갔습니다. 그 스님이 " 여러 스님들께서는 오늘 이렇게 즐거워하면서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자 스님들이 말했습니다. " 우리는 지금 황제의 뜻을 받들어 서울로 올라갑니다. 황제를 위해 불사를 하여 태후를 천도薦度해 주려고 가지요." 토굴 스님이 물었습니다. “저도 함께 갈 수 있습니까?” "스님은 이렇게 고생하시는데, 어떻게 함께 가실 수 있겠습니까?"스님이 말했습니다. "저는 경經을 읽을 줄 모르지만 여러분을 위해 짐을 져 드릴 수는 있습니다. 서울 구경을 좀 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리하여 그는 이 스님들과 함께 짐을 메고 서울로 갔습니다. 이때 황제는 스님들이 도착 할 즈음, 사람을 시켜『금강경金剛經』한 권을 문지방 밑에 묻어두게 했습니다. 스님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한 사람씩 궁궐宮闕안 으로 들어갔습니다. 오직 이 ‘고생 스님苦惱和尙’만이 이곳에 오자 두 무릎을 꿇고 앉아 합장하고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문지기가 이 사실을 황제에게 알렸습니다. 황제는 생각하는 바가 었습니다. 스님이 도인道人인 줄 안 황제는 몸소 나와서 물었습니다. "왜 들어오지 않습니까?"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땅 밑에 금강경이 있어서 감히 들어 갈 수 없습니다."
" 그러면 왜 거꾸로 서서 들어오지 않습니까?" 이 말을 듣자 스님은 두 손을 땅에 짚고 두 다리를 하늘로 들어 한 번 곤두박질하면서 들어갔습니다. 황제帝는 스님을 깊이 존경하고 그를 내정內廷으로 청하여 환대했습니다. 그리고 단壇을 세우고 의식을 진행하는 문제에 관해 문의 했습니다. 스님이 말했습니다. "내일 새벽 오경五更에 단을 여십시오. 단壇은 한 층만 올리고 번幡은 한 폭만 치십시오. 향, 초와 제수祭需음식은 한 상이면 됩니다." 황제는 이 말에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러면 성대하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황제는 혹시 이 스님이 별 법력<道德>이 없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궁녀女 두 사람을 불러 스님을 목욕시켜 드리라고 했습니다. 목욕이 끝나도록 스님의 하체下體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궁녀가 이 사실을 황제에게 보고하자, 황제는 스님을 더욱 존경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이 스님이 도인道人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으므로, 스님이 일러준 대로 단을 세우게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스님은 법상法床에 올라 설법을 한 다음, 단에 올라 합장한 뒤에 당幢을 잡고 영전靈前에 서서 말했습니다. " '나'는 본시 오지 않는데, 당신은 치우쳐 애착합니다. 한 생각나지 않으면 천계天界를 뛰어 넘을 것입니다." <一念無生 超昇天界> "천도재遷度齋가 끝나자 황제에게 말했습니다. "태후께서 해탈解脫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황제는 과연 그랬을까 하고 의심하면서, 이렇게 끝내 버리면 공덕이 천도하기에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의심하고 있을 때 태후太后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렸습니다. "황제께서는 스님께 사례하십시오. 저는 이미 승천昇天했습니다!" 황제는 놀라는 한편 기뻐서 스님에게 거듭 절하면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내정內廷에서 채식공양齊供養을 베풀었습니다. 스님은 황제帝가 입고 있는 꽃무늬 바지에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황제는 “스님께서 이 바지가 좋으십니까?” 하고는 바로 벗어 드렸습니다.
스님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했습니다. 황제는 스님을 곧 용고국사龍褲國師에 봉했습니다. 공양이 끝나자 어화원御花園으로 스님을 안내하여 유람을 했습니다. 이 화원 안에는 보탑寶塔이 하나 있었습니다. 스님은 탑塔을 보더니 기뻐하면서 그 주위를 돌고 탑을 우러러보았습니다. 황제가 말했습니다. "국사께서는 이 탑塔을 좋아하시는군요." 하니, 스님이 "이 탑은 정말 좋군요!" 황제는 "이 탑을 스님 계신 데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하고는 사람을 시켜 탑을 장주漳州에 옮기려고 했습니다. 스님이 말했습니다. "헐어서 옮길 것 없습니다. 제가 가지고 가겠습니다." 말하는 사이 그는 탑을 소매 속에 집어넣고 공중으로 솟아오르더니 날아가 버렸습니다. 황제는 매우 놀라고 기뻐하면서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고 감탄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 스님은 출가한 이래 쓸데없는 일에 마음을 쓰지 않았고 줄곧 도심道心이 견고했기 때문입니다. 누님이 찾아와도 신경 쓰지 않았고, 옷이 다 떨어져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베 한 필을 13년年이나 그대로 놓아두고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며, 과연 이렇게 공부할 수 있겠는지 자문自問해야 합니다. 자기 누님이 찾아 오면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잘 안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입선入禪한 뒤에도 감향監香이 향을 사르거나 옆 사람이 조금 움직이면 그를 돌아보려고 합니다. 심지어 얼굴을 찌푸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공부해서 화두가 어떻게 익겠습니까? 여러분은 흙 찌꺼기<習& 煩惱>를 제거하고 물만 남겨주면 됩니다. 이렇게 공부해서 물<화두>이 맑으면 달은 저절로 나타납니다. 화두話頭를 잘 들고 참구參究하십시오! <초칠初七 여섯째 날 법문>
고인이 말하기를, "해와 달은 베틀의 북과 같고 세월은 화살과 같다." 했습니다. <日月如梭 光陰似箭> 梭북 사 箭 화살 전 타칠打七을 말하자마자 벌써 내일이 해칠解七입니다. 규정에 따르면 내일 아침에는 공부를 점검합니다. 왜냐하면 타칠은 기한限을 정하고 깨침을 도모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깨침<證>”이란 깨달아 증득하는 것證悟입니다. 자기의《본지풍광本地風光》을 보아 내는 것이며, 여래의 묘한 성품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달아 증득한다.'고 말 합니다. 공부 점검은 여러분이 7일 동안 여기서 한 공부가 어느 정도까지 갔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대중 앞에서 자신의 경계를 드러내야 합니다. 늘 이때에 여러분의 공부를 점검하는데, 이것을 일러서 '밥값을 요구한다'고 합니다. 누구나 이 과정을 거쳐야합니다. 이 말은 타칠을 한 우리는 누구나 깨쳐야 하고, 누구나 불법佛法을 널리 선양宣揚하고 중생의 뜻<意>을 다 제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누구나 깨닫는다는 말은 아니고, 한 사람이 깨쳐覺도 이 밥값을 다 갚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위“여러 사람이 밥을 먹고, 한 사람이 다 값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오직 일념으로 정진하는 도심道心을 일으킨다면 각자가 깨달을 수 있습니다. 고인이 말하기를, "범부가 성불하기는 정말 쉽지만, 망상妄을 제거하기는 실實로 어렵다." <凡夫成道眞個易 除去妄想實爲難 >고 했습니다. 다만 우리가 시작을 알 수 없는 데서와서<無始以來> 탐내고 애착하는 마음이 불타듯 하여, 생사에 유랑流浪하면서 팔만 사천의 티끌塵勞<번뇌>속에서 갖가지 습기習의 병을 놓아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도를 깨치지 못하고, 제불보살諸佛菩薩처럼 늘 깨어 있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연지대사蓮池가 말했습니다. “물든 경계에 빠지기는 쉽고 도업은 이루기 어렵다. 눈앞에 것<본래성품>을 모르면 만萬가지 인연이 벌어져, 경계<6塵境>의 바람이 도도히 불어 공덕의 숲은 시들고, 마음의 불길은 활활 타올라 깨달음의 씨앗을 태워 없앤다. 만약 도道를 생각함이 정情을 생각하듯이 한다면 부처를 만난 지 이미 오래일 것이다. 중생을 위함이 자기 몸을 위함이요 저것과 이것은 사물의 구별事辦일 뿐이다. 남이 잘못했고, 내가 옳다他非我是고 보지 않으면 자연히 위아래 사람들이 공경할 것이다. 불법은 시시각각 면전에 드러나고現前 가지가지 번뇌의 티끌에서 해탈할 것이다.“
이 십여 구句의 말씀이 얼마나 명백하고 친절합니까! ‘물든다<染>’는 것은 오염된다는 뜻입니다. 범부의 경계는 모두가 재색財色과 명리名利아니면 성瞋내고 싸우는 데에 탐착하고 물들어, 도덕道德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걸림돌 정도로 생각합니다. 하루 종일 희로애락喜怒愛樂에 빠지고 부귀영화를 탐하고 사랑貪愛하여 온갖 세정世情을 끊지 못합니다. <본래자리>를 찾으려는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래서 " 공덕의 숲功德林이 시들고, 깨달음의 씨앗菩提種子이 다 타버린다."고 한 것입니다. 만약 세정世情을 담담하게 보고 모든 친구와 원수를 평등平等하게 보며, 죽이지 않고, 주지 않으면 갖지 않고, 사음邪婬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술 마시지 않으며, 일체 중생을 평등무이平等無二하게 보아서 남이 굶주리면 자기가 굶주리는 것 같이 여기고, 남이 물에 빠지면 자기가 물에 빠지는 것과 같이 여기면서 항상 보리심菩提心을 발한다면, 가히 도념道念에 상응한다 하겠고, 또한 선 자리에서 부처를 이룰 수 있다<立地成佛>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만약 도념道念이 정념情念과 같으면 부처를 이루는 것은 시간문제"라 했습니다. 제불성현諸佛聖賢이 세간에 응신應身· 화신化身을 나투어 하는 모든 일 一切事은 중생을 위해 봉사奉仕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괴로움을 덜어주고 즐거움을 주며, 자비심을 일으켜 중생을 제도한다.<拔苦與藥 興慈濟物>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극기복례克己復禮<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감>하여, 어떤 것도 자기 자신의 욕망을 위해 행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누구나 곤란과 고통困苦이 없이, 하는 일마다 모두 잘 해내게 될 것입니다.
동시에 여러분 자신도 그에 따라 원만한 보상補償의 열매實를 얻게 됩니다. 마치 강물이 불어나면 강을 건너는 배도 저절로 높이 올라가듯이, 여러분이 자비심과 공경심으로 남들을 대하고 잘난 척하지 않으며 교만하거나 위선적이지 않으면 분명 사람들이 여러분을 공경하면서 예의 바르게 대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재능만 과시하면서, 어른이나 된 양 거드름을 피우거나, 말은 옳은데 마음은 옳지 않아서 오로지 성색聲色<음악과 여색>과 명리名利를 위해 처신하게 된다면 사람들이 여러분을 공경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마 거짓일 것입니다. 그래서 공자孔子는 "남을 공경하는 사람은 남들도 늘 그를 공경하고,<敬人者 人恒敬之> 남을 아끼는 사람은, 남들도 항상 그를 아낀다 <愛人者 人恒愛之>."고 한 것입니다. 육조六祖 스님은 “남은 그르고 나는 옳다고 하면, 내가 그르게 여김이 오히려 허물”이라고 했습니다. <他非我不非 我非自有過> 눈은 견해 없어 분별이 없고 目無所見無分別 귀로 듣되 시비가 끊어 졌네 耳聽無聲絶是非 분별시비 모두 놓아버리고 分別是非都放下 마음 살펴 부처로 돌아가네 但看心佛自歸依 <浮雪居士> 그래서 우리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相>을 내거나, 나와 남이라는 분별을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제불보살 諸佛菩薩이 남들을 위해 일하는 것과 같이 하면 깨달음의 씨앗이 도처에 생길 것이며, 착하고 아름다운 선행善의 과실實을 그때그때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번뇌는 자연히 여러분을 속박束縛하지 못할 것입니다. 세존世尊께서 말씀하신 삼장三藏 십이부十二部경전도 우리의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없애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삼장 십이부의 핵심은 바로 계.정.혜戒定慧이며, 인과因果입니다. 즉 우리로 하여금 계율[戒]로서 탐욕을 없애고, 선정[定]을 지녀 자비희사慈悲喜捨하며 육도만행六度萬行을 실제로 행行하며, 우매한 미혹과 삿된 어리석음을 타파하고 지혜와 덕상知慧德相을 원만하게 하여 공덕법신功德法身을 장엄莊嚴하게 한 것입니다 . 우리가 이 계정혜戒.定.慧에 의지하여 남을 위해 처세 할 수만 있으면 그야말로 처처處處 모두가 모두 화장세계華藏世界일 것입니다. 오늘 타칠打七에 참가하신 분들은 재가在家에 계신 대덕大德들이신데 우리는 자기 마음을 잘 항복 받아 하루 속히 속박에서 벗어나야합니다. 제가 다시 공안 하나를 말씀드려 여러분을 위한 모범으로 삼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모두 큰 신심信을 내어 이 보소寶所에 왔는데, 제가 여러분에게 설명해 주지 않으면 여러분이 보배를 얻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서, 그 신심이 아무 보람 없게 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고요한 마음으로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옛날 당나라에 한 거사가 있었습니다. 성姓은 방龐, 이름은 온蘊, 자字는 도현道玄이며 호남湖南 형양衡陽사람이었습니다. 세간 본업이 유학자로, 젊은 나이에 세간사가 티끌임을 깨닫고 참된 진리를 구하는데 뜻을 두었습니다. 정원貞元연간<785~804> 초 석두石頭希遷스님의 도풍道風을 듣고 찾아뵙고 물었습니다. "만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 것은 어떤 사람입니까?“ <不與萬法爲侶者 是甚麽人> 석두 스님은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아버렸고, 방거사가 여기서 활연히 깨친 바 있었습니다. 하루는 석두石頭 스님이 물었습니다. "그대가 나를 만나 본 이후로 날마다 하는 일이 무엇인가?" 방龐거사가 말했습니다. "날마다 하는 일을 물으시면 입을 열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게송을 지어 올렸습니다.
일상사 별달리 하는 일이 없고 日用事無別 다만 스스로 잘도 어울리누나. 唯吾自偶諧 물건 마다 취하고 버리지도 않아 頭頭非取捨 처처에 무얼 하든 어긋남이 없네. 處處沒張乖 자주빛 높은 벼슬 누가 이름 하리 朱紫誰爲號 이 산 언덕에 티끌 하나 없는 걸. 丘山絶點埃 신통이니 묘용이니 무얼 말 하는가 神通幷妙用 물 긷고 나무 하는 일이 그것 일세 運水與搬柴 그러자 석두 스님이 긍정하고 물었습니다, "그대는 중僧이 될 텐가, 속인이 될 텐가?" 방거사가 말했습니다. "저 하고 싶은 데로 하겠습니다." 그러고는 삭발염의染衣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마조馬祖道一를 참례하고 또 물었습니다. "만법과 짝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하니, 마조가 말했습니다. "그대가 천강의 물을 한 입에 마시고 오면 내가 말해 주겠다“ <待汝一口吸盡千江水 卽向汝道> 했습니다. 방 거사는 언하言下에 그 깊은 뜻을 단박에 이해했고, 그 곳에 2년을 머무르면서 마조馬祖를 모셨습니다. 마조 스님 회상에서는 다름과 같은 게송을 남겼습니다. 사방에서 한 곳에 모여서, 사람마다 '함이 없는' 공부를 하니 여기가 바로 선불장이라, 마음 비운 자는 합격하여 돌아가네. <十方同共聚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방거사는 《본래인本來人》을 꿰뚫어 안 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오직 조리만 짜면서 살아갔습니다. 집에 있던 만 관貫의 금과 은金銀도 모조리 상강湘江 물에 던져버리고 살았습니다. 하루는 두 부부가 함께 무생無生의 도리를 이야기하다가, 거사가 말했습니다. "어렵다, 어렵다, 어렵다. 참깨를 주워 담아 나무 위에 널기가 ." 부인이 말했습니다. "쉽다, 쉽다. 온갖 풀끝에 다 있는 조사의 뜻이.“百草頭上祖師意 딸인 영조靈照가 듣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두 분 어르신,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다 하십니까?" 방거사가 물었습니다. "너라면 어떻게 말하겠느냐?" 영조가 말했습니다. "어렵지도 않고 쉽지도 않네.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자네." 방거사가 박장대소하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있어도 장가가지 않고, 딸이 있어도 시집가지 않네. 온 식구가 단란하게 머리를 맞대고 함께 무생無生을 이야기 하네" 이때부터 그의 기변機辯<상황에 응대하는 말솜씨>이 빠르고 민첩하여 제방에서 그를 우러러보았습니다. 그가 약산유엄藥山惟嚴 선사를 만난 뒤 하직 인사를 하자, 약산 스님은 선객禪客 10명에게 문門 까지 배웅하도록 했습니다. 거사가 공중에 내리는 눈을 가리키면서 말했습니다. "잘 내리는 눈이로다. 송이송이 다른 곳에 떨어지지 않는구나." 전全아무개 선객이 물었습니다. "그러면 어디에 떨어집니까?"
거사는 그를 한 번 때렸습니다. 전이 말했습니다. "그런다고 대충하면 안 됩니다." 거사가 말했습니다."그러고서도 어찌 선객이라 하겠소? 염라대왕이 어째서 그대를 그냥 놓아두고 있는 거요" 전이 말했습니다. "거사님은 어떻습니까?" 방거사가 다시 한 대 때리고 말하기를 "눈으로 보면서도 장님과 같고, 입으로 말하면서도 벙어리와 같소.“ <眼見如盲 口說如啞>
방龐거사는 일찍이 강당講肆에 노닐며『금강경金剛經』강의를 즐겨 들었는데, '무아무인無我無人'이라는 대목에 이르자 물었습니다.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 " 좌주座主, 이미 ‘나’我도 없고 ‘남’人도 없다면 누가 강의하고 누가 듣습니까? " 좌주가 답을 못하자, 거사가 말했습니다. "저는 비록 속인이지만 대충은 압니다."
좌주가 "그러면 거사님의 뜻은 어떻습니까?" 하니 거사가 게송으로 답했습니다. 나도 없고 다시 남도 없거니 無我復無人 어디에 멀고 친함이 있으리 作麽有疎親 권하노니 좌주 노릇 그만 하소 勸君休歷座 곧장 진리를 구함만 같지 않네 不似直求眞 금강반야의 성품으로 말하면 金剛般若性 밖으론 한 티끌도 끊어버리네 外絶一鐵塵 제가 듣고 믿어 받아 지니지만 我聞竝信受 모두 방편으로 말하는 것이네. 總是假名陳 좌주가 듣고 흔연히 기뻐하며 탄복했습니다. 하루는 거사가 딸 영조에게 물었습니다. "고인이 말하기를 '밝고 밝은 온갖 풀끝에 밝고 밝은 조사의 뜻이로다.‘ <明明百草頭 明明祖師意>" 했는데 어떻게 이해하느냐?' 영조가 말했습니다. "어르신, 어르신, 이런 말씀을 하시다니요?" 거사가 " 너는 어떠냐?" 하니 영조靈照가 말했습니다. “밝고 밝은 온갖 풀끝에 밝고 밝은 조사의 뜻이로다." 거사는 껄껄 웃었습니다. 그가 입멸入滅하려 할 때 영조에게 말했습니다. "해가 얼마나 올라왔는지 보아, 정오가 되거든 알려다오," 영조가 보고 와서 말했습니다. " 해가 막 가운데 왔는데正午, 아깝게도 하늘 개가 해를 먹고 있어요日食. 아버지는 왜 나와 보지 않으십니까?" 방거사는 사실인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와서 해를 바라보았습니다. 이때 영조는 아버지의 자리에 올라가서 가부좌를 하고 합장한 채 좌탈座脫하고 말았습니다. 거사가 들어와 보니 영조가 이미 죽어 있자 탄식하며 말했습니다. " 내 딸 솜씨가 정말 빠르구나! 나보다 먼저 가다니. " 이리하여 다시 7일이 늦추어졌습니다. 양주 목사州牧 우적공于頔公이 문병차 와서 법요를 물음에 거사居士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다만 존재하는 모든 것의 공함을 깨우쳐 但願空諸所有 없는 것을 실로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切勿實諸所無 세상살이에서 즐겁게 산다는 것이 好住世間 모두 그림자요 메아리와 같습니다. 皆如影響 말을 마치자 그는 우공于公의 무릎을 베고 입적했습니다. 유언으로는 시신屍身을 화장해서 강이나 호수에 버려 달라고 했습니다. 부인이 이 말을 듣고 바로 들에서 일하고 있던 아들에게 알렸습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아들은 괭이자루에 머리를 기댄 채 서서 가 버렸습니다. 어미는 이 광경을 보자 자기도 어디론가 숨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저들 일가 네 식구가 모두 이와 같이 신통묘용神通妙用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보십시오. 그러니 여러분이 거사인 것이 얼마나 고상高尙한 일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거사님들 중에 이러한 인재가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출가이중出家二衆 <비구, 비구니>이라 하더라도 이 허운虛雲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인재가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뜻>
이것은 얼마나 거꾸로 된 형국입니까! 여러분 노력努力하십시오! 출처 : 참선요지[參禪要旨]- 탐구사 刊 / 관란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