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 '방조', '방관'이란 말
요즘 신문에는 온통 학교 폭력 문제를 날마다 알리는데 그런 사실을 알리는 말은 또다른 폭력을 일으킨다. 신문은 누구나 읽고 학교 폭력 문제는 누구든 관심있게 보는 일인데 굳이 어려운 말로 써야할 까닭이 없다. 다음은 2월 7일과 2월 8일치 신문의 머릿기사 제목과 기사 한 부분을 따온 것이다.
‘교사 직무유기 범위’ 논란… 양천署, 강서署 “학교폭력 방조” 교사 수사
(……) 학교폭력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이유로 현직 교사가 또 경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서울 양천경찰서가 학교폭력 피해학생의 담임교사를 직무유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한 데 이어 2번째다. 교사가 학교폭력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이 형법상 직무유기에 해당하는지를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
-- <국민일보> 2012년 2월 8일치
학교폭력 방관 교사 줄입건…불안한 교사 法보호책 고심
(……) 학교폭력 방조 혐의로 교사들에 대한 입건 수사가 이어지자 교직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 <매일경제신문> 2012년 2월 8일치
학교폭력 방치 교사 형사처벌 확대
(……) 담임교사가 ‘자신이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한 뒤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며 “교사의 방치로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가 발생했으므로 이는 교사가 담임으로서의 직무를 포기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2012년 2월 7일치
머릿기사를 보면, 학교폭력을 대하는 태도를 세 가지로 갈라 말한다. '방조', '방관', '방치'. 세 가지는 뚜렷하게 그 뜻이 다르다. '방치'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둔다는 말이다. 학교폭력이 일어나는데도 저희끼리 일이니 모른척 하고 손을 쓰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때 교사가 이미 사실을 알았다는 걸 암시한다. '방관'은 그 일에 나서지 않고 곁에서 보기만 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방조'라는 말은 아주 다른 뜻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방조는 모른 척 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옳지 못한 일을 '곁에서 돕는다'는 뜻으로 나온다. 법률에서 쓰는 '방조(幇助/幫助)'는 '남의 범죄 수행에 편의를 주는 모든 행위를 하다. 정범(正犯)의 범죄 행위에 대해 조언하는 일, 격려하는 일, 범행 도구를 대여하는 일, 범행 장소 및 범행 자금을 제공하는 일 따위가 있다.'고 적어놓았다. 이 말은 어느 얼빠진 학교가, 어떤 교사가 학교폭력을 모른 척하는 것도 모자라 더욱 잘하라고 폭력을 부추기고 돕기까지 한단 말이다. 정말 그런 교사나 학교가 있다면 마땅히 천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신문기사에서 보면 '학교폭력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걸 문제삼고 있다. 말 그대로 팔짱을 끼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자연스런 귀결이겠지만 학생과 학생, 학부모와 학교 사이에서 자칫 어린 학생을 범죄자로 키우지 않으려고 교사가 한 교육적 배려나 노력은 '쏙' 빠지고 만다. 자녀가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어버이의 피끊는 마음을 몰라라 하는 말은 아니니 오해없길 바란다. 다만 교사 처지에서 보면 피해자든 가해자든 우리 반 학생이기 때문에 두부모 자르듯 딱 자르지 못할 때가 많은 것도 헤아려 주어야 한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 구조를 보면 피해자와 가해자가 얽혀있거나 때로는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는 일도 허다한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 얽힌 실타래를 풀려고 골머리를 썩어온 교사는 한순간 파렴치한 사람이 되고 만다. 백 걸음 뒤로 물러나 교사가 학교 폭력 사실을 모른 척 했다고 하자. 그러면 '방치'든 '방관'이든 '방조'든 사실은 학교 폭력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척하고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았다고 쓰면 더 알기 쉬웠을 것이다. <부러진 화살>에서 보면 김명호 교사가 한 일에 대해 법원은 이미 판결을 내려놓고 재판을 해나간다. 정부든 언론이든 게중에 만만한 학교와 교사를 골라 희생양으로 삼고 싶은 게다. 진짜는 친구를 밟고 올라서는 경쟁 구조와 패자부활전이 없는 승자독식주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정책들이 아닌가. 신문은 조금이라도 사실을 더 환히 알리는 기사를 써야 한다. 그런데 '방치', '방관', '방조' 같은 말로 교묘하고도 어려운 한자말로 사실을 감추고 진실을 바꿔치는 일을 서슴치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