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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정맥 제20구간 통리역에서 피재까지
○ 일 시 : 2009. 11. 29(일)
○ 위 치 : 강원도 태백시
○ 산행구간 : 통리역(700m) - 유령산(932.4m) - 대박등(930.8m) - 작은피재(880m) - 천의봉(1303m) - 피재
○ 산행거리 : 도상거리 8.5Km
○ 산행인원 : 45명(손동기, 신경호, 나머지 백두사랑산악회원)
○ 산행시간 : 03:40 ~ 09:15(05시간 35분)
○ 산행난이도 : ★★
○ 산행감상평 : ★★
○ 산행추천시기 : 겨울(눈 산행)
○ 날 씨 : 흐리고 약간의 비(2℃~5℃) 강원도 태백시날씨 기준
○ 산행지도
신갈고속도로정류장(2009.11.28(토) 23:30)
2009. 1. 18일에 몰운대를 출발한 낙동정맥종주 긴여정이 벌써 종착역을 도착하기 위한 마지막 산행을 하기 위하여 신갈로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한다. 신갈에 도착을 하니 반가운 얼굴들을 볼수가 있다. 다른때와 달리 모두의 얼굴이 매우 밝아 보인다. 그동안의 고생들이 한순간에 스쳐 지나가면서 비가오나 눈이오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달려온 세월이 모두의 얼굴에서 밝은 모습으로 묻어나는 이유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잠시후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가 신갈에 도착을 한다. 오늘 산행인원은 축하 산행하는 사람들이 있어 비어있는 자리가 없이 만차이다. 버스에 오르니 버스안 또안 매우 밝은 모습들로 꽃을 피우고 있다. 여주휴게소에서 간식을 먹고 버스는 통리역을 향하여 힘차게 달려간다.
통리역(2009.11. 29(일) 03:40)
오늘따라 버스에서 나는 엔진소리도 매우 경괘하게 들린다. 밤새 달려온 버스는 통리역 맞은편에서 멈추어 선다. 희미한 가로등과 통리역 간판에서 뿜어내는 불빛이 역앞에 서있는 택시위를 덮어 버리고 있다. 버스에서 내려서 잠시 통리역안을 들여다 보니 역무원은 보이지 않고 적막함만이 대합실을 감쌓고 있다.
통리에 대한 지명유래에 대한 해설이다. "통리(桶里) 통리는 마을 서쪽의 牛甫山이 臥牛形局의 明堂이고 源深 부근이 소 여물통처럼 생겨 桶里라 하는가 하면 四方으로 통하는 交通의 要路이기에 通里가 桶里로 되었다고도 한다. -태백문화원 백경문- "
와우형국의 명당과 교통의 요지는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풍수지리에 대하여는 잘은 모르지만 살아있는 사람도 편하면 죽은 사람도 편안 곳이 명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역에서 나와서 다시 버스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으로 옮겨 놓는다. 산행시간이 조금 일러서 잠시 버스에서 대기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산행준비를 하고 마지막 구간을 위하여 발걸음을 옮겨 놓으면서 통리역에서 멀어지기 시작을 한다.
[통리역]
우보산(04:14)
절개지 사면을 타고 가파른 경사로를 따라 산행이 시작된다. 어둠에 쌓여서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은 잠시후 끝나고 내려서더니 안부사거리에 도착을 하고 다시 가파르게 오르막이 이어진다. 오늘 산행은 축하 산행을 하러온 사람들도 있고 또한 거리도 짧아서 앞에서 속도를 내지 않고 천천히 산행을 진행을 한다.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 올라서다 묘지가 있는 곳에서 잠시 쉬었다 간다. 다시 가파른 경사로를 치고 올라서면 우보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소를 닮았다 하여 우보산이라고 하나 우보산의 형국을 볼수는 없는 아쉬움이 남긴다.
[우보산]
느릅령(04:25)
우보산 정상에서 11시방향으로 암릉구간이 있는 곳을 지나고 가파른 경사로를 따라 내려간다. 중간에 안전로프가 잛게 매여져 있으나 크게 위험한 구간은 없다. 가파른 내리막을 따라 내려서며 임도가 있는 느릅령에 도착을 한다. 느릅영에는 유령산영당 건물이 우보산과 유령산 중간에서 지키고 있다. 팔작지붕 형태의 유령산영당은 기와의 색깔이나 단청으로 보아서 근래에 지어진 건물로 보인다.
느릅령에 대한 많은 전설과 이야기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태백산 천제를 지내러 가는 길목이라는 것과 느릅령에 호랑이 등 많은 맹수가 서식 하였다는 것이다. 느릅령에 대한 지역환경 등에 자세히 설명되여 있는 것을 소개를 한다.
느릅령 Neureupryeong [異] 유현(兪峴). 유령(兪嶺)
시의 황연동과 삼척시 도계읍 심포리 경계에 위치한 고개이다. 『척주지』에 “우보산은 유현(兪峴)이라고도 하며 삼척부에서 90리이고 태백산 동쪽 기슭에서 갈라진 별도의 산이다. 오십천이 이 산에서 발원하는데 그 발원지를 구사흘(九沙屹)이라 하며 그 밑은 수십 장(丈)의 폭포이다. (중략) 유현에서 서쪽으로 10리는 황지(黃地)이고, 그 서남쪽 5리는 백석평이고, 또 그 서남쪽 20리는 천천(穿川)이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내용에서 우보산과 유현을 같은 산으로 오해할 여지가 있지만, 사실 유현은 우보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능선이 존재하는 고개이다. 『대동여지도』에 잘 묘사되어 있다. 지명은 고개에 큰 느릅나무가 많은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여지도서』와 『해동지도』에는 유령(楡嶺)이라 표기했다. 『대동지지』에 “신라 때부터 태백산으로 천제를 지내러 가거나, 봉화나 안동 등 경상도로 오갈 때 이 고개를 이용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옛날에는 이 고개에 맹수가 많았는데, 그 재앙을 면하기 위해 고개 인근의 상장면․하장면 주민들이 합심하여 유령산신각을 짓고 산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명유래-
[유령산영당]
04:38 유령산
느릅령에서 유령산영당을 우측으로 놓고서 절개지를 따라 가파른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면 유령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정상에는 넓지 않은 공간이 있으며 정상 주위로 잡목들이 우거져 있으며 낮으막한 표지석이 유령산 정상임을 알려주고 있다.
[유령산]
유령산을 뒤로하고 좌측방향의 완만한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면 철탑이 있는 곳을 지나고 밋밋하게 내려서던 등산로는 올라서더니 싶더니 다시 구름능선이 이어진다. 공사중인 절개지 아래로 내려서면 도로개설중인 곳에 도착을 한다.
[도로개설중]
도로개설중인 곳에서 다시 오르막을 따라 올라서서 진행을 하면 임도처럼 넓은 등산로가 이어진다. 여기부터는 높낮이가 전혀없는 평탄한 산책길이 이어진다. 계속 진행을 하면 내조봉삼거리 이정표가 있는 곳에 도착을 한다.
[내조봉삼거리 이정표]
피재(06:32)
삼거리를 지나서 임도를 따라 진행을 하다 다시 우측에 있는 작은봉우리 방향으로 올라서서 진행을 한다. 임도를 따라 계속 진행을 하여도 다시 만난다. 잠시 올라서다 다시 내려서면 임도에 도착을 한다. 임도에 도착을 하니 저멀리 차량들이 어둠을 가르며 지나가는 불빛이 보이는 것이 피재를 통과하는 차량들이다.
임도를 따라 진행을 하며 잠시후 피재에 도착을 한다. 피재에서 잠시 휴식을 갖는다 후미가 내려오기를 한참을 기다려 보지만 내려 오지를 않는다. 아침식사를 하기에도 어정쩡한 시간이다. 일행 두명은 천의봉을 향하여 먼저 올라간다.
[피재]
낙동정맥 분기점(07:49)
피재에서 기다리다 추위때문에 더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천의봉을 향하여 오른다. 표시기를 따라 올라서다 우측 농가가 있는 방향으로 올라서면 철조망이 설치되여 있어 다시 내려와야 한다. 좌측으로 내려오면 농가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오고 길을 따라 올라서다 다시 좌측으로 방향을 잡고 다시 올라가야 한다. 좌측 능선을 따라 올라서면 목장지대 초지가 있는 곳이 나온다 초지로 들어서지 말고 좌측으로 직진하여 올라서서 진행을 하여야 한다. 목장 초지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아침식사를 먹는다. 날씨가 실안개가 끼는 것이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처럼 느껴진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서 좌측방향 능선을 따라 진행을 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을 버리고 우측으로 진행을 하며 낙동정맥 분기점 표지석이 있는 곳에 도착을 한다.
[낙동정맥 분기점]
낙동정맥 분기점에서 백두대간길을 따라 올라서면 우측으로 고냉지 채소밭이 나온다.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는 없었던 새로운 길들이 만들어져 있다. 고냉지채소밭 좌측으로 등산로를 정비하여 놓았으며 난간도 만들어 놓아 채소밭과 시골의 운치와 정겨움을 느낄수 있도록 주변을 정비해 놓았다. 매봉산 풍력발전소를 테마로하는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하나의 노력으로 보인다. 채소밭 좌측에 있는 나무들이 상고대를 이루고 있으며 천의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도 여름내내 자랑하던 푸른 옷을 벗어 버리고 하얀저고리로 갈아입고서 자랑을 하고 있다.
잠시후 콘크리트 도로가 있는 곳에 도착을 한다.우측은 고냉지채소밭 마을로 가는 길이고 좌측은 천의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좌측으로 조금 올라서면 콘테이너박스와 비닐하우스가 있는 곳에 도착을 하니 함께 올라오다 헤어진 일행이 혼자서 아침을 먹기 위하여 라면을 끓이고 있다. 함께 합류후 천의봉 정상을 향하여 다시 벌걸음을 옮겨 놓는다.
[천의봉 오르는 등산로주변 상고대]
천의봉 오르는 등산로 주변에 있는 나무들도 하얀저고리로 갈아입고 자신의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는 것이 절경이다. 가파른 경사로를 따라 상고대를 감사하면 낙동정맥의 마지막을 장식할 천의봉을 향하여 다가간다.
[천의봉 오르는 등산로주변 상고대]
천의봉(08:32)
가파른 경사로를 따라 올라서서 드디어 천의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백두대간종주시 다시는 오지 않겠지 하면서 찾았던 천의봉을 다시 찾게 되었으며 몰운대에서 시작하여 1년 가까이 걸려서 한걸음한걸음을 걸어서 천의봉 정상에 도착하니 그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다시 찾은 천의봉이지만 전에 왔을 때와의 느끼는 감정이 전혀 새롭게 느껴진다.
누군가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자신은 대한민국의 아무산도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이유는 같은 산이라도 갈때마다 새롭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에 대하여 도를 득하지 않고서는 그런말을 날할 수가 없다고 생각이 든다.
낙동정맥의 마지막이라고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같이 한 일행들은 말은 하지 않지만 서로가 느끼고 있는 듯 하다. 대한민국의 등을 받치고 있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면서 영서를 구분하고 있으며 사람에게 해로움보다는 이로움을 주고 있으며 산마디 곳곳에 민초들의 삶이 베어 있으며 어떤때는 웃음으로 어떤때는 슬픔으로 사람들의 가슴에 남겨 주었으며 인간의 파괴로 인하여 곳곳에 멍들어 있지만 신음 한 번 못하고 묵묵히 인간의 재롱을 지켜만 보고 있기도 하다. 모든 수난과 고난을 감내하면서 인간에게 원망을 할 수 없으며서도 정맥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등산객들이 찾으면서 또 한번의 시련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대하여 감사와 미안함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또다시 천의봉을 찾을 때의 나의 모습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간다. 다시 찾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때에도 미안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천의봉에 대한 문헌에 나와 있는 것을 발췌하여 살펴본다. 원래는 천의봉이었으나 후에 매봉이라고 불리우게 되었다고 한다. 국토지리정보원과 태백문화원에 있는 것을 소개를 한다.
매봉산 鷹峰山 Maebongsan [異] 천의봉(天儀峯)
시의 삼수동에 있는 산이다(고도 : 1,303m). 예전에는 천의봉(天儀峯)이라 부르던 산이다. 이 산은 백두대간에 놓여 있으며, 영남의 낙동정맥을 따라 산을 거슬러 올라와 황지로 접어들면 복쪽에 가장 높이 솟은 산이 천의봉이다. 또 삼척시 하장면 쪽에서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오면 제일 높은 산이 천의봉이다. 그래서 과거 하장(下長)과 상장(上長)을 나눌 때 이 산이 기준이 되었다. 그런데 『태백의 지명유래』에 의하면 이 산봉은 남쪽 산록의 연일 정씨 묘에서 바라보면 매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닭이 알을 품을 때 수리가 명당을 노려보고 있어야 한다는 풍수이치 때문에 매봉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정씨 가에 의해서 천의봉이 작위적으로 매봉이라는 지명으로 바뀌었음을 엿볼 수 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명유래-
天儀峯
天儀峯은 太白山의 북쪽 봉우리로 白頭大幹과 洛東正脈이 갈라지는 산이다. 흔히 매봉산으로 불리워지는 이 山은 三江(漢江, 洛東江, 五十川)의 發源地가 되는 곳으로 대단히 의미가 있는 山이다. 이 山 북쪽 사면은 거의 頂上 부분까지 高冷地菜蔬栽培團地로 開墾되어 있다. -태백문화원 백경문-
[천의봉]
[천의봉]
[천의봉]
[천의봉 상고대]
삼수령(09:15)
천의봉에서 오래 머물면서 낙동정맥을 따라 올라온 기억들을 되시기다. 아쉬움을 남기면서 천의봉을 가슴에 묻어두고 올라왔던 등산로를 따라 다시 내려간다. 오늘의 종착지인 삼수령으로 내려간다. 잠시후 삼수령에 도착을 한다. 삼수령과 삼수동에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내요을 소개한다.
삼수동 三水洞 Samsu-dong
시의 북서쪽에 위치한 동이다. 삼수동은 1998년 행정동을 조정할 때 활지3동․화전1동․화전2동․사조동의 4개 동을 합하여 만든 새로운 동이다. 현재는 황지동․화전동․족각동․창죽동․원동․상사이동․하사미동․사탄동 등 8개 법정동을 관할한다. 관내로 지나는 태박산 줄기의 삼수령(三水嶺)에서 한강의 근원인 골지천, 낙동강의 근원인 황지천, 삼척의 근원인 오심천이 발원한다. 동 이름은 이 삼수령에서 따온 것이다. 『해동여지도』에는 삼수산이라 표기되어 있다. 『태백의 지명유래』에 의하면 법정동 중 화전(禾田)은 낙동강의 최상류에 위치한 마을로 수아밭이라고 부르던 곳이다. 수아밭은 벼밭(禾田)으로 논(水田)을 의미하는 말이다. 예전에 전나무배기와 초막 사이의 넓은 땅에 12마지기 논이 있었는데, 그것을 수아밭이라 하였다. 한자로는 수화전(水禾田)․수화전(水花田)․화전(花田) 등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이곳에 마을이 처음 생긴 것은 조선 중종 초에 삼척 김씨가 하장면역둔리에서 이주하여 개척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점에서 보아 화전이란 이름은 조선 중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편찬된 『삼척군지』에 의하면 경북궁을 중수할 때 삼수동의 금대봉(1,418m)과 매봉산(1,303m)에서는 황장목(黃腸木)이 반출되었다. 석탄광업이 전성을 이루던 시기에는 탄광이 밀집하던 지역이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명유래-
三水嶺
원래는 피재(避峙)라고 부르는 고개인데 이 고개 마루 부근에서 삼강(三江 : 三水) 곧 漢江, 洛東江, 五十川이 發源되는 것이 밝혀져 삼수령(三水嶺)이라 명명하게 되었다. -태백문화원 백경문-
[삼수령]
[삼수령]
[산신제]
삼수령에 도착하니 지난번에 먼저 통리역에서 삼수령까지 산행을 마친 집행부에서 낙동정맥 무자종주 산신제를 지내기 위하여 정자에 정성스레 제물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모든 일행이 하산후 무사감사 산신제를 지내고 태백으로 이동을 하여 완주자 및 종주자에 대한 패를 증정하고 뒷풀이를 하면서 낙동정맥 종주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낙동정맥종주를 함께한 백두사랑산악회 회원들에게 진심으로 축하와 감사를 드리며 산행시 매번 회원들의 안전과 진행을 위하여 고생이 많은 집행부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낙동정맥종주에 이어서 낙남정맥종주를 이어가면서 모든 회원 여러분이 무사하고 안전한 산행이 될 수 있도록 기원 드리면서 발걸음 마다 땀과 추억이 서려 있는 낙동정맥종주를 국토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자신과의 약속이행 이라는 또하나의 실천으로 생각하면서 모든 회원과의 낡은 사진으로 남기고 몰운대에서 피재까지의 낙동정맥종주를 모두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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