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간 내 친구
돌아오는 길에 나는 지금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반겨줄 소꿉친구의 해맑은 얼굴을 떠올리며 안도역에서 내려 곧추 정순이를 찾아갔다. 정순이네가 경영한다는 금점을 찾아갔을 때 나를 맞아준것은 정순이가 아니라 정순이남편의 풀이 죽은 얼굴이였다. 그동안 정순이가 버텨내지 못하고 급기야 저승길에 올랐던것이다.
어떻게든 살겠다고 아득바득하던 정순이가 암진단을 받은지 두달이 못되여 저세상 사람이 될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녀자나이 서른둘이면 한물 갔다고 할수도 있겠지만 질적으로는 한창 삶의 진미를 느끼며 열심히 살 나이이다. 나는 죽어간 사람도 슬펐지만 엄마없는 풀과 같은 아이가 불쌍해서 정순이가 남기고 간 일곱살난 딸을 와락 끌어안고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울고나니 속이 조금은 풀리는듯 싶었다. 나는 돈 백원을 꺼내여 아이의 여린 손에 쥐여주었다. 그런데 또 다른 실망과 슬픔이 내 정수리를 쳤다. 엄마가 보고싶지 않느냐고 묻는 나의 말에 계집애가 돈을 뿌리치며 하는 대답이 억이 막혔다.
《돈 싫어, 우리 아버지 돈 정말 많이 번다. 그리구 나 엄마 무서워, 엄만 나한테 얼마나 무섭게 굴었다구…우리 유치원 선생님이 내 새엄마가 되여준다고 했어.》
애가 또박또박 섬기는 말에 내 가슴은 오리오리 찢어지는것만 같았다. 물론 어른이 시켜서 애가 이렇게 말하는것은 아니라는것을 나도 모르는바가 아니였지만 내 눈은 어느새 정순이남편의 얼굴을 찌르고있었다. 정순이남편은 당혹스러움에 얼굴이 붉어지면서 애의 말에 토를 달았다.
《정순이가 제몸이 아프니 귀찮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죽기전에 애하고 정을 떼느라고 그랬는지 확실히 애에게 못할짓도 많이 했소. 때리고 욕하고… 나는 나대로 정순이를 살려보자고 몇만원을 병원에 밀어넣었지만 결국은 구하지 못하구 말았소. 산사람이야 살아가겠지만 죽은 사람만 불쌍하지. 정순이가 죽은지 열흘도 못되여 벌써부터 혼사말이 들어온다오. 애가 말하는 유치원선생도 제쪽에서 구미가 동해서 야단인 모양이요. 허허허… 》
그의 웃음은 분명 안해를 잃은 남편의 허탈에 가까운 웃음이였지만 나의 귀엔 그 웃음이 그렇게도 매정하게 들렸다. 아, 생과 죽음사이는 종이장 한장 사이련만 이렇게도 지척이 천리란 말인가? 나는 그 자리에 더 있다가는 분통이 터져 무슨 말이 어떻게 나갈지 몰라 문을 박차고 뛰쳐나오고야 말았다. 이제 누구와 무슨 말을 더 한단말인가?
밖에 나오니 어느새 밤하늘에 외로운 달만이 댕그랗게 걸려서 말이 없다. 달빛은 그렇듯 차갑고 쓸쓸하기만 했다. 나는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칠념도 없이 타향의 밤길을 터버터벅 걸었다. 친구도 없는 시골의 작은 거리에 찬바람만 옷깃을 파고들었다.
하긴 내가 너무 감상적이 아닌지 모르겠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기마련이 아니던가? 수많은 시간으로 채워지는 세월엔 정지점이 없다. 흐르는 세월따라 사람도 늙어가고 늙어지면 이렇게 저렇게 죽어가게 되여있다. 그러나 내 친구 정순이는 세월의 희생품이 아니다. 아까운 청춘에 요절한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 슬픔을 참을수 없고 인생의 허무함에 진저리쳐지는것이다.
이 시각도 어느 집 벽시계는 《똑딱, 똑딱…》하며 세월의 페지를 기록하고있을것이다. 사람의 생명이란 황당하고 가소로울 정도로 순간적이다. 하다면 얼마나 오래 살아야 만족할것인가? 《똑딱!》누구는 행복한 사람이 된다. 《똑딱!》 그러나 뒤미처 누군가 불행의 심연에 빠진다. 이것이 인생마당이요 우리네 삶의 려정이다. 현대인으로서 이젠 죽음에 습관되여야 할 때이건만 나는 정순이의 죽음을 받아들일수 없다.
나는 천당도 지옥도 믿지 않는다. 죽는다는것은 일종의 해탈이란 말에 대해서도 절실한 느낌이 없다. 아마도 내가 아직은 젊어서 그렇기도 하리라. 친구가 없는 그 밤거리에 내가 살아서 걸어간다는것이 행복인지 슬픔인지도 모르고 나는 무작정 걷고 또 걸었던것만은 사실이다. 나는 친구 정순이가 내 뒤를 쫓아오는것같은 환각에 빠졌더랬다.
…그날 나는 자기가 하는 일에 자각을 가지고 죽음의 공포를 가셔버리며 정직하고 성실한 생활의 길을 걷는다면 사는 날까지 제마음에 물어 부끄럼없는 경지에 이를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불쌍한 내 친구야, 너무도 일찍 딴 세상으로 간 정순아, 네가 있는 천국엔 따스한 달빛이 너를 비추고있느냐? 여기 이 하늘의 달빛은 그날의 그 달빛처럼 하늘에서 차디차기만 하구나. 명복을 빈다, 그예 가버린 내 친구야!
첫댓글 결국은.. 돌아 가셧꾼....휴..~~~~~~~~~~~~ 한숨..
무지개 인생님의 안도 친구 너무 일직 하늘나라 가셨군요.참 안되였어요.불행중다행으로 친구가 글을 써서 명복을 빌어 조금 위안을 느끼겠군요.잘보구 갑니다.
참,한순간이라는 인생살이에 희노애락이 동반하죠 아까운 나이에 락도 못본 친구가 불쌍하네요 심신이 착한사람은 천국에서도 좋은 대우를 받을겁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공평하니깐요
참...세상은 왜 이럴가요? 안타깝게 저세상으로 가버린 친구. 너무 마음이 아파요.
고생고생 하다가 살만하니 몹쓸병에 걸려서....... 친구분의 명복을 삼가 빕니다.
고생끝엔 락이 온다고 했는데 정말 안됐네요 하늘나라에센 앓지 안고 건강하게 웃으며 살겁니다.
참말로 안됬네요....너무 일찍 하늘 나라에 간 정순씨 명복을 빕니다.이 세상에서 못 누린 행복과 락을 저 세상에서 만끽하면 잘 살리라 믿습니다.....무지개 인생님 덕에 좋은 글 감상합니다.감사합니다.
착한분이 고생만 하다 저세상에 가시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네요. 가슴아픈글 잘 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