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신문
초등학교 시절,
새 학년이 되면 가정환경 조사서라는 걸 제출했다. 동산 부동산이란 낱말도 거기서 배웠다. 부모의 직업 학력 재산 정도를 상세히 적어야 하는 그 조사서는 늘 난감한 종이었다. 하지만 자신 있게 동그라미 칠 수 있는 항목도 있었다. 문화생활 조사 중 책상 소유,
신문 구독에 동그라미를 그려 넣을 땐 열등감이 상쇄되는 듯싶어 으쓱한 기분이 됐다. 동네에서 제 책상에서 공부하며 신문 구독도 하는 집은 우리 집 뿐이었으니까.
술래잡기하며 들고 간 신문을 읽을 때, 친구들이 등 뒤에서 수군댔다. 쟨 신문도 읽어.
그 시절 읽고(?) 있던 건 만화 <고바우 영감>이었다. 만화가 끝나면 박영준의 연재소설도 더듬더듬 읽었다.
말하자면 어른의 세계에 일찍 입문한 셈이었다. 얼마나 읽기에 빠졌느냐 하면, 시장에서 생선 싸 준 신문 쪼가리도 냄새를 참고 읽었다.
백과사전 읽기만큼 재미있었던 신문. 그러기에 60,
70년대를 건너오며 한때 신문기자 직을 동경한 적도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엔 더욱더 언론은 제4의 권력 기관이었다.
1, 2, 3의 권력 기관 사람들도 신문기자의 밥을 얻어먹어 본 사람은 없다고 한다. 무소불위 무관의 제왕.
신문사 깃발 달린 차 한번 얻어 타면 기분이 그리 좋을 수 없었다.
한데 상전벽해라고,
세월이 흘러 사회 변혁(?)이 일어났다. 요즘은 매체가 다양해져 자기 블로그 가진 사람이면 너도나도 기자고,
앞으로 없어질 직종 중 상위라고도 한다. 보도론 신문기자는
13% 감소할 것이라 한다. 신문의 재료 또한 일대 변혁이 일어나 종이가 아닌 사이버 공간이 됐다.
사양(斜陽)도 이런 사양이 없다. 그럼 정말 종이 신문이 없어지게 될까?
추측건대 종이 신문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손바닥 크기의 휴대전화로 들여다보는 갑갑한 지면(誌面)과 전지(全紙)를 펼쳐 들고 읽는 지면의 가독감(可讀感)은 비교가 안 된다. 활짝 펼쳐 들면 그날 뉴스가 한눈에 일별 되는 신문의 속 시원한 느낌을 무엇과 바꾸랴.
본디 종이 신문의 속성이 성녀와 창녀다. 여명이 밝아올 무렵 가슴 두근거리며 담 너머로 신문 떨어지는 소리를 기다리지만,
다 읽고난 오전 열 시경이 되면 그것은 쓰레기로 둔갑했다. 그리하여 예전엔 습자 시간에 연습지로 그만한 게 없었고,
화장지가 없던 시절엔 뒷간에서도 절대 유용했다. 흠이 있다면 인쇄 잉크가 묻는 것이지만. 흠흠! 시장에서도 신문지가 없으면 장사를 할 수 없었다. 물 떨어지는 생선을 척척 잘라 싸주던 아주머니의 손길은 영원한 추억이다.
또한, 만일 옷장을 정리하는데, 소포를 포장하는데 신문지가 없다면? 거기에 종이 신문은 절대 필요 요건이다.
나프탈렌 대신,
뽁뽁이 대신.
그리고 그로부터 몇 년 지난 후 그것들을 다시 펼쳐 보았을 때 거기 함께 들어 있던 구겨진 신문지를 펴 보라. 흘러간 시간의 날짜가 거기 있고, 시간의 묵은 냄새까지 느껴 볼 수 있다. 나프탈렌 대신 느껴지는 묵은 시간의 새삼스런 냄새.
게다 기름기를 잘 흡수하는 신문지는 청소 용구로도 유용하다.
기름기 낀 프라이팬을 신문지로 먼저 닦아낸 후 비누로 씻으면 (밀가루로 씻어내는 분도 있다 한다.)
환경 보호 차원에서 말끔하게 설거지가 끝난다. 튀김 요리할 때도 필요하다. 바닥에 아낌없이 신문지를 쫙 깔고 맘 놓고 튀김 요리하는 즐거움이란… 또 먼지 쌓인 현관을 청소할 때 신문지를 적당히 찢어 늘어놓고 그 위에 물을 뿌린 후 비로 쓸어내면 청소 끝. 중고교 시절 유리창 청소 담당이었을 때 신문지 갖고 있던 아이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냉장고에 채소 보관할 때도, 철 지난 신발을 보관할 때도 종이 신문은 절대 필요하다.
발 냄새를 흡수하고 신발 모양을 바로잡아준다. 벽지를 바를 때 초벌로 신문지를 붙이는 집도 있다.
그야말로 종이 신문의 송덕(頌德)은 끝이 없다.
한데 최근에 종이 신문의 쓰임에 대해 귀한 발견을 하나 더 하게 됐다. 유명 식당에 가서 피시 앤드 칩스를 주문했을 때,
기름 많은 그 음식에 깔려 나온 건 뉴욕 타임스를 자른 종이 신문이었다. 그 쓰임새에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만일 어느 변덕쟁이 유명 디자이너가 신문을 포장지로 사용한다면, 연말 선물 포장지는 몽땅 종이 신문이 되지 않을까. 정육점의 고기 싸는 포장지도, 그로서리 브라운 백도 센스 있는 포장지로 각광 받는 세상에 그건 무리한 상상이 아니다.
오늘도 나는 인간과 더불어 지낸 200년 남짓, 필요불가결의 존재가 된 종이 신문의 덕을 송축(?)한다.
첫댓글 많은 사람들이 날보면 기자가 아닌가 물었어요. 형제 신문에 7~년 관여는 했었는데, 신문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자못 궁금합니다. 살아서 인간들 곁에서 장수를 누릴지. 나는 신문을 받아 펼치면 냄새가 좋았어요. 잉크와 종이가 비벼진.
종이 신문이 골동품의 가치를 가지는 시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요즘 다운타운 꽃시장에 가서 꽃을 번치로 사올 때
꼭 싸주는 종이가 한국신문지 이더군요,
타임즈 신문보다 폭이 넓어서 인지
한국신문으로 포장을 해주더군요.
신문이 구문이 되어 있어도 반갑게
기사를 읽게 되는건
신문사 밥을 20년 먹은 탓일까..,?
신문지에 물건 싸 주면 속상하던 경험 없으세요? 저거 내가 만든 신문인데, 하고.ㅎㅎ
대학 동창들은 제 앞에서 학보를 깔고 앉지 못했어요. ㅋ
생활 속 신문지 활용하기를 찾아보니
야채, 과일 보관할 때
신발 보관할 때
기름 때 제거할 때
무뎌진 칼 갈기
창 틀 먼지 제거
악취 제거
이렇게 신문지가 여러가지로 유용하게 쓰이네요.
신문지의 유용함은 헤아릴 수가 없어요. 오죽하면 송축가(?)를 지었겠습니까.ㅋ
오.. 문화생활 조사? 그런 것도 있었군요. 생선비린내를 참아가며 신문을 읽은 소녀의 모습이 눈에 선해요. 얼마나 읽을거리가 좋았으면 그랬을까. ^^ 저도 초등학교 때 무엇이든 읽을 수 있는 것이면 닥치는대로 읽었는데, 책 뿐 아니라 엄마가 보시는 각종 여성잡지들도 샅샅이 섭렵하곤 했죠 ㅎㅎㅎ 영어도 모르면서 엄마가 "미제 가게"에서 사가지고 오신 미제 초콜렛과 스팸 따위에 적힌 Ingredients 와 Nutritian Facts 같은 것을 사전 찾아가며 한단어 한단어 끙끙대고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ㅋㅋ
성녀와 창녀 ㅋㅋㅋ 참 적절하면서도 씁쓸한 비유네요~ ^^ 신문의 용도가 참 다양해요~
공순해 회장님, 문창국 선생님, 포토제닉 선생님이 모두 언론인 출신이시군요.
저도 그렇습니다.
8년 6개월 간 기자 생활 했습니다.
옛 동지들을 뵈어 반갑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