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 불면증을 치료한 경우 (조세신보 치험례 29)
45세의 J 아주머니는 불면증을 견디다 못해 한의원에 찾아왔다. 대부분 불면증이 생기면 양방 신경정신과를 먼저 찾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신경안정제나 수면제를 처방 받아 복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너무 오랫동안 복용해서 지겹거나 더 이상 약효가 듣지 않으면, 그제야 한의원을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J 아주머니의 경우에도, 평소 잠을 좀 설치거나 깊은 잠을 들지 못하는 정도의 증상은 가지고 있었는데, 작년부터 생리불순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증상이 악화되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도 갱년기증후군의 일종이겠거니 하면서, 치료를 미루었는데, 지난달부터 아예 한잠도 못자는 날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양방 신경정신과에 가서 수면제를 처방 받아 복용했는데, 이후 몇 주가 지나면서, 이제는 수면제를 먹어도 정신만 몽롱해지고 잠은 오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이어서 약을 바꾸었는데도 계속 잠이 오지 않자, 급기야 필자의 한의원에 찾아온 것이었다.
<진단과 치료>
불면증은 원인과 증상이 매우 다양하다. 단순히 잠을 설치는 경우도 오랜 기간 지속되면 불면증에 속할 수 있으며, 꿈을 많이 꾸는 것도 심한 경우에는 불면증의 범주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잠자리에 누웠음에도 쉽게 잠을 들지 못하는 경우를 불면증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중간에 한번 깨면 날밤을 꼬박 새는 경우도 이에 포함된다.
임상적으로 가장 많은 경우가 스트레스에 의한 불면증이다. 주로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에게 많이 나타나는데, 반드시 속상하고 억울한 경우만 스트레스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때 소풍가기 전날 긴장되고 두근거려서 잠을 잘 이루지 못했던 기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또 다음날 해야 하는 일에 대해 거듭 생각하고 계획하느라 밤을 꼬박 샌 경험들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방에서는 ‘희노우사비공경(喜怒憂思悲恐驚)’의 일곱 가지 감정 모두가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바꿔 말해 기쁘고 즐거운 것도 과도하면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감정과잉 상태는 불면증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동반증상을 일으킨다. 위장장애가 대부분 나타나며, 탈모증상이나 생리불순, 성기능장애 및 근육통까지 생기는 경우도 있다. 한의약에는 이러한 감정과잉 상태를 조절하는 수많은 치료방법이 있다. 각종 한약 처방이 있으며, 침법 또한 많다. 실제 평소에는 잠을 잘 자지 못하는데, 한의원에서 침만 맞으면 푹 자게 된다고 말하는 환자분들도 많다.
두 번째로 많은 것은 몸속에 화나 열이 많아진 경우다. 음식으로 인한 것이든 호르몬 조절이 안 된 것이든 간에 몸속에 화열이 많아지면 잠이 안 오게 된다. 여름철 한참 더운 때에 소위 ‘열대야(熱帶夜)’ 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인체는 더위를 느끼게 되면 잠이 잘 오지 않게 된다. 반대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한겨울 눈 속에서 잠들어 죽는 장면을 보면, 추울 때는 오히려 잠이 잘 오게 된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겠다. 이러한 경우에는 온도조절 능력을 회복시켜주고, 체내에 쌓인 쓸모없는 화나 열을 제거시켜주는 처방을 사용해야 한다.
울화병 또한 불면증의 원인이 되는데, 이는 속상한 것이 오래되면 가슴에 쌓여 심화(心火)로 변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갱년기증후군이 겹치게 되면, 그 증상은 매우 악화되기 마련이다. 순서가 바뀌어도 마찬가지인데, J 아주머니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 갱년기증상으로 인해 인체의 음혈(陰血)성분이 부족해졌고, 상대적으로 몸속에 쓸모없는 화나 열이 늘어나서 불면증이 시작된 것이다. 여기에 스트레스로 인한 울화(鬱火)까지 겹치게 되어 증상이 심해졌던 것이다. 이러한 원인 기전을 해결하지 않고, 무작정 잠 오게 하는 수면제만 복용했더니, 병이 더욱 심해진 것이고, 결국 수면제가 듣지 않게 된 것이었다.
심화(心火)를 가라앉히면서 음혈(陰血)을 보충시켜주는 근본처방을 투약하였는데, 금세 잠자리가 부드러워졌다. 이후 수면제를 완전히 끊게 되었는데, 일반적으로 처음에는 수면제를 같이 복용하다가 차츰 끊어나가는 것이 보편적인 치료법이다. 그러나 수면제 복용기간이 길지 않으면, 처음부터 아예 끊어 버리고 오로지 한약만으로 조절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