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행 장로의 집안은 어떻게 믿음의 반열에 올랐을까? 조선행 장로의 외할머니는 전형적인 촌로였다. 아침마다 물을 떠 놓고 치성을 드리던 분이었다. 교회와는 거리가 먼 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외삼촌이 많이 아팠다. 외삼촌은 병명도 나오지 않은 채 충남도립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하지만 얼른 낫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목사님과 성도님들이 찾아와서 기도를 해 주었다.
아픈 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시는 목사님을 보면서 불현듯 교회에 가고 싶었던 외할머니. 외할머니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다. 외삼촌의 병이 깨끗이 나았다. 외할머니는 치성을 드리던 물그릇에 다시는 물을 떠 놓지 않았다. 외할머니 입에서 찬송가가 흘러나오고, 기도소리가 밤새도록 이어질 때 쯤 어린 조선행 장로도 어머니 손에 이끌려 교회에 간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렇게 조선행 장로의 집안에 임했다. 어린 조선행은 유년부와 학생회를 거치면서 믿음 안에서 성장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고 행복한 조선행 장로, 그는 글로리아콘서트콰이어를 이끌고 전국을 누빈다. 공연 절반이 사례비를 전혀 지급할 수 없는 작은 교회이다. 어느 때는 합창단원보다 회중석에 앉은 교인들의 수가 더 적다. 그래도 조선행 장로의 지휘봉은 아름답게 허공을 가른다. 조선행 장로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고인이 되신 천안 학화호두과자 할머니가 지은 성심교회에서의 공연, 수요일 저녁에 이루어진 공연은 너무도 적은 사람이 모였다. 실망이 되었다. 지휘봉을 든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조선행 장로는 기도했다.
“주님, 사람을 보고 찬양하지 않게 해 주세요.” 그의 기도를 하나님이 화답하신 걸까? 그의 지휘봉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반짝였고, 참으로 큰 은혜가 임했다. 관중석이 가장 적었지만 은혜가 가장 컸던 그 날, 회중석에 앉아서 합창공연을 보았던 여고생은 훗날 음악가가 되어 조선행 장로를 찾아온다.
1993년에 창단한 글로리아콘서트콰이어, 22회 정기공연의 역사를 자랑하는 합창단은 연습은 물론 모든 행사에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난다. 물론 합창단 전원이 다 기독교인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합창활동을 하다가 대부분 신앙을 갖게 된다. 그럴 때, 조선행 장로는 말할 수 없이 기쁘다. 글로리아 합창단, 부르는 곳은 어디든지 달려간다. 아주 작은 산골 교회에도 달려가고, 교도소나 군부대 혹은 병원 연주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달려간다. 어느 무대에 서든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기를 소원한다.
합창단 단원은 50여 명이다. 단원 중에 누구도 사례비를 받지 않는다. 매월 회비를 내면서 합창단 활동에 동참한다. 전공자와 비전공자가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조선행 장로가 장로로 시무하고 있는 교회는 1961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충남노회가 개척한 충남 아산에 있는 온양장로교회이다. 한 때는 민주화 운동의 높은 기치를 올렸던 교회이다.
조선행 장로가 이끌고 있는 또 하나의 사역지, 바로 기독음대이다. 40년 전, 교회음악 지도자와 지휘자를 길러내기 위해 김두환 학장이 기독교음악 통신대학을 설립했다. 기독음대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배울 수 없는 전통적인 예배음악을 가르친다. 교회에서 반주자와 지휘자로 헌신하는 이들이 찾아와 체계적인 공부를 하는 곳이다. 기독음대는 교육부가 인정하고, 세상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대학이 아니다. 하지만 일반 대학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을 얻는 기쁨이 있다는 고백이 이어진다. 왜 그럴까? 바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대학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여파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기독교음악통신대학 천안분교, 조선행 장로의 헌신으로 많은 반주자와 지휘자와 성가대원들이 실력을 쌓아가고 있다.
조선행 장로는 큰 꿈을 꾸고 있다. 조선행 장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리는 쓰리 테너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호세 카레라스,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이 세 사람은 천상의 목소리를 가졌습니다. 쓰리 테너의 노래는 생동감이 가득하고, 섬세한 표현에서는 탄복을 할 지경이죠. 그런데 이 쓰리 테너는 모두 빈소년합창단 출신입니다. 만약 우리에게도 빈소년합창단과 같은 시스템이 주어진다면 쓰리 테너에 견줄만한 음악가들이 많이 나올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날마다 꿈을 꿉니다. 글로리아합창단을 통해서 이 땅에 사랑과 평화가 가득해지는 꿈, 그리고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배출되는 꿈을 꿉니다. 그러한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하지만 우리가 빈소년합창단과 같은 시스템은 갖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여건에 맞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 | | ▲ 글로리아소년소녀합창단 | 오십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조선행 장로, 그는 청년처럼 아주 많은 계획들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그의 큰 꿈에서 그 계획들은 탄생되었을 것이다. 조선행 장로의 이야기는 더 계속된다.
“2013년, 독일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학교 공부를 마친 독일 학생들이 오후에는 음악학교 합창센타로 가더군요. 그때 결정했어요. 음악을 사랑하는 학생들이 학교 공부가 끝나면 가방을 멘 상태로 달려오는 음악학교를 꼭 만들자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학생들은 반드시 세상을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 겁니다. 어떤 곳이든 음악이 있는 곳은 불행하지 않습니다.”
조선행 장로의 꿈은 언제쯤 이루어질까? 한 사람이 가진 열정으로 인해 마을이 변하고, 지역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더 나아가서는 한 사람으로 인해 나라가 변하기도 한다.
그 한 사람이 천안에 있다. 그 한 사람이 충남에 있다. 그 한 사람이 대한민국에 있는 것이다. 그가 속한 교회는 그로 인해 날마다 성가가 울려 퍼지고, 그가 있는 천안의 기독교음악통신대학에서도 날마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울려 퍼지는 것처럼 조선행, 그가 있는 자리는 어디나 노래가 있다. 노래가 있어서 행복한 사람 조선행, 아쉬움은 없을까? 그가 털어놓는 이야기는 좀 마음이 무겁다.
“장로로 임직이 되었는데, 장로로서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울 때가 있습니다. 장로라면 마땅히 교회에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지요. 아주 작고 사소한 일부터 큰일까지 말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주일은 더 바쁩니다. 더구나 주일날 오후에는 여러 곳에서 공연요청이 들어와 글로리아합창단을 이끌고 예배 직후에 바로 교회를 떠나야 하는 일도 있어서 죄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교회에는 조선행 장로가 아니어도 누군가 대신 해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글로리아합창단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은 조선행 장로 단 한 사람뿐이다.
조선행 장로, 그가 있는 곳에 노래가 있다. 그가 있는 곳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맑은 영혼의 소리가 있다. 오늘도 조선행 지휘자의 손끝을 바라보며 부단히 연습하고 있는 글로리아 콘서트콰이어 합창단, 조선행 장로의 아름다운 꿈과 함께 선교도 더더욱 빛나리라.
크리스챤신문, 2015. 5. 23 http://www.cwmonitor.com/news/articleView.html?idxno=4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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