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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농업기술센터 고찬훈 지도사 |
세계 1등 菊花축제를 꿈꾸는 사나이 전남대 농대 1년생이던 1993년 운명처럼 국화와 인연 공무원 2년차이던 2004년 2400만원으로 첫 축제 시작 10년 만에 전국 최고 함평 ‘대한민국 국향대전’ 일궈내 “이 꽃으로 지역민들이 행복하고 잘 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함평군농업기술센터 고찬훈 지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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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정부 및 시·도 보조금 지원 없이 요
2014년 정부 및 시·도 보조금 지원 없이 요금수익만으로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행사·축제는 전라남도 함평군의 ‘대한민국 국향대전’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안전행정부의 지자체 행사축제의 원가정보 통합공시에 따르면, 함평군의 축제 ‘대한민국 국향대전’이 국가나 시·도 보조금 없이 총원가 대비 78%의 높은 사업수익비율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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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관람객-입장료 신기록 수립
11회째를 맞은 ‘대한민국 국향대전’은 2014년 10월 24일부터 11월 9일까지 17일간 함평엑스포공원에서 <국화향기 그윽한 풍요로운 함평천지!>라는 주제로 열렸다.
유료입장객 20만919명에 7억4800만 원의 입장수입과 농·특산품, 한우판매장, 음식점 등 축제현장 판매매출이 11억4900만 원을 기록할 정도로 성공리에 마친 2014년 축제는 하루에 2만9314명 방문과 입장료 수입 1억3749만8천 원으로 국향대전 1일 최대 유료관광객 및 입장료 수입 기록을 갈아치우며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수익률 1위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명성에 걸맞게 늦가을의 정취와 한 해의 마지막을 알리는 그윽한 국화꽃 향기를 맡으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장사진(長蛇陣)을 이룬 것이다.
국향대전이 전국에서 가장 알차고 으뜸인 축제로 평가받은 비결은 소모성 예산을 줄이고 축제 기획부터 전시, 행사 진행에 이르기까지 공무원과 군민들이 직접 맡아 치른다는 것이다.
새마을부녀회, 여성방범대, 모범택시회 등 봉사단체와 학생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서면서 경제적으로 큰 지출을 줄였다. 대부분 지자체가 기획사에 축제를 맡기는 것과 달리 관련 부서 공무원들이 팀을 꾸려 전시 프로그램을 맡아 행사를 치른 것이 수익률 최고의 축제로 자리 잡게 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안병호 함평군수는 “이벤트성 행사를 없애 축제 예산을 40%나 줄었으며, 공무원과 주민의 봉사정신이 뭉쳐서 축제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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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인기가수 초청공연이나 불꽃놀이 등을 대신해 시낭송회, 사생대회, 사진전 등 국화꽃 콘셉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채웠으며, 함평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축제에 필요한 100억 송이 국화를 자체 조달하는 대량 생산체계를 갖춘 것도 예산을 줄이는 데 한몫했다.
더욱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300여종의 신품종 국화를 선보이고, 실제 크기의 1/2 규모의 숭례문과 실제 크기의 독립문을 국화로 만드는 등 전국의 국화축제 문화를 선도하고 있어 타 지자체의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
#‘농업은 나의 꿈! 국화는 나의 인생!’
이렇게 최고의 축제로 자리매김하기까지 가마 메는 힘듦을 감내한 한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런 인물이 못 된다. 다른 분 알아보라. 나보다 더 애쓰신 분들이 많다”며 극구 인터뷰를 사양했지만, 기자의 끈질긴 설득에 응해준 함평군 농업기술센터 고찬훈 지도사가 그 주인공이다. ‘농업은 나의 꿈! 국화는 나의 인생!’을 모토로, 국화에 미친 사람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열렬한 국화 사랑을 실천해가는 그에게 이제는 국화가 인생이 되어버렸다.
국화명인, 국화박사, 국화달인이라는 닉네임과 스승(전우영 한국국화분재협회장)이 지어준 국향(菊香)이라는 아호(雅號)에 이르기까지 그에게선 온통 그윽한 국화향기가 풍긴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미래의 꿈’ 발표 시간에 “내가 태어난 완도군 소안도(島)를 다 사서 과수원을 가꾸어 봄, 여름, 가을, 겨울 쉴 새 없이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곳으로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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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서 온 관광객들을 유람선에 태워 섬을 일주하는 관광명소를 만들고 싶다”는 당찬 꿈을 가슴에 품는다. 당시 농어촌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잡지인 ‘새농민’을 즐겨 보면서 농업의 길을 설계해나갔던 그가 오늘날 ‘대한민국 국향대전’이라는 전국 명품축제로 확고한 자리매김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꿈의 결실은 알알이 영글어 가고 있다.
그와 국화와 인연은 전남대 농대 1학년 시절인 1993년이다. 학과 친구를 만나려고 우연히 찾은 국화동아리방에서 아름다운 국화분재 사진 한 장에 매료되어 동아리에 가입까지 하게 되는데, 그 작품이 일본에서 재배한 국화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자신의 운명이 바뀌게 된다.
국내에선 그런 작품을 만들 만한 실력이 없었다는 게 너무나 안타까웠던 것. 이후 그에게 새로운 목표가 주어지는데, 전국 제1의 국화 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을 설계한다.
대학 3학년 때는 동아리 회장을 맡으면서 백화점에서 전시회를 시작으로 그의 국화인생은 탄력을 받는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국화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재배기술을 익히고, 국내 국화전시회 및 축제에 빠짐없이 찾아다녔다. 국화가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든지 찾아다니면서 익힌 재배기술을 곧바로 농과대학 실습장에서 실험하기를 3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국화재배기술이 일취월장(日就月將) 했다.
국화축제의 문제점과 새로운 국화축제의 기획력도 함께 기르게 되면서 오늘날 대한민국국향대전의 꽃을 피우게 되는 ‘두엄’이 된다. 그때 경험하고 기획한 명확한 목표와 방향은 훗날 ‘대한민국국향대전’에 과감히 대입하게 된다.
그것은 반드시 축제에는 테마가 있어야 하고, 교육적이고 내용이 있는 국화축제, 전국적 국화동호회 활성화, 그리고 새로운 품종의 지속적 개발로 타 축제와 차원이 다른 차별화된 축제를 만들어야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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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장 잘 하는 건 국화랍니다!!”
1999년 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 지방농촌지도직 공채시험에 합격해 2003년 함평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일을 시작한 그에게는 뜻밖에도 벼농사 업무가 주어졌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오직 국화 생각만 가득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잘 하는 것이 국화”라고 떠들어댔지만 들어주는 사람조차 없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꿈을 접을 수 없었다. 휴일이면 국화 품종을 확보하려고 전남대 국화연구반과 패밀리랜드 국화팀 등 지인들을 만나면서 국화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당시 함평군청 이순영 기술보급과장이 국화를 키울 수 있도록 천금 같은 기회를 주었다. 우연한 점심시간에 이 과장이 “꿈이 뭐냐?”고 묻자 국화축제를 말씀드리게 되었고, 그동안 쌓아온 국화에 대한 노하우를 자세히 설명했다. 훗날 그는 이 과장을 기술센터 소장님으로 모시게 된다.
이런 계기로 국화축제 업무를 담당하는 지도사가 된 그는 국화축제 예산 2400만원을 확보했다. 이때가 2004년의 일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축제 이름이 느닷없이 가을나비축제로 바뀌게 되었고, 주위에선 ‘과연 될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가 많았다. 사람들의 의구심은 그에겐 오히려 험한 길을 헤쳐 싸워나가리라는 오기와 용기를 발동시켰다. 그에게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선물해준 이 과장은 “모두가 불만을 가져도 너는 불만을 가지면 안 된다. 왜냐하면, 너와 내가 국화축제를 하자고 해서 시작되었으니까”라며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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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모든 것을 겸허히 받아들여 묵묵히 일을 추진했고, 2004년 10월에 열린 첫 축제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대학교 동아리 후배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도움으로 많은 일을 쉽게 할 수 있었고, 대학시절 맺은 업체를 찾아다니며 국화 재배에 필요한 재료들을 가장 저렴하게 구입해 축제에 이용했다. 당시 8000여점의 작품으로 첫 국화축제를 열었고, 관람객 12만 명이 찾아올 정도로 예상 밖의 성과를 거뒀다. 이후 축제 이름 공모를 통해 지금의 ‘대한민국 국화대전’으로 정했고 예산은 매년 200% 성장하여 2010년 국향대전에서는 5억9천만 원을 들여 축제를 준비했다. 짧은 시간에 장족의 발전을 이룰 수 있게 큰 도움을 준 이순영 전 소장의 리더십에 그는 이 대목에서 깊은 감사를 표했다.
국향대전이 성공하면서 2005년 300명이던 국화동호회원들이 현재 전국적으로 4600여명에 이른다. 이제 국화는 함평의 자랑이자 국향대전의 얼굴이 되었다. 함평군농업기술센터에서는 전국 최초로 1년 과정의 국화전문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였으며, 수형별로 배우는 국화분재를 포함한 6권의 교재를 발간하여 무료로 배부하였다. 매년 국화축제장에서 신규 회원를 모집하는 과정을 거친다.
#수출되는 날 기다리며 연구도 열심
고 지도사는 공무원이 되기 전인 2003년 다음, 네이버 카페 및 블로그에 ‘국화마을’을 개설해 국화에 대한 재배기술을 무료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또한 스마트폰에 ‘국화마을’ 동영상 보기 공간을 만들어 누구나 국화에 대한 의문점을 풀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전국적으로 퍼져 국화박사라는 명성에 탄력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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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분재 신품종 육종 방향에 대해서도 우리나라의 자연환경에 맞는 국화분재 품종육종 사업을 시작해 함평의 브랜드인 ‘나비’를 이용해 <나비도화>, <나비연옥>, <나비번영>, <나비사랑>, <나비백설>, <나비설화> 등의 이름을 붙여 대한민국을 넘어서 전 세계로 수출되는 날을 위해 연구를 멈추지 않고 있다고 했다. 국화의 저변 확대를 위해 저술활동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국화동호회 교육을 위한 교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국화와 국화분재>와 <수형별로 배우는 국화분재>를 출간했다. 이는 2012년 농촌진흥청에서 주관한 2012전국농업과학기술 우수 저서에 선정되는 쾌거를 안아 겹경사를 이룬다.
국향대전은 단순히 국화축제에 국한한 것이 아닌 함평한우, 먹거리 장터, 지역 농수축특산물 판매, 지역경제 활성화, 지역브랜드가치 상승, 기타 국화 관련 상품 개발, 함평관광자원 및 문화의 홍보 등에 테마를 맞춘다. 전국적으로 100여개가 넘는 크고 작은 국화전시회 또는 국화축제에 비해 늦게 출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빠른 성장을 하여 전국 최고의 국화축제로 자리잡은 원동력 또한 테마와의 환상적인 어울림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고 했다.
아울러 2003년 함평군농업기술센터 지방농촌지도사로 임용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함평군 공직자 선후배와 동료, 대한민국 국화동호회원,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의 힘이 용기와 희망의 끈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최고의 실력을 갖춘 임광섭 과장, 최선희 지도사, 이향만 계장, 노주영 지도사 등의 노고와 열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국향대전이 있다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그는 함평군에서 개발하고 있는 신품종 국화와 각종 재배 신기술을 이용하여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는 농가가 증가하여 함평군이 행복하고 잘 사는 데 기여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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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물을 싫어하는 국화를, 물속에 장화를 신고 들어가 화분을 배치하고 상토를 채워 국화를 심어 축제장에 전시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곧 한 편의 드라마”라고 표현했다. 그게 곧 함평의 기술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함평의 국향대전은 이제 세계 최고의 국화축제로 성장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 국화마을 http://www.kukhwa.net
* 국화마을 다음카페 http://cafe.daum.net/ch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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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goodnewspeople.com/read.php3?aid=142123820010188025 바로가기 클릭
첫댓글 글을 보고 정말 감동했습니다. 역시 우리 <대한민국 국화동호회> 리더이신 고 선생님이십니다. 이러한 원대한 꿈이 꼭 이루어지는 날까지 함께 행복을 향해 스케치해 가면 하는 바램입니다. 다시 한 번 표지모델 선정을 축하드립니다.
(추신) 물론 인터뷰 내용도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네요.......고 선생님, 파이팅!!!
대단한 고선생님 그동안 수고가 이제 하나씩 결실을 맺는군요...
한우물을 파고있는 고찬훈 선생님에 그정성이 성공으로 되는 것을 축하합니다...감동먹었습니다
축하합니다. 더욱 더 발전되시길...
멋지시네요 축하드립니다.
우리고향 함평을 빛낸 고찬훈님께 대찬의 박수를 보냅니다. 건강하시고 더더욱 발전을 기눤합니다.
추카 추카~~~~수고 마니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