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과 양복
1. 교복
부자유를 지참한 태생, 교복은 의도적으로 만든 복장이다. 그러기에 교복은 신분과 소속감, 유대감을 불러일으키도록 특징을 살려 만들고 그 수단으로서 역할을 한다. 그런 점에서 교복은 못 넘어설 벽이 있고 한계가 주어져 있으며 멍에라 할 수단도 될 것이다.
살아보니 주어진 경계와 구분의 벽이 명확한 인식은 확실히 존재하는 편이 낫다. 젊음이란 삶의 시기가 아닌 마음의 한 상태라는 생각이 들고 부터서는 더욱 그러하다. 물체는 변화하여 안정화된 모습으로 갖추어지기를 기대하며 늘 찾는다. 물의 그릇도, 삶의 동반자도, 쇳물의 용광로도, 마음의 눈물도, 모두 그러한 상태를 갖추는 형식의 틀이고 정서의 틀이다.
삶, 더욱이 알찬 젊음을 늘 유연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활기 넘치는 틀이 필요하다. 정서적으로 여물지 못하여 불안정한 시기의 아이들에게 그런 절실함은 더하다. 교복은 단순한 부자유를 나타내는 수단만은 아니다. 복장단정이란 말은 마음의 안정을 말한다. 교복에 달린 단추 하나가 주는 의미는 의외로 크다. 교복의 매무새를 갖추며 질서를 생각 안 해본 학생은 없다.
끓어오른 쇳물을 진정시키고 가두는 용광로가 아니라면 녹아 흩어져 버릴 쇳물의 행방이다. 교복을 벗으면 바로 해방이고 자유라 할 심산이지만 살아보니 그렇지가 않다. 교복을 벗자 이내 꿈은 시들하였으며 현실과 쉽게 타협을 하였다. 자유롭다하는 의식 속에서 제멋대로 구르다 굳어버린 사고는 더욱 확고해져 허튼 주장만이 늘어났다.
남이 안보이도록 벽만 높아져 스스로 내려올 처지도 못된다. 오히려 교복을 입은 때 그 너머를 꿈꾸었으며 한계 속의 기질을 초라하게 느낄 때 보다 성숙해지고 그 때처럼 벽의 아쉬움을 절실하게 느껴본 적이 없다. 삶의 의지와 상상력, 패기와 용기는 벽에 갇힌 자의 절절한 혁명이다.
교복을 입은 때처럼 이상을 갖고 자유로울 때가 또 있었는가. 교복은 꼭 필요한 젊음의 담금질이고 단련이며 삶의 기초적 예도의 상징이다. 교복은 제한의 것이지만 희망이기도 하며 삶의 질서이기도 하다. 마음속에 숨겨진 옷차림으로 번번이 애매한 처사와 과오를 낳느니 차라리 교복을 입는 편이 훨씬 아늑하단 생각을 나는 한다.
2. 양복
결혼하고서 본가에 올 때 양복을 입지 않으면 엄마에게 잔소리를 꽤 들었다. 내가 혼나는 것이 아니고 아내가 대신으로 혼이 났다. 반듯하게 보여야 한다는 엄마의 의중이 당연 담겨 있다. 그런데 아내가 나이 들어서 내게 강요하는 것이 또 양복이다. 이제는 반듯함이라기 보단 궁색하게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당위성에서 그러하다. 분명 양복은 위엄을 갖추어 반듯하고 세련되어 산뜻하게 보이는 차분한 무엇이 있다.
허우대가 나같이 시원찮아도 카버가 되고 오히려 달리 보이게 하는 묘수를 갖고 있다. 양복이 이 나라에 처음 들어 온 것은 1881년 정부의 신사유람의 자격으로 일본에 파견된 개혁파 정객, 김옥균 ·유길준 윤치호 등이 양복을 사 입고 돌아온 것이라 한다. 당시 그들에 대해 물의를 일으켰다고 하였으니 양복은 불과 백여 년 만에 그야말로 우리나라에서 대성공을 한 셈이다.
요즘은 일상복 같이 되어 양복을 입고란 말로 쉽게 쓰지만 예전 글들을 살펴보면 양복은 차려 입고란 말로서 정중하게 표현하였다. 이는 양복에 대한 각별한 예우로서 격식에 맞게 갖추어 입는다 하는 의미를 지니도록 한 것이 아닐까싶다. 서양서 들어와 꽤 호강하는 존재가 바로 양복이다. 그러기에 양복은 함부로 다루어선 안 되고 구겨져서는 제 멋을 잃는다.
솔직히 양복 한 벌 해 입기가 어디 쉬운가. 지금도 양복 값이 엄청나지만 그때의 맞춤 양복은 그야말로 대단하였다. 평생 양복 한 벌 입어 보지 못한 사람이 꽤 많았으며 한 평생 양복 한 벌로 살았다는 지체 높은 분들도 흔하였다. 값진 옷이 양복이었다. 그래서인지 한 벌 장만하는 양복은 때가 덜 타고 다용으로 활용이 가능한 거의 검정이거나 곤 색을 많이 택하였다.
나는 결혼 예복으로 양복 맞춤옷을 딱 한 번 해 입었었다. 당시 제일양복점하고 조흥라사 같은 안양의 유명 양복점 옆에는 금강제화, 칠성제화 같은 구두점이 따라 붙었으며 제일로 번화한 거리에 자리하였다. 이제 양복점들은 중앙 통은커녕 변두리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양복 수선 집이 간간이 거리에 띌 뿐이다. 대신으로 기성복 차림이거나 캐주얼 복장이 흔하고 뽐을 내는 세상이다.
옷으로 폼을 잡거나 튀어 보이려 한다면 지금은 개성 강한 캐주얼이다. 예전엔 아끼는 나들이 옷이었는데 이제 양복은 착실한 월급쟁이들이나 아니면 조폭들이 정중하게 형님을 섬긴다는 의미로 차려입는 평상복이 되어 버렸고 형식과 예를 갖추어야 할 위치에 처한 공인들의 예복이 되어 버렸다.
그러해도 양복은 예나 다를 바 없이 차분하여지는 마음이 배어있는 단연 격식 있는 옷이다. 형식으로서 정중하며 실질적인 예도로서 고상한 품위를 지녔다. 노인이 양복을 쭉 빼입고 걷는 모습을 보면 장중하면서도 깊은 정서를 갖고 있는 듯 보인다. 반면에 똑 같은 사람이라도 잠바를 걸치고 가는 것을 보면 괜스레 더 늙어 보이고 초췌한 느낌도 든다.
아내가 요즘 내게 양복을 권하는 것이 그런 느낌에 연유한 것이 아니겠는가 한다. 나이가 들수록 아내의 강요는 더욱 드세 지리라. 하지만 어느 시들한 계절쯤엔 옷에 전혀 민감할 필요가 없는 시간도 자연 존재할지 모른다. 헐벗은 시간에 놓여서는 잠바같이 축 처진 형태의 삶은 별 다른 절충 필요 없이 스스로 평형이 이루어져 양복이 어느 의미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 나는 아내의 둘도 없는 모델이다. 속박이라 할 투정이지만 정중히 나를 모시는 양복과 아내가 있으며 그들로서 궁색한 내가 그나마 달리 보인다는 것은 큰 혜택이고 행운이다. 그러기에 그들을 실망시키거나 쉽게 단념시켜서는 아니 되리라. 요즘 양복을 군소리 없이 잘 입는 것은 다 그러한 이유에서다. 옷에 있어서는 나는 자수성가를 감히 생각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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