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먹다
정치산
그의 귓바퀴를 따라 들어온 핑크 플로이드*, 뎅뎅뎅 뎅뎅,
자명종을 삼키고, 재깍재깍 분침을 삼키고, 시침을 삼키고, 시간을 삼켜요.
찌리링 띵, 사르륵 삭삭, 금전등록기를 삼키고
짤랑짤랑 동전을 삼키고 주머니를 부풀려요.
부풀려진 주머니, 방아 찧던 토끼를 삼키고,
방아를 삼키고, 달을 삼키고, 어둠을 삼켜요.
그의 귓바퀴를 따라 들어온 핑크하트, 말랑말랑
달팽이관을 타고 탁탁 톡톡 도마를 먹고, 뽀글뽀글 찌개를 먹고,
후룩후룩 저녁식탁을 먹고, 아흥아흥 애교를 먹고, 흥흥흥 콧소리를 먹어요.
배부른 그의 트림이 아침에 이불로 파놓은 토끼굴로 빠져요.
토끼굴에 빠진 그는 밤을 잊고 소리를 잊고
어둠을 잊고 잠의 잠속으로 빠져들어요.
그는 보이지 않고 부풀려진 주머니에 피식피식 바람이 빠져요.
뎅뎅뎅, 자명종이 던져지고, 재깍재깍 시간이 던져져요.
찌리링 띵, 사르륵 삭삭, 금전등록기가 던져지고
짤랑짤랑 동전이 던져지고 주머니가 작아져요.
톡톡 탁탁 도마가 던져지고, 뽀글뽀글 찌개가 쏟아지고,
아흥아흥 애교가 던져지고, 흥흥흥 콧소리가 쏟아져요.
방아 찧던 토끼, 엉덩방아 찧는 동안 달이 토해지고
어둠이 토해져서 한 밤이 왈랑거려요.
그가 아침에 동구마니 파놓은 토끼굴은
출렁출렁 춤을 추며 달을 흔들고 있네요.
* 1965년 영국에서 결성된 핑크 플로이드는 웅장한 사운드와 초현실적 메시지가 특징인 프레그레시브 록을 대중화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밴드다. 핑크플로이드라는 이름은 ‘핑크 앤더슨’과 ‘플로이드 카운슬’이라는 두 명의 블루스 음악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현대인의 억압된 심리를 강렬한 사운드와 현란하고 실험적인 공연무대를 통해 발산했다. 70년대 프레그레시브 록의 1인자에 등극 했으며 획일적인 교육제도와 전쟁을 비판하고 사회성 짙은 강렬한 메시지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던 밴드다.
마술
―들꽃요양원·1
그의 손 안에서 그녀의 눈이 돌아가네.
빙빙빙 삼박자로 돌아가던 그녀의 눈이 깜빡,
감겼다 뜨는 사이 그녀의 눈은 비둘기로 날아오르지.
탁탁, 그의 지팡이가 비둘기를 장미꽃으로 만드는 사이,
그녀의 눈은 캄캄한 상자 속에 갇혀서 삼등분으로 분리되네.
그의 손끝에 찔린 그녀의 눈이 발을 내밀고
손가락을 흔들며 환한 미소를 짓네.
그녀의 눈은 지금 이 세상이 진짜라고
속삭이듯 환한 눈웃음을 지으며 최면을 건다네.
그녀의 눈이 깜빡 감겼다가 뜨는 사이
그녀는 쇠사슬에 묶여 자물쇠로 잠겨있네.
짧은 시간 동안 화려한 탈출을 시도하지만
쇠사슬이 더욱 옥죄어 오네.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손을 흔드는 그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이네.
그녀의 눈이 깜빡, 감겼다가 뜨는 사이
그녀의 눈은 색색의 손수건이 되어 줄줄이 쏟아지고 있네.
다시 그녀의 눈이 깜빡 감겼다가 뜨는 사이,
그의 모자 속에서 꽃가루로 흩뿌려지는 그녀의 눈은
천 개의 별가루가 되어 다닥다닥 이어진 판자촌 위 은하수로 흐르네.
그의 도시는 매혹적이네.
바느질 하는 여자
―들꽃요양원·32
실이 없는 바늘로 바느질을 하는 그녀는 바오밥 나무를 사랑하네.
그녀의 행성엔 뜬금없이 바람이 불고 시간도 생각에 잠기지.
생각에 잠긴 세상은 심각한 얼굴로 그녀를 지나치네.
그녀가 보는 얼굴은 합격이지.
늘 불합격 선에 머무는 그녀는 바람을 꿰매고 있네.
바람은 구석에서 파랗게 웃어젖히지.
실이 없이도 바느질 하는 그녀는
붉은 토끼와 검은 여우를 기르네.
그녀의 목록에는 바느질할 많은 이름이 있지.
바오밥 나무의 뚱뚱한 배를 쓰다듬으며 미소 짓는 그녀의 머리 위로
두 개의 달이 슬며시 숨고 있네.
달 속에서는 하얀 토끼가 오들오들 떨며
밤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도하지.
바람은 실없이 웃어젖히며 파랗게 넘어가고 있네.
두 개의 달이 뜨는 밤이면
그녀는 실이 없는 바늘로 바느질을 한다네.
詩, 블랙홀을 더듬다
―들꽃요양원·33
삼각형의 심통이 껄렁껄렁 시비를 건다.
그는 오늘 뾰족하다. 뾰족한 그에게 틈이 보인다.
열린 틈으로 심통이 새어 나오고 바람의 손이 그를 훑고 간다.
조금 열려있기도 하고 활짝 열려 있기도 한 마음이 심통을 도발한다.
거울에 있는 얼굴이 붉다. 엘리베이터는 고장이다.
식은 바람이 분다. 계단이 층층이 펼쳐진다.
거울에 있는 얼굴이 파리해진다.
가는 길은 가도 가도 토끼 굴, 가도 가도 블랙홀이다.
발끈한 마음에 뛰어 보지만 늘 저만치 앞서 있다.
바삐 길을 재촉하면 까칠하게 째깍대던 시간이 블랙홀로 뛰어간다.
간신히 붙잡고 서면 토끼 굴에 빠진다.
길은 찾을 수가 없고 시간은 째깍째깍 걸음을 재촉한다.
느슨한 발걸음을 지켜보는 검은 시간이,
꼬리를 세우고 돌아서서 블랙홀에 뛰어든다.
검은 홀이 뒤집힌다. 붉은 토끼가 뛰어나오고, 흰 고양이가 튀어 오른다.
삼각형이 점점 늘어난다. 늘어난 심통이 다이아몬드로 반짝인다.
뾰족한 그가 둥글게 말리고 보름달이 뜬다.
갑자기
어두워. 갑자기 무수한 네가 쏟아져.
쏟아진 너는 어깨를 툭툭 치며 계단을 불러오지.
언제나 제자리걸음인 계단에 어둠이 몰려오네.
어둠이 몰려온 계단은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아.
어둠이 내몰린 네 어깨를 거두어 가지.
어깨를 들썩이는 너를 간신히 눈뜬 물방울들이 떼밀고 가네.
톡톡 흘러내리는 빗속에 네가 있네.
너는 물속에도 있고, 빗속에도 있고, 창 너머에도 있지.
무수한 네가 쏟아지며 톡톡거려.
쏟아지는 너를 떼밀면 톡톡 툭, 네가 튕겨져 나가.
제자리걸음인 계단에서 네가 튕겨나가는 사이,
다시 또 너는 어둠에 잠겨 푸른 물을 삼키지.
정치산 시집 <바람난 치악산> 에서
정치산
- 등단 : 2011 <리토피아> 시 부문
- 수상 : 제16회 원주문학상
제2회 원주여성문학상
- 활동 :
한국문인협회 강원도지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원주지부 부회장
원주여성문학인회 감사
강원여성문학인회 이사
리토피아 문학회 사무국장.
막비 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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