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먼 그라운드’라는 이름의 건축 전시관. |
베네치아 외곽 마르코폴로공항에 내렸다. 11월 중순인데도 의외로 날이 따뜻했다. 햇빛은 눈을 들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고 깊다. 곧바로 옆에 위치한 보트 선착장으로 향했다. 보트를 타고 리도(Lido)섬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다. 공항에서 베네치아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기차, 버스, 배가 있다. 기차를 탈 경우 베네치아 서쪽 관문인 산타루치아역까지 들어간다. 버스는 바다를 가로지르는 긴 다리를 건넌 뒤 베네치아 서쪽 정류장에 도착한다. 역과 정류장에 도착한 관광객은 자신의 호텔로 가기 위해 다시 배로 갈아타야만 한다.
베네치아비엔날레에 대한 얘기는 호텔집 주인 아들을 통해서 들었다. 프란체스코라는 이름을 가진 베네치아 토박이 20대 청년으로 직업은 음악가다. 입으로 불어 소리를 낼 수 있는 모든 재료를 악기로 한다. 그는 “비엔날레의 모던재즈 공연에 정식으로 초대돼 무척 기쁘다”고 했다. 부끄럽지만, 베네치아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 유명한 베네치아비엔날레라는 것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매년 각종 비엔날레
베네치아비엔날레는 1895년부터 시작된 국제예술전시회이다. 비엔날레라는 말은 이탈리아어로 ‘2년에 한 번씩’이란 의미이다. 원래 개인 차원에서 시작된 전시회지만 해가 갈수록 참가자가 국가 단위로 변해가면서 현재는 글로벌 만국박람회 같은 성격으로 확대된 상태다. 당초 미술에서 출발했지만 현재 6개 분야로 늘어난 상태다. 미술과 더불어 영화·건축·음악·연극·무용 등이다. 리도에서 열리는 영화제도 베네치아비엔날레 영역 중 하나다. 비엔날레는 2년에 한 번이기는 하지만 미술이 홀수 해(年)에, 나머지 5개 분야는 짝수 해에 열린다. 따라서 구체적인 분야로 나누지 않을 경우 비엔날레는 한 해도 빠짐없이 베네치아에서 볼 수 있다.
비엔날레의 개최 장소는 베네치아 전체다. 산마르코광장에서 오른쪽으로 2㎞ 떨어진 베네치아 최대 공원 ‘자르디니(Giardini della biennale)’가 비엔날레 총본부에 해당한다. 이탈리아어로 자르디니는 공원(Garden)을 의미한다. 나폴레옹이 베네치아를 점령했을 때 만든 것이다.
베네치아의 골목길은 아무리 방향감각이 좋은 사람이라도 바보로 만드는 곳이다. 골목이 좁은 데다가 전부 비슷한 모양의 건물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다. 바로 옆 건물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현대인은 화살표나 큰 빌딩, 자동차가 질주하는 도로를 통한 공간감각에 익숙해 있다. 아날로그 미로가 베네치아의 골목길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크레타섬 안의 미궁 속에 갇힌 이카로스(Icarus)의 심경을 어렴풋하게나마 실감할 수 있다. 이카로스와 다른 것은 미궁 속의 경험이 너무도 ‘신비하게’ 와닿는다는 점이다.
베네치아 벽돌담 속에 갇혀 길을 헤매는 경험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자르디니관은 타지(他地) 사람들의 고충을 이해하는 듯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일단 빨간색의 큰 간판이 세워져 있고, 비엔날레로 향하는 임시 부두도 상시 설치해두고 있다. 아무리 길눈이 어두운 사람이라도 간단히 찾아갈 수 있다.
올해 비엔날레의 핵심은 건축전시관이다. ‘커먼 그라운드(Common Ground)’라는 타이틀하에 5개 공간에서 나눠져 열렸다. 총본부인 자르디니관과 더불어 이탈리아관, 중앙관, 국립전시관 그리고 창고관이 5개 전시공간이다. 나름대로 특징이 있지만 필자가 가장 주목한 곳은 창고관이다. 평소에 베네치아 시민들도 들어갈 수 없는 역사적 유물이기 때문이다.
창고관은 1000여년 전부터 활용된 베네치아 선박제작수리소를 배경으로 한 전시관이다. 베네치아인은 알세날레(Arsenale)라고 부른다. 30만 인구의 베네치아가 왜 세계 최강의 해양강국으로 발돋움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공간이기도 하다. 베네치아 전체 땅의 35%를 차지하는 알세날레는 1104년 건립된 곳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세계 최대 최고 수준의 산업현장이기도 했다. 한국의 포항제철과 거제도조선소를 합친 곳이 1000년 전의 알세날레다. 11세기부터 18세기까지 지중해를 주름잡던 해양대국 베네치아의 진면목이 알세날레에 드리워져 있다.
창고관은 아예 알세날레라는 이름의 부두를 통해 간단히 접할 수 있다. 산마르코와 자르디니관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운하를 따라 걷다가 오른쪽에 창고관 입구를 알리는 표식이 눈에 들어왔다. 입구가 너무도 허름해서 관념적으로 알고 있던 전시회와는 무척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열린 상하이비엔날레에서 보듯, 뻥 뚫린 광활한 공간에 멋진 건물을 세워 특별 이벤트를 벌이는 것이 국제 전시회에 관한 일반적 개념이다. 베네치아비엔날레는 다르다. 굳이 새로운 건물을 세우지 않고 이미 수백여 년 전에 만들어진 낡은 건물을 이용한 전시회이다. 베이징이나 한국에서 열리는 전시회가 대규모 디지털형이라면, 베네치아비엔날레는 소규모 아날로그 스타일이라 볼 수 있다.
창고관의 규모는 총 5만㎡로 서울시청 광장의 4배 정도 크기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이다. 건축 전시회는 1999년부터 시작된 행사이다. 이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가장 많은 관객과 미디어의 관심을 불러모으게 된다. 2010년 전시회에서는 관객 17만명, 미디어 관계자 2000여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커먼 그라운드라는 타이틀에서 보듯 올해 전시의 주제는 공간활용에 관한 아이디어로 집약될 수 있다. 공간을 아름답고 효율적이며 기능적이고 친환경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발상을 3차원 입체세계로 표현한 것이다. 주의할 점은 건축 전시회의 참가자가 건축 관계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진작가·음악가·비평가·문학가·저널리스트·큐레이터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동참했다. 3차원 입체적 감각으로 건축을 논하자는 것이 비엔날레의 특징 중 하나이다.
독일 작가 눈에 비친 남한과 북한
전시관 안으로 들어가자 곧바로 신문과 종이컵을 쌓은 흰색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미디어와 1회용 인스턴트 문화가 장악한 세상이란 의미라고 한다. ‘물은 무형태·무색·무소음, 경계를 만들지 않습니다’란 한글 포스터도 눈에 들어온다. 곧바로 다음 건물로 들어서자 눈에 익은 공사현장 사진이 벽에 걸려 있다. ‘2007년 서울 삼성 아파트’란 타이틀의 공사현장 사진이다. 왼쪽에도 눈에 익은 같은 크기의 사진이 걸려 있다. ‘2007년 평양 북서동’이란 제목을 단 말끔히 단장된 아파트 단지 사진이다. 제목을 모르고 본다면 오른쪽의 서울 아파트 공사현장의 완성품이 왼쪽의 평양 아파트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둘은 너무도 닮아 있다. ‘무의식중의 세계(Unconcious Places)’라는 제목을 단 독일 사진작가 토마스 스트루스(Thomas Struth)가 찍은 사진이다.
인간은 이념적으로 아무리 달라도 공간에 대한 감각과 발상은 서로 비슷하다는 것이 스트루스의 생각이다. 남북의 건물을 찬미하거나 비판할 의도는 전혀 없다. 자신의 생각을 방증하는 예로 남북 아파트를 찍은 듯하다. 그러나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미묘하고도 복잡한 느낌을 주는 사진이다. 남북의 동질성에 주목하기보다 우리가 사는 공간이 저런 곳이구나라는 씁쓸한 느낌이 앞선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의 최고 성과물인 아파트가 외국인 눈에는 저런 식으로 비쳐지는구나라는 생각도 할 수 있다. 스트루스는 ‘2010년 울산’이란 제목의 사진을 통해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거나 곧 들어설 울산의 모습을 비교 설명해 주기도 한다.
엄청나게 큰 12면 영화관도 흥미로운 아이디어의 진원지처럼 느껴졌다. 어두운 공간 속에 벽면 하나당 3개의 대형 스크린이 들어서 있다. 공간 한가운데는 두 개의 둥근 기둥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2개의 스크린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과거·현재·미래의 모습을 다큐멘터리식으로 담아 상영하고 있다. 마오쩌둥(毛澤東)이 등장하는 문화혁명 당시의 천안문광장 집회가 인상 깊다. 가족끼리도 대화가 안 되는 판국인데, 어떻게 저렇게 똑같은 옷, 표정, 몸짓을 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한곳에 하나의 의견으로 모일 수 있는지가 신기하다.
전시관이 학교로
히틀러의 나치가 그러했듯 대규모 군중집회는 집단 광시곡의 현장이기도 하다. 미쳐야 정상이고 미치지 않은 사람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당시의 광기에 치를 떨게 된다. 히틀러로부터 피해를 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히틀러의 앞잡이로 광기 경쟁무대에 나서야만 했던 보통 독일인의 고통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스크린에 등장한 팔레스타인 난민촌, 월스트리트 금융가 앞 자동차 행렬, 이라크로 떠나는 미군의 모습도 시간이 지나면 몸서리칠 시대의 광기가 될지 모르겠다. 12개 스크린관은 21세기 세계사의 광기와 현장을 흰 점선으로 표현해 관객들의 몸에 쏘는, 기발한 아이디어의 현장이기도 하다.
비엔날레 현장을 보면서 놀란 것은 관람객의 연령층이다. 20대가 주류이고, 그 다음이 10대, 이어 10대 이하 어린이가 주된 관람객이다. 방문한 날에만 나타난 특별한 현상인지 물어봤지만 평소의 모습과 다름없다고 한다. 비엔날레의 최대 관람객은 대학생·고등학생·초등학생 심지어 유치원생을 중심으로 한 젊은이라는 것이다.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이 비엔날레 개최의 최대 목적이라는 얘기다.
창고관 안에는 전시된 건축물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초등학생들이 유난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시물을 그림으로 다시 그리는 교육의 현장이다. 초·중·고 학생의 경우 개인 관람이 아니라 전문가를 대동한 투어 관람에 집중한다. 건축을 통한 창조적 개발을 북돋아주기 위한 교육인 셈이다. 대학생의 경우 전시회 협찬자나 도우미로 나섰다. 올해 건축 비엔날레와 관련해 전 세계 77개 대학의 학생 3541명이 협찬자로 나섰다. 외국 대학도 49개나 된다. 협찬자끼리의 네트워크는 물론 각자의 관심 분야에 관한 세미나도 자발적으로 열렸다. 안타깝게도 한국 대학은 협찬 리스트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녹슨 철골물도 예술품으로
창고관 중간중간에는 국가별 전시관도 따로 들어서 있다. 올해에는 전 세계에서 55개 나라가 참가했다고 한다. 앙골라·쿠웨이트·코소보·페루 4개국은 비엔날레에 처음으로 참가했다. 55개 나라 중 태국과 마케도니아 전시관이 인상 깊지만 역시 가장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나라는 이탈리아다. 이탈리아가 올해 건축 전시관의 주제로 내세운 것은 ‘녹색경제(Green Economy)’다. 전시관 안으로 들어서자 흙 냄새가 진동한다. 전시를 시각이 아닌 후각에서부터 시작하는 셈이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후각은 시각·청각보다 더 오래간다. 거칠게 자란 잔디밭도 전시관 안에 가득 차 있다. 천장과 벽면에는 한국산 하이비전 텔레비전에 실린 자연의 모습이 현장감 있게 전시되고 있다. 이렇다할 만한 특별전시품도 없이 풀과 대지의 향기가 ‘표류(漂流)’하고 있다. 이탈리아가 낳은 타자기 ‘올리베트(Olivetti)’의 구형 모델들이 나무로 된 상자 안에 들어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손가락에 의존하는 19세기형 타자기가 그린 이코노미의 상징물이 될 수도 있을 듯하다.
건축 전시관을 벗어나 야외 휴게실로 나왔다. 크레인으로 사용됐음 직한 거대한 철제 구조물이 휴게실의 배경 풍경으로 들어서 있다. 녹이 슨 철골물도 품격을 자랑하는 예술품이 될 수 있다. 반대편 바다 쪽 건물 앞에 수리 중인 작은 보트가 눈에 들어온다. 1000년 전 해양강국 베네치아의 모습이기도 하다. 베네치아비엔날레는 특별 전시회가 아니라 일상을 보여주는 이탈리아 역사와 삶의 일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