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린을 본 후에. 2014년 이재규 감독 데뷔작 출연 현빈 정재영 조정식 조재현 김성령 한지민 박성웅
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이유가 많을 것이다. 다소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이 사실이다. 당연히 25세에 왕좌에 오른 정조가 주인공일 것이다. 그런데 굵직한 캐릭터가 제법 등장함으로써 주인공이 과연 정조만일까 의심이 든다. 빨래를 세탁하여 물을 완전히 빼면 옷이 가벼워지듯이 이 영화를 쥐어 짜면 핵심이 남을텐데 그 핵심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정조일까 아니면 정조의 생각일까?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에 중용 23장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이 이 영화의 주제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정조의 철학이 이 영화의 주제일 것이다. 정조는 과연 어떤 세상을 꿈꾸었기에 자신을 죽이고자 역린을 건드린 군 최고의 실세 훈련대장 구복선을 구데타의 현장에서 용서하고 살려준 것일까?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죽이고자 몰래 음모를 꾸몄던 정순왕후 다시 말해 할마마마를 용서하고 살려준 것일까? 더 이상의 피비린내나는 보복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분명 정조는 파당정치의 비극을 뼈저리게 경험했으며 이 당파정치의 희생양으로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11살의 어린 나이에 생생히 겪은 왕이다. 그는 이런 끔찍한 세상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왕이 되면 반드시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없애고자 하지 않았을까? 작은 변화라도 정성을 다해 이루고자 한다면 반드시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정조의 생각이요 또 실천이있을 것이다.
영화가 너무 이 메시지를 강조하려다 보니 영화 본래의 요소인 재미라고 말하는 부분에 좀 약점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긴장감이 떨어지고 정조의 연기와 대사가 너무 무겁다. 교훈과 즐거움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것은 역시 어렵다. 이 영화에는 또 몇 가지 작은 플롯들이 큰 줄기의 플롯과 겹치는 것은 아닐까? 갑수와 을수의 이야기는 형제애를 다루는 플롯이다. 갑수와 을수의 이야기도 그 중의 하나가 아닐까? 특히 갑수는 정조를 은밀히 죽이고 궁중에 몰래 심어진 살수이지만 자신과 함께 궁중에서 자란 정조를 바로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오히려 변심하여 정조를 살리게 된다. 그러므로 내시이자 살수인 갑수는 이 영화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그는 어렸을때 노예시장에서 만난 을수를 살리기 위해 일부러 가위 바위 보를 져주고 대신 자신이 내시가 되어 궁중으로 들어간다. 나중 영화의 후반부 결말부분에서 을수의 칼에 찔려 죽어가는 과정에서 왕의 바로 앞에서 정조 왕을 죽여서는 안된다고 설득한다. 그는 비록 비천한 신분이지만 영화에서 의리를 보여준다. 자신을 믿어주고 인정해주는 왕을 위해 목숨을 바치려했고 위기를 알고 실제 목숨을 바친다. 또 다른 곁가지 이야기가 살짝 나오는데 살수인 을수와 궁중 하녀의 사랑과 배신의 이야기도 나오는데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 아쉽다. 궁중 하녀가 그렇게 중대한 역모 이야기를 정조에게 흘리는 부분이 너무 긴장감없이 이루어진 같다. 상대를 죽여야만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에서 왕과 대신들의 갈등, 그리고 왕과 훈련대장 구복선과의 갈등이 조금 싱겁다. 그래서 지루함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래도 노장인 훈련대장 구복선과 신임 숙위대장 홍국영과의 대치는 그래도 긴장감이 있었다.
영화가 플롯을 처리하는 부분에서 실패했다는 말이 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에겐 작은 즐거움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중용의 메시지가 영화를 본 후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조가 특히 역모를 진압한 후 살수를 공급하는 인물인 광백을 찾아 단 칼에 제거하는 장면은 통쾌했다. 한 나라의 왕이 직접 하지 않아도 될 일지만 어용대장과 몇 몇 군사들만 이끌고 직접 살수들을 공급하는 자를 처단한 일은 작은 일이라도 정성을 다하고자 하는 왕의 가치관과 이를 실행하는 모습은 지식과 삶이 일치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상은 왜 그리도 더럽고 역겨운가? 왜 죽고 죽이기를 계획할까? 이 욕망과 살인의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왜 어려서부터 노예시장에 팔려 어깨에 낙인이 찍혀 원하지 않는 인생을 살면서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할까? 왜 사람들은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가? 이런 모순된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고자 작은 힘이라도 기울여야 할텐데 세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어떻게 이 세상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수 있을까? 작은 일에서라도 정성을 다함으로써 이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 평화롭고 두려움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이 영화의 메시지는 아닐까?
완성도는 그리 높지는 않는 듯 하다. 영화제목도 영화에 걸맞는 제목이 아닌듯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오래 기억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가? 그렇다면 이 영화는 그 효용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