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노조의 채용비리와 채용할당제 (2005. 1. 27)
안녕하십니까 ?
오늘은 기아자동차 노조의 채용비리와 채용할당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아자동차는 1944년 경성정공을 설립하여 1952년 삼천리호 자전거를 생산하며 “기아산업”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기아자동차는 1962년 국내에 삼륜차를 처음으로 보급하였고, 1974년부터 브리사를 필두로 승용차를 생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1980년에는 봉고트럭을, 1981년에는 봉고 승합차를 생산하여 대단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1992년에는 세피아를 생산하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부상하였습니다.
기아자동차는 IMF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인도네시아 정부와 “티모르”라고 하는 인도네시아 국민차 생산의 협력파트너가 되어, 기아의 세피아를 “티모르”라는 이름으로 인도네시아에서 현지생산하기로 협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인도네시아 국민차 생산에서 경합관계에 있던 일본의 토요다사와 미국의 포드사는 기아자동차를 불공정무역으로 WTO에 제소하여 기아자동차의 인도네시아 진출을 방해하였던 것입니다.
이후 인도네시아 정부는 민주화 시위로 붕괴되었고, 기아자동차는 부도위기에 몰리면서 현대자동차에 인수 합병되어, 기아자동차의 인도네시아 국민차 생산 사업은 물거품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기아자동차도 애초에는 우리나라의 다른 재벌회사들과 마찬가지로 오너경영체제였지만, 기업의 오너가 전문경영인에게 공장을 맡기면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변신하였다는 점입니다.
기아자동차의 전문경영인은, 회사의 소유주나 주주들의 입장보다는 종업원을 중심으로, 종업원과 함께하는 기업으로, 기업의 경영풍토를 바꾸어 왔습니다.
종업원들의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삼성과의 경영권분쟁에서 기아자동차 노조원들이 보여준 헌신적인 애사심과, IMF 위기상황 속에서도 일치단결하여 회사를 지켜 온 기아자동차 노조의 활동은, 한국의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기아자동차의 채용할당제는 기아자동차의 사측과 노조 측의 협력관계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노사협력의 상징인 이러한 채용할당제가 도덕성을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노조의 지도부에서, 신규 인력의 채용과 관련하여 채용비리가 발생하였다는 점입니다.
지금 우리사회의 통합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가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확산과 이를 통한 노․노갈등의 확산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기아자동차 노조의 생산계약직 채용비리는 노조의 도덕성과 관련하여 마땅히 단죄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점은, 기아자동차 노조의 채용비리가 노․노갈등으로 비화되어서도 안 되지만, 정부나 사측의 노조 길들이기로 악용되어서도 안 된다는 점입니다.
IMF 위기상황보다 더 어렵다는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사회의 발전과 건강한 노사화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근로자의 경영참가와 이익배분에의 참여를 제도화․활성화해 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