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현 동 1980년 4월 1일 관악구에서 동작구를 분리하고 구간의 경계를 조정할 때 사당1동을 각각 관악구와 동작구 관할로 나누었는데 관악구 관할지역을 남현동이라 명칭했다. 남현동이 행정구역명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이때부터이다. 남현동(南峴洞)이란 이름은 글자 그대로 ‘남쪽에 있는 고개 마을’이란 뜻인데 고개는 남태령을 가리킨다. 조선조 초기부터 서울에서 남쪽 지방으로 왕래하는 국도인 삼남대로가 이곳을 지나 남태령을 넘어가는 길이었는데 ‘남현동’이라는 이름의 유래와 깊은 관련이 있다. 남현동의 연혁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지역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과천군 상북면 사당리에 속해 있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과천은 율목군이었으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경덕왕16년(757년)에 전국의 군ㆍ현 이름을 고칠 때 율진군으로 바뀌었으며, 고려 태조23년(940년)에는 과주로 불렸다. 조선조에 들어와 태종13년(1413년)에 다시 과천현으로 개명하게 되었다. 세조 때까지 과천과 금천이 합병ㆍ분리를 반복하다가 고종32년(1895년)에 과천군이 되었다. 그뒤 1914년 3월 1일 총독부 부령에 의해 경기도 시흥군에 병합되어 시흥군 신동면 사당리로 편입되었고,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거하여 신동면이 서울시에 합쳐지면서 서울특별시 조례 276호에 의거, 영등포구 신동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신동출장소는 남성동, 서초동, 양재동, 잠원동 등 4개동을 관할했으며 이 중 남성동이 방배동과 사당동을 포함하는 지역이었다. 이후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8호에 의해 관악구가 신설됨에 따라 신동출장소는 폐지되고 사당동 지역이 관악구에 속하게 되었다. 1980년 4월 1일 대통령령 제9630호로 관악구와 동작구가 분리되면서 사당1동은 남부순환도로를 따라 관악구와 동작구에 일부가 편입되었고, 남현동은 동작구의 사당1동 일부와 사당5동 일부를 합쳐 ‘관악구 남현동’으로 만들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남현동은 서울의 남쪽 끝이며 관악구의 동쪽에 위치한다. 남현동의 동쪽은 동작대로를 경계선으로 동작구 사당동과 접하고 있다. 서쪽은 남부순환도로가 이어지며 까치고개 등성이를 남쪽으로 넘으면서 관악산 동쪽 등성이가 남쪽 경계선이 된다. 이 경계선을 따라 경기도 과천시와 인접해 서울의 남쪽 경계선을 이룬다. 남태령고개 정상에는 경계선 푯말이 있다. 남현동에는 남태령 마을, 심방뜰 또는 승방뜰로 불리는 마을과 1천여 년의 역사를 지닌 관음사, 사적인 백제도요지, 구 벨기에 대사관저, 일제시대 15개가 넘었던 중석광 등의 옛 마을과 유적의 흔적이 남아있다. 또 1970년대 개발정책의 시행과 동시에 예술인들의 집단마을이 생겨났다. 예술인 마을은 남현동 1053, 1054, 1071번지 일대를 말하며, 남현동 1058의 6, 1066의 1호에는 예술인아파트 3동이 있었으나 지금은 헐어버리고 공영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국예술인총연합회와 서울시가 1973년부터 주택단지를 조성하여 일명 예술인 마을을 만들었으며 이혜량, 이예춘, 양훈, 박암, 주증녀, 최은희, 이기동 등 수많은 연예인과 탱화전문가 김영진, 조각가 이영일 씨 등이 살았었다. 남 성 동 남성동은 지금의 관악구 남현동과 동작구 사당동을 관할하던 행정동 이름이다. 이 지역이 1963년 1월 1일 시흥군 신동면에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로 편입되면서 신동출장소 남성동사무소가 설치되었다가 1970년 5월 18일 사당1동과 사당2동으로 분동되면서 동 이름이 없어졌다. 승 방 벌 (심방뜰) 심방뜰은 관악구 남현동 1061번지 일대와 서초구에 속해 있는 우성아파트 자리, 그리고 동작구 사당1동 일부에 위치한 자연부락으로 현재는 사당사거리와 과천으로 통하는 도로가 생기면서 없어진 마을이다. 이곳 심방뜰의 원래 이름은 승방벌으로 승방뜰 또는 심방뜰이라 불렀고, 승려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듯하다. 마을에는 약 30여호의 초가가 있었는데 주로 전주 이씨, 안동 장씨, 나주 나씨 등이 살았고, 지금 남현동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이종원 씨는 이곳에서만 5대에 걸쳐 살고 있다. 장군봉이라 불리던 심방뜰 앞산이 있었지만 해방 이후부터 백홍렬 씨가 채석장 허가를 받아 1980년대까지 채석하는 바람에 지금은 절개지만 남아 있다. 심방뜰 동편 마을은 남태령 고개가 우면산까지 이어지면서 마치 성을 쌓은 것 같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성뒤라는 의미에서 윗성뒤, 아래성뒤라고 불렀으며 지금도 이 이름들이 남아 있다. 심방뜰 앞에는 식목갓 다리라고 불리는 승방교가 있고 심방뜰 마을 위에는 관음사라는 절이 있다. ‘식목갓’은 약 1백년 전 이 마을에서 조림한 숲을 말하며, 식목갓 다리는 승방뜰 근처에 있었던 다리를 말한다. 관악구 남현동 519-3호에 자리하고 있는 관음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사찰이며 관악의 전통 사찰로 895년 신라51대 진성여왕9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피보사찰이다. 예로부터 서울 근교 사찰 가운데 영험있는 도량 중 하나로 유명하다. 천년동안 이 절은 수차례의 성쇄를 거듭해 오던 중, 1924년 주지였던 전석주 스님이 신도 유개엽, 정태선과 힘을 합해 1942년까지 큰 방 열칸, 요사채, 용화전, 칠성각, 극락전 등을 지었다. 최근 관음사는 박종하 스님이 1975년 중창을 발원하여 대웅전, 삼성각, 용왕각, 종각, 요사 등을 7년 동안 차례로 증수하였고, 1993년에는 지하 강당을 새로 지어 사찰의 웅장함을 되찾았다. 한편 남현동 1063-1호, 2호 일대 약 2천여평에 중국식 공동묘지 약 2백기가 있었는데 해방 이후 중국대사관에서 관리하던 한강 이남의 유일한 중국식 묘지로 대만에서나 볼 수 있는 묘지 모양이었다. 중국 화교인 장씨라는 사람이 묘지기로 이곳에 살고 있었으며 1973년 남현동 구획정리로 이장과 화장으로 묘지 터가 없어졌고, 현 우리은행(상업은행) 남현동 지점과 구 벨기에 대사관 자리 일부가 이곳에 위치한다. 남현동 519-2호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는데 수령이 3백년, 나무 높이가 20m, 둘레가 1.8m터로, 1981년 10월 27일 관악구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