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특집 이조은
바람 분다 외
바람 분다
바람에 대해 노래했던 무수한 시들 흩어진다
바람 분다
보내기 전에 다시 온다 줄곧 마지막 인사다
손 흔든다 바닥을 보여주는 것은 안으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반가움은 급하고 이별은 짧아서 뒷말은 삼간다
그저 안녕히
바람 진실을 자백하러 왔다
말할수록 잔인해지던 악몽처럼 각색된다
종종 중요한 복선이 편집된다
바람 상실한 계절의 냄새 싣고 온다
명료하기 위해 지워진 단어 같은 냄새
그것이 마지막 운명이었던 거 같은 후회가 분다
한번도 뱉어진 적 없는 완벽한 시가 내 안에 있었던 거 같은 확신이 든다
나는 생애 최고의 순간이 누락된 파본이 된다
바람이 실어 온 그리움 더듬자 통점 만져진다
점에서 열리는 차원의 문
바람 빠지는 소리 서늘하다
기원전의 내가 그런 소리로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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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상과 점멸 사이
얼음에도 혈관이 있다
가을은 손끝의 살점을 걷어 내며 익어가고
밀린 것은 미안하다는 말뿐인 사람이 시를 쓴다
나의 문장은 녹는점으로 이어지는 비탈길
낡은 버스가 요란하게 시동을 거는데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발자국만 남기고 간 그림자에 기대어
좋은 것은 다 갔구나
하기도 전에
울산에는, 맞아, 눈이 안 오지
우는 무릎을 달래어 길을 건넜다
그림자 한뼘이 주저하더니 주저앉았다
가을, 하였더니
맥박이 은행의 박자로 추락하였다
이조은 | 2023년 《시와소금》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울산청년문화단체 [문학살롱] 대표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