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같지 않은 '파고다 공원'
[사진설명: 파고다 공원의 전경]
파고다 공원에 발을 들이는 순간,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건 아니었다. 너무 한산했다. 예전 같지 않은 명성에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한 어르신과의 인터뷰를 시도했다.
“어르신, 여기 자주 오세요?”
“자주오긴 하지~ 그런데 그건 왜?”
헉! 서울 분이 아니셨다. 뭔가 독특한 억양이 내 귀를 잡았다.
“어르신, 어디서 오셨어요?”
“충청도에서 왔지~”
설마 지방에서 오신 분이 계실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여기서 충청도는 먼 것도 아니야. 부산에서도 오고, 전라도에서도 오는데? 요새는 사우나가 좋아서 2박 3일씩 왔다 가기도 해. 여기 있는 사람들 중 반은 서울 사람들이 아닐걸! 껄껄”
선한 표정에 활발한 말투를 지닌 박선생님(73세)은 부가 설명까지 친절하게 해주셨다.
“우리야 뭐 남는게 시간이니.. 시간은 많고 친구들과 여행 다니기를 좋아하니 친구들이랑 같이 오는 거야. 무궁화호나 새마을호를 타면 돈도 별로 안들거든. 노인들은 할인도 많이 돼. 게다가 요새는 찜질방이나 사우나가 얼마나 잘 되있는지 싸고 편하게 놀다 갈 수 있어.”
어르신들도 사우나 시설을 애용하시다니! 난 여기서 또 한번 부끄러워해야 했다. 어르신들이 잠자리로 찜질방이나 사우나를 활용하실 거라는 생각 또한 나의 편견에서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박선생님은 되려 송도에 있는 큰 찜질방을 가봤냐며 꼭 가보라는 추천까지 해주셨다. 반이 지방분이라는 신선한 충격과 찜질방에 대한 깨침으로 머리 속이 뻥 비었을때, 최선생님(65세)이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사진설명: 파고다 공원의 규제를 적어 놓은 표지판 ]
“파고다 공원은 예전만 못해. 단속이 심해졌거든. 바둑, 장기 등의 게임은 물론 돗자리, 신문지를 깔고 앉는 것, 각종 집회나 연설회까지 지금은 아무것도 못하게 해. 그래서 요새는 ‘종묘’로 많이 옮겨갔어. 종묘에 함 가봐, 거기가면 신기한 풍경 하나 볼 수 있을거야. 허허”
그제서야 파고다 공원의 한산함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 시대! 진정한 실버들의 메카 – 종묘
[사진설명: '종묘'의 입구]
‘종묘’에 들어선 순간, 난 이곳이 마지막 종착지임을 직감했다. 종묘의 입구는 어르신들로 북적북적 했다. 하지만 이건 서막에 불과했다.
공원 안으로 몇 발짝 들어선 순간, 그야말로 진풍경에 나는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100개는 족히 넘어 보이는 바둑판이 좁은 공원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바둑 대회 같았다. 그것도 아주 성황리에 열리고 있는!
[사진설명: 바둑판이 깔려 있는 '종묘' 안 풍경]
“오늘 바둑대회가 있는 날인가요?”
진지하게 묻는 내게 김선생님(72세)이 껄껄 웃으시며 대답하셨다.
“아니야~ 매일 이 정도의 사람들이 여기서 바둑을 둬.”
“헉! 그럼 바둑판은 다 들고 오시는 거에요?”
“아니, 이건 비밀인데 오전 10시쯤 되면 바둑판을 깔고 임대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 하루 종일 시간에 관계없이 1000원만 내면 되거든. 커피까지 공짜로 먹을수 있으니,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얼마나 좋아”
[사진설명: 바둑에 열중하고 계신 어르신들]
아~ 나는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사실과 풍경에 뒷머리를 한대 맞은 마냥 얼이 나갔다. 역시 어디를 가든 장사하는 사람들의 명민한 레이더란..!
약간의 감탄과 신기함을 담아 사진을 찍었다. 저마다 진지한 얼굴로 바둑을 두고 계신 어르신들의 모습이 신기했다.
편견타파와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조성을 위하여!
[사진설명: 장기를 두고 계신 어르신들, '종묘' 안]
‘청소년들의 메카’도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 그런데 왜 ‘어르신들의 메카’가 변했을 거란 생각을 못했을까?
오늘의 탐방은 나에게 많은 의미로 다가왔다. 가는 곳곳 편견을 깨는 과정이었고, 어르신들과의 거리감을 좁히는, 한 사람의 인간 대 인간으로서 어르신들을 조금 더 이해해가는 배움의 과정이었다.
[사진설명: '종묘' 안 풍경]
그리고 하나 더! ‘종묘’라는 좁은 공간에 옹기 종기 모여 계시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우리사회가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 조성에 너무 인색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르신들도 청소년, 청년, 장년처럼 하나의 큰 층을 이루고 계시는 사회의 구성원인데 우리는 어르신들이 이미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개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그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것 아닐까?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이시고, 할아버지, 할머니이신 어르신들에게 새로운 공간을 마련해 드리기 위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