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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3. 김해공항-김포공항-인천국제공항-모스크바 국제공항 환승- 이탈리아 베니스)
옛 직장 동료로서 평소 봉사활동을 같이하며 친밀하게 지내는 세 사람이 지난 2011년 1월에 부부동반으로 필리핀 세부를 여행한 적이 있다. 우리는 수시로 만나 친목을 다지며 앞으로는 멀리 유럽 여행을 한번 해보자는데 의견이 일치하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매달 일정금액을 갹출하여 여행경비를 모았는데 어느덧 3년이 훌쩍 넘어 여행하기에 적당한 금액의 돈이 모아졌다.
그동안 여러 가지 사정으로 수차례 여행을 뒤로 미루다가 금년 여름방학 때는 꼭 실행하기로 단단히 합의하였다. 그러던 중 이번 5월 단기방학을 맞아 여행 일정을 앞당기자는 의견이 갑자기 대두되는 바람에 나도 직장에 장기재직휴가를 내어 참여하게 되었다. 기존 멤버 외에 한 쌍이 더 참여하여 모두 네 커플이 지난 5월 3일부터 5월 10일까지 6박 8일 일정으로 이탈리아 일주여행을 하였다. 남자들은 모두 재미를 더하기 위해 자유여행을 하고 싶어 했지만 모험을 싫어하는 아내들을 배려하여 결국 패키지여행을 하게 되었다.
비교적 값이 싼 러시아 항공을 이용하는 상품으로 날짜 수로는 8일이지만 가며오며 공항이나 비행기에서 보내는 시간이 3일 정도가 되어 사실상 현지 여행기간은 5일에 불과하였다. 멀리 유럽 여행을 하기 에는 기간이 좀 짧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각자 직장 사정도 있고 패키지 상품 내용을 우리 맘대로 조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어쩔 수 없이 여행사의 일정에 따르게 되었다.
여행은 언제나 설렘을 가져온다. 해외여행을 처음 하는 것도 아닌데 날짜가 다가오자 늘 그랬던 것처럼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전날 저녁 여행용 가방에 옷가지 등을 챙기는데 우리 집 애완 고양이 ‘달’이와 ‘둥’이가 눈치를 챘는지 번갈아 가며 가방 속에 들어가 훼방을 놓았다. 터키쉬앙고라 종 고양이 두 마리는 지난해 10월 새끼일 때 입양하여 이젠 자식같이 정이 들었다. 바깥에는 또 1년 동안 돌봐온 길고양이 ‘표순’이가 임신을 하여 배가 불러 있었다. 여행 기간 이 녀석들을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어 직장에 다니는 아들에게 잘 돌봐 줄 것을 신신당부하며 짐을 챙겼다.
사진 1) 출발 전날 저녁 짐을 챙기려는데 '달'이 가방 속에 먼저 들어가 훼방을 놓고 있다.
5월 3일 일요일, 기대에 찬 마음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거실 문을 열어보니 비가내리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확인한 이탈리아 현지의 날씨예보도 그다지 좋지 않아 기분이 가라앉았다. 하필이면 여행 시작하는 날부터 비가 내린단 말인가? 이것저것 정리하는 동안 약속시간이 촉박해져서 자고 있는 아들을 깨워 김해공항까지 태워 줄 것을 부탁하였다. 약속했던 오전 6시 30분이 조금 지나 김해공항 국내선 청사에 도착하니 일행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구내 패스트푸드점에서 샌드위치와 음료로 간단히 아침을 때운 다음 수하물을 부치고 오전 8시경에 김포공항으로 가는 에어부산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오전 9시경에 김포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곧바로 짐을 챙겨 바깥으로 나와 다시 공항리무진 버스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으로 이동하였다. 김해공항과 인천공항을 바로 오가는 국내선 비행기가 있기는 한데 연결편 시간이 마땅치 않아 우리는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였다.
사진 2) 비 내리는 김해공항
사진 3) 김해공항 국내선 청사 내 패스트푸드 점
사진 4) 김포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타는 중
오전 10시경에 여행사에서 지정한 장소인 인천국제공항 3층 출국장 D카운터 19번 테이블 앞으로 가니 인솔 가이드 이완기과장이 나와서 우리를 반기었다. 그곳에는 우리와 여행을 함께할 경향 각지의 여러 사람들도 모여 있었다. 우리를 포함하여 모두 34명인데 서로 초면이라 눈 마주치기를 어색해 하며 함께 가이드의 안내에 귀를 기울였다. 비행기 좌석표를 나눠 받은 후 한참을 기다리다 오전 11시경에 탑승수속과 함께 수하물을 베니스로 먼저 부치고 출국장으로 이동하였다.
그런데 일행들과 함께 출국장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가이드가 우리 아내의 이름을 불러 뒤 돌아 보니, 가이드는 아내의 가방이 수하물 검색에서 걸렸다고 말하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뭔 일인가 싶어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보안 검색요원의 안내에 따라 검사실로 들어간 아내는 잠시 시간을 지체하더니 라이터를 하나 들고 나오며 낄낄대는 웃음으로 미안함을 표현하였다. 뜨개바늘 등 뜨개용 도구를 넣어둔 작은 주머니에 뜨개실 끝을 지지는데 사용하는 라이터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평소 뜨개를 업으로 하며 손에서 뜨개바늘을 떼어내면 불안 증세를 보이는 아내는 어디를 가든 뜨개질 거리를 꼭 가지고 다니며 틈나는 대로 뜨개질을 하였다. 나는 해외여행을 가면서도 그걸 꼭 챙겨가는 아내의 태도가 매우 못 마땅하였지만, 웬만하면 아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가정의 평화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체득하였기에 미안해하는 아내가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도록 함께 껄껄 웃으며 라이터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사진 5) 인천국제곧항 D카운터 수하물 검사실
출국장으로 들어서서 보안 검색과 출국심사대를 통과한 우리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셔틀 트레인(내부 순환열차)을 타고 멀리 떨어진 탑승동으로 이동하였다. 배가 고파서 시계를 보았더니 12시가 넘었다. 점심은 기내식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상당한 시간의 기다림을 참을 수 없어 나는 아내와 함께 면세점 사이에 끼어있는 식당을 찾아 우동으로 허기를 면하였다. 우리는 비행기 탑승에 앞서 출국기념 단체사진을 촬영한 다음 113번 게이트를 통하여 러시아 아에로플로트 에어버스 여객기에 몸을 실었다.
사진 6) 출국장으로 입장
사진 7) 보안검색대 통과
사진 8)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탑승동 내 식당
사진 9) 점심으로 먹은 우동 한 그릇
사진 10) 출국 기념 단체사진 촬영
사진 11) 비행기 탑승권 체크
사진 12) 비행기 탑승 통로로 이동 중
주황색 톤의 유니폼을 입은 러시아 여승무원들이 입구에서부터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할 만큼 그다지 용모가 수려하지 않았다. 내 자리는 비행기 후미의 중간좌석 우측통로 쪽에 있었다. 오후 1시 10분경 활주로에 들어선 비행기는 커다란 굉음과 함께 속도를 빠르게 내는가 싶더니 어느새 사뿐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통로 쪽의 좌석배정은 창가에 앉아 바깥구경을 하고 싶은 내 마음을 우울하게 했지만, 구름이 잔뜩 끼어 바깥을 보아도 아무 소용없는 상황이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었다.
사진 13) 비행기 좌석을 안내하는 러시아 승무원
이륙 후 1시간 반이 지난 오후 2시 40분경 점심으로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치킨’ or’비프’라고 승무원이 말하기에 뭔지도 모르고 비프라이스를 선택했는데 입맛에는 맞지 않아도 그런대로 먹을 만 하였다. 점심을 먹은 후 운동 삼아 통로를 오가며 기지개를 켜는 중에 그 중 나은 미모의 스튜어디스가 눈에 띠어 관심을 끌었다. 심심하던 차에 잘됐구나싶어 수작을 부리려 했더니 그녀는 벌써 눈치를 채고 시선을 외면하며 나로부터 멀어져 갔다.
사진 14) 기내식 점심
사진 15) 미모의 러시아 스튜어디스
환승 경유지인 모스크바 공항까지 가는데도 아직 8시간이 더 남아서 지루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안대를 벗고 시계를 보니 우리시간으로 오후 8시경이 되었다. 창밖으로는 크고 작은 수많은 호수의 러시아 땅이 보였다. 시베리아 벌판으로 추측되는 그곳에는 흡사 용이 힘차게 꿈틀 거리는 듯 구불구불하게 흐르는 강의 모습도 아름답게 펼쳐졌다
사진 16) 음악을 들으며 잠시 눈을 붙이고 무료함을 달래는 중
사진 17) 하늘에서 내려다 본 시베리아 풍경
사진 18) 하늘에서 내려다 본 시베리아 풍경 2
잠시 후 우리시간 8시 10분경에 저녁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장어구이 덮밥 같은 피쉬라이스를 선택하여 맛있게 먹었다.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하늘을 더 날아 우리시간 오후 10시 50분경에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현지시간으로는 6시간이 늦은 오후 4시 50분경이었다.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은 러시아의 국제 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의 허브 공항으로서, 도모데도보 국제공항, 브누코보 국제공항과 함께 모스크바를 수반하는 3개의 주요 공항 중 하나이다.
우리는 비행기에서 내려 시계를 현지시간으로 맞추고, 베니스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 공항 보안검색 절차를 다시 거쳐 환승 터미널로 이동하였다. 3시간 남짓의 환승 대기 시간에 모스크바 시내를 외관이라도 잠시 구경했으면 좋으련만 우리는 공항 청사를 빠져나갈 수 없어 터미널 유리창을 통해 별 볼일 없는 공항 주변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사진 19) 기내식 저녁
사진 20)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
사진 21)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 주변 풍경
우리는 탑승동 면세점에 들어가 러시아 보드카 등 여러 가지 물건을 구경하고, 매점에서 음료수도 사 마시며 시간을 보내었다. 화장실에 갔더니 좌변기가 작아 보이고 좌변기에 앉으면 팔을 앞으로 쭉 뻗어도 문에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간격이 넓어서 이상하였다. 아내는 게이트 앞 대기실 의자에 앉아, 할 일없이 시간을 죽이는데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보라는 듯,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뜨개질을 계속하였다. 기다림에 지쳐 바닥에 퍼질러 않아 몸을 비비 틀고 있는 박경원 선생의 모습이 마치 구걸하는 집시를 연상케 하여, 나는 재미삼아 모자를 앞에 뒤집어 놓고 동냥 주는 장면을 연출해 보았다.
사진 22)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 탑승동 통로
사진 23)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 탑승동 면세점
사진 24)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 탑승동 매점에서 맥주 한잔
사진 25)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 탑승동 남자 화장실(좌변기와 문사이의 공간이 아주 넓다)
사진 26) 공항 탑승구 앞 대기실에 앉아 뜨개질하는 아내 (옆에 앉은 남자는 애인 아님)
사진 27)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 탑승구 앞에서 재미있는 장면 연출
우리는 이리 저리 시간을 보낸 후 현지시간 오후 7시 40분에 앞서 타고 온 비행기 보다 작은 기종인 SU2422 여객기에 탑승하였다. 이륙 후 안전상태가 되었을 때 나는 창문을 통해 모스크바 시내를 구경하고 싶어 안전벨트를 풀고 비상구 공간으로 나왔다. 아래로 까마득히 시가지 일부가 보이기는 하였으나 아마도 모스크바 변두리여서 그런지 눈에 띠는 형상은 발견할 수 없었다. 이마를 창에 붙이고 고개를 숙여 더 이상 구경하려 해도 구름에 가려 다른 풍경은 감상하기 어려웠다.
사진 28) 하늘에서 내려다 본 모스크바 부근 시가지
우리시간 4일 새벽 3시 20분, 현지시간 3일 오후 9시 20분경이 되자 또 기내식이 나왔다. 앞 비행기에서 이미 저녁을 먹었음에도 또 다시 기내식이 나온 것은 6시간의 시차 때문이었다. 앞에 먹은 것은 우리시간으로 저녁이고 뒤에 먹게 된 것은 러시아 시간으로 저녁인 셈이다. 갈수록 음식이 입맛에 안 맞아 억지로 먹고 빵은 그대로 남겼다. 비행기는 한참을 더 날아 우리시간으로 4일 오전 5시경 드디어 베니스 마르코폴로 국제공항에 착륙하였다. 비행기에서 내려 수하물을 찾으러 가며 본 안내표지판의 디지털시계는 우리보다 7시간이 더 늦은 (3일) 22시 20분을 표시하고 있었다.
사진 29) 기내식 두번째 저녁
사진 30) 비행기에서 내려 짐을 찾으러 가는 중
수하물을 찾아 입국심사를 마치고 출구로 나오니 현지 각 여행사에서 피켓을 들고 각자 자기들의 손님을 맞이하였다. 우리를 맞이하는 사람은 아직 나타나지 않아 우리는 로비에서 잠시 대기한 다음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밖에 대기하고 있던 관광버스에 올랐다. 버스를 타고 가며 창밖의 불빛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나는 우리들의 숙소가 베니스 시내가 아닌 변두리에 있음을 직감하였다. 저가의 패키지여행이라 애초에 큰 기대는 접었지만 그래도 첫날만큼은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베니스 시내로 가지 않고 공항에서 무려 1시간이나 더 변두리로 나가서 현지시간 3일 오후 11시 50분경에 첫날 숙소인 임페리얼 호텔에 도착하였다. 숙소가 시내에 있어야 저녁식사 후 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자유롭게 산책하며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데 도시 외곽 숲속이나 인적이 드문 곳에 가두어 놓고 꼼작 못하게 하는 것은 패키지여행의 큰 단점이다. 우리는 각자 배정받은 방에 여장을 풀고 다음날 날씨만이라도 좋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사진 31) 피켓을 들고 손님을 맞이하는 현지 여행사 직원들
사진 32) 공항 출구 로비에서 대기중
사진 33)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여행사 버스
첫댓글 비스마르크지기님~~
넘 재미있고 자세하게 남겨주시어~
조금 과하게 표현하면 여행에 동참하는 느낌이에요~~
찍사하시고 작가하시고 1인 다역입니다~~
러시아분을 안보아도 되는 미모되시는 애인함께하시니~
즐거움이 전해져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행문을 쓰면서 여행의 의미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1.20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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