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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ART
안 영 목
An, Young-Mok
第9回 畵筆人生60余 星雪 畵集發刊
安泳穆畵伯 作品展
2006. 10. 24-10. 29 서울갤러리 전관
大自然은 人類의 本鄕,
굵고 두터운 筆線에서 生命力 돋보여
김남수 / 미술평론가
자연은 인간을 위한 위대한 스승이라고 부르는 화가들을 흔히 우리는 자연주의 화파라고 불러왔다. 사실을 왜곡이나 과장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화폭에 재현하는 것을 말한다. 17세기 이태리의 화파들에서 자연주의의 효시를 이루었고 19세기 파리 등지에서는 도시의 풍속도나 환락가를 소재로 다루었던 일련의 작가들이 자연주의를 선언하고 그룹활동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정시 미술교육을 받은 선배들이 해방과 함께 국전을 주도하면서 이른바 아카데미즘의 화풍을 추구했으며 그후 이와 상치되는 사실주의 계열과 인상파 화풍이 화단의 주류를 형성하면서 오늘날까지 구상회화 양식으로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자연주의와 사실주의의 개념구분은 편의상 전자를 피사체의 거짓 없는 진실을 묘사하는 단순재현으로 정의한다면 후자는 자연의 피사체에 창작성이나 작가의 정신성, 즉 사의적인 내재률을 가미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사실의 일부 왜곡이나 변주를 의미하는 것이며 구상회화로서 우리화단의 70%를 점하고 있는 화가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의 작가들은 빛과 색채가 어우러진 인상주의 화풍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동양화에서도 실경산수 외에 진경산수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있다. 췌육을 떨쳐버린 필요한 진수만을 화폭에 담는다는 뜻이다. 조선시대의 겸재 정선 같은 작가는 높은 진경의 안목을 가졌다는 것이 후세에 와서 일부 사가들에 의하여 평가되고 있다.
安泳穆의 藝術
우리화단의 산 증인이요, 원로작가인 안영목은 화필인생 60여 星雪을 구도자처럼 사실주의 화풍으로 외길을 걸어 온 화단의 중진이다. 60년대초 추상주의 화풍이 유입되면서 뜨거운 표현주의 물결에 휩쓸려 조선일보가 주최한 ‘현대작가 초대전' 등에 참여하는 등 근 10년 동안 출품을 해 왔지만 난해한 회화성과 표현의 한계성 등 작가의 체질에 맞지 않아 구상회화로 선회를 했다. 특히 한국 산하의 그리움(憧憬) 때문에 피사체로서의 아름다운 향수와 서정이 펼쳐진 한국의 자연을 그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감동이 그를 사로잡은 것이다.
그로부터 작가는 50년 간을 구상주의 회화로 일관을 해 왔다. 당시만 하더라도 구상과 추상의 첨예한 대립 등 흑백논리로 맞섰고, 70년대 들어와 국전이 추상화 부문을 수용함으로서 이단자라는 낙 인이 싫어 10년 간을 버티다가 사실주의 화파(畵派)로 회귀를 했던 웃지 못할 촌극도 경험을 했다. 그러나 작가는 구상회화로 선회한 후에도, 많은 도전과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구상은 진부하고 시대에 뒤진 예술, 구각을 벗지 못하는 전통예술 등 심한 저항을 받았다. 작가는 이에 좌절하지 않고 신기회를 비롯한 여러 사생회의 창립 등 구상회화의 영역을 넓히고 미술인구의 저변화대 등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온 힘을 쏟았다. 작가의 주장에 의하면 '예술은 다양한 양식이 공존함으로써 그 나라 문화예술이 발전하는 것아며 획일적인 예술양식이나 이즘만이 존재한다면 그 나라 예술은 스스로 몰락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지론을 펴 왔다. ‘우리의 것만이 세계에서 제일이라고 고집하는 것은 자칫 국수주의자로 전락하는 위험한 사고요, 세계성과 공존하지 못할 때 우리만이 향유하는 국제적 고아에 불과한 것'이라고 역설하는 작가의 지론은 ‘독선과 배타가 판을 치는 예술환경이라면 한국미술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힘주어 말을 한다. 추상은 현대이고 구상은 현대가 아니라는 사고는 근시안적이고 속물적인 유추방법이며 추상에도 너무나 닮아버린 전근대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구상에도 시대적 상황을 조망하는 현대적 구상이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고 부연을 한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대자연을 보지 않고 화실이나 밀폐된 공간에서 작업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특히 한국유화의 서구화나 국적불명의 예술양식 등 아류는 경계해야되며, 그는 한국성을 구현하기 위해 우리의 옛 것 고가구의 디테일한 묘사 등 작품의 명제도 <懷古>라고 이름 붙여 국전 등의 출품작으로 명명하여 선 보이곤 했다.
安泳穆의 作品世界
우리의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논리는 우리의 예술품이 세계의 예술양식과 접목하고 공존하면서 공인을 받을 때 가능한 것이다. 작가 안영목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한국인의 빛깔, 한국인의 선과 형태, 질감, 정서와 체취를 담기 위해 심도 있는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앞서 말한 우리의 예 것 고가구나, 버선목, 옷에 꾸미는 동전, 색동, 문풍지 등은 세계 유일한 우리의 것이며 이러한 것들이 작품으로 승화되어 세계인의 공인을 받으면 그것으로 목적은 성취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만 하더라도 다양한 유파와 양식이 존재하며, 작가마다의 독작인 개성과 자화상이 표출될 때 일응 한국성의 완성에 접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예술이 세계시장의 공감을 얻을 때 한국성은 세계와 함께 공유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지론을 펴고 있다
그의 최근작들을 보면 코리아판타지를 연상케 할 만금 호방하고 깊고 두터운 붓 터치가 자유분방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야말로 그의 예술작품을 굳이 분류를 한다면 현대구상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그의 작품은 활달한 필선과 살아 꿈틀거리는 생동감으로 넘쳐나고 있다. 팔순의 나이에 그림은 오히려 젊어지고 있다는 일부의 시각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최근 그가 연작으로 발표하고 있는 <복사꽃 과수원>이나 일련의 풍경화들은 두터운 마티엘과 함께 속도감 있는 필선이 오히려 둔탁할 만큼 뭉턱 뭉턱 물감을 칠하면서 밝고 화사한 색채의 미학을 연출하고 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자유의 미학을 실현하고 있는 것은 원숙한 노경의 경지에 이른 그의 예술이 열화 같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밀도감 있고 중후한 맛을 내는 것도 그의 작품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安泳穆 畵伯의 작품전을 祝賀하며
李祥薰 / 신기회 자문위원, 화가
우리화단의 중진이며 평소 내가 인간적으로도 敬愛하여 마지 않는 안영목 화백이 제 8회 개인전을 맞아 화백 본인은 물론이겠지만 우리 미술계 그리고 全 文化界에 대단히 뜻있는 일이라 생각되어 우선 祝賀와 稱訟의 마음으로 가득하다.
「人生은 짧고 藝術은 길다」는 말이 있다. 安畵伯도 어느덧 70을 넘어 80대에 접어든 연세에 있는줄 알지만 그의 행동파적인 작가생활에서나 작품세계에 있어서 흔히 있을 수 있는 老境의 이미지를 전혀 엿볼 수 없이 活力과 躍動에 넘치는 느낌을 주는 것은 크나큰 놀라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畵伯의 화려한 畵歷에서 보듯이 가까운 일본, 대만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 불란서, 미국, 러시아 등 그야말로 세계화를 실감케하는 美術活動을 끊임없이 지속하고 있는가 하면 그많은 作品發表의 기회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그것도 언제나 정력이 넘치는 역작을 내 놓는다는 것도 실로 놀랍거니와 그들 작품의 제작과정이 그 大小를 막론하고 그의 자연현장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또한 경의적인 정력이라 하겠다. 그리고 자연주의적이며 인상파적인 그 화풍에서 항상 느낄 수 있는 싱싱한 생동감은 그가 끊임없이 추구하는 뛰어난 색채감각과 천부적인 健全性에 兼備한 誠實性 등 작가의 天品과 의지적 노력의 예술적 融合임을 실감할 때 작가와 작품에 대한 친근감과 敬愛心이 한층 높아진다.
안화백의 인간과 예술을 말함에 있어서 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의 나라 사랑과 국토 사랑의 정서이다. 여러 나라의 국외활동을 주도하다싶이 하면서도 作風에 있어서 외국작가들의 그것에 물들거나 영향됨이 없이 한국인으로서의 주체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며 그 自體가 어느 의미에서 가치로운 일이라하겠으며 안화백이 初期 젊은 시절 한때 추상적 표현을 시도했으나 그에 빠지지 않고 바로 그의 본모습으로 복귀한것도 그를 立證하는 것이라 여겨지는 대목이다.
안화백의 이번 화집발간은 어디까지나 그 왕성한 작품활동의 한토막 中間整理에 불과한 것이지 보통 작가들이 老境에 하는 것처럼 한번으로 마감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믿기에 앞으로 전개될 인생의 성취기에 있어서 더 한층의 깊이있는 발전적인 변화를 기대해 볼만하다고 믿는것이다. 원래 예술이란 작가 自身의 아니하고는 못견디는 철저한 표현의 욕구와 그에 합당한 선천적 자질과 후천적 人格의 總和라고 생각할 때 그 존귀함과 永遠性을 實感하는 것이지만 그에 겸하여 작가의 생활환경에서 오는 영향도 또한 적지 않다고 보겠는데 안화백의 경우 그저 內助의 功이 크다고만 말하고 말기에는 너무도 훌륭한 부인 韓季錫 女史의 크나큰 존재를 덧부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도 안화백은 가정적으로 모두 부러워하는 幸福者임을 敬賀하면서 남다른 예술적 가정으로 평안과 발전이 새롭기를 祈願하여 마지 않는다.
안영목의 作品世界
박용숙 / 미술평론가
자연에 대한 연구는 아무래도 서양쪽 보다는 동양쪽이 앞섰던게 사실이다. 서양사람들은 동양사람들이 나무와 바위, 물, 공기와 같은 것을 열심히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8세기쯤에 이르러 비로서 순수한 자연(풍경화)의 아름다움에 눈을 돌리게 되고 비록 산수화 양식과는 다르지만 그들 나름의 산수를 그리게 된다. 인상주의 시대의 화가들이 공기나 빛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자연환경(空間)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된 것도 그들 특유의 자연관 때문이다. 19세기에 나타나기 시작한 빛의 입자설(粒子說)이라든가 공간의 자장설에 힘입어 자연관이 동양화의 자연관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안영목화백의 그림들은 한마디로 무어라고 특징지울 수는 없으나, 적어도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동양적인 요소와 서구적인 요소가 절충되어 있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지리산, 설악산과 같은 명산을 그리면서도 그 골짜기의 형세가 갖는 조형적인 미감들을 적절하게 선택하는 태도는 마치 옛 산수화가들이 삼원법을 통해 명당(眞景)을 그리려던 태도와 흡사한 것이다.
그러나 안화백의 자연관찰은 색채를 다루거나 조형요소들을 재구성해가는 과정에서 확실히 서구적인 자연관이 갖는 어떤 특별한 미감에 접근하고 있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우선 그는 절대로 검은색을 사용하지 않는다. 검은색은 산수화에서는 자연의 기본색채이지만 서양화에 있어선 오히려 죽음을 상징하리만큼 자연과는 배치되는 색채이다.
보라색의 토운이 그의 전체 화폭을 은은하게 지배하고 있는것은 그가 의식적으로 검은색을 피하면서 간접적으로 그 대응색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것이 서구적인 자연관과 맥락을 같게 한다는 것은 인상주의시대의 작품들을 관찰할 때 더욱 분명해진다.
물론 그의 보라색이나 무겁게 보이는 어두운 색들은 그 자체의 색가(色價)를 강조하기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빛의 의미를 상대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의 빛은 물론 자연의 신비감을 열어보이는 열쇠가 되므로 빛은 때때로 하나의 환광(幻光)이 되기도하고 난반사(亂反射)로 엇갈리는 미묘한 색채의 미술로 나타나기도한다.
이번 작품에서 자연을 부감하는 이른바 내려다보이는 시각이 자주 보이는 것도 산과 산이 빚어내는 구비진 골짜기가 환광을 만들어내기에 적절하기 때문이며 골짜구니가 겹치면서 구도상으로 사선이나 역삼각형이 구성되는 시각을 도입하게 된 것도 빛의 난반사와 관련된다. 그것은 마치 에코가 이산과 저산을 부딪치며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하나의 방향에서 내리비친 햇빛이 이산과 저산을 왕래하면서 하나의 골짜기를 미묘한 색채의 도가니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 색채의 폴라현상은 자연의 여러 가지 종류의 색깔, 그것은 주로 꽃나무가 주종이지만 그 밖에도 우리의 눈이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갖가지 색상의 요인들과 어우러지는 공도의 합창과 같은 것임을 두 말할 여지가 없다.
모네의 수연(水蓮)이나 보나르의 꽃그림들이 보여주는 그 색깔의 연금술과 비교해 보면 어느정도 그의 자연관찰의 비밀 작화태도가 동서양화의 和合, 調和를 꾀해보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 있으며 서구적인 자연관에 보다 많이 기울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는 것이다.
天 賦
Claude Bugeon, mal / 1988
韓敬子 譯 / 住佛詩人
봄볕이 가득히 든 창가에서 安泳穆 화백의 1985년 전시회 목록을 한 장 두장 넘기면서 문득 보나르 생각이 났습니다. 꽃이 만발한 편도 나무를 그린 未期의 보나르 말입니다. 안영목 화백이 보나르처럼 그린다는 뜻도 아니요, 보나르식 그림을 그린다는 뜻도 아니요, 다만 그분의 작품속에서 색채를 닦고 닦는 보나르와 흡사한 기쁨과 보나르와 흡사한 彩色工人의 天賦姿質을 뜻할 뿐입니다. 여러분은 색조의 신비적 표현에 무감각할 수 없습니다.
안영목 화백이 매번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충분히 이해하시며 더구나 그분이 그런 자만심이 가득찬 사람이 아님을 저는 여러분에게 장담합니다.
본인이 의식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분은 인상파 화가들이 再會한(存在)바로 그곳에서 인상파 화가중의 한사람이 아니면서도 프리즘의 核心을 찾고 있습니다. 그곳은 함정과 돛이 수없이 놓인 곳입니다. 무대조명을 감독하는 기술자처럼 그곳에서 名手로서 군림하지 못합니다.
프리즘은 순식간에 분해되고 날카로운 화가의 시선은 理智的 直感을 통해서 자연속에 소재를 구성하는 暗號文을 해독합니다. 그것은 暗中摸索 속에 이루어지며 화가는 번역하기 어려운 언어인 色彩의 傳喝을 옮겨 쓸려고 갖은 애를 쓰며 暗中摸索 속에서 啓示를 받습니다.
이와 같은 啓示야 말로 화가로 하여금 무모한 도전의 대망을 품게하며 그가 추호도 과소평가하지 않는 관객에게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思想家 루돌프 스타이너는 그의 책에서 色彩의 本質에 관한 이런 말을 우리에게 해줍니다.
「색채와 대화하는 것이나 색채가 어떻게 畵布에 자리를 잡고 싶어하는지 우리 귓전에 속삭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것이야말로 어떻게 해서든지 현실을 끝까지 파헤치고 싶어하는 事物을 고찰하는 태도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리는 것이다.」
색채와 이런 긴밀한 대화를 나눌려면 그와 지극히 친밀한 관계를 맺어야하며 그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고 선천적인 色彩의 認知에 순종해야 하며 그와 아주 친한 친구가 돼야 합니다. 安泳穆화백은 이런 天職을 지닌 분입니다.
1988年 5月
끌로드뷔종
불란서 西部 「 ?島 」에서 詩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중진
大自然은 모든 美術의 母體
모든 美術活動 造形活動은 자연에서 始作된다. 大自然은 미술의 母體이고 寶庫이다. 그리고 우리 人間을 살게 해주고 키워주는 곳이다. 1960년대 중반 나의 추상화에 대한 懷意와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무렵 조선일보사가 주최한 現代作家招待展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당시 국전에서 추상작가들을 包攝하여 국전에도 抽象畵部가 생긴 것이다. 招待作家 중 一部가 國展에 參加하게되니 나머지 작가들은 虛無感에 빠지기도 했다.
이 무렵 現代作家 團體 新紀會에서 이상훈 회장님을 비롯 幹部會員任들의 入會勸誘를 받고 신기회 入會를 決定하였다. 入會初는 2, 3回 抽象畵를 出品하였던 기억이 난다. 10년가까이 해오던 추상화를 구상으로 回歸하는데 時間이 必要했던 것 같다. 그 당시는 추상을 하다가 구상화를 하면 무슨 큰 背反者같은 雰圍氣가 있었던 時節 같이 생각된다.
그 후 화실에서 自然現場을 보지 않고 風景畵를 만들었다.
힘들었던 생각이 난다. 대자연을 畵室에 기억만으로 作品을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무엇인가 많은 부족감에 사로잡혔다.
그러면 자연속으로 돌아가자. 대자연으로 나가자. 저 無窮無盡한 美의 寶庫, 眞理가 있는 곳으로 거기서 우리의 美를 대자연의 미의 진리를 탐구하자. 이리하여 대자연의 품속으로 안기니 대자연은 어디고 내 화실이 되었다. 대자연 어느 곳이고 모두가 내 화실이라고 생각하니 그 歡喜는 感激이오 恍惚이였다.
그 후 외국의 여러 가지 流波 流行이 쏟아져 들어 오다보니 자칫 그 潮流에 휩쓸려 국적불명의 곳이되고 여기서 한국적인것을 부르짖고 지향하다보니 한때 국전 수상작은 명제가 「懷古」로 우리나라 고가구를 정밀하게 묘사한 작품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近者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국제적인 것이라는 말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러면 가장 한국적인 것, 가장 국제적인 것을 어디에서 찾아 내어 작품 表現까지 昇華시켜야하나. 그것은 바로 우리 江山 우리의 대자연속에 그 해답이 있지 않으까. 우리 形態, 線, 色彩, 質憾, 情緖를 深度있게 追求해 나가다보면 우리것을 發見하고 表出 表現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대자연, 風景, 風物속으로 몰두하게 되었다.
오늘날에 와서 회화의 傾向流波도 극도로 다양해져서 人脈이란 이야기는 오래전 이야기가 되었다. 모든 화가들이 제각기 자기소리를 내는 시대가 되었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로서도 그 모든 것을 다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이다.
팝아트, 근간에 많이 논의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설치미술, 전자 TV 미술 등등,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대자연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고 자연속에서 發見, 注出해내서 여러 가지 表現 對象으로 表現作品化하는 것이다.
모든 造形, 美術活動의 根源은 根幹은 대자연에 있다. 큰 나무로 비유한다면 큰 줄기와 뿌리와 가지와 많은 잎새들 廣域의 美術畵論에서 볼 때 구상은 뿌리와 큰 줄기이고 거기서 가지와 잎으로 되어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어느것이 필요하고 없고가 아니라 모두가 다 必要한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協力共存할때 그 나무는 튼튼하고 건전하게 生存할 것이다. 모든 것들의 調和롭고 슬기로운 共存이어야한다.
그러나 그간 미술계가 親傾向을 향한 速度競爭에 빠진 것이 아닌가. 벼락치기 작가가 눈코뜰새없이 만들어지고 포스트모더니즘과 설치미술, 비디오미술이 예술의 이름으로 輸入形 作品軍團이 活舞하고 있다. 한 사람의 작가가 만들어지는 것이 그렇게 단시일내에 되는 것은 아니다. 藝術作品이란 결코 반짝 ‘쇼'일 수는 없다.
流行도 아니고 時流를 쫓아가는 것도 아닐 것이다. 具象畵도 새로운 것이 있고 抽象(非具象)도 새로운 것이 있으며 추상만이 현대적이고 구상은 현대적이 아니라는 식의 論理와 思考方式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그간 내가 느끼기에는 具象界와 非具象界가 相互間自眼視하는 듯한 風潮는 건전한 方向으로 재정립되어야하는 것이 아닐까. 구상이든 비구상이든 예술픔으로서의 영원한 가치, 藝術的인 높은 繪畵性이 우리가 추구하는 길일 것이다. 80년대 중반부터 우리나라에도 열병처럼 휘몰아친 세계적인 文化史潮의 하나인 포스트모더니즘 그 槪念이란 「脫 近代」 「解體」 「今代不信 反省」 등에서 出發하여 우리미술계에도 열띤 論爭이 자주 벌어졌다.
특히 최근 文化와 價値의 다양화 등 우리문화사회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욕구는 불신받은 近代의 후유증이자 포스트모더니즘이 해결할 課題가 되고 있다.
自由民主社會란 다양한 문화가치들의 절충과 타협을 통한 조화를 이루는 공존의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思慮된다. 끝으로 오지호화백님의 繪畵藝術論의 結論을 상기해본다. 「繪畵藝術은 “自然再現”만이 唯一絶對의 방법론이다. 만일 繪畵가 自然再現을 떠날 때 그것은 벌써 繪畵가 아니다.」
오늘날 추상(비구상)으로 불리워지는 모든 유파의 회화는 큰 의미에서의 대자연의 再現이다. 회화는 美術技巧가 아니라, 美的靈感의 세계이다. 自然속에 抽象이 있고 抽象속에 具象이 있다. 大自然은 이 모든 것을 包容하고 있는 것이다.
- 작가노트 -
해외초대전
2004 프랑스 국립살롱 초대 한국작가 작품전
2004. 12. 14 ~ 12. 21 프랑스 파리 루불미술관 CARROUSEL살롱 전시관
원로 안영목 화백 외
김미자, 김기홍, 황병식, 민병각, 이광하, 서홍석, 김익란, 정은숙, 임영란 참가
한국미술의 우수성과 다양성을 알리는데 기여
2004 프랑스 국립살롱초대 한국작가 작품전이 지난해 2004년 12월 14일부터 12월 21일까지 프랑스 파리 루불미술관CARROUSEL살롱 전시관에서 열렸다. 한국미술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혼신의 노력을 하고 귀국한 안영목화백은 우리 화단의 원로이며 산 증인이다. 안영목 선생은 여든세살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만큼 늘 의욕에 차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전국의 산하를 화폭에 담기 위해 분주히 스케치를 하러 떠난다. 특히 그는 자연에서 받은 느낌을 붓과 물감을 통해 작가만의 해석으로 한국의 산하를 우리 앞에 재현해 내고 있다.
우리의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논리는 우리의 예술작품이 세계의 예술양식과 공존하면서 공인 받을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런 가운데 그는 지난해 12월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에서 ‘국가 살롱전’을 성대히 끝내고 귀국했다. 이번 전시에서 국제미술위원회(위원장:안영목)가 특별상의 수상의 영예를 안았는데 2003년부터 살롱전에 참석한 안화백은 “프랑스 국가 살롱전은 역사가 300년이 넘는 유서깊은 전시입니다. 아카데미가 주축이 된 ‘살롱전’에는 모네와 같은 화가도 끼어들 수 없어 훗날 ‘낙선전’이 생겨났을 정도였지요. 이런 전통있는 전시에 한국 작가들이 보다 활발히 작품을 내서 우리 작품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려야합니다”라고 다짐하고 있다.
그를 두고 일부 동료작가나 후학들은 자연 찬미론자(讚美論者)로 보는 시각이 있다.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요, 인간들을 위한 규범이요, 신비스러운 실존이기 때문에 자연과의 묵시적인 대화를 통하여 정직한 진실과 신뢰를 배웁니다. 자연과 인간의 함수관계는 위대한 예술작품을 탄생시키는 외연(外延)이요, 피사체이며, 인간이 낳고, 자라고, 다시 그곳으로 귀의하는 숭고한 인류의 본향이지요.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든지 산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서해안 평야지대에서도 먼발치로 산이 보입니다. 한국은 그러니 ‘그림그리기 좋은 나라’ 아니겠어요.”라고 반문하고 있듯이 그의 작품은 밀폐된 공간이 아닌 한국의 산하를 쉼없이 펼쳐내고 있다.
그의 작품은 코리아 판타지를 연상케 할만큼 호방하고 깊고 두터운 붓터치가 밝고 화사한 색채의 미학을 통해 화면에 자유롭게 묘사되고 있다. 그래서 세계미술시장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지 않나 싶다. 그야말로 그의 예술세계는 활달한 필선과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으로 소박한 한국의 고향산천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속에서 팔순 작가의 열려진 감성과 조형력을 감지할 수 있으며 연륜과 원숙미를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는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에 걸쳐 우리화단에 미술그룹으로 가장 큰 단체인 신기회, 국제화우회, 풍경화회, 현대사생회 창립 멤버로 참여를 했으며 대만과의 국제 교류전을 시작으로 하여 70년대 후반 일본의 아시아현대미술교류전 등 한국미술의 국제교류를 통한 정보교환, 작품의 비교연구, 친화력 강화 등 우리미술의 위상강화와 국제적 지위의 확보 등을 위한 가교역할을 담당했다.
프랑스 국제미술위원회 자문을 맡고 있는 안화백은 올 12월에 예정된 ‘국가살롱전’에도 작품을 내 ‘정회원’자격을 얻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아울러 한국미술을 알리는데 남은 열정을 바쳐서 우리미술의 세계화에 또 다른 도약을 삼겠노라고 다짐하고 있다.
이번 초대전에는 안영목화백 외 김미자, 김기홍, 황병식, 민병각, 이광하, 서홍석, 김익란, 정은숙, 임영란 등이 참여하여 많은 관심을 얻은 바 있다.
- 편집부 -
작가탐구
안 영 목
Aun, Young Mok
求道者처럼 藝術魂 불사르는 八旬의 老畵伯
大自然은 人類의 本鄕,
굵고 두터운 筆線에서
生命力 돋보여
김남수 / 미술평론가, 본지주간
글머리에
자연은 인간을 위한 위대한 스승이라고 부르는 화가들을 흔히 우리는 자연주의 화파라고 불러왔다. 사실을 왜곡이나 과장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화폭에 재현하는 것을 말한다. 17세기 이태리의 화파들에서 자연주의의 효시를 이루었고 19세기 파리 등지에서는 도시의 풍속도나 환락가를 소재로 다루었던 일련의 작가들이 자연주의를 선언하고 그룹활동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정시 미술교육을 받은 선배들이 해방과 함께 국전을 주도하면서 이른바 아카데미즘의 화풍을 추구했으며 그후 이와 상치되는 사실주의 계열과 인상파 화풍이 화단의 주류를 형성하면서 오늘날까지 구상회화 양식으로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자연주의와 사실주의의 개념구분은 편의상 전자를 피사체의 거짓 없는 진실을 묘사하는 단순재현으로 정의한다면 후자는 자연의 피사체에 창작성이나 작가의 정신성, 즉 사의적인 내재률을 가미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사실의 일부 왜곡이나 변주를 의미하는 것이며 구상회화로서 우리화단의 70%를 점하고 있는 화가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의 작가들은 빛과 색채가 어우러진 인상주의 화풍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동양화에서도 실경산수 외에 진경산수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있다. 췌육을 떨쳐버린 필요한 진수만을 화폭에 담는다는 뜻이다. 조선시대의 겸재 정선 같은 작가는 높은 진경의 안목을 가졌다는 것이 후세에 와서 일부 사가들에 의하여 평가되고 있다.
安泳穆의 藝術
우리화단의 산 증인이요, 원로작가인 안영목은 60평생을 구도자처럼 사실주의 화풍으로 외길을 걸어 온 화단의 중진이다. 60년대초 추상주의 화풍이 유입되면서 뜨거운 표현주의 물결에 휩쓸려 조선일보가 주최한 '현대작가 초대전' 등에 참여하는 등 근 10년 동안 출품을 해 왔지만 난해한 회화성과 표현의 한계성 등 작가의 체질에 맞지 않아 구상회화로 선회를 했다. 특히 한국 산하의 그리움(憧憬) 때문에 피사체로서의 아름다운 향수와 서정이 펼쳐진 한국의 자연을 그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감동이 그를 사로잡은 것이다. 그로부터 작가는 50년 간을 구상주의 회화로 일관을 해 왔다. 당시만 하더라도 구상과 추상의 첨예한 대립 등 흑백논리로 맞섰고, 70년대 들어와 국전이 추상화 부문을 수용함으로서 이단자라는 낙인이 싫어 10년 간을 버티다가 사실주의 화파(畵派)로 회귀를 했던 웃지 못할 촌극도 경험을 했다. 그러나 작가는 구상회화로 선회한 후에도, 많은 도전과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구상은 진부하고 시대에 뒤진 예술, 구각을 벗지 못하는 전통예술 등 심한 저항을 받았다. 작가는 이에 좌절하지 않고 신기회를 비롯한 여러 사생회의 창립 등 구상회화의 영역을 넓히고 미술인구의 저변화대 등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온 힘을 쏟았다.
작가의 주장에 의하면 '예술은 다양한 양식이 공존함으로써 그 나라 문화예술이 발전하는 것아며 획일적인 예술양식이나 이즘만이 존재한다면 그 나라 예술은 스스로 몰락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지론을 펴 왔다. '우리의 것만이 세계에서 제일이라고 고집하는 것은 자칫 국수주의자로 전락하는 위험한 사고요, 세계성과 공존하지 못할 때 우리만이 향유하는 국제적 고아에 불과한 것'이라고 역설하는 작가의 지론은 '독선과 배타가 판을 치는 예술환경이라면 한국미술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힘주어 말을 한다. 추상은 현대이고 구상은 현대가 아니라는 사고는 근시안적이고 속물적인 유추방법이며 추상에도 너무나 닮아버린 전근대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구상에도 시대적 상황을 조망하는 현대적 구상이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고 부연을 한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대자연을 보지 않고 화실이나 밀폐된 공간에서 작업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특히 한국유화의 서구화나 국적불명의 예술양식 등 아류는 경계해야되며, 그는 한국성을 구현하기 위해 우리의 옛 것 고가구의 디테일한 묘사 등 작품의 명제도 <懷古>라고 이름 붙여 국전 등의 출품작으로 명명하여 선 보이곤 했다.
安泳穆의 作品世界
우리의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논리는 우리의 예술품이 세계의 예술양식과 접목하고 공존하면서 공인을 받을 때 가능한 것이다. 작가 안영목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한국인의 빛깔, 한국인의 선과 형태, 질감, 정서와 체취를 담기 위해 심도 있는 연구를 거듭하고 있
다.
앞서 말한 우리의 예 것 고가구나, 버선목, 옷에 꾸미는 동전, 색동, 문풍지 등은 세계 유일한 우리의 것이며 이러한 것들이 작품으로 승화되어 세계인의 공인을 받으면 그것으로 목적은 성취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만 하더라도 다양한 유파와 양식이 존재하며, 작가마다의 독작인 개성과 자화상이 표출될 때 일응 한국성의 완성에 접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예술이 세계시장의 공감을 얻을 때 한국성은 세계와 함께 공유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지론을 펴고 있다.
그의 최근작들을 보면 코리아판타지를 연상케 할 만금 호방하고 깊고 두터운 붓 터치가 자유분방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야말로 그의 예술작품을 굳이 분류를 한다면 현대구상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그의 작품은 활달한 필선과 살아 꿈틀거리는 생동감으로 넘쳐나고 있다.
팔순의 나이에 그림은 오히려 젊어지고 있다는 일부의 시각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최근 그가 연작으로 발표하고 있는 <복사꽃 과수원>이나 일련의 풍경화들은 두터운 마티엘과 함께 속도감 있는 필선이 오히려 둔탁할 만큼 뭉턱 뭉턱 물감을 칠하면서 밝고 화사한 색채의 미학을 연출하고 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자유의 미학을 실현하고 있는 것은 원숙한 노경의 경지에 이른 그의 예술이 열화 같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밀도감 있고 중후한 맛을 내는 것도 그의 작품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다음은 安泳穆화백과의 인터뷰 要旨를 소개한다.
金 … 선생님 오랫동안 적조했습니다. 건강은 괜찮으신지요.
安 … 찾아주셔서 반갑습나다. 덕분에 아직까지는 건강한 편입니다.
金 … 정말 다행이군요. 우리화단의 원로요, 한국미술의 창조적인 발전을 주도했던 산 증인이신 데 오래 오래 수(壽) 하셔야죠. 선생님을 자연주의 화가라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 말인가요.
安 … 글세요. 유럽에서 흔히 말하는 자연주의 유파라기 보다는 사실주의를 추구하는 구상화가라고 보는 것이 옳겠죠. 다만 나를 보고 일부 동료작가나 후학들은 자연 찬미론자(讚美論者)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그 의견이 옳다고 봅니다.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요, 인간들을 위한 규범이요, 신비스런 실존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연과의 묵시적인 대화를 통하여 완성된 작품을 본인은 가끔 '大自然의 戀歌' 라고 주제를 붙입니다. 그 만큼 자연이 주는 사랑과 감동은 큰 것이죠. 우리는 자연을 통하여 늠름하고 정직한 진실과 신뢰를 배워온 것입니다. 자연과 인간의 함수관계는 위대한 예술품을 탄생시키는 외연(外延)이요, 피사체이며, 인간이 낳고, 자라고, 다시 그 곳으로 귀의하는 숭고한 인류의 본향이죠.
金 … 정말 선생님의 자연지상주의에 공감이 가는군요. 자연의 왜경함과 숭고함에 속물적인 인간은 누구도 감히 범접하지 못 하는 것이죠. 우리나라의 예술문화정책과 특히 원로화가들에 대한 예우는 어느 정도인지 한마디 소감을 피력해 주시죠.
安 … 정말 시의적절한 질문입니다. 꼭 하고 싶었던 흉중의 생각을 쪽집계처럼 끄집어내는 것 같군요. 사실 이와 관련한 질문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나 많아요. 지난 국민의 정부 때 '예술정책'을 선언했고, 건국 이후 초유로 문화예술과 관련한 예산 1%(약 9,000 억)가 편성되어 집행이 이루어졌는데 미술과 관련한 예산은 실종 해 버린 것입니다. 본인이 알기로는 창작기금의 지원 등 그 혜택을 받았다는 예기를 들은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특정인이 혜택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주무당국자가 너무나 무지하고 미술인이 불모지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 생각합니다.
비근한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선진국은 국가가 법으로 예술인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술인의 경우 정부가 경제적 위기를 맞아 미술인의 생활이 어려울 경우 특별예산을 편성하여 그들의 생계유지를 위해 그림을 사주는 등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 그런 선례가 있고 심지어 옛 공산권인 동유럽의 국가들에서는 작가의 수준별 등급에 따라 분기별 생계비를 무상으로 지급하는 등 한국을 방문한 그들 작가들을 통하여 알고 있습니다.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미술인을 보호하는 선진국들은 모두가 잘 사는 나라들입니다. 프랑스 같은 나라는 드골 집권시 문화성장관을 미술인으로 발령을 했으며 현 시라크 대통령은 로뎅의 작품을 매입한 호암미술관 홍라희관장에게 국가 1등급 문화훈장을 주지 않았습니까. 외국적을 가진 미술인들에게 일정기간만 체류하면 창작기금의 지원은 물론이요, 아뜨리에나 거주지까지 무상으로 마련해 주는 등 우리에 비교하면 천국과 연옥의 차이쯤 되죠. 우리나라의 원로작가는 굳이 화업을 직업에 비교 할 때 비인기 직업이며 유명세나 인기마져 없으면 생계가 막연할 만큼 고립무원의 실정입니다. 이들에게는 정부차원의 특별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술의 메카인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대통령이 외국을 방문할 때 미술인을 동반자로 대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 만큼 미술이 국가정책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뜻이죠. 사실 21세기는 미술이 첨단산업 못지 않게 국가의 중요한 전략산업으로 자리매김을 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金 … 미술정책 차원의 안목도 높으시군요. 국제교류전 등 많은 기여가 있으시다는 미술계의 여론도 있는데…
安 … 과찬입니다. 생래적으로 미술을 좋아했던지, 미술하면 신명이 나서 미술인구나 애호가의 저변확대를 위해 동분서주를 했죠. 지금에 와서 남가일몽(南柯一夢), 마음이 허전하죠. 그렇다고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자화자찬 같아서 쑥스럽군요.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에 걸쳐 우리 화단에 미술 그룹으로 가장 큰 단체인 신기회, 국제화우회, 풍경화가회, 현대사생회 등 창림멤버로 참여를 했으며, 대만과의 국제교류전을 첫 스타트로 하여 70년대 후반 일본의 아시아현대국제미전과 교류를 하는 등 한국미술의 국제교류를 통한 양 국가간의 정보교환, 작품의 비교연구, 친화력 강화 등 우리 미술의 위상강화와 국제적 지위의 확보 등을 위한 가교역할을 좀 했죠. 그 후 중국, 프랑스, 러시아 등과도 국제전을 활발히 했으며 아마도 이 때가 한국미술이 해외로 진출하는 효시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한 예를 든다면 일본과의 교류전 시 직접 일본인 작가들과 일심동체가 되어 후꾸오까, 나가사끼, 센다이, 도야마 등 명소를 찾아 풍경화 등을 현지에서 사생을 하고 합동전이나 평가전을 갖는 것이죠. 훗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역사의 편린들이죠. 이러한 일련의 활동들은 그때만 해도 미술인의 저변확대가 주된 목적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金 … 정말 선생님의 의욕과 패기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합니다. 앞로의 꿈이 있으시다면…, 그리고 바램이 있으시다면….
安 … 모든 미술인의 꿈이기도 합니다만은 좋은 작품을 남기는 것이죠. 세계적인 화가가 되는 것은 국익을 위한 길이요, 외화 획득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미술인은 너무나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예술을 모르는 정치 풍토,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고 하지만 이렇듯 오랜 역사를 가진 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문화의 후진국으로 남아 있는 것도 또한 우리 말고 어느 나라에 그 선례가 있습니까. 미술인에게 단 한 푼도 도움을 주지 못 한 나라에서, 그리고 절치부심하고 자생력으로 살아 온 열악한 미술인들에게 내년 부터는 양도센가 뭔가 세금까지 매긴다고 하니 참으로 암담하죠. 저와 같은 경우는 그래도 호구지책이 마련되어 있어 별 걱정은 없지만 몇몇 속칭 유명세를 갖고 있다는 극소수의 일부 미술인을 제외하고는 모든 미술인들이 생계가 막연하고 심지어 일부의 작가들은 직업을 전환하는 등 비상시국에 살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현상은 국제적인 추세이기도 하고 누굴 원망하고 탓 할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세계적인 화가가 탄생하는 것은 국가의 도움이나 지원이 전무한 불모지에서는 훌륭한 작가가 배출될 수 없다는 것은 국제 공통의 불문율입니다. 아쉽지만 우리의 정치인이나 문화예술당국자가 속물적이고 말초적인 이해관계에만 매 달리지 말고 대승적 세계에서 각성과 성찰 등 보다 눈을 크게 떴으면 합니다. 그리고 고가의 그림을 매입하는 기업인들에게 우리처럼 투기나 사치품으로 매도하지 말고 오히려 문화예술 작품을 매입한 기업인들에게 세금을 감면해 주는 등 선진국의 기법을 배웠으면 합니다.
金 … 선생님 장시간 유익한 말씀 고맙습니다.
安 … 감사합니다.
안영목 / 安泳穆 / An, Young-Mok
•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전공(제1기)
• 홍익대학교 대학원 수료
• 現代作家招待展-초대작가출품(10년)-조선일보사 주최
• INSEA 제22회 PARIS 世界總會 한국대표로 참가
• GALERE ROMANET 개인초대전(PARIS)
• 제20회 아세아 현대미술전 일본外務大臣賞,
內閣總理大臣賞(일본, 동경)
•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 심사위원 역임
• 충청북도전 초대작가상, 심사위원
• 현대미술신기회 회장, 국제화우회 회장
• 대한미술원 회장, 현대사생회 회장, 국제미술위원회장
• 미국 N.M.CONCETTAO Gallery 개인초대전
• 韓·佛 국제교류전(PARIS)
• 韓·蘇국제교류전(싼 피타스버그)
• 한국미술99 - 인간, 자연, 사물 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 2003년 PARIS 국가 살롱전 한국단장으로 현지참가
(루브르미술관)
• 2003~5 일본 아세아국제현대미전 한국단장으로 출품 참가
• 2003~5 프랑스 파리 국가싸롱전 출품 참가
• 2004 아세아국제현대미술 한국초청전(40주년기념)
(서울갤러리 전관)
• 2005 프랑스 국가싸롱전 정회원
• 2006 제9회 畵筆人生 60年 星雪 安泳穆展 畵集發刊
(서울갤러리 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