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속의 과학 -
큰창자는 물과 일부 비타민을 흡수하는 기능 외에 대변이 배출될 때까지 저장하는 기능을 한다. 영양소를 비롯하여 사람의 몸에서 필요로 하는 내용물은 소화기관을 거쳐 가면서 모두 흡수되었으니 대변은 몸에 전혀 쓸모가 없는 노폐물로 취급된다.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이니 사람들은 진화 과정에서 대변을 기피하게 되었고 그 결과 대변 냄새를 맡거나 모양을 보기만 해도 혐오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대변은 인체의 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대변이 너무 빨리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설사나 필요 이상으로 큰창자에 오래 머물고 있는 변비가 모두 몸에 뭔가 이상이 있음을 나타낼 수 있고 색깔이나 모양이 평소와 다르게 변하는 현상도 건강이 잘 유지되지 못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아무리 힘을 줘도 배출이 안 되는 경우 변비라고 한다
대변이 제때 몸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으면 큰창자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체류시간이 길어지면 큰창자에서는 한 방울의 물이라도 더 흡수하므로 대변이 점점 딱딱하게 된다. 대변이 큰창자에 오래 머무는 현상을 변비라 하는데 변비가 생기면 큰창자에 대변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물을 점점 더 많이 흡수하여 배변이 더욱 힘들어진다. 결국 변비는 그 자체로 변비를 더 심하게 하는 것이다. 흔히 하루에 한 번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화장실에 얼마나 자주 가는 것이 정상인가에 대해서는 개인차가 크다. 며칠째 배변을 하지 못해 뱃속에 대변이 꽉 차서 배출 욕구가 있지만 아무리 힘을 줘도 배출이 안 되는 경우를 변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태어나서부터 줄곧 3일에 한 번씩 배변을 한 경우에는 3일간 배변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변비라 하지는 않는다.
변비에서 배변 간격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변의 상태다. 만약 대변이 무른 상태로 쉽게 빠져나간다면 변비에 의한 이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딱딱한 상태의 대변이 큰창자에 머물러 있게 되면 창자벽을 자극하게 된다. 딱딱한 덩어리가 창자 벽을 누르면 주변의 혈관이 눌리게 되고 결과적으로 대변이 들어찬 부위 주변의 혈액순환이 나빠진다. 혈액이 제대로 순환되지 않으면 주변조직에서 필요로 하는 산소와 영양분을 적절히 공급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치핵으로 발전할 수도 있으므로 이를 예방하려면 변비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 습관적으로 책이나 신문을 들고 들어가시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권장할 일이 못 된다. 읽는 일에 열중하다 보면 더 이상 앉아 있을 필요가 없는데도 오래 앉아 있는 경우가 생길 수 있으며 배변을 마친 후에도 계속해서 힘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배변 자세로 오래 앉아 있는 것도 치핵이 발생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으므로 일이 끝났으면 얼른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좋다.
변비는 약으로 치료하기 보다 섬유질 음식 섭취로 벗어나는 편이 좋다
최근에는 좋은 약이 많이 개발되어 있으므로 변비는 약으로 비교적 쉽게 해결 가능하다. 변비약은 작용기전에 따라 큰창자의 운동을 활발히 하게 하여 창자로 들어온 내용물이 빨리 빠져나가게 하는 약과 대변을 부풀어오르게 하여 잘 빠져나가게 하는 약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변비약은 아주 배변이 곤란할 때만 한시적으로 사용해야 하며 습관적으로 변비를 약으로 해결하다 보면 큰창자가 약에 적응하여 더 이상 운동을 하지 않고 버티게 되므로 기능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주인이 주는 음식을 받아먹고 자란 동물이 야생에서 견디기 힘든 것과 같은 이치다. 변비가 생기지 않도록 하려면 섬유질이 포함된 음식을 많이 섭취하면 된다. 섬유가 가늘고 긴 모양을 하고 있듯이 영양소나 몸의 구조를 이야기할 때 섬유라는 말이 나오면 분자구조가 가늘고 긴 모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섬유질은 주로 식물성 음식에 많이 들어 있다. 탄수화물이나 지방과 비교하면 포만감도 느끼지 못하고 에너지원으로서의 역할도 하지 못하므로 먹어봐야 힘을 쓸 수는 없지만 몸 속에 쌓여 있는 노폐물을 청소하는 기능을 한다.
큰창자에서 대변이 형성될 때 대변을 무르게 하여 변비가 생기지 않고 잘 빠져나가게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섬유질이 많이 포함된 음식으로는 채소 과일 버섯 곡류 해조류 등이 있으므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식습관은 변비가 생기지 않도록 잘 적응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서구식 식습관이 광범위하게 접목되면서 변비로 고생하는 분들이 늘고 있는 것도 음식의 섬유질 함량을 따져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큰창자에서 제대로 물이 흡수되지 못하면 설사가 된다
대변이 큰창자 내에 오래 머물러서 생기는 현상이 변비라면 설사는 대변이 작은창자에서부터 큰창자를 지나 항문으로 빠져나갈 때까지 너무 빨리 지나가는 현상을 가리킨다. 따라서 소화과정에 있는 음식이 몸에 흡수될 시간이 없음은 물론 큰창자에서 물을 흡수할 수도 없으므로 물이 많이 포함된 대변이 배출되는 것이다. 설사가 생기는 가장 큰 원인은 몸에 해로운 물질이 들어오는 것이다. 음식에 독소와 같이 몸에 해로운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거나 음식에 오염된 세균이 작은창자에 도달하여 몸에 해로운 물질을 생산하는 경우 또 작은창자에 들어온 세균의 수가 많아서 이들이 창자 벽을 자극하는 경우 등이 설사의 원인이 된다.
흔히 수인성전염병이라 하여 오염된 물을 마실 때 사람의 몸 속으로 미생물 병원체가 침입하여 발생하는 콜레라와 이질은 물 같은 설사를 특징으로 한다. 이 때 빠져나가는 물의 양은 섭취한 양보다 더 많으므로 물을 보충해 주지 않으면 탈수증세가 일어날 수 있다. 자기의사를 확실히 표현하지 못하는 아기들이 설사를 심하게 하는 경우 물을 보충하지 않으면 피가 뻑뻑해져서 흐름이 원활하지 못할 수도 있으므로 신속한 조치가 필요하다.
대변의 색이나 모양으로 내 몸의 건강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정상적인 대변의 색깔은 무엇일까? 개인에 따라 조금 다르게 표현할 수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누렇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정상적인 경우에도 색깔이 조금 더 짙어진다거나 더 밝아져 노란빛을 띨 수 있으며 배변 후 자신의 대변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모르고 있는 질병이 몸 속에서 자라고 있는 것을 찾아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대변색이 누런 것은 적혈구가 수명을 다하여 깨지면서 흘러나온 헤모글로빈이 대사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빌리루빈의 색이 노랗기 때문이다. 지난 글의 “창자간순환”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헤모글로빈이 깨지면서 분해된 헴이 대사되어 생겨나는 빌리루빈은 간으로 가서 처리되어야 하나 이중 일부가 간으로부터 창자로 흘러 들어와 대변색을 노랗게 한다. 참고로 얼굴이 노랗게 바뀌는 황달은 빌리루빈이 대사되지 못하고 온몸을 돌아다니다 얼굴에 축적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대변이 빨간 것은 항문이나 큰 창자 아랫부분에 피가 흐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치핵이 생겼거나 큰창자에 출혈을 일으킬 수 있는 손상이 생긴 경우 배변 과정에서 피가 묻어 나오므로 대변이 빨간색이 된다. 대변이 까만 색이라면 위나 샘창자 부위에 출혈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출혈에 의해 소화기관으로 흘러 들어온 피가 창자를 지나가면서 피 속의 내용물이 대사되고 나면 대변이 까만색으로 바뀌는 것이다. 심한 위궤양에 의해 위벽이 갈라져 주변의 모세혈관으로부터 피가 흘러나오는 것이 검정색 대변의 가장 흔한 원인이다. 빨간색이든 검정색이든 대변색을 통해 출혈이 의심되는 경우 즉시 병원에 가서 출혈의 원인을 찾아내고 처치해야 더 큰 질병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참고로 대변의 모양도 질병을 보여줄 때가 있다. 대변이 가래떡 모양으로 빠져 나오지 않고 반달모양으로 빠져 나온다면 큰창자에 종양이 생겨서 대변이 나오는 길을 막고 있음을 의심할 수 있으므로 즉시 진단을 받는 것이 좋다.
큰창자 내의 대장균이 대변과 방귀 냄새의 원인이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말이 있다. 대변을 피하는 것은 더러워서이기도 하지만 냄새가 싫어서이기도 할 것이다. 대변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큰창자에 살고 있는 세균(주로 대장균) 때문이다. 이들 세균은 음식물에 포함된 단백질을 분해하면서 인돌 스카톨 황화수소 등을 생산하며 이와 같은 물질이 대변냄새를 결정한다. 냄새가 독하다는 것은 대장균의 활동이 활발하다는 뜻이다. 단백질이 많이 포함된 음식을 먹으면 냄새를 풍길 재료가 많아지므로 초식동물보다는 육식동물이 동양인보다는 서양인의 대변냄새가 더 강하다. 방귀는 몸에서 필요 없는 물질을 밖으로 내보내는 과정이므로 참는 것은 몸에 좋지 않다. 참고 있으면 기체들이 혈액으로 녹아 들어가 온몸을 떠돌아다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방귀에는 메탄가스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방귀에 불이 붙을 수도 있다. 최근에 환경운동을 하시는 분들은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보다 가축들이 내뿜는 기체와 가축을 키우기 위해 목초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잘려 나가는 나무가 더 심각한 문제임을 지적하기도 했다. 건강도 유지하고 지구환경도 개선하려면 육식보다는 채식위주의 식사를 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글 예병일 /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교수 저서로는 <내 몸 안의 과학><의학사의 숨은 이야기><현대 의학 그 위대한 도전의 역사>등이 있다. <내 몸 안의 과학>은 교과부에서 2008년 상반기 우수과학도서로 선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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