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게심니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어떤 현상이나 전래하는 풍습을 보면서 그냥 생각 없이 봐 넘기기도 하지만 어느 때는 의문을 품고 골똘해 지는 때가 있다. 그런 것 중에는 전에 내가 고향에 살적에 보면 집집마다 그 해 첫 수확한 조나 수수 이삭을 한 묶음 묶어서 바깥 문 상방 위에 매달아 놓은 걸 보고서도 그러했다. 무어라 이르는지를 몰라 궁금증이 일어서 알만 한 사람에게 물어 보아도 속 시원히 답을 해준 이는 없었다.
그런데 최근에 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그것을 이르는 바른 이름을 알아내게 되었다. '올게심니'라고 한다는 것이다. 고유명사로 엄연히 존재함을 알고서 묵은 숙제를 푼 기분이 들어 무척 반가웠다.
이 것과 관련하여 유사한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올벼심니’이다. 이것이 나중에 올게심니로 바뀐 것은 아닐까. 올벼심니도 햇곡식이기는 마찬가지인데, 이것은 아직 덜 익은 벼를 베어다 흘태로 훑어서 솥에 넣고 찐 다음 말려 절구로 찧은 새 쌀을 이른다.
이것으로 추석에 햇밥을 지어 제사 지냈다.아무 튼 그간 올게심니라는 정확한 명칭을 모르고 지냈다. 올겨심리를 해온 것은 농가에서 오래된 풍속이다. 적어도 그 역사는 2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 근거가 될 만한 것이 다산 선생이 쓴 <적성촌의 한 집에서>라는 시가 있다. 거기에 보면 그 전경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즉, '...개꼬리 같은 조이삭 세 줄기와 닭 창자 같은 마른고추 한 꿰미/ 깨진 항아리는 헝겊으로 발라놓고 무너져 앉은 시렁대엔 새끼줄로 엮어 맸네 (이하 생략)' 라고 하는 대목이 그것이다. 이 시는 다산선생이 정조 때 암행어사로 활략하던 중에 어느 고을의 어려운 농가 실정을 보고 읊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자라면서 그것을 두고 뭐라고 하는지 전혀 모르고 지냈다. 알만한 이에게 물어보아도 '뭐라고 한다'고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마당에 뒤늦게나마 어휘를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아무튼 그걸 알아내니 보니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올벼신미에 대한 추억이다. 어렸을 적에 보면 농가에서는 그해 첫 수확한 풋벼를 삶아 방아를 찧어서 조상님께 차례를 지낸 다음 이웃을 불러 모아 오순도순 식사를 했다. 그런 광경이 어제인 듯 새롭다.
바로 어제는 추석이었다. 그 명칭을 찾아낸 때문인지 어릴 적 추억이 많이 떠올랐다. 정작 추석 보름달은 오늘 아침 서편에 걸려 있는 걸 뒤늦게 보게 됐지만, 추억 속에 자리한 추석날의 추억이 새삼스럽게 한편의 기록영화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추석날이면 귀청이 멍멍해 지도록 진종일 울려 대던 농악 소리가 생각난다. 그리고 공책 절반 크기의 도드라진 노랗고 붉은 화약종이를 터뜨리던 기억도 새롭다. 그러면서 주머니에 찐 햅쌀을 넣고 다니면서 볼이 터지도록 오물거리고 다니던 기억이 잊을 수가 없다.
그런 쌀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소를 뜯기거나 농막에 앉아 새를 보면서 먹었다. 심심할 때 그것은 시간보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걸 가득 입안에 털어 넣고 침으로 불려가며 먹는 맛이란 그 어떤 맛난 것과도 비교할 수 있을까.
나의 고장에서는 초가을이 되면 해마다 빠뜨리지 않고 풋벼를 베어다가 올벼쌀을 만들었다. 올벼신미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때는 벼를 많이 베지 않고 논 가장자리에서 딱 두세 단만 베었다. 양식 걱정보다는 차례를 지내고 이바지를 나누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공정의 순서는 먼저 홀태를 사용하여 벼를 훑어내게 된다. 그런 다음에는 가마솥에 쪄서 덕석에 펴 말리고, 그걸 절구통에 넣고 찧는다. 이걸 한 세 번 반복한 다음 키질을 하면 껍질은 벗겨져 날아가고 구수한 올벼쌀이 태어났다.
우리 고장에는 올벼쌀로 유명한 동네가 있다. ‘웅치’라는 고을인데, 흔히 농조로 ‘웅치 올벼쌀’이라고 하면 그 동네 사람들은 매우 듣기 싫어하며 가자미눈을 뜨고 흘겨본다. 비하의 뜻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 유래는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드러내기 싫은 사연이 있거나 올벼쌀 자체가 별호가 된 것이 못마땅해 한 것이 아닌가 한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어제인 듯 말 하지만, 실은 올벼신미를 한 밥을 먹어 본 지도 꽤 오래 되었다. 아니, 그런 밥은 고사하고 올벼쌀을 입 안 가득 털어 넣고 오물거려 본 지도 까마득하다. 그래서인지 문득 올벼쌀을 한줌 입에 털어 넣고 오물거리며 먹어보고 싶어진다. 그런데, 지금은 치아가 받쳐 주지 못하니 언감생심, 그저 희망 사항일 뿐이다. 이가 부실하여 병원 문턱을 들락거리니 다만 그런 생각만 할 뿐이다.
아무튼 문득, 정겹고 아름다운 ‘올게심니’라는 말의 뜻을 찾아내니 기쁘기 그지없다. 이 말은 실상은 지칭 명사이면서 어떤 동작을 나타내는 동사형 명사로 쓰이지만, 예스러운 맛이 풍겨서 좋다. 생각난 김에 올벼쌀을 한 되 팔아서 밥을 지어 달라고 해 볼까. 그런 밥상을 대하면 옛날이 더 생각나고 추억이 더욱 깊어지지 않을까.
모처럼 추석전후의 풍정을 떠올리면서 ‘올게심니’의 추억을 더듬으니 절로 옛 추억이 그리워진다. (2008)
첫댓글 항상 감탄하는 바이지만,선생님은 어떻게 그리 옛적 일을 그리도 소상히 기억하실까요. 제가 사는집이 250년 된 고택인데요,저희부엌 들어가는 문위에 깻단을 엮어 걸어놓여있더라구요. 아하, '올게심니' 였군요. 감사합니다.
서선생님, 반갑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걸 뭐하고 하는지 몰라 궁금했으리라 생각해요. 잊혀져 가는 풍속을 전하고자 이번에 내는 책에도 다시 한번 이 작품을 싣게 되었습니다.
올게심니..저도 처음 듣는 단어네요. 나눔의 철학이 묻어있는 멋진 풍습인데 이 또한 사라진 듯하니 아쉽겠어요..
올게심니의 언어를 찾아낸 것은 저의 관심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예전에 초갓집 문지방에 매달아 놓았던 씨앗꾸러미를 무엇이라고 부르는줄 모르다가 그게 올게심니인것을 알아냈지요.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요.
올게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