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2025.04.24.(목)
▶ 장소: 충남 당진 신리성지(대전교구)
▶ 대상: 성인 예비신자 교리교사회, 선교분과 차장(박홍기 F.하비에르 주임신부님 인솔, 강신 베네딕토 기획분과장 운전 봉사)
■신리성지 [대전교구]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평야6로 135 ☎ (041) 363 -1359
○신리성지 미사 시간 안내 및 홈페이지
- 미사 시간: 화요일 ~ 주일 오전 11시
- 업무 시간: 오전 9시 ~ 오후 5시 (순례 예약, 식사 예약)
- 홈페이지: https://www.sinri.or.kr/index.html
○신리성지의 역사
신리성지는 조선 시대 천주교 박해 시기 400여 명의 천주교인들이 가장 큰 신자 공동체를 형성했던 교우촌입니다. 내포는 내륙의 제주도라 불리는 곳으로 프랑스 선교사들이 배를 타고 입국하는 통로가 되었으며, 선교사들의 비밀 입국처이자 은신처로 쓰였습니다. 이처럼 한국의 천주교 전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곳은 조선의 '카타콤바'(로마 시대 비밀교회) 로 불리고 있습니다.
신리성지는 제5대 조선교구장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가 거처하던 곳입니다.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는 1845년 10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함께 강경에 첫걸음을 내디딘 후 1866년 갈매못에서 순교하기까지 21년 동안 조선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는 내포 지방 천주교 유력자였던 '성 손자선 토마스'의 집에 은거하면서 '성 황석두 루카'의 도움을 받아 천주교 서적을 저술하거나 한글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선 천주교사와 순교자들의 행적을 수집하였습니다. 이 자료들은 훗날 '샤를르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의 기초가 되었고, 103위 성인을 탄생시키는데도 결정적으로 이바지하였습니다.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가 신리에서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발달한 삽교천 수계를 통해 중국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와 긴밀히 연결될 수 있었던 점과 내포 지방의 문화적 개방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병인 박해 이후 신앙의 자유가 주어졌지만, 신리에는 오랫동안 신자들이 터를 잡지 못했으나 신리 주민들이 믿음을 회복하면서 1923년 거더리(신리 포함) 에 공소가 설립되었습니다. 1927년 신리의 신자들은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가 지냈던 ‘성 손자선 토마스’ 성인의 집을 매입하여 공소로 사용하게 됩니다. 복원된 생가(주교관)의 기둥과 뼈대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대들보, 서까래, 주춧돌, 문지방 디딤돌, 집 지은 연도를 적은 상량문 등 대부분이 그대로 보존되어 성인들의 손길과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1968년 병인 박해 순교자들이 시복되자 신리에는 순교복자 기념비가 건립되었습니다. 1984년 한국 천주교 설립 200주년을 맞으며 천주교 역사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신리의 중요성도 점차 두드러졌습니다. 이곳은 2008년에 전대사 지정 성지로 지정되어 곳곳에서 방문하는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신리성지 안내
신리성지는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로 불리는 충남 당진 ‘버그내 순례길’(‘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지인 ‘솔뫼성지’에서 시작하는 천주교 순례길. 총 13.3km)의 종착지입니다.
신리성지는 내포평야를 흐르는 삽교천의 상류에 있으며, ‘신리성지’의 순교 역사공원 안에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 은신처, 성인들의 경당, 순교자기념관, 순교미술관 등이 있습니다. ‘다블뤼 주교관’은 원래의 위치와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박해 시대의 주교관입니다. 신리성지 조성과 성지 내 순교미술관 건립은 ‘유흥식 라자로’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이 대전 교구장 재임 시절 이루어졌습니다.
○신리성지의 다섯 성인
신리성지의 다섯 성인은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1984년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103위 시성식을 통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는 천주교 조선 제5대 교구장을 지내면서 성사를 베풀고 교리를 가르치는 한편, 각지에서 활동하는 선교사제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습니다.
조선 천주교 현실을 기록한 그의 글들은 프랑스 파리 교회로 보내져 『 다블뤼 비망기 』 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고 『 한국 천주교회사 』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의 저서들로 『한국 천주교회사(1874)』, 『성찰기략(1890년)』, 『성교요리문답(1910년)』이 있습니다. 특히 『신명 초행』, 『영세대의』, 『성찰기략』, 『회죄직지』, 『성교요리 문답』, 『천주성교 예규』 등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가 저술하거나 번역한 책을 통해 조선 신자들을 향한 그의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1818-1866)
“예수님을 가진 사람은 다 가졌습니다.”
‘성 위앵 루카 신부’(1836-1866)
"좋으신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거룩한 복음의 증인이 되어 제 피를 쏟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조선입니다.“
‘성 오메트르 베드로’(1837-1866)
"저는 어려서부터 가르침을 받아 천주교 신앙이 골수에 새겨졌습니다."
'성 손자선 토마스’( ? -1866)
“나는 솔직히 죽는 것을 몹시 무서워합니다. 그러나 나에게 죽는 것보다 몇천 배 더 무서워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나의 주님이시오,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저버리는 일입니다.”
‘성 황석두 루카’(1813-1866)
"나는 이미 천당 가는 과거에 급제하였으니, 이 세상의 과거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신리성지 순교미술관
- 2017년 개관 (매일 am 9:00 ~ pm 5:00/ 매주 월요일 정기 휴관)
순교미술관은 국내 유일한 성화미술관으로써 다섯 성인과 선조 신앙인들의 믿음과 삶을 다시 한번 배울 수 있는 체험 공간이며 역사관입니다.
‘김원’ 건축가의 설계 작품으로, 노출콘크리트 기법을 통해 내포 간척지 갯벌의 색감을 표현했습니다. 로마 초대교회의 ‘카타콤바’(로마 시대 비밀교회) 를 기리기 위해 지하에 전시장을 두었고, 계단의 벽면에 돌을 넣어서 우둘투둘한 질감을 강조했습니다.
지하에는 ‘일랑 이종상’ 화백이 순수한 믿음으로 재능 기부를 하여 3년 동안 작업을 거쳐 봉헌한 그림(신리 다섯 성인의 영정화와 당시 신자들의 신앙과 삶을 그린 순교기록화 13점) 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모두 1000호(480×227cm) 짜리 대작입니다.
“다른 일은 하지 않은 채 그 작업에만 전념했는데 4년이 걸렸어요. 워낙 큰 그림인 데다가 공이 많이 들어가는 전통 채색화 장지기법으로 그렸으니까요.”
이곳에는 그림 외에도 한국천주교회사, 성경, 손자선의 족보 등 다섯 성인과 관련 유물 등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성 다블뤼 기념 성당’ 내부 뒷문 윗쪽 벽면 그림
- 천상에서의 성인과 순교자들
(자신들의 목숨보다 하느님을 더 소중히 여겼던 신리의 다섯 성인과 많은 신자들이 순교의 길을 택하게 되고 하느님 나라에서 주님의 은총을 받아 누리는 모습입니다.)
○'치타 누오바'(Citta Nuova=새로운 도시, 新里)
(11:00~18:00, 매주 월요일 휴무)
성지 안의 옛 양곡 창고를 고쳐 순례객과 주민, 관광객을 위한 쉼터와 미술관, 카페 기능을 갖춘 갤러리 카페입니다.
9년 전 부임한 ‘김동겸’ 신부님이 두 분 수녀님과 함께 성지 정비와 순교미술관을 관리하는 한편으로 쉼 없이 커피를 직접 내리는 바리스타로서 교우들과 만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 순례 일원 중 절반은 시그니처 메뉴인 ‘생강라떼’를 주문했는데 good^^
<출처: goodnews, 가톨릭평화신문, 신리성지 홈페이지, 당진시 공식 블로그, 구(舊) 답사기>
■순례 후기
당진에는 솔뫼성지, 원머리 성지, 신리성지, 황무실 성지, 합덕 성당, 신평 성당까지 있어 순례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 곳으로 충남의 성지순례 1번지로 불립니다. 신리성지는 제5대 조선 교구장이셨던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가 거처하던 곳으로 충청남도 기념물 제176호이며, 내륙의 제주도라 불리는 곳입니다.
우리 순례단 일행은 작년에 엠마오를 떠났던 보령 ‘갈매못 순교성지’와 연결성이 있는 당진 ‘신리성지’로 올해의 순례 장소를 정했습니다. 성당에 도착하여 개별 성체조배를 하며 성지순례에 대한 마음자리를 되짚어봅니다. ‘신리성지’의 ‘성 다블뤼 기념 성당’에서 11시 미사 참례를 하기 위해 오전 7시 30분에 길을 나섰고, 휴게소에서 ‘젤뚜르다’ 선교분과 차장의 정성 어린 솜씨가 깃든 간식으로 휴식을 취한 뒤, 성지에 도착하여 ‘박홍기 F.하비에르’ 주임신부님과 신리성지의 ‘김동겸’ 신부님, 교우들과 함께 오신 수원교구 신부님의 공동 집전으로 미사 참례를 했습니다.
신리성지 ‘김동겸’ 신부님의 미사 강론 일부를 공유합니다.
“신리성지의 공간 배치를 눈에 걸리지 않게 한 것은 도시의 삶에 지친 분들에게 평안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성지에 왜 오십니까? 누구를 만나러 오십니까? 순교성인을 만나러 오셨다면 잘못 오셨습니다. 여기에는 순교성인이 한 분도 안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다만 조선 최대의 교우촌이 있었고, 박해 시대에 성인들과 400여 무명 순교자가 사셨던 곳입니다. ‘다블뤼’ 주교님을 비롯한 다섯 성인은 다른 곳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순교 성지와 성지는 다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순례를 가신다면, 그곳이 성지인지 순교 성지인지 먼저 알고 가셨으면 합니다.”
“성지순례를 떠날 때 순교자 정신으로 살아가야겠다는 확실한 지향을 두고 성지순례를 해야 합니다. 먼저 ‘너는 하느님을 믿느냐?’ ‘나는 하느님을 믿는가?’라는 묵상을 많이 하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선조 신앙인들처럼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도록 신앙생활을 통해 내 성전을 정화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김동겸’ 주임 신부님은 순교미술관에서도 직접 도슨트가 되어주셨는데, 성지에 대한 애정으로 똘똘 뭉친 너무나 열정적인 자세한 해설이어서 귀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순교미술관 계단을 따라 충청의 너른 내포평야의 들판에 우뚝 솟은 순교미술관 ‘하늘 전망대’에 올라서면 사방에 보이는 봄날의 파릇한 들판이 가슴을 뻥 뚫리게 합니다.
‘하늘 전망대’의 십자가는 400개의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당시 신리 마을 신자 400명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순교미술관의 하늘 전망대는 강풍이 불 때는 안전상 이유로 올라갈 수 없다고 하는데, 맑고 쾌청한 날씨에 하늘 전망대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새삼 감사함으로 다가옵니다.
성인 예비신자 교리교사회 성지순례가 두 해째가 되니, ‘엠마오’로 점차 정착되어 가는 듯합니다. 주어진 시간과 조건에 감사드리고, 함께하는 이들의 나눔에 감사합니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겸손하게 잘 정화하도록 가만히 마음을 다독여봅니다.
참고로, 신리성지는 최근 ‘SNS 성지’ ‘인생 사진 성지’로 알려지면서 교우들만이 아닌 일반인들의 방문 명소가 되었습니다.
성지이자 드넓은 당진신리다블뤼주교유적지를 관리하는 신부님과 수녀님 두 분의 노고가 만만치 않으니,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되가져오는 것도 우리가 지켜야 할 기본 예절입니다.
신리성지 성 다블뤼 주교관 (舊 손자선 토마스 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