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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4 장 쁘레시디움 간부들의 임무
1. 영적 지도자
레지오가 그 성공 여부를 판단할 때는, 단원들이 영성적으로 얼마만큼 개발되어 있으며, 그 영성의 결실이 활동을 통해서 어떻게 드러나
고 있는지를 본다. 따라서 단원들의 영신적 자질을 높이는 일을 주된 임무로 맡고 있는 영적 지도자야말로 쁘레시디움의 힘의 원천이다. 영적 지도자는 회합에 참석하여 단장을 비롯한 다른 간부들과 더불어 레지오의 규율이 잘 지켜지도록 보살피고, 조직이 영성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바르게 운영되도록 돌보아야 한다. 영적 지도자는 모든 잘못된 행위를 막아야 하며, 모든 정당한 레지오의 권위를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자신이 지도하는 쁘레시디움이 훌륭히 제 몫을 해내고 있다면, 그는 남다른 열성과 잠재력을 지닌 평신도들을 자신의 본당 안에 확보해 놓은 셈이 된다. 그러나 쁘레시디움이 좀더 가치 있고 어려운 활동에 나서도록 만드는 것은 영적 지도자의 역량에 달려 있다. 또한 쁘레시디움은 내부의 소극적인 태도와 외부의 장애를 헤치며 나아가야 하는데, 이것 역시 영적 지도자의 격려와 선도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레지오는 영적 지도자가 쁘레시디움의 영성적 원동력이 되어 주기를 바라고 있으며, 사실상 모든 쁘레시디움이 영적 지도자의 도에 크게 의존한다. 교황 비오 11세의 말처럼 '나의 운명은 그대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할 정도이다. 그러므로 영적지도자가 단 한 번이라도 단원들의 신뢰를 무너뜨린다면 그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작은 모임이라도 하느님과 성모님과 영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봉사하겠다고 나선 신자들을 목자 없는 양떼처럼 내버려 둘 수 있겠는가! 양떼를 내버려 두는 영적 지도자에게 최고의 목자이신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겠는가? "그 단체의 영혼이 되고, 모든 선한 활동에 영감을 주며, 열성의 근원이 되라."(교황 비오 11세)고 하시지 않겠는가? 영적 지도자가 쁘레시디움을 돌볼 때에는 수도회의 수련장이 수련자들을 돌보듯이 해야 하며, 단원들의 영신적 안목을 높이고 그들의 활동과 영성이 레지오 마리애에 맞갖은 수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힘써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단원들의 영성은 목표로 하는 수준만큼 올라가게 된다. 그러므로 영적 지도자는 최고 수준의 덕성을 단원들에게 제시하여, 영웅적인 덕성이 있어야만 실천할 수 있는 일을 단원들에게 맡기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불가능한 일도 은총 앞에서는 무릎을 꿇게 되며, 은총은 구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다만 영적 지도자는 단원들이 그들이 지켜야 할 의무의 사소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충성심을 발휘하도록 강조해야 한다. 이러한 충성심은 큰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기본 요건이기 때문이다. 모든 일의 성과는 결과를 통해서 드러나지만, 그 결과는 그때까지의 작은 일들이 차근차근 쌓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영적 지도자는 단원들이 이기적인 생각으로 활동에 나서지 않도록 돌보고, 성공했다고 자만하거나 겉으로 보기에 실패했다고 낙담하지 않도록 하며, 마음에 내키지 않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임무라도 일단 명령이 내리면 수백 번이라도 다시 나서겠다는 자세를 갖추도록 지도해야 한다. 영적 지도자는 단원들이 기도와 희생을 통해 주어진 활동을 두려움없이 적극적으로 수행해 나가도록 보살펴야 하며, 인간적인 생각에서 실패로 판단되거나 가망이 없어 보이는 때라도, 어머니이신 레지오의 모후께 확실한 신뢰심을 갖고 도움을 청하면 승리로 이끌어 주신다는 사실을 단원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영적 지도자의 필수적 임무는 모든 단원들의 마음을 하느님의 어머니께 대한 뚜렷하고 열렬한 사랑으로 가득 채우고, 특히 레지오가 존중
해야 할 성모님의 여러 가지 특전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게 하는 일이다. 그 결과로, 돌 하나하나를 쌓아 올리듯이 단원들을 끈기 있게 지도하는 레지오의 영적 지도자는 그 무엇으로도 깰 수 없을 만큼 강인한 정신적 요새를 단원 각자의 마음속에 세우게 된다. 영적 지도자는 쁘레시디움의 일원으로서 업무 처리나 토의 또는 기획에 관여하며, '필요에 따라 교사나 조언자 또는 안내자'(교황 비오 10세)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영적 지도자는 단장의 임무까지 맡아 하는 일이 없도록 유의해야 한다. 그러한 경향은 쁘레시디움에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영적 지도자는 사제로서의 권위와 인생사에 대한 폭넓은 지식으로 단원들에게 압도적인 영향을 주게 되어 있다. 따라서 영적 지도자가 주회합을 맡아서 진행하거나 지나치게 개입하면 업무의 내용면에서 질을 높일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회합의 전체 분위기는 영적 지도자와 그의 진행에 깊이 참여하는 일부 단원 사이의 대화로 위축되므로, 단장이나 그 외의 단원들은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들은 하고 싶은 발언이 있어도 혹시 자신의 발언이 영적 지도자의 판단에 간섭한다는 인상을 줄까봐 입을 다물고 말 것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전체 단원이 자유롭게 논의하는 길이 막히게 되면, 회합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을 잃게 되고, 단원을 교육하는 힘과 건전한 발전의 기반도 상실하고 만다. 이러한 쁘레시디움은 영적 지도자가 불참하게 되면 아무런 일도 처리하지 못하고 그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무너질 수도 있다.
"영적 지도자는 단원들과 마찬가지로 회합에서 논의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만, 말끝마다 자신의 견해를 주
입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쁘레시디움이 영적 지도자의 조언이나 지식을 요청하면 당연히 개입해야 한다. 그러나 이때에도 단장을 무시하거나 회합 분위기를 휘저어 놓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반대로, 단원들이 영적 지도자인 자신에게 보다는 활동 자체에 관심을 갖도록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한다."(햄싱 주교 / Bishop Helmsing)
영적 지도자는 쁘레시디움이 영성에 관한 공부를 하겠다고 할 때, 그 책을 선정하는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단원들이 읽을 책을 세심하게
살펴서 교회의 기본 원리에 완전히 부합되지 않는 책은 어떠한 것도 단원들에게 허용해서는 안 된다. 영적 지도자는 회합에서 레지오의 까떼나를 바치고 나면 곧 짤막한 훈화를 하되, 가급적이면 레지오 마리애 공인 교본의 한 부분을 해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제18장 [쁘레시디움 회합의 순서] 11절 '훈화' 참조) 영적 지도자 불참시에는 단장이 훈화를 한다. 회합의 마침 기도가 끝나면 영적 지도자는 단원들에게 강복을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사제를 임명하실 때 당신의 대리자로서 임명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사제는 어떤 의미에서는 주님 자신이시다. 즉, 그리
스도께서는 당신이 임명하신 사제를 통하여 하느님으로서의 능력을 행사하신다. 그러므로 사제를 받들고 존경하는 것은 영원한 사제이신 그리스도를 직접 흠숭하는 행위이며, 사제는 그리스도께서 지니신 인성(人性)의 몫을 담당한다."(벤슨 / Benson : 그리스도의 우정)
"사제는 포도밭의 관리인이 되어 주님의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얻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
나서야 한다. 사제의 부름이 없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루 종일 빈둥거리면서 서성거리고 있을 것'(마태 20, 6 참조)이다."(치바르디 / Civardi)
2. 단 장
1. 단장의 주 임무 가운데 하나는 꾸리아 회합에 반드시 참석하는 일이다. 단장은 이 의무와 그 외의 주어진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쁘레시
디움이 레지오의 중앙 기구와 항상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도록 해야 한다.
2. 단장은 쁘레시디움 회합에서 의장이 되어 업무를 처리한다. 단장은 활동을 배당하고, 그 활동에 대한 단원들의 보고를 받는다. 단장은
쁘레시디움의 세부적인 모든 면까지 충실하게 운영할 책임을 레지오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다. 따라서 그가 위임 받은 책임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이는 레지오에 대한 배신 행위가 된다. 세속 군대에서는 이러한 배신 행위를 반역이라 부르며 범법자로서 엄벌에 처한다.
3. 단장은 정시에 회합이 시작될 수 있도록 회합실의 조명이나 난방 또는 좌석 배치 등이 잘 갖추어져 있는지를 확인할 일차적 책임이 있
다.
4. 단장은 정시에 정확히 회합을 시작하고 적절한 시간에 회합의 진행을 중단하고 까떼나를 바치며, 규정된 시간 안에 회합을 마치도록 해
야 한다. 이를 위해 탁자 위에 시계를 놓아 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5. 영적 지도자가 참석하지 않은 경우에는 단장이 대신 훈화를 해야 하며, 간혹 다른 사람을 지명할 수도 있다.
6. 단장은 다른 간부들을 지도 감독하여 각자 직무를 올바로 수행하도록 돌본다.
7. 단장은 자신이 맡고 있는 쁘레시디움이나 다른 쁘레시디움의 간부직에 결원이 생길 때를 대비하여 꾸리아에 추천할 수 있는 우수한 단
원을 항상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8. 단장은 영성적인 면에서나 열성에서 동료 단원들에게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단원들이 해야 할 일을 단장 자신이 떠
맡아 하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단장이 단원들의 일까지를 하게 되면, 자신의 열성을 보여 주는 데는 성공하겠지만, 정작 자신의 모범을 보고 배워야 할 단원들로부터 실천의 기회를 빼앗게 되므로 결국 그러한 열성은 모범이 될 수가 없는 일이다.
9. 작은 목소리나 분명치 않은 보고는 회합의 적이다. 그러므로 단장은 자신이 먼저 회합실 전체가 울릴 만큼 큰 목소리로 말해야 한다. 단
장이 이 점을 소홀히 하면 단원들 역시 애써 들어야만 겨우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보고하게 되어 회합은 즉시맥이 빠지고 만다.
10. 단장은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보고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야 하며, 아직 익숙하지 못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단원에게는 적
절한 질문을 하여 이끌어 주고, 아무리 훌륭한 보고라 해도 시간을 너무 많이 차지하면 조정해 줄 의무가 있다.
11. 단장이 회합을 제대로 이끌어 가려면 발언을 되도록 적게 하는 것이 좋다. 이 말은 양극단을 피해야 한다는 뜻이다. 양극단의 한쪽은
확인이나 격려의 말 한마디 없이 회합이 스스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 결과 어떤 단원은 너무 간단한 보고로 끝내는가 하면, 어떤 단원의 보고는 끝도 없이 길어진다. '너무 짧은 보고'와 '너무 긴 보고'를 합쳐서 반으로 나누면 계산상으로는 제시간 안에 업무를 처리한 것처럼 보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혼란을 덮어 놓았다 해서 완전한 질서가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정확하지 않은 것들을 한데 모아 놓았다 해서 정확한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다른 한쪽의 극단은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경우이다. 어떤 단장은 이야기를 할 때마다 너무 열을 올리기 때문에 (가) 단원들이 발언할 시간까지 단장이 차지하거나 (나) 쁘레시디움은 강의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사업'(루가 2, 49 참조)에 대해 의논하는 자리라는 본래의 취지를 어기게 되며 (다) 더욱이 단장이 말을 많이 하게 되면 단원들은 입을 다물게 되어 회합은 해이해지고 만다.
위에 설명한 두 가지의 극단적인 경우는 그 어느것도 단원들을 교육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달갑지 않은 것이다.
12. 쁘레시디움 안에 형제적 사랑의 정신이 없으면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만다. 단장은 이 점을 명심하여 단원들 가운데 형제애가 북돋아지
도록 항상 힘써야 한다. 이를 위하여 단장은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깊은 사랑을 쏟고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 단장은 "너희 사이에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마태 20, 27)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13. 단장은 단원들이 자신들에게 맡겨지지 않은 활동에 대해서도 의견을 말하고 자진해서 돕도록 권장해야 하며, 쁘레시디움이 펴는 모든
활동에 흥미를 가지고 적극적인 태도를 지니도록 단원들을 이끌어야 한다.
14. 단장은 단원들의 활동이 다음과 같은 점에 부합되는지 살펴야 한다.
(가) 올바른 정신으로 활동하고 있는가?
(나) 올바른 노선을 따르고 있는가?
(다) 레지오가 거두고자 하는 성과가 단원들의 활동을 통해서 실제로 나타나고 있는가?
(라) 전에 했던 활동을 가끔씩 다시 점검하고 있는가?
(마) 새로운 활동을 개척하려는 진취적 정신이 단원들 안에 살아 있는가?
15. 단장은 단원들이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노력과 희생을 바치도록 그 바탕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유능한 단원에게 하찮은 활동을 맡기는
것은 영원한 삶을 준비하고자 노력하는 그 단원에게 결코 정당한 배당이 될 수 없다. 쉬운 일을 맡기는 데 싫어 할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단장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최대한으로 능력을 발휘하기를 바라신다는 점을 단원들에게 깨우쳐야 하며,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노력과 희생을 극대화시키도록 독려해야 한다.
16. 쁘레시디움이 잘못되는 것은 대개 단장에게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단장이 쁘레시디움의 결함을 바로잡으려고 노력 하지 않고
방관한다면, 그와 같은 잘못은 되풀이될 뿐만 아니라 결국 점점 더 커지게 된다.
17. 단장은 연간 대략 50여 회의 쁘레시디움 주회합을 주관하게 된다. 단장도 사람인 이상 때로는 기분이 언짢은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장은 어떠한 경우에도 그와 같은 자신의 감정을 단원들 앞에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언짢은 기분만큼 전염성이 강한 것은 없다. 특히 웃사람의 기분이 언짢게 되면 곧 전체 분위기를 해치고 만다.
18. 쁘레시디움이 활동을 하지 않고 표류하거나 사기를 잃었다고 생각될 때, 단장은 개인적으로 꾸리아 간부들과 의논하여 적절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만일 꾸리아에서 단장에게 평단원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는 권고가 나오면 그 결정을 겸손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 이러한 겸손의 태도는 자신에게 커다란 축복이 될 것이다.
19. 단장은 다른 간부나 단원들과 마찬가지로 쁘레시디움의 주간 활동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 규율을 새삼스럽게 강조함이 부질없는
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단장이 주간 활동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20. 끝으로 단장은,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한 최고 권위자인 비싸르도 추기경(Cardinal Pizzardo)이 강조한 것과 같이, 평신도 사도직 운동
의 지도자가 특별히 지니고 있어야 할 특성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그 특성이란, 교회 권위에 대하여 순명하고, 자기를 버리며, 조직 안의 모든 다른 단체나 단원들을 사랑하고 화합하는 정신이다.
"영혼을 보살피는 일이 제게 주어진 순간부터 저는 제 임무가 저의 능력을 벗어나는 것임을 한눈에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치 아기가
놀라며 아빠의 어깨에 얼굴을 숨기듯이 급히 주님의 품안으로 숨어 들어가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제가 당신의 어린 자녀들을 돌보기에는 너무나 미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저를 통해 영혼들에게 알맞은 것을 주시고자 하신다면 제 손을 먼저 가득 채워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당신 품안에 숨어서 얼굴을 묻은 채로, 제게 영혼의 양식을 구하러 오는 이들에게 당신의 보화를 나누어 주겠습니다. 영혼들이 양식을 받고 기뻐한다면, 그것은 제게 고마워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향해 감사드리는 것임을 제가 알겠습니다. 만일 양식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그들이 푸념을 한다면, 저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 양식이 당신께서 주시는 것임을 그들이 알도록 타이르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께서 주시는 양식 이외에는 그 어느것도 그들에게 주지 않겠습니다."(리지외의 성녀 소화 데레사 / St. Therese of Lisieux)
3. 부 단 장
1. 부단장은 꾸리아 회합에 참석할 의무가 있다.
2. 부단장은 단장 유고시 쁘레시디움 회합의 사회를 맡아야 한다. 그러나 단장이 공석일 때 그 자리를 승계하는 권한은 없다.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회의 운영 지침서에서 인용한 다음과 같은 규정은 쁘레시디움의 부단장에게도 적용된다.
"회장 유고시, 특히 장기간 유고시, 부회장은 회장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전적으로 회장의 직무를 대리한다. 한 회원의 유고로 전체 운영이
침체되어서는 안 된다. 회장이 유고중이라 해서 회원들이 아무런 활동도 하려 들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따라서 회장 유고시 부회장이 회장 직무를 완벽히 수행하는 것은 그의 권리일 뿐만 아니라 도리상의 의무로서, 회장이 돌아왔을 때 자신이 부재중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침체되었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해 놓아야 한다."
3. 부단장은 쁘레시디움 운영이나 사업 전반에 걸쳐서 단장을 보좌한다. 흔히 부단장의 직무가 단장 유고시에만 시작되는 것으로 생각하
는데, 이러한 잘못된 생각은 부단장 자신에게나 쁘레시디움 전체에 매우 나쁜 영향을 준다. 부단장의 역할은 단장이 하는 일을 긴밀히 보좌하는 데 있다. 쁘레시디움 안에서 단장과 부단장은 가정에서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 또는 군대에서의 사령관과 참모장 사이의 관계와도 같은 것이다. 즉, 부단장은 활동적이고 적극적이어야 하며, 결코 수동적이거나 예비적인 역할을 하는 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회합중에 부단장이 맡아 하는 독특한 기능은 단장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여러 업무를 보살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능이 제대로 발휘될 때 쁘레시디움은 올바르게 운영될 수 있는 것이다.
4. 부단장은 특히 단원들을 보살피는 임무를 지니고 있다. 부단장은 회합에 처음 참석하게 되는 새 단원과 미리 낯을 익혀 두었다가 그를
쁘레시디움에 영접하고 회합이 시작되기 전이나 또는 회합이 끝난 후 동료 단원들에게 소개한다. 부단장은 새 단원이 활동 배당을 받도록 주선해야 하며, 까떼나를 매일 바쳐야 하는 의무를 비롯한 단원으로서의 의무를 설명해 주고, 쁘레또리움 단원의 자격 요건에 대해서도 알려 주어야 한다.
5. 부단장은 회합중 출석을 부른다.
6. 부단장은 행동단원, 쁘레또리움 단원, 아듀또리움 단원의 명부를 관리하며, 각각의 명부를 정 단원과 수련 단원으로 구분 관리한다. 부
단장은 수련기가 끝나게 되는 협조단원들을 방문하여, 그가 협조단원으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면 정식으로 협조단원 명부에 옮겨 기재해야 한다.
7. 부단장은 수련기에 있는 행동단원의 수련 기간이 끝날 무렵이 되면 미리 알려 주어 그가 선서를 준비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8. 부단장은 회합에 결석하는 단원을 잘 돌보아야 하며, 서신이나 그 밖의 방법으로 안부를 묻고 관심을 보임으로써 그 단원이 레지오의
대열을 떠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단원들 중에는 분명히 레지오 단원 생활을 줄기차게 할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적성에 맞지 않아 곧 떨어져 나갈 사람도 있다. 이 두 종류의 단원들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많은 중간층 단원들은 외부 여건이나 우연한 사정에 따라 단원 생활의 지속 여부가 좌우되기 때문에, 간부들이 각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상도 바로 이들이다. 새로운 단원을 모집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기존 단원을 잃지 않는 일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단장이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면, 수많은 훌륭한 활동 실적과 더불어 영신적 성공을 거두게 되며, 새로운 쁘레시디움 설립이 앞당겨진다. 따라서 부단장의 임무 그 자체가 매우 특별한 형태의 사도직이 되는 것이다.
9. 부단장은 쁘레시디움 단원들이 세상을 떠난 모든 레지오 단원들을 위한 기도의 임무를 등한히 하지 않도록 살펴야 한다. 이 의무에 관
해서는 별도 항목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10. 부단장은 병환중에 있는 단원을 직접 방문하거나 다른 단원들이 방문하도록 배려한다.
11. 부단장은 단원들이 협조단원, 특히 아듀또리움 단원을 모집하고 돌보는 일에 힘쓰도록 지도한다.
"수련 수녀들은 데레사 성녀가 자기들의 깊은 마음속을 꿰뚫어 보는 것을 알고 놀라서 성녀께 물었다. 이에 대해 성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
했다. '그 비결은 이렇습니다. 저는 언제나 동정 성모님께 기도를 바친 후에 여러분을 관찰합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는 것이 가장 좋은지 저를 깨우쳐 주시도록 성모님께 부탁드립니다. 사실 제가 여러분에게 가르쳐 준 내용에 대해 저 자신도 가끔 놀라곤 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는 동안에도 예수님께서 제 입을 통해 말씀하고 계신다는 확신에 조금도 의심을 품지 않습니다.'"(리지외의 성녀 소화 데레사 / St. Therese of Lisieux)
4. 서 기
1. 서기는 꾸리아 회합에 참석해야 한다.
2. 서기는 쁘레시디움의 회의록을 작성하고 보관할 책임이 있다. 서기는 회의록을 작성할 때 정성을 다해야 하며, 회합에서 회의록을 또렷
한 목소리로 읽어야 한다. 회의록은 낭독하는 방법과 그 내용에 따라서 회합에 중대한 영향을 준다. 회의록을 너무 길지도 않고 너무 짧지도 않게 작성하는 데는 상당한 수고를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렇게 알맞게 작성된 회의록을 알맞게 낭독하면, 회합을 원활하게 진행하는 데 뚜렷한 길잡이가 되어 회합의 능률도 크게 높아진다.
3. 서기가 회의록을 훌륭히 작성하려면 필기 도구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서기가 아무리 훌륭해도 연필이나 망가진 펜으로 질 나쁜 종
이에 회의록을 작성하게 되면 좋은 기록을 남기기 어렵다. 그러므로 회의록은 품질이 좋은 공책에 잉크로 쓰거나 타자기로 작성해야 한다.
4. 서기가 서기로서의 직무를 수행한다 해서 쁘레시디움의 주간 활동 의무를 채우는 것은 아니다.
5. 서기는 꾸리아가 요구하는 모든 자료와 보고를 신속히 처리해야 하며 쁘레시디움의 전반적인 통신 업무를 맡아 한다. 또한 서기는 쁘레
시디움의 사무용품이 적절히 보급되고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6. 단장은 서기 직무 중 일부를 쁘레시디움의 다른 단원에게 위임할 수 있다.
"복음서에는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가 2, 51)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화가 보띠첼리(Botticelli)는 마리아가
그 모든 일을 왜 양피지에 써서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셨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그는 이 문제를 더 이상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다. 그 대신 감사와 기쁨에 넘치는 가장 완전한 찬미가를 그림으로 그려 놓았다. 그의 그림에는 천사가 오른손에 잉크병을 받쳐 들고 왼손으로는 원고를 들고 서 있다. 그런데 그 원고에는 동정 성모님이 그때 막 빛나는 고딕 글씨체로 마니피캇(Magnificat 마리아의 노래)을 써 넣고 계신다. 토실토실한 아기 예수님은 예언자의 모습을 하고 계시는데, 그 조그마한 손으로 어머니의 손가락을 이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손가락은 플로렌스의 화가 보띠첼리가 성모님을 그릴 때마다 항상 빼놓지 않고 그려 넣은, 그 섬세하고도 감성이 풍부하며 마치 사색하는 듯한 손가락이다. 잉크병도 의미를 지니고 있다. 황금병도 아니고 천사가 떠받치고 있는 왕관처럼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지도 않지만, 이 잉크병은 하늘과 땅의 모후이신 성모님이 맞이하실 승리를 상징한다. 이 잉크병은 주님의 겸손한 여종이신 성모님이 당신이 누리시게 될 영광에 대해 예언하신 내용을 세상 끝날까지 확신시키기 위해서 인간의 기록으로 남기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울로베르크 /Vloberg)
5. 회 계
1. 회계는 꾸리아 회합에 참석해야 한다.
2. 회계는 쁘레시디움의 수입과 지출에 대한 책임을 지며, 회계 장부를 완벽하게 기입하고 보관하는 의무가 있다.
3. 회계는 쁘레시디움 회합 때마다 비밀 헌금 주머니를 돌린다.
4. 회계가 지출을 하려면 쁘레시디움의 지시가 있어야 하며, 쁘레시디움 명의로 쁘레시디움이 지정하는 방법에 따라 보유 기금을 예치해
야 한다.
5. 회계는 제35장 [자금]에 실려 있는 예치된 자금에 관한 권고 사항을 유념하고, 이에 관하여 때때로 쁘레시디움 회합중에 거론함으로써
모든 단원들이 그 내용을 알고 있도록 해야 한다.
"성모님은, 성삼위께서 지니신 모든 보화를 관리하시므로, 성령의 포도주를 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만큼 따라 주신다."(성 대 알베
르토 / St. Albert the Great)
"성모님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화를 관리하는 분이시다. 즉, 성모님이 간직하고 계신 보화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성모님이 우리
에게 내어 주시는 보화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성 에이마르 / St. Peter Julian Eymard)
제 35 장 자 금
1. 레지오의 모든 기관은 상급 평의회를 유지시키기 위해 헌금을 해야 한다. 레지오의 모든 기관은 이 의무와 다음에 규정하는 사항을 전
제로 자체의 운영 자금을 관리하는 권한을 지니며, 동시에 그 기관의 부채에 대해서도 독자적인 책임을 진다.
2. 각급 기관은 헌금을 일정 비율로 한정시키거나 헌금액을 최저 수준 정도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쁘레시디움은 소요 경비 지출 후 남는
자금을 액수에 관계없이 전액 꾸리아에 보내어 레지오의 전반적 목적을 위해 쓰이도록 해야 한다. 다른 사항에서와 마찬가지로 자금 문제에 있어서도 쁘레시디움과 꾸리아의 관계는 자녀와 어머니의 관계처럼 되어야 한다. 어머니는 자녀들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하며, 자녀들은 어머니의 수고를 덜어 드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을 다 드려야 한다. 쁘레시디움의 비밀 헌금이 전체 레지오 조직을 운영하는 자금이 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는 쁘레시디움들을 자주 보게 된다. 이런 쁘레시디움들은 결국 꾸리아가 최저 수준의 운영 자금으로 겨우 지탱할 정도만 보내거나, 때로는 그런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의연을 하고 있다. 그 결과 꾸리아는, 레지오를 확장하고 새로
운 지단을 설립하거나 방문하는 등의 조직을 운영하는 상급 평의회의 필요한 자금 조달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레지오의 기능은 마비되고 마는데, 이러한 중대한 차질은 결국 단순하고 무심한 태도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3. 새로운 지출 항목이 발생하면 쁘레시디움은 꾸리아에 문의하여 꾸리아로 하여금 그 지출이 잘못된 것이 아닌지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4. 꾸리아는 쁘레시디움에 보조금을 지급할 수는 있지만, 쁘레시디움이 수행 중인 활동에 연관된 재정적인 문제에 대해서 어떠한 책임도
져서는 안 된다. 그러한 책임은 쁘레시디움 스스로 져야 한다. 이 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만일 이러한 규정이 없다면, 클럽이나 호스텔 또는 기타 이와 유사한 사업을 벌이고 있는 어떤 단체가 레지오 조직을 이용할 목적으로 쁘레시디움을 설립한 후, 기존 쁘레시디움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설립해 놓은 쁘레시디움의 사업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모금하게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선의의 도움을 받는 경우라면 몰라도, 어떠한 쁘레시디움도 다른 쁘레시디움이나 꾸리아에 기금을 모으는 일에 협조를 요청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5. 쁘레시디움이 자체적으로 펴는 특별한 활동에 비밀 헌금을 지출하거나 또는 그 반대로 특별 사업을 통해서 생긴 자금을 쁘레시디움 회
계에 입금시키는 것 이외의 자금 전용은 꾸리아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6. 쁘레시디움이나 평의회가 해산되거나 또는 레지오 조직체로서의 기능이 정지된 경우, 그 자금과 자산의 소유권은 직속 상급 평의회에
귀속된다.
7. 영적 지도자는 자신이 직접 권유하지 않은 사업에서 발생한 부채에 대하여 금전상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
8. 회계 장부는 일년에 한 번씩 회계 감사를 받아야 하며, 쁘레시디움이나 평의회에서 회계 직책을 맡지 않고 있는 두 단원을 지명하여 실
시한다.
9. 성모님의 살림살이에 낭비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모든 레지오 조직이 그 자산과 자금을 조심스럽게 아껴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온 인류는 한 몸을 이루며, 그 하나의 몸 안에서 각자는 서로 주고받는다. 생명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며 순환해야 한다. 생명은 모든 이들
에게 주어지지만, 순환을 멈추는 이는 생명을 잃는다. 그러나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고 순환을 받아들이는 이는 생명을 다시 찾게 된다. 하나의 영혼이 살려면 스스로의 영혼을 다른 영혼 안에 쏟아 넣어야 한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모든 선물은 그 하나하나가 힘이 되어, 다른 이
들에게 넘겨 줄 때마다 잘 보존되고 더욱 불어난다."(그라트리 / Gratry : 성모성월)
제 36 장 특별한 언급이 필요한 쁘레시디움
1. 소년 쁘레시디움
1. 18세 미만의 청소년들을 위한 쁘레시디움은 꾸리아의 승인을 얻어서,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특별한 조건에 따라 설립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본 교본 제14장 22항을 참조하기 바란다.
2. 레지오를 제대로 익히는 유일한 방법은 레지오 조직 안에서 실제로 체험을 쌓는 길뿐이다. 젊은이들은 학교 강의를 통해서 사회에 진출
하면 사도직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말을 가끔 듣지만, 그런 강의는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실천적 경험이라는 살아 움직이는 몸에 비한다면 한낱 앙상한 뼈에 지나지 않는다. 그 뿐 아니라, 어느 정도 실제 훈련을 거치지 않고서는 사도직 활동을 시작해 보겠다는 의지와 정열은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경험이 없으면 실패하기 쉽고, 설사 경험 없이 자기 방식대로 활동을 시작한다 해도 예외 없이 곤경에 빠지고 만다.
3. 소년 쁘레시디움의 필수 요건으로서, 적어도 단장만은 성인 레지오 단원이 맡아야 한다. 또한 단장이 결석하는 경우와 앞으로 그 소년
쁘레시디움이 확장할 경우를 대비해서 또 한 사람의 성인 단원이 간부로 봉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들 성인 단원들은, 만일 그들이 성인 쁘레시디움에 소속되어 있는 상태에서 소년 쁘레시디움의 간부가 되어 봉사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 성인 쁘레시디움 단원으로서의 주간 활동 의무를 채울 수 있다. 그러나 성인 단원들이 소년 쁘레시디움에만 소속되어 있는 경우라면, 성인 단원으로서 알맞는 실질적인 활동을 적극 수행해야 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성인 간부는 레지오 조직을 완전히 이해하고 또한 경험이 있는 단원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 해도 최소한레지오가 어린 단원들을 위한 쁘레시디움을 세운 목적을 달성하는 데 알맞은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소년 쁘레시디움을 세우는 목적은, 당장 어떤 유익한 활동을 펴는 것을 위주로 하기 보다는, 어린 단원들을 훈련하고 영성을 불어넣어 그들이 학교 교육을 마친 후 일반 레지오 단원 대열에 참여하여 활동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4. 소년 쁘레시디움에서는 훈화(Allocutio)가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대부분의 소년 단원들은 교본에 실려 있는 내용을 스스로 깨우
칠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적 지도자(또는 단장)의 훈화는 항상 교본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교본에서 짤막한 부분을 뽑아 읽은 후 모든 단원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하고 쉽게 설명해야 한다. 이처럼 주회합 때마다 교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룬 다음에는 다시 처음부터 되풀이한다. 그러나 소년 단원으로 있는 기간은 매우 빨리 지나가기 때문에, 한 단원이 교본을 두 번 반복할 만한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훈화 내용이 충실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치게 되어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보게 된다.
5. 교본을 부록 10 [신앙 공부]에서 제시하는 방법에 따라 체계적으로 연구하면 '학교 숙제' 같은 느낌이 들지 않고 매우 유익한 공부가 될
것이다. 이는 장차 성인 레지오의 기둥이 될 소년 단원들을 훈련시키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기도 하다.
6. 성인 쁘레시디움이 펴는 활동은 소년 쁘레시디움에는 맞지 않는 것도 있으므로, 소년 단원 각자의 능력에 알맞은 실질적인 활동거리를
매주 마련하는 능숙한 솜씨가 필요하다. 그러나 상당수의 소년 단원들은 성인 단원의 활동으로 여길 만한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이미 16세에 도달한 소년 단원에게는 성인 단원들이 활동으로 여기지 않을 정도의 하찮은 활동을 배당해서는 안 된다. 우선 쁘레시디움은 다양한 활동거리를 마련해야 한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많은 가르침을 얻기 때문이다. 다만 단원 한 사람이 한꺼번에 모든 활동을 할 수는 없으므로, 동료 단원이 하는 활동을 서로 보고 배우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쁘레시디움의 회합도 더욱 흥미롭게 진행되는 효과를 얻게 된다.
7. 소년 단원은 일주일에 적어도 한 시간의 활동, 즉 성인의 절반에 해당하는 활동을 하면 된다.
8. 소년 단원들에게 적합한 활동의 예는 다음과 같다.
(가) '기적의 패'를 나누어 주는 일. 주회합 때마다 단원들에게 기적의 패를 일정하게 하나 또는 두 개씩 나누어 준다. 단원은 이 패를 성모
님의 군사로서 적군에게 가장 큰 타격을 주는 탄약으로 삼아, 가능한 한 신자가 아닌 사람이나 또는 신앙 생활을 태만히 하는 신자에게 나누어 준다. 이 활동은 단원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하며, 동시에 희생의 가치를 알게 해준다. 단원들에게는 예상되는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과 접촉을 시작할 때 이 패를 이용하는 요령 등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나) 협조단원을 모집하는 일. 이 활동은 모집한 협조단원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꾸준히 기도할 수 있게
돌보는 일이다.
(다) 가톨릭 전례 및 행사에 참석하도록 인도하는 일. 가령, 매일 미사 참례나 신심 행위 또는 신심 단체에 참여하는 일, 기도회등 가톨릭
의 신심 단체에 매주 한 사람씩 가입하도록 활동을 배당한다.
(라) 어린이들을 미사 또는 다른 성사에 참여시키는 일
(마) 미사 복사
(바) 어린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거나 교리반에 안내하는 일
(사) 입원중이거나 사회 복지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어린이 또는 일반 가정의 어린이를 찾아 보는 일
(아) 환자나 시각 장애인 등을 방문하여 그들이 필요로 하는 일을 돕는 일
9. 모든 소년 쁘레시디움은 예외 없이 위의 마지막 세 가지 활동(바, 사, 아 항목)에 각각 적어도 두 명의 단원을 배치해야 한다. 이 세 가지
활동은, 올바르게만 실시된다면, 소년 단원들에게 매우 귀중한 훈련의 기회를 주며, 쁘레시디움의 다른 활동에 대해서도 단원 스스로 알맞은 기준을 세울 수 있게 해준다.
10. 소년 단원은 성인 쁘레시디움이 파견한 성인 단원과 함께 한 조를 이루어 활동할 수 있다.
11. 교내 쁘레시디움의 경우, 단원들에게 교외의 활동을 배당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교내의 모든 일에 책임이 있는 교장이 학생
들의 교외 활동으로 다른 부작용이 따르지 않을까 염려할 수도 있다.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가) 만일 단원들이 학교 밖에 있는 소년 쁘레시디움에 소속되어 있다면, 그들은 학교 밖에서 똑같은 활동을 통상적으로 수행할 것이다.
(나) 청소년들의 장래는 어떤 훈련을 쌓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만일 지금 청소년들에게 자유를 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얼마 안 가서 얻게
될 무제한의 자유에 대비하는 훈련은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교외 활동은 학교와 레지오라는 각기 다른 두 단체의 규율로 동시에 관리되기 때문에, 단원들의 장래를 위해서 매우 이상적인 예비 훈련이 될 것이다.
12. 방학중에 학생들이 고향에 내려가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회합을 열 수 없는 학교의 경우에도 쁘레시디움을 세울 수가 있다. 방학 동안
단원들은 고향에 있는 쁘레시디움에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13. 소년 쁘레시디움의 성인 간부는 개인 성화가 레지오의 주목적일 뿐만 아니라 레지오 활동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을 단원들이 잘 깨닫
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쁘레시디움은 단원들로 하여금 쁘레시디움이 정한 지향에 따라 기도하고 희생하는 정신을 기르도록 격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성 수련을 활동의 의무로 배당해서는 안 되며, 또한 회합 때 보고를 하게 해서도 안 된다. 다시 강조하는 바이지만, 영성 수련은 활동이 될 수 없으며, 그것은 단지 행동단원의 활동에 덧붙여서 수행하는 부수적인 신심 행위일 따름이다.
14. 단원들은 활동 보고를 준비하는 데 특별한 정성을 쏟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성인 간부에게서 보고하는 방법을 열심히 배워야 한다.
소년 단원들의 활동은 대개 그 성질상 흥미롭고 상세한 보고 내용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러므로 회의 진행을 재미있고 다채롭게 하기 위해서 특별한 노력이 따라야 할 것이다.
15. 성인 레지오는 때때로 어렵고 위험한 환경에서도 원대한 활동 계획을 실천에 옮기며 주님의 싸움에 동참하고 있다. 소년 단원들이 이
러한 성인 레지오와 조직 안에서 일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들이 비록 활동면에서 다소 부족하다 해도 활기를 잃지 않을 것이며, 젊은이다운 상상력을 발휘하여 더 큰 일치를 위해서 노력하게 될 것이다. 이는 레지오 조직 안에서 모든 구성 요소들이 서로 돕고 보완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하나의 본보기이다. 이렇게 해서 종교를 '억지로 주어진 생활 습관'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생각은 달라지게 되고, 또한 그들을 통하여 다른 많은 젊은이들도 생각을 바꾸기에 이른다.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종교에 대한 그릇된 생각이 일단 뿌리를 내리게 되면, 그 해악은 어떠한 훌륭한 학문의 업적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16. 소년 단원들에게는 수련기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으며, 레지오 선서도 없고, 성인 꾸리아에도 참석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밖에 레
지오의 기도문, 조직과 회합, 비밀 주머니 헌금 등에 있어서는 성인 쁘레시디움의 경우와 똑같다. 소년 단원에서 성인 단원으로 올라갈 때에는 반드시 정상적인 수련기를 거쳐야 한다.
17. 소년 쁘레시디움에서 봉사하는 성인 단원이 성인 쁘레시디움에서 선서를 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맡고 있는 소년 쁘레시디움에서 선서
를 해야 한다. 소년 단원들은 그들의 눈 앞에서 펼쳐지는 선서 의식을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게 될 것이며, 그들 자신이 장차 선서를 통하여 완전한 레지오 단원이 되는 날을 고대하게 될 것이다.
18. 어린이들도 단원이 될 수 있도록 기도문을 바꾸어야 한다는 제안이 가끔 있었다. 그러나 이 제안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 장에서 지
적하고 있듯이, 소년 단원은 성인 단원과 거의 같아야 하기 때문이다. '소년'이라는 말이 '사소함'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소년 단원들에게 활동과 신심이라는 높은 이상을 제시해 줌으로써 그들이 다른 젊은이들을 이끌어 가는 역할을 맡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레지오 기도문을 가르쳐 주어도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아직 이 수준에 도달할 수는 없는 일이다.
19. 이와 비슷한 제안으로서 소년 단원에게 알맞은 쉬운 교본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제33장 [레지오 단원의 의무]
10절을 참고해 주기 바란다.
20. 소년 레지오가 발전하려면 단원들의 부모나 관계된 모든 어른들의 관심과 협력이 뒤따라야 한다. 소년 단원으로 봉사하는 젊은이들은
몽포르의 루도비코-마리아 성인의 예언대로, '앞으로 닥쳐올 가장 위험한 시대에 세속과 마귀와 타락한 사람들에 대적할 예수님과 성모님의 용감한 군단'으로 훈련되고 있는 중이다. 도르래나 지렛대처럼 원리와 구조가 간단한 기구가 힘을 여러 배로 늘리듯이, 레지오 마리애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이 단원들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게 하며, 그 힘이 그리스도 신앙이 목표로 하는 모든 일의 원동력이 되게 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 힘은 때때로 즉시 효력을 내기도 하는데, 소년 단원들로 하여금 수업시간이나 노는 시간, 집에 있는 시간이나 그 밖의 모든 시간을 쁘레시디움을 통해 습득한 레지오 정신으로 생각하고 처신하며 행동하는 실천적 이상으로 가득 차게 한다. 그리하여 어린 단원들은 모든 사물을 새로운 안목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며, 이로써 그들은 다음과 같은 새로운 세계관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가) 교회에 대하여 : 소년 단원들은 자신이 교회를 지키는 군인이 되었음을 인식하고, 이 교회의 싸움에서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교회 발전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나) 일상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 한 점의 작은 불빛이 온 방을 밝히듯, 레지오 단원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임무가 일
주일 내내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어 준다. 그리하여 소년 단원들은 쁘레시디움을 통하여 배우고 습득한 바를 일상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자 노력한다.
(다) 이웃에 대하여 : 이웃 안에서 그리스도를 뵙고 섬기라는 가르침을 배운 대로 실천한다.
(라) 가정에 대하여 : 나자렛 성가정의 분위기가 자신의 집안에 감돌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마) 집안이나 학교에서 : 성모님을 닮으려는 레지오 정신으로 남을 돕는다. 무슨 일이든 피하지 않고 찾아 나서며, 사람들이 가장 꺼려 하
는 일을 택하여 세세한 데까지 정성을 쏟는다. 늘 상냥하고 신중하며, 항상 예수님을 위하여 일하고, 예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느낌을 지니게 된다.
(바) 학교에 대하여 : 어느 정도 레지오의 이상이 몸에 배게 되면, 학교나 선생님 또는 교과서나 학칙, 공부 등을 바라보는 눈이 새로워진
다. 따라서 소년 단원들은 학교 생활을 통해서 다른 학생들이 얻지 못하는 것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설령 레지오가 공부 시간을 빼앗는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 대개 이것이 자녀들의 레지오 입단을 꺼리는 부모님들의 주장이지만 ― 사실은 얻는 것이 훨씬 크다.
(사) '의무'와 '규율'에 대하여 : 이 두 가지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지만,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용어가 주는 딱딱한 느낌 때문에 이를 기꺼
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이 두 용어를 각각 '성모 마리아'와 '레지오'라는 두 낱말과 연관시켜 생각하게 하면 그들은 즉시 알아듣고 아름다움마저 느끼게 된다.
(아) 기도에 대하여 : 기도가 한낱 습관적으로 바쳐야 하는 일거리가 아니라 영신적인 힘의 원천으로서 활동을 뒷받침하여, 레지오와 전체
교회의 창고에 영신적 보화를 쌓는 행위임을 깨닫게 된다.
21. 소년 쁘레시디움을 바르게 운영함으로써 청소년들에게 최대의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주장은 위의 설명만으로도 지나친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소년 쁘레시디움은 단원들에게 그리스도 신자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인격적 특성을 길러 준다. 또한 소년 레지오는 신심이 깊고 신뢰할 수 있는 젊은이들을 만들어 내는 거푸집의 역할을 하여, 부모와 어른들에게 기쁨을 주고, 교회의 기둥이 되는 훌륭한 인재를 많이 배출해 낼 것이다.
22. 그러나, 만일 소년 쁘레시디움이 단원들에게 알맞은 활동을 제시하지 못하거나 규율을 소홀히 한다면, 위에 설명한 모든 계획과 희망
은 수포로 돌아간다. 그런 쁘레시디움은 불량품을 만들어 내는 거푸집이며, 단원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레지오에 대하여 잘못된 인식만을 심어줄 뿐이다. 그런 쁘레시디움은 차라리 없는 편이 레지오에 도움이 된다.
"젊은이들을 단순히 교회의 사목적 관심의 대상으로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젊은이들은 복음화의 주역이며 사회 개혁의 동참자
로서 교회를 대신하여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또 그렇게 행동하도록 격려해 주어야 한다. 젊음은 강렬한 '자기' 발견과 '인생 선택'의 시기이다. 소년 시절은 '몸과 지혜가 날로 자라면서 하느님과 사람의 총애를 더욱 많이 받아야 할'(루가 2, 52) 성장의 시기이다."(평신도 그리스도인 46)
2. 신학교 쁘레시디움
"새 사제들에 관하여 특히 중시해야 할 일은 그들의 사목 생활에서 평신도와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함을 알리고 미리 준비시키는 일입니다. 공의회는 '사제들은 평신도의 말에 귀를 기울여 평신도의 소원을 형제처럼 생각해 주고, 그들이 사회 여러 분야의 활동을 통해서 습득한 경험과 적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최근에 열린 시노드(synod)에서도 평신도에 대한 사목적 배려를 촉구한 바 있으며 '신학생들은 평신도, 특히 젊은이들에게 여러 길의 성소가 있음을 제시하고 소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 무엇보다도 젊은 평신도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소명 안에서 복음의 빛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도록 가르치고 도와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평신도들의 임무를 인정하고 그들의 활동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 현대에서의 사제 양성 1992년)
바야흐로 모든 사제가 레지오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왔다. 레지오에 대한 학문적 지식은 실제 단원 생활을 체험
함으로써 얻는 지식에 비하면 미약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신학교나 수도원 안에 쁘레시디움을 세우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단원들은 쁘레시디움에서 레지오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토대를 철저히 닦아, 이른바 완벽한 신앙적 행동 철학을 확립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장차 그들이 본당 사목이나 해외 선교 사업에 진출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신자들을 쉽사리 동원하는 방법을 잘 아는 전문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신학교에 설립하는 쁘레시디움은 특히 다음과 같은 사항을 유의해야 한다.
(가) 주회합을 진행할 만한 충분한 시간을 낼 수 있어야 한다. 한 시간 이내에 주회합을 모두 마치기는 어려우므로, 좀더 많은 시간을 낼
수 있도록 여러모로 힘써야 한다. 이 교본에 설명되어 있는 회합 순서를 정확히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나) 주회합에서 다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사항은 실질적인 활동을 배당하는 일이다. 실질적인 활동 없이 쁘레시디움은 바르게 존립하지
못한다. 신학생으로서 시간이 한정되어 있고, 학교 안에서 적절한 활동거리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며, 또한 교본 연구에 특히 비중을 두어야 하는 점을 감안하여, 주간 활동 의무는 적어도 한 시간으로 한다. 다양한 활동을 펴기는 어렵겠지만, 그러한 단점은 풍부한 정신으로 보완해야 한다. 배당받은 활동은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지 성모님과 일치해서 수행한다는 점에 유념하여 완벽하게 이끌어야 한다.활동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는 신학교라는 특수 사정을 고려해야겠지만, 다음과 같은 활동이 참고가 될 것이다. 이를테면 가정이나 병원 및 사회 복지 시설 방문, 개신교 신자나 예비신자를 지도하는 일, 성인 또는 아동들이 필요한 성사를 받도록 준비시키는 일 등을 들 수 있다. 어떤 활동을 정하든, 신학교 당국이 세운 사제 양성 계획과 연관되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 쁘레시디움 주회합에서 판에 박은 듯한 활동 보고를 해서는 안 된다. 보고는 생동감이 넘치고 흥미로워야 한다. 이 점에서 성공하면
신학생 단원들은 보고하는 기술이 뛰어나게 향상되어, 장차 사제가 되어 쁘레시디움을 지도할 때 그 기술을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라) 신학교의 규율을 확립하기 위한 임무나 단순히 감독하는 성격의 활동을 배당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활동은 동료 신학생 사이에 레지
오 단원이나, 더 나아가서는, 레지오 자체에 대한 인기를 떨어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 단원 가입은 전적으로 자발적이어야 한다. 강제성을 띠는 기미가 보인다든지 또는 이를 신학교의 관례로 여기게 되면, 달갑지 않은
결과를 빚게 될 것이다. 레지오 단원 가입의 자발성을 강조하는 뜻에서 자유 시간을 이용하여 쁘레시디움 회합을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바) 쁘레시디움 회합과 활동이 신학교의 일과나 규칙에 조금이라도 지장을 주지 않도록 운영해야 한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레지오
의 행동단원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변경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일단 변경하기 시작하면 쁘레시디움의 설립 목적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신학교 쁘레시디움이 성실하게 운영되기만 한다면, 실제로 성소나 학습 진도 또는 규율 확립 등의 측면에서 신학생들의 태도가 한층 향상될 것이다.
제 37 장 활동의 예와 방법
이 장에서는 레지오가 활동 의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경험상 특히 풍성한 결실을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방법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방법들은 다만 권장하는 활동 방법일 따름이며, 활동의 성격이나 내용에 따라 다른 특별한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레지오는 모험이 따르는 어려운 활동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레지오는 그러한 활동을 탄복할 정도로 잘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보잘것없는 활동을 펴게 되면 레지오의 정신에 바람직하지 않은 역효과를 낼 뿐이다. 원칙적으로 모든 쁘레시디움은 영웅적이라고 일컬을 만한 어떤 활동을 펴고 있어야 한다.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에 진지한 자세로 모험적 활동을 해보겠다는 뜻을 지닌 단원 두 사람 정도를 확보하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두 단원에게 활동을 배당하고 그들의 활동이 돋보이게 되면, 동료 단원들은 그들의 모범을 본받아 자연스럽게 같은 방향으로 따라 나서게 될 것이다. 이 방법이 어느 정도 정착되면, 처음 활동을 시작했던 두 명의 용기 있는 단원은 또다시 다른 새로운 영웅적 활동을 찾아 나서도록 한다. 이와 같이 활동 분야를 점진적으로 개척하는 것이 단원들의 수준을 끊임없이 끌어올리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초자연적 영신 세계에서는 자연적 한계라는 것이 있을 수 없으며, 하느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수록 시야는 더욱 넓게 트이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신앙을 위해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말도 안 된다' '신중하지 못하다'고 외쳐댄다. 그러나 이 세상이 그처럼 무기력한 사람들로만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므로 레지오 단원들은 의기소침할 필요가 없다. 영혼들을 돕기 위해 활동을 펼쳐야 하고, 크리스천 공동체의 정신을 세상 안에 실현시키기 위해 높은 이상을 설정할 필요가 반드시 있다면,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해 먼저 취해야 할 태도는 조심성보다는 용기이다. 피에 추기경(Cardinal Pie)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중한 태도가 판을 치면, 용기 있는 태도는 도저히 발 붙일 곳이 없게 된다. 그
리고 우리는 지나치게 신중하기만 하다가 결국 죽고 말 것이다."그러므로 지나치게 조심만 하다가 레지오를 죽여서는 안 된다.
1. 본당에서의 사도직 활동
레지오 단원들은 다음과 같은 활동을 통해 본당 안의 참된 공동체 정신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가) 가정 방문 (다음 2절을 참조할 것)
(나) 미사 드릴 사제가 없는 지역에서 주일과 의무 축일에 준전례 의식(말씀의 전례)을 거행하는 일
(다) 교리반 지도
(라) 몸이 성하지 않은 사람들이나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 또는 노인들을 찾아가 돌보고, 필요하다면 사제가 직접 방문하도록 주선하는
일
(마) 철야 기도회나 장지에서 묵주기도를 주도하는 일
(바) 신자들이 가톨릭 단체나 본당 단체에 회원으로 가입하도록 권유하고, 기존 회원이 이탈하지 않도록 돌보는 일
(사) 본당이 주관하는 모든 사도직 활동이나 선교 활동에 협력하여 영혼들을 교회의 보호망 안으로 이끌어 들여, 개인과 공동체가 다 함께
안전하도록 만드는 일 이 밖에도 여러 다양한 본당 활동 중에는 중요하기는 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성인 단원들의 활동으로 간주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그런 종류의 활동으로는 제대회 및 보(補) 미사회, 성당 청소, 미화 작업, 전례 협조, 미사 복사 등이다. 이러한 활동들은 성인 단원의 활동 의무를 채워 주지는 못하지만, 참가하는 신자들에게는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들은, 필요하다면 이러한 의무를 맡아 할 수 있는 신자들을 조직하고 관리하는 일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레지오 단원들은영혼들을 직접 접촉하는 좀 더 어려운 다른 일들에 전념할 수 있게 된다.
"저도 은총의 어머니처럼 하느님을 위하여 일하고 싶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마카베오 사람들처럼, 저 자신과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 저의
수고와 희생을 바쳐 하느님 사업을 도와 드리고 싶습니다. 마카베오 사람들은 거룩한 열성이 넘치는 용기로 자기 자신들만을 구하려고 하지 않고, 될 수 있는 한 많은 동포들을 구하려고 힘썼습니다."(그라트리 / Gratry : 성모 성월)
2. 가정 방문 활동
가정 방문은 비록 레지오가 가장 먼저 시작한 활동 분야는 아니지만 전통적으로 즐겨 수행하고 있는 활동이며, 어디에서나 할 수 있고 또
한 가장 큰 수확을 거둘 수 있는 활동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가정 방문 활동은 레지오의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단원들은 가정 방문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고, 교회가 모든 사람들과 모든 가정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전할 수가 있다. "교회의 사목적 관심이 단지 주변에 있는 몇몇 신자 가정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마음과 조화를 이루면서 저변을 확대하고, 모든 가정들 특히 어려움에 처해 있거나 혼인 조당 등의 비정상적인 처지에 있는 가정들을 위해서 더욱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야 한다. 교회는 모든 가정에 진리·선(善)·이해·소망의 말씀을 전하고, 역경에 처해 있는 가정에는 깊은 위로를 베풀어야 한다. 이로써 교회는 모든 가정을 공평하게 도와 주어, 창조주께서 '한 처음에' 의도하셨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구속 은총으로 새롭게 하신 가정의 모형에 가깝게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가정 공동체' 65)
쁘레시디움은 가정에 접근할 수 있는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가정을 방문하는 레지오 단원들은 우선 자기 소개를 한 후 찾아온 목적을 밝
힌다. 가정 방문을 통한 활동으로는, 다음 절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예수 성심상을 모시도록 권유하거나 본당의 교세를 조사하거나 교회 출판물을 보급하는 일 등이 있다.이 활동을 통하여 신자 생활을 잘하고 있는 사람들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을 레지오의 사도직 활동 영역 안으로 끌어 들일 수가 있다. 이때 가톨릭 신자가 아닌 개신교인들이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 또는 냉담 교우들과도 접촉하게 될 것인데, 앞서 언급한 혼인 조당에 걸려 있는 사람들이나 교리반에 등록시켜야 할 사람들, 외로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나 몸이 성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쏟아야 한다. 즉, 모든 가정에 빠짐없이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레지오 단원이 가정 방문을 할 때에는 무엇보다도 태도가 겸손하고 순수해야 한다. 방문받는 사람들 중에는 단원들이 찾아와서 잔소리를 늘어놓을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해를 떨쳐 버릴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그들에게 먼저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는 점잖은 태도로 참을성 있게 우선 그들의 말을 들어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단원들도 곧 그들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자연스럽게 찾게 될 것이다.
"평신도들이 펴는 복음화 사도직 활동 가운데 가정 복음화 활동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교회의 역사상 여러 번에 걸쳐서,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역시, 가정은 '가족 교회(domestic church)'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받았다. 이 이름은 신자 가정이라면 어느 가정에서나 교회의 모습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정은 교회처럼 반드시 복음을 전파하고 복음이 빛을 발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명을 의식하고 있는 가정은 그 구성원 모두가 복음화 활동에 나서고 있는 것이며 동시에 복음화되고 있는 곳이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이 복음적으로 생활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자녀들로부터 복음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그러므로 이러한 가정은 다른 많은 가정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정이 속한 고장 전체를 복음화한다. 관면 혼배로 이루어진 가정 역시 자녀들에게 그리스도를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이는 신자인 부모가 자신이 받은 세례성사를 완성하기 위함이다. 더욱이 이런 가정은 부부간에 우선 신앙의 일치를 이루어야 하므로 다른 가정보다도 더 어려운 임무를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복음 선교 71)
3. 가정에 예수 성심상 모시기
가정에 예수 성심상을 모시는 신심을 전파하는 활동을 펴게 되면, 이 활동이 여러 가정과 남다른 우정을 트고 나누는 길임을 알게 될 것이
다. 이 활동의 필요성을 뚜렷하게 밝혀 주는 목표와 그 실천 방법은 제39장 [레지오 사도직의 주안점]에 실려 있는데, 할 수 있는 한 어느 한 가정이라도 건너뛰어서는 안 되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족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 영신 생활을 한 단계 한 단계 높여 갈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끈기 있게 돌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이 활동을 배당받은 단원들은 예수 성심께서 허락하신 열 두 가지 은총을 스스로 충만히 입도록 해야 한다. "나는 사제들에게 아무리 굳어진 마음이라도 감동시키는 은총을 내릴 것이다."(열 번째 은총)라고 말씀하셨으니, 이는 사제의 대리자로 방문하는 단원들에게도 해당되는 주님의 말씀이다. 레지오 단원들은 이러한 은총에 힘입어 철저한 확신을 가지고 '희망이 없는 사람'이라고 낙인 찍힌 대상자를 만나 활동을 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예수 성심을 공경하는 신심을 전파하기 위한 방문 활동은 사람들과 사귀는 방법들 중에 가장 훌륭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방법이다. 처음 방문할 때부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을 전달하여 무리 없이 친교를 맺을 수 있게 된다면, 그 후에도 계속 방문할 수 있는 길을 터놓게 되어 레지오 활동은 수월하게 전개될 것이다.성모님의 역할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도록 도와 드리는 데 있으므로, 성모님의 군사들이 예수 성심상을 각 가정에 모셔다 드리는 일은 (성령의 특별한 은총을 받게 되므로) 지극히 합당한 활동이다.
"가정을 사랑한다는 것은 가정의 가치와 능력을 알고 항상 훌륭하게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말한다. 가정을 사랑한다는 것은 가정에 위협
이 되는 위험 요소와 악을 찾아내어 극복하는 것을 말한다. 가정을 사랑한다는 것은 가정이 발전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현대의 그리스도 신자들의 가정은 어려운 일들이 쌓여 감에 따라 고민하고 체념에 빠지기 쉽다. 따라서 가정 그 자체에 대한 신뢰, 가정이 지니는 본성과 모든 가정에 내리는 은총으로 인한 풍요로움, 그리고 하느님께서 가정에 맡기신 사명 때문에 가정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하는 이유를 확인시켜 주는 것은 훌륭한 사랑의 실천이다. '오늘의 가정은 진정 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가정은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Acts of the Apostolic See 72)"(가정 공동체 86)
4. 본당 교세 조사
이 활동은 돌보아야 할 가톨릭 신자들이나 쉬는 교우들, 이른바 교회와 모든 관계를 끊은 사람들을 접촉하는 매우 좋은 방법이다. 이 조사
활동은 사제의 이름으로 하며, 집집마다 방문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방문을 받은 사람들은 신앙 문제에 관한 여러 가지 질문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대부분 기꺼이 대답을 해준다. 방문을 하다 보면 사제와 레지오 단원들이 장기적으로 관심을 쏟아야 할 대상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발견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며, 그것도 매우 손쉬운 시작일 따름이다. 이렇게 찾아낸 사람들 하나하나를 교회로 되돌아오게 하려면, 하느님께서 이 일을 레지오에 맡기신 사명으로 기쁘게 받아들여 불굴의 정신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 비록 그 싸움이 아무리 오래갈지라도, 아무리 힘이 든다 하더라도, 아무리 반발이 심하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이 아무리 굳어져 있고 아무리 절망적으로 보인다 해도, 레지오는 하느님께서 맡기신 일을 완수하는 데 실패해서는 안 된다.이에 덧붙여 강조할 것은, 쉬는 교우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는 점이다.
"교회가 사도직 사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공적인 사명을 부여 받고 있으며,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활동의 방법과 각자가 지
닌 자신만의 독특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우리가 영혼을 구하는 활동을 할 때 성모님의 이름으로, 성모님의 보호를 받으며 하게 된다는 말이며, 따라서 사도직 활동을 통해서 만나는 모든 영혼들이 성모님에 대하여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한 사랑으로 가득 차게 하도록 모든 힘을 기울여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마리아회 편찬 : 성모학 소론)
5. 병원 방문 (정신병원 포함)
레지오가 처음으로 착수한 활동은 극빈자 치료를 목적으로 운영하는 병원을 찾아가 봉사한 것이었다. 한동안은 이것이 유일한 활동이었
는데, 이 활동은 갓 태어난 우리 레지오 조직에 하느님의 은총이 넘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므로 레지오는 모든 쁘레시디움이 이 활동에 늘 각별한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라고 있다. 다음의 글은 레지오 초창기에 쓰여진 것인데, 이 활동의 성격을 특징 지워 주는 정신이 어떠한 것인가를 잘 드러내고 있다.
"한 여성 단원의 이름을 부르자 그 단원은 활동 보고를 시작했다. 활동 내용은 병원 방문에 관한 것이었다. 보고는 짤막했지만 환자들과 매
우 친숙한 사이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단원은 다소 어색해 하면서 환자들이 이미 자신의 친형제 자매들의 이름까지 모두 알고 있다고 말했다. 뒤이어 공동 방문자의 보고가 있었는데, 이로써 두 단원이 짝을 지어 활동했음을 알 수 있었다. 조(組) 활동은 사도직 활동의 모범을 보여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매주 한 차례 실시하는 병원 방문 활동을 미루지 않고 할 수 있게 만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보고는 계속되었다. 어떤 병동에서 새로운 일이 생겼기 때문에 보고가 길어진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활동 보고는 짧고 간결했다. 재
미있는 내용도 많았고 감동을 주는 이야기도 많이 있었다. 환자들을 통해서 단원들이 실제로 어떤 분을 만나 뵐 수 있었는지를 뚜렷이 깨닫고 있었음이 활동 보고를 통해서 여실히 드러났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단원들은 가장 보잘것없고 불쌍한 이웃들을 위해서 이렇게 선뜻 나서서 스스럼없이 활동을 하고 있지만, 아마도 자신을 위해서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원들은 환자들을 일일이 돌아보면서 자상하게 보살필 뿐만 아니라 편지를 대신 써 준다든지, 친구나 친척을 대신 찾아가 준다든지, 심부름을 해준다든지 하는 등의 많은 일을 해준다. 아무리 귀찮거나 사소한 부탁이라도 기쁜 마음으로 들어 준다. 회합중에 편지 한 통이 낭독되었다. 어떤 여자 환자가 자신을 방문해 주는 두 레지오 단원에게 보낸 편지였는데, 그 글 중에 '두 분이 제 삶 안으로 들어오신 후부터'라는 구절이 있었다. 마치 통속 소설에 나오는 구절 같아서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나는 병원 침대에 외롭게 누워 있는 사람에게 이 말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인가를 깨닫고 나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또한 이 이야기가 어떤 한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조직의 힘은 참으로 놀랍다. 레지오는 사람들을 한 곳으로 불러 모아 놓은 다음 그들에게 천사와 같은 임무를 주어, 세상 사람들이 돌보지 않는 수없이 많은 생명들에게 파견하는 참으로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다." (미카엘 크리든 신부 / Fr. Michael Creedon 꼰칠리움 초대 영적 지도자)
병원 방문 활동의 목적은 환자들에게 그들이 겪는 고통의 참된 의미를 일깨워 주고 올바른 정신으로 고통을 이겨내도록 도와 주는 데 있
다.아픈 이들은 견디기 힘든 고통을 통해서 실제로 그리스도를 닮는 기회를 맞게 되므로, 고통은 그 자체로서 큰 은총이 된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St. Teresa of Avila)는 "하느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성자의 삶을 우리도 살도록 허용해 주셨으니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사람들로 하여금 이러한 고통의 은혜를 이해하도록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으며, 일단 깨닫게 되면 고통은 반으로 줄어든다.베드로 알칸타라 성인(St. Peter of Alcantara)은 오랜 기간 동안 고통스러운 병을 훌륭하게 견디어 낸 어떤 환자의 놀라운 인내에 탄복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이 성인의 말을 환자들에게 자주 들려주는 것도 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신은 정말 복받은 분이십니다. 당신이 그 큰 고통을 참아 내면서 얼마나 큰 영광을 쌓아 올렸는지를 하느님께서 내게 보여 주셨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단식과 철야 기도와 고행 그리고 그 밖의 여러 가지 힘든 수행으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공로를 세웠습니다." 이렇게 환자는 고통을 참아 낸 공로로 영신적 보화를 얻게 되는데, 이 보화를 사용할 때는 폭넓게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구나, 그러한 보화를 환자 자신만을 위해서 쌓아 둔다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은 환자들에게 '고통의 사도직'에 대해서 설명해 주어야 한다. 환자들로 하여금 온 세상의 영신적인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도록 가르쳐, 그들이 겪는 고통으로 얻은 보화를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봉헌하도록 일깨워 주어야 한다. 환자들이 겪는 고통은 그 즉시 기도가 되고 보속이 되기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하느님께 향한 손들은 적을 직접 공격하는 손들보다 더 많은 적군을 쳐부순다."고 보쉬에(Bossuet)는 부르짖는다.
만일 환자들이 자기가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 알게 된다면, 더욱더 꾸준히 기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그들의 기도가 필
요한 일이나 활동(특히 해당 레지오 단원이 현재 수행 중인 활동)을 그들에게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우선 환자들을 협조단원으로 만들고, 그 다음 아듀또리움 단원이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러한 협조단원들이 모임을 갖도록 하면, 그들이 스스로 새 단원을 모집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 밖의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도 환자들이 서로 도울 수 있도록 돌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환자들이 협조단원이 될 수 있다면 행동단원이 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이미 여러 정신병원 안에 입원 환자들만으로 구성된 쁘레시디움이 설립되어 있다. 이처럼 쁘레시디움이 병원 안에 생기게 되면 쁘레시디움은 누룩의 역할을 하여 병원에 활기를 준다. 이들 단원들은 다른 환자들을 대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므로, 이로써 그들 자신도 수준 높은 영성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치료 효과나 병세 회복 면에서 부진했던 환자들이 레지오에 입단하여 활동함으로써 뚜렷한 진전을 보이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나 병원의 의료진들은 이를 인정하며 권장한다.환자들이 이처럼 새로운 인생관을 가지게 되면, 지금까지 자기는 한낱 쓸모 없고 부담스러운 존재라는 생각으로 참담한 처지에 빠져 있다가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쓸모 있는 존재로 여기신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최고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 레지오 단원들이 활동을 통하여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 고통의 일부를 떠맡고 있는 것처럼, 환자들 역시 자신의 고통을 통하여 인간 세상의 고통의 일부를 떠맡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레지오 단원과 환자 사이에는 반드시 '성인의 통공'이 힘차게 작용한다. 만일 모든 사람이 자신이 지은 죄의 몫을 스스로 고통으로 짊어져야 한다면, 세상 사람 모두가 환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그중 일부는 자신의 몫보다 더 많은 고통을 짊어지는 특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눈으로 볼 수 없는 이 거래에서 레지오 단원들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환자는 스스로 그리스도 신자로서의 사도직 임무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 그리고 때로는 그러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문에 - 레지오 단원은 그가 신자로서의 자신의 몫을 병상에서 나마 다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하는 것이다.이렇게 양자는 서로의 희생을교환함으로써 기쁘게 은총을 나누어 갖는다. 그렇지만 이것은 수지 균형이 적당히 들어맞는 그런 평범한 교환이 아니다. 베푼 것보다 백배나 더 많이 받게 되는 그리스도교의 원리에 따라, 각자는 잃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밀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느님의 맞갖은 빵이 되도록 사자의 이빨에 갈려 곱게 가루가 되어야 한다.'라고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성인(St. Ignatius of Antioch)은 말했다.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 가운데 가장 훌륭한 십자가, 곧 가장 틀림없고 가장 거룩한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의논하지 않고 정해 주시는 십자가라는 것을 의심하지 말아라. 나자렛이라는 틀로 찍어 낸 성인들이 특히 좋
아하는 이 가르침에 대한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여라. 하느님께서 직접 내려 주시는 온갖 역경과 시련을 맞이하면서 하느님을 경배하고
축복하고 칭송하고 자신의 본성에 대한 혐오감을 극복하며, 마음으로부터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Fiat).'라고 외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제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나이다.(Magnificat)'라고 부르짖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마태오 크롤리-부뷔 / Mateo Crawley-Boevey)
6.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활동
이 활동은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 즉 하숙집이나 간이 숙박 시설 또는 유치장 등을 방문하거나 레지오 단원이 상주
또는 출퇴근하면서 수용 시설을 운영하는 활동일 수도 있다. 풍부한 경험과 능력을 갖춘 단원들이 확보되기만 하면, 레지오는 즉각 그리스도의 보잘것없는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위한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이 점을 등한시 하는 경우가 자주 있어서 가톨릭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길 잃은 양들을 찾아 나선 레지오가 뚫고 들어가지 못할 험난한 곳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에게 가장 큰 장애물은 쓸 데 없이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두려움이 근거가 있든 없든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한다. 결국 많은 기도와 조직의 보호를 확실하게 받고 있는 유능하고 훈련된 레지오 단원들이 할 수 없다면,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만일 어느 중요한 위치에 있는 레지오 조직이 단원들을 통하여 그 지역의 가장 불우한 이웃 하나하나를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하거나, 그들과 여러 방면에서 다양하게 접촉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면, 그것은 이 활동이 아직 충분히 발전되지 못한 상태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 지역 레지오는 더욱 열심히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세상의 온갖 귀하고 값진 것들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의 열성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레지오 단원들이 불행한 사람들을 찾는 데 쏟는 열성에는 비할 수 없을 것이다. 단원들이 벌이는 이러한 탐색 방문 활동은 불우한 이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들어서는 단 한 번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평소에 이들은 선의의 사람들에 의해서 감화를 받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레지오 단원의 방문을 받을 수 있는 감옥이나 이와 유사한 수용 시설이 그들에게는 오히려 축복의 장소가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더구나 이러한 활동에 나서자면 단원들은 전투에 임하는 병사와 같은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 난처한 일에 부딪치거나, 폭언으로 '돌팔매질'을 당하거나 또는 그보다 더 심한 횡포를 경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총알' 같은 주먹이나 '대포알' 같은 폭행이 덮칠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들은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결코 겁을 내거나 당황해서는 안 된다. 그 동안 레지오 단원들은 성모님의 군사로서 모든 임무를 완수하겠다고 여러 번 서약했고 또 마음속으로 다짐해 왔으므로, 이제 자신의 서약이 얼마나 튼튼한지가 여기에서 입증되는 것이다. 단원들은 줄곧 이러한 싸움과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일에 대해서 말해 왔다. 그러니 막상 이제 그런 사람들을 찾았는데 불평을 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는다. 못된 사람이 못된 행동을 하고 가장 악한 사람이 악한 행동을 하는데 새삼스러이 놀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요컨대, 특별히 어려운 상황이나 위험에 처할 때마다 레지오 단원은 '이제 싸움이 시작되었다!'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해야 한다. 이 말은 싸움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거슬리는 말이겠지만, 영혼을 구하는 싸움에 뛰어든 레지오 단원들을 굳세게 만들어, 다른 이들이 모두 단념하더라도 끈기 있게 활동을 지속하도록 용기를 북돋아 준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고귀한 영혼들을 구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어떠한 대가라도 치를 용의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대가를 '누가' 치러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만일 어떤 위기를 맞아 평신도들이 나가 싸워야 할 때, 성모님의 군사라는 이름에 맞갖은 활동에 몸을 바쳐 온 레지오 단원들이 아니라면 나설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만일 평신도들이 큰 희생을 떠맡아야 한다면, 갈바리아에 계셨던 성모님께 봉사하려고 자발적으로 레지오에 입단한 단원들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일단 부름을 받으면 레지오 단원들은 지체없이 달려간다. 그러나 때때로 지도자가 단원들을 잘못 인도하여 활동을 그르치는 수가 있다. 그러므로 영적 지도자와 모든 간부들은 콜로세움(Colosseum)의 순교자들에 비교할만한 정도로 단원들의 수준을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늘날과 같은 타산적인 시대에 이러한 권고가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콜로세움 역시 계산적이었다. 그것은 성모님의 군사인 레지오 단원들보다 결코 더 강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더 약하지도 않았던 수많은 훌륭한 신앙 선조들이 보인 계산이었다. 그들은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위해 어느 정도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 하고 스스로 물었던 것이다. '콜로세움'은 이 교본이 제4장 [레지오의 봉사]를 통해서 표현하고자 한 바를 한마디로 요약해 준다. 그것은 단순히 감상(感傷)만을 표현한 것이 아니다.사회에서 버림받거나 방치된 계층의 사람들을 위한 활동에는 항상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이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러므로 이 활동의 열쇠는 인내심이다. 수없이 넘어졌다가 겨우 다시 일어서려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대하면서 처음부터 규율을 내세운다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엄격한 방식을 쓰면 얼마 안 가서 치료하려고 했던 대상자들은 모두 놓쳐 버리고, 별로 치료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만 환자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활동은 가치 역순의 원리에 따라 수행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이 활동은 낙관론자조차도 전혀 가망이 없다고 손들 만한 사람들, 마음이 비뚤어지고 반응마저 보이지 않아 아무리 타일러도 소용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거칠고 심술궂은 사람, 공연히 밉살스런 사람, 사회에서 배척받은 사람, 감시 대상에 오른 사람, 도시의 퇴물 등, 이런 사람들을 단원들은 모두 끝까지 보살펴야 한다. 반발에 부딪치거나 거부를 당해도, 실패와 배은망덕의 괴로움을 겪는다 해도, 단호한 결심으로 활동을 지속해야 한다. 대체로 이러한 활동들이 레지오 단원들의 평생 과제이다. 이러한 활동을 수행하려면 영웅적인 자세와 초자연적인 안목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이처럼 힘겨운 노력에 대하여 단원들이 받게 될 보상은, 마침내 그들이 하느님과 화합한 가운데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이 크신 하느님의 사업에 우리가 협력할 수 있다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오랜 세월을 참아 내시며 진흙으로 생명을 빚어 당신을 찬미하게 하시네!(뉴만/Newman : 제론씨우스의 꿈) 이러한 특수 활동을 자세하게 다루는 이유는, 이 활동들이야말로 레지오의 정신과 깊숙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활동들은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봉사 활동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 이유는 이 활동들이 가톨릭의 원리를 드러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미천한 사람이라도, 즉 그들의 가치가 어떠하든 또는 그들이 지닌 생각이 우리들의 생각과 전혀 같지 않다 하더라도,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우리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영신적 질서 안의 원리이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서 우리는 그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알아 뵙고 흠숭하며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이와 같은 사랑의 진실성은 시험을 통해서 입증된다. 그 결정적 시험은 인간 본성으로서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참 사랑과 거짓 사랑을 가려내는 시금석이요 신앙의 핵심이며 그리스도 신앙의 결정적 요체이다. 왜냐하면, 이런 사랑은 가톨릭적 이상이 깃들어 있지 않으면 아예 존재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 의미와 생명을 주는 뿌리를 떠나서 그런 사랑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오직 인간 자체만을 위하는 것을 신조로 삼는다면, 세상 만사를 대할 때 과연 그것이 인간에게 쓸모가 있는가 없는가라는 관점에서만 판단할 수 있으며, 결국 인간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인정되는 것
은, 마치 그리스도교 계명에서 죄를 보는 시각처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무조건 제거되어야 할 대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그러므로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숭고하게 드러내는 신자들이야말로 교회에 가장 큰 봉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는 악한 사람을 다루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대가 말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람을 헌신적으로 사랑해야 한다. 그대
의 목표는 그 사람을 죄의 길에서 벗어나 덕행을 하도록 인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대는 그대가 해주는 말을 그 사람이 듣지 않고 그대의 충고를 그가 따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떻게 그것을 확신하는가? 그대는 그를 잘 타이르고 그의 마음을 돌려 보려고 정녕코 노력
했는가? 가끔 그를 설득했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몇 번이나 그런 시도를 했는가? '여러번'이라고 대답하겠지만 그 정도로 충분했
다고 생각하는가? 비록 평생 그 일을 계속하게 되더라도 노력을 게을리 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께서 우리들을 타이르시는 것을 보라. 그분은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사도들을 통하여, 복음사가들을 통하여 우리들을 끊임없이 타이르고 계시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 결과는 어떤가? 우리의 행실이 모두 올바르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는 모든 면에서 하느님께 순명하고 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순명과는 동떨어지는 행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타이르시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으신다. 왜 그렇게 하시는가? 영혼만큼 귀중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마태 16, 26)"(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 St. John Chrysostom)
7. 청소년들을 위한 활동
"어린이들은 분명히 예수님의 따스한 사랑을 아낌없이 받는 대상이다.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축복해 주셨고, 더 나아가서 어린이들에게 하
늘나라를 약속해 주기까지 하셨다.(마태 19, 13-15 ; 마르 10, 14 참조) 특히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이 하느님 나라에서 차지하는 실제적인 역할을 드러내 보여 주셨다. 어린이들은 하나의 고귀한 표상으로서, 오직 주님만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상징하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도덕적, 정신적 조건이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다.'(마태 18, 3-5 ; 루가 9, 48 참조)" (평신도 그리스도인 47)만일 젊은이들을 때묻지 않은 순수한 신앙 안에 끝까지 머물러 있게 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장래는 얼마나 빛나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교회는 마치 원기를 되찾은 거인처럼 온 힘을 쏟아, 믿지 않는 이들을 변화시키는 교회의 사명을 단시일에 완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오히려 내부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이 소모되고 있다. 잘못된 뒤에 바로잡는 것보다는 잘못되기 전에 보호하는 것이 더 쉽다. 물론, 이 두 가지 경우가 다 중요하므로 레지오는 양쪽 일에 똑같이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일 가운데 더 쉬운 쪽, 즉 청소년들을 순수하게 보존하는 일을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훗날 타락한 어른 한 사람을 되돌려 놓기 위해서 기울일 수고를 지금 쏟는다면 수많은 청소년들을 불행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들을 위한 활동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가) 어린이 미사 참례 : 어떤 주교가 레지오 단원들에게 제시한 활동 계획서에는 어린이들의 주일 미사 참례 운동이 으뜸가는 활동으로
올라 있었다. 이 주교는 어린이들이 미사에 빠지는 것을 후에 발생할 모든 불행의 근원으로 보았던 것이다. 어린이들의 명단을 주일학교 출석부 등에서 알아내어 주일 아침에 그들의 집을 방문하면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린이들이 스스로 나빠지는 일은 거의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어린이들이 가톨릭 신자의 기본 의무를 지키지 않고 있다면, 분명 그 부모가 신앙에 무관심하거나 나쁜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레지오의 사도들은 이 활동을 할 때에는 이와 같은 외부적 요인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린이들의 경우에는, 성인들의 경우와는 달리, 하다 말다 하거나 또는 짧은 기간의 활동으로는 거의 또는 전혀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나) 어린이 가정 방문 : 어린이들을 집으로 방문할 때 한 가지 알아 두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접근하기 어려웠던 가
정도 어린이를 찾아왔다고 말하면 쉽게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지니는 본성적인 애정이 자신을 스스로 돌보는 열성보다도 훨씬 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에 관한 일에는 무신경해도 자녀에게 유익한 것은 소중히 여긴다. 아무리 매몰찬 사람이라도 자식을 생각하면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이러한 자식에 대한 뿌리 깊은 본능은 설사 자기 자신은 신앙적으로 쇠퇴해 있다 해도 아이들마저 자기와 똑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아이들 안에 은총이 흐르고 있음을 느낄 때 본능적으로 기뻐한다. 따라서 단원이 그들을 직접 찾아갔을 때에는 거칠고 난폭하던 부모들도 그들의 자녀를 찾아왔다고 하면 똑같은 단원이 방문했는데도 집안으로 들어오게 한다. 유능한 레지오 단원들은 일단 어느 가정에 들어갔을 때 그들이 수행하고 있는 사도직 활동을 모든 식구가 느끼도록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자녀에게 진지하게 관심을 쏟으면 부모는 대개 호의적으로 받아들인다. 이 점을 잘 활용한다면 부모들의 마음 안에 초자연의 씨앗이 자라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린이는, 부모의 집을 들어갈 수 있게 하는 열쇠였듯이, 부모의 마음의 문, 영혼의 문을 여는 데도 열쇠의 역할을 한다.
(다) 어린이 가톨릭 교리 지도 : 어린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일은 매우 중요한 활동인데, 여기에 가정 방문을 곁들인다면 더욱 큰 효과
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교리반 출석률이 그리 좋지 않은 어린이들의 가정을 방문하거나 열심한 어린이의 가정까지도 개인적인 관심을 가지고 방문하면, 다른 가족들과도 접촉할 수 있게 된다. 이와 더불어 레지오는 가톨릭 교리회의 지회(支會) 역할을 맡아 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부록 제8항을 참조하기 바란다.다음에 소개하는 것은 신자수가 많은 본당에서 레지오 조직을 활용하여 주일학교를 운영한 성공 사례이다. 사제가 강론 등을 통하여 주일학교의 중요성을 열심히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일학교 어린이는 불과 5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때 새로 설립된 쁘레시디움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활동 외에 어린이 가정 방문 활동을 추가로 실시하였다. 일년 후 평균 출석 인원이 600명으로 늘어났다. 그렇지만 이 놀라운 숫자 안에는 같은 기간 동안 평소 신앙에 무관심했던 수많은 성인(成人) 가족들에게 베풀어진 영신적 혜택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레지오 단원들은 이러한 모든 활동중에 '성모님이시라면 당신의 어린이들을 어떻게 보살피실까'를 늘 생각해야 한다. 특히 주일학교를 돕는 활동을 할 때 더욱 그러하다. 어른들은 어린이를 대할 때 대체로 참을성이 모자라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나쁜 것은 어린이들에게 단지 사무적이고 세속적인 분위기로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린이는 교리 수업을 단지 학교 공부의 연장 정도로밖에는 여기지 않게 되며, 결국 예상된 수확의 10분의 9는 놓치고 만다. 그러므로 한 번 더 생각하라. '이 어린이들 하나하나 안에서 당신의 사랑하는 아드님을 보시는 성모님은 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실까?' 하고.젊은이들을 가르치는 데는 암기 보조 자료와 시청각 기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교리 교재를 선택할 때에는 교회의 가르침에 정확히 부합하는 것을 고르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 교리를 지도하는 사람과 교리를 배우는 사람은 한(限)대사를 받을 수 있다. (대사 목록 및 대사 관리규정 20)
(라) 비가톨릭 학교 또는 공립 학교 : 가톨릭 학교에 다니지 않는 어린이들의 생활은 늘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로부터 발생하는 미래의 여러 문제들을 예방하는 일 또한 쉽지 않다. 각 지역의 교회 당국이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처럼, 레지오에서도 온 힘을 다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마) 젊은이들의 신심회 : 좋은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도 학교를 졸업할 때쯤 되면 위기를 맞게 된다. 그때쯤 해서 그들은 학교에서 받는
건전한 감화나 보호 차원의 규제 또는 세심한 보살핌으로부터 스스로 풀려난다. 청소년들 중에는 가정에서 종교적 지도나 규제를 전혀 받지 못하고 오직 학교가 마련하는 보호 수단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던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들이 학교의 품을 떠나는 시기는 도덕적으로 바르게 보호받기 가장 어려운 시기이고, 불행하게도 이들은 성년이 채 되기 전에 소년기를 벗어난다. 따라서 이런 과도기에 놓인 청소년들을 위한 적절한 대책을 세우기란 쉽지 않으며, 결국 아무런 대책 없이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설사 어른들이 아직 그들을 돌본다 해도 일단 이 과도기가 지나면 대개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그들이 이미 자유가 주는 위험한 매력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학교에서 받던 지도 감독이 졸업 후에도 어떤 방법으로든 반드시 지속되도록 해야 한다. 그 한 가지 방법으로는 레지오의 주관 아래 청소년 신심 단체를 두거나 일반 신심 단체 안에 청소년 관련 분과를 두는 일이다. 청소년들이 학교를 졸업할 무렵 관계자들이 대상 청소년의 명단을 레지오 단원들에게 넘겨 주면, 단원들은 그 명단에 있는 청소년들의 가정을 방문하여 친분을 맺고, 신심회에 참여하는 태도가 그리 좋지 않은 청소년들을 특별 방문한다. 각 단원에게 청소년 신심회 모집 인원을 일정수 배당하여 그들을 책임 지도하게 하는 것도 좋다. 신심회의 회합이 열리기에 앞서 회원들을 찾아가 참석 의무를 일깨워 주고, 가능하면 연차 피정(될 수 있는 한 봉쇄 피정) 및 연차 총 친목회 등을 청소년 신심회의 주요 행사로 삼는다. 청소년들을 선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이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자주 규칙적으로 영성체하도록 인도하는 것이며, 실제로보다 더 좋은 다른 방법이 없다. 소년원이나 고아원을 나온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더욱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보살펴야 한다. 그들은 부모가 없거나 나쁜 부모의 희생물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바) 청소년 단체, 보이 스카웃, 걸 스카웃, J. O. C(가톨릭 노동 청년회)분회, 양재 교실, 아동 복지회 지부 등의 설립 및 지도 : 이런 활동
은 대개 쁘레시디움 전체의 활동으로서 보다는 일부 단원들에게 개인 활동으로 배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한 쁘레시디움이 위에 설명한 특수 활동 중 어느 한 가지 활동에만 전념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다만 이런 경우에도 쁘레시디움은 주회합을 결코 걸러서는 안 되며 완전한 레지오의 규칙대로 회합을 진행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단원들이 특별 활동의 일부로서 함께 모여 기도하고 회의록을 낭독하고 몇 가지 간단한 보고를 했다고 해서, 이를 쁘레시디움의 주회합으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런 방식은 비록 회합의 기본 골격은 갖추었다고 할지는 모르나, 교본 제11장 [레지오의 기본 요소]에서 확실하게 설명하고 있듯이, 레지오 규율의 정신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하나의 편법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레지오는 단원들이 이러한 '특수 활동'으로 청소년 단체의 모임을 주관할 때 시작과 중간과 끝 부분으로 3등분하여 레지오의 기도문을 바칠 것을 바라고 있다. 만약 묵주기도를 바칠 수 없는 경우라면 뗏세라에 실린 기도문 만이라도 바쳐야 한다.
(사) 레지오의 청소년 지도 지침 : 청소년 신심회나 기타 청소년 단체의 운영을 맡고 있는 레지오 단원들에게는 지도 원칙을 제시해 줄 필
요가 있다. 전반적인 운영은 담당 단원 개인에게 맡겨져 있으므로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매일 또는 매주 한번씩 모이는 등 모임의 횟수도 다양할 것이고, 순수한 오락이나 기술 강습에서부터 종교적인 모임에 이르기까지 모임의 양상도 여러 가지일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단체들은 분명 다양한 성과를 거두게 되지만, 그렇다고 항상 최고의 성과만 거두는 것은 아니다. 가령, 전적으로 오락 프로그램만을 제공하는 모임이라면, 비록 청소년들이 말썽을 일으키지 않게 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그들을 바르게 수련시키는 데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놀지 않고 공부만 하는 아이는 바보가 된다'는 격언이 있다. 그러나 이 격언은 이미 '공부하지 않고 놀기만 하는 아이는 쓸모없는 인간이 된다'는 좀더 교훈적이고 사실에 들어맞는 또다른 격언으로 재치 있게 바뀌어 있다.쁘레시디움 조직은 어떤 종류의 대상이나 그 활동에도 적합한 조직임이 입증되었다. 그렇다면 이와 비슷한 형태로 청소년들에게 알맞은 간단한 조직 체계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다음에 제시하는 사항대로 청소년 단체를 운영한 결과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따라서 청소년 단체를 맡고 있는 쁘레시디움은 다음 사항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1) 나이는 최고 21세, 최하는 제한을 두지 않는다. 나이 별로 구분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
(2) 회원은 정규 주회합에 참석해야 한다. 만일 모임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갖는 경우, 이 규칙의 적용 여부는 임의로 정한다.
(3) 회원은 매일 레지오의 까떼나를 바친다.
(4) 주회합 때 레지오의 제대를 차린다. 쁘레시디움 회합 때처럼 탁자 위에 차리거나, 좀 떨어진 곳 또는 안전하게 높은 곳에 차릴 수도 있
다.
(5) 회합 때마다 묵주기도를 포함한 레지오의 전 기도문을 쁘레시디움 주회합처럼 세 부분으로 나누어 바친다.
(6) 전체 회합 시간은 한 시간 반 이내가 되어서는 안 되나, 초과할 수는 있다.
(7) 적어도 반 시간은 단체의 업무 또는 교육을 목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나머지 시간은 필요하다면 오락에 쓸 수도 있다. 여기에서 '업
무'란, 예를 들어 축구 또는 그 밖의 스포츠 클럽 등을 운영할 때,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업무를 처리하는 것을 말하며, '교육'이란 종교적 혹은 세속적인 것에 대한 훈련이나 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말한다.
(8) 회원은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 영성체를 해야 한다.
(9) 레지오 단원은 회원들에게 레지오의 협조단원이 되도록 권유하고, 이웃과 공동체를 위한 봉사 정신을 마음에 새기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요한 보스코 성인(St. John Bosco)의 뛰어난 활동적 삶을 통해서 많은 교훈을 얻게 된다. 그중 특이하고 기억에 오래 남는 중요한
교훈 하나를 소개한다. 그것은 초·중·고등학교, 대학 또는 신학교에서 스승과 제자,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에 존재해야 하는 관계에 대한 것이다. 이 성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를 두는 태도를 특히 싫어했다. 스승이나 윗사람이 지나치게 권위를 내세워 원리 원칙만을 고집하거나 무관심하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제자들이 그들에게 접근하기 어렵게 만드는 태도를 성인은 맹렬히 비난했다. '너는 연회석의 주관자가 되면 거만하게 굴지 말아라. 너도 손님 중의 한 사람으로 자처하여라. 또 손님들을 보살피고 나서 네 자리에 앉아라.'(집회 32, 1)라는 성서 말씀을 요한 보스코 성인은 늘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다."(부르느 추기경 / Cardinal Bourne)
8. 이동 문고
레지오 단원들은 번화한 거리나 공공 장소에서 이동 문고를 운영할 수 있다. 그 동안 경험한 바에 따르면, 이동 문고 운영은 상당히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레지오 활동임이 입증되었다. 이 활동은 선량한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 또는 교회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 등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하기때문에 대단히 효과적인 사도직 활동이다. 그러므로 레지오는 모든 지역 평의회의 중심지에 적어도 하나 이상의 이동 문고가 설치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이동 문고는 책의 제목이 가급적 한 권이라도 더 많이 보일 수 있게 진열해야 한다. 비싸지 않은 영성 서적이나 교회의 정기 간행물 등을 풍부히 갖추어 놓고, 레지오 단원들이 직접 맡아 관리한다. 이동 문고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온다. 처음부터 책을 사기 위해 훑어보는 이들도 있고, 같은 교우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찾아오는 신자들, 특별한 생각이나 관심없이 그저 둘러보는 사람들, 심심해서 또는 호기심으로 찾아온 사람들, 교우는 아니지만 가톨릭에 조금은 관심이 있는 사람들, 교회에 관심은 있지만 직접 접촉을 꺼려 하던 사람들 등, 참으로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동 문고 주위에 모여들 것이다. 예의 바르고 다정한 레지오 단원들은 이러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러므로 단원들은 여러 가지 질문에 대답하고 서적을 판매하는 데 필요한 사전 준비를 하여 이런 다양한 사람들과 친숙한 접촉을 할 수 있도록 훈련되어 있어야 한다. 이 접촉을 통하여 단원들은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활동의 기회를 얻게 된다. 상대방이 교우라면 그가 '가톨릭적인 일'을 하도록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며, 교우가 아니라 해도 가톨릭을 이해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들 중 어떤 이는 이동 문고를 둘러보고 나서면서 매일 미사와 영성체를 하겠다는 결심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또 어떤 교우는 레지오의 행동단원이나 협조단원 혹은 빠뜨리치안 회원이 되겠다는 이도 있을 수 있다. 하느님과 화해를 하겠다고 결심하는 사람, 또는 심경의 변화를 느껴 입교하겠다는 회심의 씨앗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이동 문고를 떠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레지오 단원들은 사람들이 이동 문고를 찾아올 때까지 피동적으로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 되며, 직접 그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이는 물론 개인 접촉 활동을 위해서일 뿐 책을 판매하기 위한 목적이어서는 결코 안 된다.이동 문고를 시작하자는 제안이 나오면, 이 일을 맡을 만한 교리 지식을 갖춘 단원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에 부딪치곤 한다. 교리 지식을 많이 갖출수록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리 지식이 모자란다고 해서 활동을 시작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친화력이 더욱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뉴만 추기경의 말처럼
"좋은 인품은 우리를 감화시키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우리의 마음을 녹이며, 상냥한 모습은 우리를 가라앉히고, 실천적인 행동은 우리도
함께 따라 나서게 만든다. 무수한 사람들이 신조에 따라 살거나 죽거나 하지만, 결론을 얻어내기 위해 몸을 던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시 말하면, 성실성과 온화한 마음이 깊은 지식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설픈 지식은 때때로 사람들을 밑도 끝도 없는 깊은 물속이나 뒤틀린 수로로 이끌고 가지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알아봐 드리겠습니다'라고 자신의 무지를 솔직히 고백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튼튼한 기초가 되어 대화를 돕게 된다. 대화중에 나오는 질문들은 대부분 교회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것이므로, 보통의 레지오 단원들이라도 충분히 대답할 수 있는 것들이다. 혹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면, 쁘레시디움이나 영적 지도자에게 물어 보면 되므로 걱정할 일이 아니다. 교회가 못마땅한 행위를 저질렀다던가 일종의 박해를 가했다던가 혹은 열성이 부족하다는 등, 비난의 소리가 그치지 않고 계속될 수도 있으며, 이로 인해 문제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주장은 사실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혼란을 더욱 부채질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적개심에 찬 비난이 쏟아질 때에는 어떠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완전히 만족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이때 레지오 단원이 취할 태도는 그 논쟁을 되도록 단순한 것으로 되돌리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 진리의 말씀을 남겨 주셨는데, 사람들은 이를 종교라 부른다. 이 종교는 하느님의 말씀이므로 오직 하나이며, 명백하고, 한결같고, 그르침이 없으며, 하느님의 권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이와 같은 종교의 특성은 유일하게 가톨릭 교회에서만 온전히 찾아볼 수 있다. 다른 단체나 조직은 이런 특성을 가졌다고 감히 주장하지 못한다. 가톨릭 교회 이외에는 모순과 혼란이 있을 뿐이므로, 뉴만 추기경이 힘주어 말했듯이 "가톨릭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세상을 이 세상에 드러내 보인다. 따라서 가톨릭이 제 몫을 다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확실하고 진실되게 가르쳐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될 것이다." 참된 교회는 오직 하나이며, 하나이어야 한다. 가톨릭 교회가 아니라면 그러한 참된 교회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진리에 대해 이와 같이 단순하게 접근하는 것은 마치 한 곳을 향해 집중 공격을 가하는 것처럼 큰 위력을 발휘한다. 특히 순수한 사람들에게 그 위력은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한편, 지식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교회의 잘못에 대한 어떠한 변명도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이 경우에는 그의 비난이 너무 지나치다는 사실만을 간결하고 부드럽게 알려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가 가톨릭 교회에 퍼붓는 비난은 다른 종교 단체에 대한 비난과 특별히 다를 바가 없다. 만일 그가 가톨릭 신자들의 좋지 못한 행동을 보고 가톨릭 교회가 잘못되었다는 논리를 편다면, 결국 이 세상에는 그가 생각하는 참된 종교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려 주어야 할 것이다. 개신교 신자들이 자신의 교파만이 진리를 독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지금에 와서 그들은 모든 교회가 진리의 일부 또는 일면을 지니고 있다고 다소 온건한 주장을 편다. 그러나 일부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그러한 주장은 결국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며 어떻게 진리를 찾아야 하는지 그 방법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교회의 교리가 어떤 것은 참되고 어떤 것은 참되지 않다면, 어떻게 참과 그름을 가려낼 것인가. 더욱이 진리가 아닌 교리를 선택할 위험마저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이 모든 교리 가운데 어떤 것은 분명 진리이다'라고 주장하는 교회가 있다면, 그러한 교회는 참된 길로 나아가는 데 아무런 도움도 길잡이도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논리가 몸에 배일 때까지 되풀이해 익혀야 한다. 진정한 교회는 오직 하나이며, 가르침에 모순이 없고, 모든 진리를 두루 갖추고 있으며, 참된 것과 그릇된 것을 구분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성모님보다 더 힘있는 협조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사도들, 예언자들, 순교자들, 증거자들, 동정녀들 그리고 훌륭한 협조자
들이 있어 저는 그분들에게 기도합니다. 그러나 저의 모후이신 성모님은 이 모든 중재자들보다 더 높으신 분이십니다. 그들은 모두 성모님과 함께 해야만 무엇을 이룰 수 있으나, 성모님은 그들 없이도 홀로 하실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모님이 우리 구세주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이 침묵하고 계시면, 아무도 기도하지 않고 아무도 우리를 도우러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이 기도하시면, 모든 사람들이 함께 기도 하게 될 것이며 남을 도와 주게 될 것입니다."(성 안셀모 / St. Anselm : 강론 중에서)
9. 군중 속에서의 접촉 활동
사도직 활동은 교회의 풍부한 보화를 모든 사람에게 가져다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사도직은 한 영혼의 온정(溫情)을 다른 영혼에게
개별적이며 지속적으로 전달하는 활동을 기본으로 삼고 있는데, 레지오에서는 이를 '접촉 활동'이라는 전문 용어를 사용하여 부른다. '접촉 활동'이 미약해지면 그만큼 영향력도 줄어들게 된다. 사람들이 모여 군중을 이루면, 군중은 영혼 대(對)영혼의 접촉을 피하게 되며 '접촉 활동'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그러나 군중이란 수많은 개인이 한데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따라서 군중은 무한한 가치를 지닌 영혼들의 집합체이다. 군중 속의 한 사람 한 사람은 각자 다른 사생활을 가지고 있지만, 이런 저런 모습으로 군중 속에서 무리를 이루며 대부분의 시간을 그 속에서 보낸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군중을 개인으로 되돌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과 접촉해야 한다. 성모님이시라면 이 군중을 어떻게 보실까? 성모님은 무리를 이루고 있는 영혼 한 사람 한 사람의 어머니이시다. 성모님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려고 애태우실 것이며, 그들을 보살피는 어머니의 일에 누군가가 나서서 도와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실 것이다. 공공 장소에서 이동 문고를 운영하는 것이 큰 효력이 있다는 것을 이미 설명한 바 있지만, 군중을 대상으로 하는 종합적인 사도직 활동은 이동 문고와는 별개의 활동으로 따로 실시할 수 있다. 그리하여 군중 속의 영혼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접근하여 신앙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보자고 제의한다면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거리에서, 공원에서, 공공 장소에서, 철도나 지하철 역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라면 어디에서든지 이 활동을 실천에 옮길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접근 방식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잘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 활동에 임하는 레지오 단원은 자신의 말씨와 태도가 가장 중요한 접촉의 수단임을 명심하여 언제나 겸손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대화를 나눌 때에는 상대방과 다투거나, 설교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거나, 법을 내세우거나, 또는 우월감을 드러내는 듯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단원들은 다만 '사도들의 모후'이신 성모님이 자신의 빈약한 말솜씨에 힘을 넣어 주시고, 단원들이 펴는 사도직 활동이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어야 한다.
10. 신자 가정부를 보살피는 활동
이 활동은 앞에 설명한 '군중 속의 개인 접촉 활동'의 일부로서나 또는 특별 활동으로서 수행할 수 있다. 신앙에 관심이 없거나 탐탁지 않
게 여기는 가정에 가정부로 들어가는 신자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들은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와 단순히 기계 취급을 받으며, 친구도 없이 외롭게 지내므로, 불행으로 빠뜨릴 사람들과 사귀기가 쉽다. 따라서 이러한 처지에 있는 가정부들을 접촉하고 보살펴 주는 일은 매우 훌륭한 사도직 활동이 된다. 이런 가정부들에게 레지오 단원들이 매주 주기적으로 찾아와 그들이 잘되기를 바라며 함께 기도해 준다면, 그러한 단원들의 활동은 그들에게는 마치 한 줄기의 밝은 빛이 될 것이다. 방문하는 목적은, 가정부로 일하는 여성들을 성당의 신심 단체나 모임에 가입시켜 친교를 맺게 하는 데 있지만, 가능하면 레지오에 가입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이 활동은 많은 사람을 안정시키고 성화시키며 새로운 행복의 길로 나아가도록 도와 준다.
"얼핏 생각하면, 하느님의 위대한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지상 생활은 적어도 어느 한 기간 동안은 위풍당당하고 위엄이 넘치는 모습이 아
니었을까 하고 상상하기 쉽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 섭리하신 성모님의 실제 생활 모습은 너무나도 달랐다. 성모님은 가난하게 살면서 마루를 닦고, 빨래하고, 음식을 차리고,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우물을 오가는 등, 험한 일을 하셨다. 이처럼 예수님, 성모님, 그리고 요셉 성인께서 보여 주신 모범적 생활은 감히 비천하다고 부를 수밖에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성모님의 두 손은 고된 살림으로 빨갛게 거칠어졌을 것이고 때때로 지치고 과로에 시달리셨을 것이다. 노동하는 남편의 아내라면 누구나 갖는 걱정거리를 성모님도 늘 지니고 계셨을 것이다."(봣살-필립 / Vassal-Phillips : 그리스도의 모친)
11. 군인 또는 직업상 자주 이동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활동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주거지를 자주 바꾸는 생활 환경 때문에 신앙 생활을 게을리 하거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므로 이들을 대
상으로 하는 사도직 활동의 필요성은 매우 절실하다.
(가) 민간인은 군사 시설 출입이 쉽지 않으므로, 장병들을 돌보는 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방법은 장병들로 조직된 쁘레시디움을 설
립하는 것이다. 이미 여러 곳에서 군인 쁘레시디움이 설립되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나) 선원들을 돌보는 활동으로는 선박을 방문하거나 육상에서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하는 방법 등이 있다. 이 활동을 착수하려는 쁘레시
디움은 '해양 사도회(Apostolatus Maris)'라는 국제 단체에 가입해야 한다. 이 단체는 거의 모든 해양국에 지부를 두고 있다.
(다) 레지오 단원들은 군대나 선상 규율을 세심하게 존중하는 태도를 지녀야 하며, 그들의 규정이나 관례를 거스리는 행동을 해서는 절대
로 안 된다. 사실 레지오 단
원은 자신이 수행하는 사도직 활동이 널리 인정받도록 해야 한다. 즉, 단원들은 레지오가 수행하는 사도직 활동이 국군 장병이나 선원들
을 모든 면에서 향상시키며 큰 보탬이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단순한 도움의 차원을 넘어서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봉사 활동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라) 출장이 잦은 사람들, 집시, 서커스 단원들도 늘 이동하는 부류의 사람들이므로 레지오 사도직 안에서 보살펴야 할 사람들이다. 이민
자와 난민도 이 활동 대상에 속한다.
"현대 세계의 큰 변화들 중에서 이주(移住)는 새로운 현상이다. 이주로 인해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국가 안에 비 그리스도인의 수가 늘어나
고 있다. 이들은 새로운 접촉과 문화 교류의 기회를 제공하지만, 또한 교회를 향해 친절한 대접과 대화와 원조, 즉 우애를 요구한다. 이주민 가운데에서도 피난민은 특수한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에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오늘날 세계에는 수백만 명의 피난민이 있고, 그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그들은 정치적 억압이나 비인간적 빈곤과 질병, 기아와 절망적인 가뭄을 피해 떠나 온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들에 대해서도 사목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교회의 선교 사명 37)
12. 가톨릭 출판물 보급 활동
일반적으로, 히포의 아우구스티노 성인(St. Augustine of Hippo)이나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St. Ignatius of Loyola)을 비롯한 수많은 훌륭한 사람들의 생애를 보면, 그들의 삶을 높은 경지에까지 이끌어 주었던 힘은 그들이 즐겨 읽었던 정평있는 좋은 책들부터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톨릭 출판물을 보급하는 활동을 하다 보면 다양한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게 되므로, 그들과 가톨릭 신앙에 대하여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성인들을 위한 상설 교리반이 충분히 운영되지 않고 있는 형편에서는 교회 밖에 사는 사람들에게 교회의 가르침을 제대로 전해 줄 수가 없으며, 결국 그들은 교회의 가르침과는 동떨어진 세상에서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결과로 세속의 목소리가 교회의 목소리보다 더 크게 들려 온다. 이러한 불균형은 시급히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스도 신자의 의무는 세속을 정복하여 그리스도께 되돌려 드리는 것이다. 이러한 임무를 완수하려면 먼저 올바른 가치관과 자세를 지녀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으로서의 가치관과 자세를 말한다.다른 정보 전달 매체를 경시해서가 아니라, 책을 통해서 무언가 배워 보겠다는 진지한 자세로 책을 대한다면, 그러한 독서는 삶을 풍부하게 하고 감화를 주는 다양한 사상의 원천이 된다. 가끔씩 기분이 내킬 때마다 한꺼번에 많은 양의 독서를 하는 것보다는 규칙적으로 꾸준히 하는 독서가 훨씬 효과적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종교 서적을 읽히는 일은 쉽지 않다. 우선 흥미를 유발시켜야 하고, 흥미가 식지 않게 하려면 책을 쉽게 구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활동 역시 레지오 단원들이 수행해야 할 좋은 활동의 대상이 된다.교회 서적이나 홍보물 이외에 가톨릭 신문과 잡지가 발간되고 있는데, 이 정기 간행물들의 발간 목적은 다음과 같다.
(가) 시사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분석과 평가를 제공한다.
(나) 편견이나 계산된 침묵을 바로잡는 소중한 역할을 한다.
(다) 신문이나 방송의 프로그램을 평가하고 소개한다.
(라) 보편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건실한 자부심과 관심을 갖도록 유도한다.
(마) 신자 생활에 길이 도움이 될 내용을 읽는 즐거움을 제공한다.
인쇄 매체 이외에도 시청각 자료가 신앙을 불어넣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종교에 관한 어떤 자료를 이용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내용이 교회의 가르침과 일치하는지에 대해 믿을 만한 곳의 확인을
받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름만 그럴듯한 사이비 가톨릭 출판물들은 그 이름에 걸맞은 내용을 게재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St. John Chrysostom)의 말처럼 "내용을 믿게 만드는 것은 이름이 아니며, 이름을 믿게 만드는 것은 내용이다."지금까지 시도된 가톨릭 출판물 보급 방법을 보면 ; (1) 가가호호 방문하여 구독을 권유하는 방법 (2) 신문이나 정기 간행물을 가정에 배달하는 방법 (3) 성당 내 성물 판매소 운영 (4) 이동 문고 또는 공공 장소에서 간이 서적 판매소 운영 (5) 빠뜨리치안 회원에게 좋은 책을 추천하는 방법 등이 있다. 도서 진열대는 눈길을 끌도록 아담하게 차리고 잘 관리해야 한다. 가톨릭 교회를 홍보하는 데는 대충대충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레지오 단원들이 교회 출판물을 보급하기 위해 가정을 방문할 때에는 모든 가족들에게 감화를 주는 방향으로 활동하려고 힘써야 한다.
"성모님은 예수님과 뗄 수 없는 동반자이시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성모님은 당신 아드님 곁에 계신다. 우리를 하느님과 결합시켜 주시고
우리에게 하늘나라의 보화를 주시는 분은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복되신 두 분, 바로 성모님과 아드님이시다. 그러므로 믿음의 경배 행위에 있어서 성모님을 예수님으로부터 떼어놓는 것은 하느님께서 몸소 세우신 질서를 깨뜨리는 것이다." (테리앙 / Terrien : 인류의 어머니)
13. 매일 미사 참례 및 성체 조배 권장 활동
"되도록 많은 신자들이 매일 미사에 적극적으로 참례하여 순수하고 거룩한 마음으로 성체를 영(領)함으로써 나날이 새로워져, 주 그리스
도의 이 위대한 선물에 대해 감사드려야 한다. 우리가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말씀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는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이 매일 거룩한 잔치에 나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이같이 염원하는 까닭은, 그들이 이 성사를 통해 하느님과 결합되고, 이 성사로부터 힘을 얻어 탐욕을 억제하고, 일상의 가벼운 과오들을 씻어내며, 인간의 나약함으로 말미암아 범하게 되는 좀더 중대한 죄악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성 비오 10세의 가르침(교령 AAS 38, 401면)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교회의 전례법은 성당 안에 성체를 모실 때 최대의 존경심으로 가장 중요한 위치에 보존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신자들은 기회 있는 대로 성체 조배를 해야 한다. 성체 조배는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주 그리스도께 대한 합당한 흠숭의 실천이요 감사의 뚜렷한 표시이며 사랑의 맹세이다."(신앙의 신비 66)매일 미사 참례와 성체 조배는 독립된 레지오 활동으로서 실천하기 보다는 레지오의 한 부분이요 한 묶음으로서 늘 마음에 새기고 열심히 생활하도록 해야 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제8장 [레지오 단원과 성체]를 참조하기 바란다.
"제사이며 성사인 성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하느님께 바친 모든 것, 그리고 그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 인간이 얻은 모든 것을 풍
성히 간직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성체는 갈바리아에서 흘리신 성혈이며, 동시에 하늘의 이슬이다. 성체는 자비를 간구하는 성혈이며, 시들어 가는 식물을 소생시키는 생명의 이슬이다. 성체는 우리를 위해 치르신 대가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성체는 생명이며 또한 그 생명의 대가이다. 십자가도, 최후의 만찬도, 혹은 이 둘을 모두 합친다 해도 성체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되지는 못한다. 성체 안에 모든 것이 지속되며, 성체 안에 모든 인류의 희망이 걸려 있다. 이러한 이유로 미사가 믿음의 신비라고 불리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전체 교리아담으로 인한 타락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교리가 미사 안에 요약되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그러나 그것은 갈바리아의 성극(聖劇), 곧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최고로 드러내 보이시고 인간이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넘쳐나는 보상을 해 주셨던 그 영웅적 행위가 미사를 통해 우리 안에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몸소 이루셨던 일들이 단순한 상징으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미사를 통해 실제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드 라 타이으 / De la Taille : 신앙의 신비)
14. 협조단원 모집과 돌봄
기도의 힘을 확실하게 깨닫고 있는 쁘레시디움이라면 협조단원 명부를 가득 채우려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협조단원을 모집하고
돌보는 일은 레지오 단원의 의무이다. 자신의 영혼이 호흡하는 귀중한 순간의 일부를 레지오를 위하여 내어 놓은 협조단원들의 너그러운 마음씨를 생각해 보라. 이로써 그들이 얼마나 큰 덕을 쌓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지 않은가. 레지오는 협조단원들에게 한없이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이 빚을 제대로 갚으려면 협조단원들을 완덕으로 이끄는 길 밖에는 없다. 행동단원과 협조단원은 모두 레지오의 자녀들이다. 행동단원은 형제 중에 맏형 격이므로, 레지오의 어머니께서는 모든 가정에서처럼 아우들을 보살피시는 일에 형들이 도와 주기를 바라고 계신다. 성모님은 형이 아우를 돌보는 일을 단지 감독하실 뿐만 아니라 더욱 효과 있게 만들어 주시며, 그로써 이 활동이 성모님과 행동단원 모두에게 기쁨이 되게 하신다. 협조단원의 영혼 안에 성덕의 전당이 세워지면, 그들을 돌본 행동단원에게는 그 성덕의 전당을 지은 건축가가 받는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이와 같이 협조단원을 돌보는 활동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영성적 수준이 높은 단원들이 '맏이'의 정신으로 이 활동을 도맡아 할 필요가 있다.
"무서운 죄악과 하느님께 대한 미움이 가득한 요즈음, 우리 주님께서는 영혼들을 뽑아 당신의 군단(Legion)을 조직하시어 당신 주위에 두
고자 하실 것이 틀림없다. 이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주님과 주님의 사업을 위해서 헌신하므로 주님께서는 언제나 이들로부터 도움과 위안을 얻으신다.이들은 '얼마나 도와 드려야 할까?' 하고 묻지 않고 '주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나는 얼마나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이들은 베풀기만 할 뿐, 대가를 따지지 않는다. 그토록 많은 것을 베풀어 주신 하느님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도와 드릴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느님께 조금 더 드리고 싶으나 드릴 것이 없고, 하느님을 위해 조금 더 고통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마디로 이들은 여느 사람들과 같지 않으며, 세속의 눈에는 바보로 비칠 것이다. 이들의 신조는 자신의 편안이 아니라 희생이기 때문이다."(알프레드 오래힐리 몬시뇰 / Msgr. Alfred O'Rahilly : 윌리엄 도일 신부의 생애)
"그 때에는 자비로운 사랑의 희생자들인 소박한 영혼들의 군단(Legion)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아질 것이
다. 사탄은 이들을 보고 두려움에 떨 것이며, 이 소박한 영혼들의 군단은 성모님을 따라 교만한 사탄의 머리를 완전히 바스러 뜨리고 말 것이다."(리지외의 성녀 소화 데레사 / St. Therese of Lisieux)
15. 선교회를 돕는 활동
선교에 대한 관심은 참된 그리스도 신자 생활의 필수 요소이다. 각자의 형편에 따라 기도나 물질적 후원 또는 선교사 성소 육성 등에 관심
을 둘 수 있다. 예를 들어, 레지오 단원들은 어린이 전교회의 지부를 운영하면서 많은 어린이들에게 외방 선교에 대한 관심을 북돋아 주는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레지오의 행동단원이 되기에는 어려운 사람들을 모아서 (가령, 협조단원 등급의 모임을 만들어) 선교회를 위해 재봉일이나 제의를 만드는 일 등의 봉사 활동을 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활동을 통하여 레지오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일을 한꺼번에 성취한다.
(가) 단원 자신이 성화된다.
(나)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성화하도록 도와 준다.
(다) 선교회에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이 활동과 관련하여 다음 두 가지를 특별히 강조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다른 활동에도 일반적으로 적용된다.
(가) 쁘레시디움은 어떤 목적을 위해서든 단순한 금품 접수 기관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나) 재봉일에 봉사하는 사람들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일로써 충분히 활동 의무를 채울 수 있다. 그러나 단원이 직접 재봉일을 했을 때에
는, 신체 장애 등의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성인 단원의 실질적인 활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전교회(Propagation of the Faith), 베드로 사도회(St. Peter the Apostle), 어린이 전교회(Holy Childhood), 전교 연맹(Missionary Union)
등 4개 기구는 하느님의 백성 안에 보편적 선교 정신을 굳게 심어 준다는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다."(교회의 선교 사명 84)
16. 피정 참가 권장 활동
레지오 단원들은 피정의 은혜를 직접 체험하고 있으므로, 그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다른 이들을 위하여 피정을 마련해 주며, 아직 피정을
해보지 못한 지역에서는 이를 실시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이는 교황 비오 11세의 권고 사항이기도 하다. "가톨릭 봉사 단체의 활동을 통하여 성직자들의 사목 활동을 보좌하려는 일단의 열심한 평신도들은 거룩한 피정에 참여해야 한다. 이로써 그들은 영혼의 진정한 가치를 명확히 알게 되고 영혼들을 돕겠다는 열망으로 불타게 될 것이다. 그 결과로, 도움을 받은 영혼들도 사도직의 열렬한 정신을 터득하게 되며 사도직을 수행하는 이들의 성실함과 용기 있는 행동을 보고 배우게 된다." 위대한 교황께서 사도직 일꾼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사도직 일꾼들이 많이 배출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이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피정을 제대로 실시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마땅한 숙소를 마련할 길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피정을 널리 알리려는 레지오 단원들의 노력이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 실제 경험에 따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단 하루 동안 실시하는 피정도 큰 성과를 거둔다. 한번에 많은 사람들에게 피정의 기회를 주려면 이 방법밖에는 없다. 어떤 건물이든 대개 하루의 피정 행사를 위해서 사용할 수 있으며, 그리고 한두 끼의 간단한 식사를 마련하는 비용은 그리 큰 부담이 되지는 않는다.
"하늘의 스승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도들을 우정 어린 침묵의 피정에 초대하기를 갈망하셨다.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함께 좀 쉬
자.'(마르 6, 31) 주님께서는 이 슬픔의 세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실 때, 바로 그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의 다락방에서 갈고 닦아 완전하게 되라는 말씀을 남기고 떠나셨다. 그래서 열흘 동안 '그들은 모두 마음을 모아 기도에만 힘써'(사도 1, 14) 성령을 받을 수 있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이 다락방의 피정 안에 성령께서 처음으로 작용하심으로써 교회는 거룩하고 영원히 변치 않는 힘을 받게 된 것이다. 이
다락방에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동정 성모님이 함께 계셨고,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그 자리에 있던 사도들과 제자들은 우리가 마땅히 가톨릭 활동의 선구자라고 부를 만한 자가 되었던 것이다." (교황 비오 11세의 권고 : 피정 - 1929년)
17. 예수 성심 단주회(斷酒會) 회원 모집 활동
쁘레시디움이 수행하기에 매우 훌륭한 활동의 하나가 예수 성심 단주회(Pioneer Total Abstinence Association of the Sacred Heart)의 회
원을 모집하는 일이다. 이 단체의 주목적은 금주와 절제를 권하는 활동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있다. 이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은 기도와 자기 희생이다. 회원들은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으로 감화되어
(가) 음주를 일체 금하고 선행을 하며
(나) 스스로 지은 죄악과 방종에 대해 보속하고
(다) 과음하는 사람들과 음주로 인한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와 희생으로 은총과 도움을 받도록 한다.
회원의 기본 의무는
(가) 평생 동안 모든 알콜성 음료를 마시지 않아야 하고
(나) 하루에 두 번 '영웅적 봉헌 기도문'을 바치며
(다) 단주회의 휘장을 착용한다.
'영웅적 봉헌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오, 예수 성심이시여,
더욱 큰 영광과 위안을 받으소서.
저는 당신을 위해 좋은 표양을 보이고 극기하오며,
술을 절제하지 못한 죄와
무절제하게 음주하는 이들의 회심을 위해
보속하오며,
평생 동안 술을 끊기로 약속하나이다.
이 활동을 하기 위해 쁘레시디움에서는 다음과 같이 준비한다.
(가) 단주회의 중앙 회장으로부터 지부 설립 승인을 받는다.
(나) 지부가 이미 설립되어 있다면, 기존 지부의 동의를 얻어 사업을 추진하고 회원을 모집한다. (부록 9 참조)
18. 지역별 특수 활동 실시
레지오 단원들은 지역의 특성에 맞는 활동이나 레지오의 관리 기관에서 승인한 특수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서 여러 다양한 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은 어디까지나 교회 당국의 지침과 일치하는 것이라야 한다. 어떤 새로운 활동을 착수하려면 항상 기획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바이다. 가톨릭의 깃발 아래 이루어지는 모든 영웅적인 활동은 지역 주민의 사고 방식에 가위 충격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심지어는 비신자들도 깜짝 놀라 깨어나, 믿음에 대하여 새롭고 진지한 태도를 보일 것이다. 이렇게 영적 수준이 달라지면, 주민들의 생활 방식까지도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떨쳐 버리자. 우리 가운데 겁쟁이는 없어야 한다. 그런데 '두려워하지
말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계속 되풀이할 필요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도직과 관련된 경우이다. 두려움은 활동하려는 마음과는 걸맞지 않으며 바르게 판단하는 힘을 빼앗아 간다. 그러므로 다시 말하거니와, 한 가지 두려움만을 제외하고 모든 두려움을 몰아내어야 한다. 그
한 가지 두려움이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두려워한다면, 여러분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세속의 모든 영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신중함에 관하여 말한다면, 성서가 명확히 정의를 내리고 있는 신중함 -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그런 신중함 - 을 지녀야 한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선택한 이들이 보여 준 신중함, 영적인 신중함이다. 나약하고 게으르고 어리석으며 이기적이고 비참한 육적인 신중함이어서는 안 된다. 사실 그러한 것들은 신중한 것이 아니다."(교황 비오 11세 / Pius XI : 1931년 5월 17일 강론)
제 38 장 빠뜨리치안 회
빠뜨리치안 회(Patricians)는 1955년에 설립되었다. 이 회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종교에 대한 지식을 늘려 주고,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밝히
는 방법을 가르쳐 주며, 그들이 사도직 활동에 참여하도록 격려하기 위한 것이다. 빠뜨리치안 회의 교육 방법은 최초에 시험적으로 마련한 것이었는데, 오늘날까지 계속 바뀌지 않고 사용되고 있다. 초기에는 교리 강습이나 일반 강의 또는 질의 응답과 같은 기존의 방법들이 제시되었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그러한 방법들은 그 나름대로 필요한 기능을 지니고는 있지만, 교회가 안고 있는 근본 문제, 이를테면 교리 지식을 전혀 갖추지 못한 성인(成人)들의 문제나, 혀가 굳어진 평신도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빠뜨리치안 회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으므로, 이 회는 변질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유지 발전시켜야 한다. 이 회의 교육 방법은 균형이 아주 잘 잡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라디오 주파수가 조금만 흔들려도 다른 방송이 나오는 것과 같이, 약간만 손을 잘못 대면 전혀 다른 형태로 바뀌어 버릴 가능성이 있다. 기존의 방법이란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의 전문 강사가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방식이다. 이와는 달리 빠뜨리치안 회는 레지오 마리애가 쓰고 있는 공동 접근 방법을 이용하는데, 이는 회합에 참석한 모든 회원이 신앙 문제를 놓고 적극적으로 토론함으로써 종교에 대한 지식을 쌓아 가는 공동 작업이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빠뜨리치안 회는 레지오의 참된 자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이 회가 레지오의 여러 특징적 요소들을 지니고
있으며, 레지오의 조직 체계를 적용시켜 신앙 교육을 이끌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의 회합은 성모님이 주관하신다. 예수님을 모셔다가 이 세상에 주신 분은 성모님이시다. 그리하여 성모님은 예수님을 세상 사람들에
게 알리는 모든 뒷일을 맡아 하신다. 이러한 성모님의 탁월한 지위는 레지오의 소 제대가 잘 드러내 보여 준다. 따라서 빠뜨리치안 회합도 레지오의 제대를 그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 빠뜨리치안 회원들은 성모님 주위에 모여 앉아 교회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다시 말하면, 약속대로 그들 한가운데 함께 계시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이 회합은 그 자체로서 차원 높은 기도의 형태를 취하게 되며, 다양한 순서로 진행되기 때문에 지루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평상시에 두 시간 동안을 계속해서 기도 바치기는 쉬
운 일이 아니다. 이 점이 바로 빠뜨리치안 회가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영성을 높여 주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쁘레시디움 회합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단원들로부터 구두 보고를 받는 일이다. 빠뜨리치안 회합 역시 참석한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으
로부터 구두 발언을 이끌어 내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목표가 된다. 따라서 회합실을 준비하거나 회합을 진행하는 일 등의 모든 것은 이 목표를 이루기 알맞게 이끌어져야 한다. 회합은 화기애애하고 이해심이 넘치는 가족과 같은 분위기를 유지해야 한다. 아마도 몇몇 사람은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이 발언에 나서겠지만, 결과적으로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자신의 의견을 발표할 수 있는 분위기라야 한다. 그런데이런 좋은 분위기는 그것을 해치는 방해 요인들이 제거됐을 때 가능하다. 만일 빠뜨리치안 회합에서 일반 대중들의 모임에서나 볼 수 있는 공격이나 비난 또는 상대방에 대한 비웃음 등으로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면, 회원들은 모두 떠나고 말 것이다. '가장 미약한 사람들'도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형제애가 느껴질 때, 빠뜨리치안 회는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발언은, 마치 쇠사슬의 고리가 다른 고리를 끌어당기듯이, 다른 사람들도 발언하도록 이끄는 도화선의 역할을 한다. 이렇게 토론을 벌이다 보면 회원들은 미처 몰랐던 지식을 얻게 되고, 산발적이고 개별적으로 알고 있던 가톨릭 교리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새로운 지식과 흥미가 더해 갈수록 회원들은 그리스도 신비체와의 일치 속으로 더욱 깊이 젖어 들게 되고, 그 신비체의 생명을 받게 된다.
그 밖의 여러 면을 살펴보더라도, 빠뜨리치안 회가 레지오의 이론과 기술을 응용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레지오 단원들은 이 점을
충분히 인식하여, 쁘레시디움에 대하여 확신을 갖는 것처럼 빠뜨리치안 회를 운영하는 일에도 뚜렷한 소신을 지녀야 한다. 이러한 소신은 이 회를 이끌어 가면서 부딪치는 문제들에 대하여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해줄 것이다. 가톨릭 신자들이 교회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이나 교회 공동체 안의 신자 상호간에 신앙 문제에 대해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는 사실은 매우 슬픈 일이다. 이러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잘못된 태도를 지적하는 용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침묵주의(Mutism)'라는 말이다.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쉬넨스 추기경(Cardinal Suenens)은 "우리는 흔히 성당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신앙에 대해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 가톨릭 신자들이 이야기조차 꺼내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라고 지적하였다. 대개 가톨릭 신자들은 신앙적인 면에서 남을 도우려고 나서지 않는 것이 사실인 듯하다. 진지하게 물어 오는 사람들에게조차 올바른 대답을 해 주지 못하는 형편이니, 결국 가톨릭 신자들은 믿지 않는 이들을 복음화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는 좋지 않은 인상을 주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잘못된 현상이 널리 퍼지게 되면,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 그 자체를 위태롭게 만든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그와 같은 이기주의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우리가 보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신앙 문제로 대화를 나누어야 할 경우에 신자들이 입을 꼭 다물고 있거나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대개 대화를 이끌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가) 이러한 신자들은 자신의 교리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자신의 약점이 드러날 만한 기회는 무조건 피하려 든
다.
(나) 교리 지식은 상당한 정도 갖추고는 있지만, 마치 교리 문답의 해답처럼 따로따로 떨어져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이다. 이런 지
식들은, 마치 자동차의 부품이나 인체의 각 부분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것처럼 각자의 신앙 안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태로 남아있는 것이다. 더구나 몇몇 중요한 교리 항목에 대해서는 충분한 지식을 갖추지 못한 경우도 있으므로, 이런 때에는 교리에 대한 지식이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 따라서 비록 토막 교리 지식들을 한데 모아 놓는다 해도, 부품들이 올바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기계처럼 제 기능을 발휘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다) 더 많은 경우에, 너무나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믿음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신자들도 흔히 볼 수 있다. 이를테면 '반쪽 믿음'의 상태
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러
한 상태에서, 믿음은 종교와 거리가 먼 환경과 부딪치게 되면 쉽게 무너지고 만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이상과 같은 문제들을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빠뜨리치안 회는 레지오가 관장하는 모임이다. 각 지회(支會)는 하나의 쁘레시디움에 소속되어야 하며, 반드시 그 쁘레시디움의 행동단원
이 진행을 맡아야 한다. 하나의 쁘레시디움이 몇 개의 지회를 관장할 수 있다. 각 지회는 쁘레시디움의 영적 지도자가 승인하는 별도의 영적 지도자를 모셔야 한다. 수도회의 수사나 수녀가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있으며, 또한 교회 당국이 허용하는 경우에는 평신도도 가능하다.
'빠뜨리치안'이라는 이름은, 대부분의 레지오 고유 명칭이 그러하듯이, 고대 로마에서 쓰던 용어를 따 온 것이다. '빠뜨리치안'은 귀족
(Patricians)과 평민(Plebs)과 노예(Slaves)로 구분되는 고대 로마의 사회 계층 가운데 가장 높은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빠뜨리치안 회는 모든 사회 계층을 하나의 영신적 귀족으로 결속시키고자 열망한다. 그뿐 아니라, 본래 빠뜨리치안 귀족들은 애국심이 투철하고 조국의 번영을 위해 책임감이 넘쳐야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빠뜨리치안 회원들도 그들의 영신적 조국인 교회를 떠받드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이 회의 규칙에는 모든 회원이 반드시 신앙심이 깊거나 본분을 잘 지키는 신자라야 한다고 제한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가톨릭 신심을 지닌 신자라면 누구든지 회원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반 가톨릭적인 성향이 뿌리 깊은 신자들은 입회 대상이 될 수 없다.
주교가 특별히 허가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은 이 회합에 참석할 수 없다.
빠뜨리치안 회합은 한 달에 한 번씩 열린다. 회합 시간을 엄격히 지키고 회합은 매달 꾸준히 열어야 한다. 도저히 회합을 열 수 없는 특별
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회합을 걸러서는 안 된다. 그러나 회원이 매 회합마다 반드시 출석해야 하는 의무는 없다. 다만 모든 회원들에게 다음 회합을 알리는 연락망을 마련해 놓을 필요는 있다.한 지회의 회원수는 50명이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50명 정도만으로도 모든 이가 발언에 참여해야 한다는 면에서 볼 때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좌석의 배치
극장처럼 무대와 객석이 별도로 배치되는 식을 피해야 하며, 그렇다고 무질서한 분위기가 되어서는 더욱 안 된다. 가급적이면 좌석을 반
원형으로 배치한 후 그 앞쪽 공간을 탁자로 채워 둥글게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탁자 위에는 레지오의 제대를 차리는데, 반드시 벡실리움이 있어야 한다.회합실은 조명이나 온도 또는 안락한 의자 등 모든 필요한 준비물을 잘 갖춤으로써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꾸며야 한다.
운영 경비는 비밀 헌금으로 충당하고, 회합 때마다 회계 보고를 해야 한다.
회합의 순서
1. 회합은 빠뜨리치안 기도문을 모두 서서 함께 바침으로써 시작된다.
2. 평신도의 주제 발표나 담화는 15분으로 엄격히 제한되어 있다. 물론 제한 시간을 다 채우지 않아도 된다. 어느 모임에서나 마찬가지이
지만, 제한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회합에 차질이 생기게 마련이다. 주제 발표는 굳이 그 방면에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런 이들의 발표는 때때로 너무 학문적이거나 길어지게 되므로, 회합 첫머리부터 순조로워야 할 진행을 오히려 그르쳐 놓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주제 발표 자체가 필요 없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토론 주제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사전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공부는 미리 어떤 회원을 지명하여 연구해 오도록 부탁하면 효과적으로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의 다른 토론의 자료를 참석한 회원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은 필수적이다.
3. 주제 발표가 끝나면 회원들이 토론을 시작한다. 회합의 다른 부분은 모두 이 토론을 위한 것이므로, 활발히 진행되도록 잘 이끌어야 한
다. 참석하고 있는 모든 회원이 토론에 참여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토론이 될 수 없다. 빠뜨리치안 회의 과제는 자신의 의견을 발표할 만한 능력이 없거나 발언하기를 꺼리는 신자들을 발언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이는 그 사람 자신을 위해서나 교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가 발언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온갖 배려를 다해야 하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될 만한 일은 모두 없애야 한다. 잘못되거나 어리석은 발언이 수없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런 발언에 대해서 꾸짖는 듯한 태도를 보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와 같은 자세는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을 감싸고 달래서 발언하도록 만드는 빠뜨리치안 회의 목적을 꺾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발표하도록 이끄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가령 엉뚱한 발언이라도 자신의 생각을 몽땅 털어놓도록 격려해 주어야 한다.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은, 그런 잘못된 지식들은 공개된 후 토론을 통해 자연스럽게 바로잡혀야 한다. 그렇지 않
으면 그는 다른 장소에서 이 잘못된 지식들을 마치 노래하듯이 되풀이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중요한 점은 발언 그 자체이며, 발언을 잘한다던가 또는 내용이 정확하다던가 하는 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완벽한 발언이 빛날지는 모르지만, 평범한 발언이 오히려 가장 많은 성과를 거둔다. 평범한 발언이야말로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발표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입을 열도록 훈련시켜 주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볼 때, 발언은 회합의 중심을 이루는 사람들을 향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회원 전체를 향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전체
를 향해서 발언하게 되면, 듣는 이들은 발언한 사람의 말이 끝났을 때 그가 마치 자신과 단둘이 대화한 것처럼 느끼게 되므로, 상대방의 발언 내용에 대해서 무엇인가 한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발언을 준비한다. 빠뜨리치안 회가 의도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만일 회원들의 마음이 분산되어 있는 분위기라면, 이러한 심리적 균형은 깨지고 만다. 예컨대, 사회자가 발언에 대해서 논평을 곁들인다든지, 또는 칭찬을 한다든지 해서 회원들의 주의를 자신에게 쏠리게 한다면 회원들의 마음은 흐트러지고 말 것이다. 또는, 이미 발언한 사람이 자신이 제기한 문제점을 되풀이해서 다루려고 또다시 발언하거나, 영적 지도자가 어려운 문제가 나올 때마다 이를 해결하려고 매번 발언에 끼여 들어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이렇게 되면 토론을 하는 본래의 뜻을 그르치게 되며, 몇몇 회원이 질문하고 전문가 몇몇이 답변하는, 이른바 '전문가 토론회(panel discussion)'로 모습이 바뀌고 만다. 그러므로 소심한 사람들이 발언하도록 분위기를 이끄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사회자는 주제와 관련이 없는 발언이 나오더라도 참을성을 발휘해야 한다. 발언을 제대로 하라고 주의를 주는 행위는 자칫 회합 전체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다만 빗나간 발언으로 다른 회원들까지 궤도를 벗어나는 발언을 하게 만들 때는 사회자가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발언할 때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앉은 채로 이야기하면 더 자연스럽게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토론이 단순히 대화하는 말투가 되며 무질서하게 묻고 대답하는 식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발언의 횟수가 한 번으로 제한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미 발언을 한 회원보다는 아직 발언을 하지 않은 회원에게 우선권을 주어야 한다.
4. 회합을 시작한 후 한 시간이 지나면 토론을 잠시 중단하고 휴식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 휴식 시간에 앞서서 회계 보고를 하고, 동시에
비밀 헌금이 있음을 예고한다. 즉, 회합이 다시 시작되어 영적 지도자의 훈화가 끝난 뒤, 곧 이어 비밀 헌금 주머니를 돌린다는 것을 미리 알리는 것이다.
5. 휴식 시간을 위해서 간단한 다과를 준비한다. 이는 회합의 중요한 요소이며, 다음과 같은 중요한 기능을 발휘하므로 빠뜨려서는 안 된
다.
(가) 회원들이 서로 사귀고 친목을 도모하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준다.
(다) 다과를 즐기며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준다.
(라) 회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도직 활동의 기회를 마련해 준다.
휴식 시간에 다과를 생략하고 그 시간을 다른 목적에 쓰도록 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그러나 다과를 베풀지 않고 휴식 시간을 적절히 사용
하기란 사실상 쉽지 않은 일이다. 휴식 시간은 15분 동안 계속된다.
6. 회합이 다시 시작되면 영적 지도자의 훈화가 15분 동안 있게 된다. 이 시간까지 진행된 모든 토론의 내용은 사실상 훈화를 통해서 정리
되므로, 모든 회원은 이 훈화를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훈화는 회합의 필수 요소로서 토론한 내용을 마무리하고 올바른 형태로 가다듬어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그리하여 회원들이 하느님께 더욱 많은 사랑과 봉사를 바치도록 북돋아 준다. 훈화 시간을 회합의 끝 부분으로 옮겨, 토론을 거친 더 많은 내용들을 종합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훈화는 앞으로 더 계속될 토론을 위해서
자료를 제공한다는 의도가 들어 있다. 따라서 회합이 끝날 즈음 훈화를 하게 되면 이러한 의도를 살릴 수 없게 된다. 또한 다소 수준이 낮
은 회원들은 회합 시간 중간에 훈화를 들음으로써 큰 도움을 받는다. 훈화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회원의 경우라도 훈화에 이어 계속되는 토론을 통해서 '해석의 원리'(뒤에 설명함)에 따라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7. 영적 지도자의 훈화가 끝나면, 다시 일반 토론을 계속하다가 폐회 시간 5분 전에 토론을 끝낸다.
8. 이어서 회합의 끝부분을 다음과 같이 진행한다.
(가) 사회자는 전체를 대표해서 주제 발표자에게 간단한 감사의 뜻을 전한다. 그러나 박수를 치는 등의 전체적인 감사의 표시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나) 다음 회합의 토론 주제를 결정한다. 토론의 주제는 종교에 관한 문제라야 하며, 순전히 학술적이거나 문예나 문학 또는 경제 등에 관
한 주제는 피해야 한다.
(다) 그 밖의 공지 사항을 발표한다.
9. 모두 일어서서 마침 기도로 사도신경을 함께 바친다.
10. 회합은 사제의 강복으로 끝이 난다. 강복은 무릎을 꿇지 않고 서 있는 채로 받는 것이 좋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의자 사이에 무릎
을 꿇을 때 일어나는 혼란을 피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해서 전체 소요 시간은 모두 두 시간이 되도록 한다. 회합 순서 전반에 걸쳐 정확히 시간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 한 순서라도 정한 시간을 넘기게 되면 다른 순서에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회합의 균형이 깨진다. 회합의 각 부분과 할당 시간을 간략히 보여 주는 회합 순서는 405쪽에 실려 있다. 전체 토론 내용을 요약할 필요는 없으며, 어떤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더라도 낙담할 필요가 없다. 다음 모임이 계속 열리므로 언젠가는 완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빠뜨리치안 회원은 활동의 의무가 없다. 회합에서 활동을 배당해서는 안 되며, 가외로 활동하도록 부담을 주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친밀한 개인 접촉을 통하여 그들을 여러 방면으로 이끌어 주어야 하며, 특히 레지오의 행동단원, 협조단원 또는 아듀또리움 단원이 되도록 권유함이 마땅한 일이다. 빠뜨리치안 회를 슬기롭게 이용하면 지역 사회의 모든 주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빠뜨리치안 회의 몇 가지 원칙
1. 집단 심리를 활용하자.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자연히 집단을 이루게 된다. 그런데 만일 그 집단이 훌륭
한 정신과 규칙을 지니고 있다면 그에 맞는 큰 영향력을 구성원들에게 행사하게 된다. 각 개인은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에서 뒤쳐지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힘껏 노력하는데, 이러한 노력은 때로는 좋은 방향으로, 때로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즉, 각 개인은 완전히 수동적으로 집단을 따라만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집단을 움직이는 생명체로서 참여하며, 일단 집단 안에서 자리를 잡고 안정을 얻으면 곧 힘을 발휘한다. 이러한 원리를 빠뜨리치안 회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즉, 드러나 보이지는 않으나 억제할 수 없는 집단의 힘이 가장 뒤쳐져 있는 회원을 포함한 모든 회원을 움직여서, 그들이 이 회합을 통해 듣고 배운 바를 받아들이고, 또한 그 밖의 다른 면에서도 함께 어울리도록 작용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정도의 성과를 내고도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집단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빠뜨리치안 회는 높은 수준의 정신을 지닌 간부들과 그 밖의 사람들이 새롭고 훌륭한 의견들을 끊임없이 제공하고 보장해 주므로 그와 같은 일은 일어날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집단 심리의 작용으로 회원들은 새로운 의견과 사상을 제대로 흡수하게 된다. 따라서 빠뜨리치안 회는 항상 질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2. 괴로운 침묵의 순간을 참고 기다리자. 토론중 발언이 오랫동안 끊기면 괜히 불안해진다. 그때 사회자는 회원들에게 발언을 재촉하고 싶
은 충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재촉은 옳은 방법이 될 수 없다. 재촉에 의해 생기는 긴장감은 회원들로 하여금 오히려 발언하려는 마음이 없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가족들끼리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필요를 별로 느끼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하라. 따라서 이따금 대화가 멈출 때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다. 발언이 끊기면, 집안에서 가족들이 하듯이 모두 잠자코 앉아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잠잠한 분위기는 곧 깨진다. 그리고 다물었던 입이 일단 열리면, 대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로 변한다.
3.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게 하자.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대체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전문가에게 곧바로 해답을 얻는 방법이
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문제를 풀고자 노력하는 방법이다.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방법은 직접적이고 간편한 방법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교육이 이 방법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이 방법의 단점은 학생들이 전문가의 해답을 절반 정도 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실력과 책임감이 향상되지 않는 또다른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문제를 푸는 두 번째 방법은 힘이 더 든다. 이 방법은 학생들에게 문제를 내맡김으로써 그들 스스로 해답을 얻게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서툰 해답을 마련하면, 전문가가 나서서 지도해 준다. 그 다음 다시 학생들 스스로의 힘으로 좀더 나은 방안을 찾도록 한다. 이와 같이 남의 도움을 받아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서 얻게 되는 성과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제시된 문제의 내용과 해답을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서서히 노력하여 문제를 풀었으므로, 배운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마음에 새겨 자신을 갖게 된다. 바로 이것이 빠뜨리치안 회가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어떤 정확하지 않은 발언이 나오더라도 지도자가 이를 즉시 바로 잡으려고 할 일이 아니라 그대로 토론에 내맡겨 두어야 함을 알려 준다.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문제는 토론 과정에서 해결된다. 만일 그것이 끝까지 해결되지 않고 크게 잘못된 상태로 남게 되는 경우에는 물론 다른 방법을 써서라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발언한 당사자가 창피를 느끼지 않는 방법이라야 한다. 이런 경우, '성모님은 당신의 아드님을 가르치실 때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해 본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4. 질문을 하지 않도록 하자. 일반 강의에서는 청중의 반응이 질문을 통해 나타나므로 질문을 환영한다. 질문을 하면 즉시 강사가 답변하
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빠뜨리치안 회에서는 질문을 반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토론을 중단시키는 것으로 여긴다. 이를 마치 전기(電氣)의 경우에서 누전을 일으키는 현상과 같다고 보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여 토론에 기여할 생각은 하지 않고 처음부터 질문만 하려 하고, 질문에 일일이 답변하다 보면 토론은 타격을 입게 되며, 결국 토론의 장(場)이 강의실로 바뀌고 만다. 이런 강의실에는 회원들이 끝까지 앉아 있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꼭 지켜야 할 황금률이 있다. 그것은 질문하는 사람이 반드시 자신의 의견(해답)을 덧붙여서 질문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질문은 대개 토론의 흐름을 바꾸지 않고도 적절히 합류시킬 수 있음이 경험을 통해 입증되어 있다.
5. 빠뜨리치안 회의 형성 원리 벽돌 한 장 한 장을 쌓아 올려놓듯이 지식을 쌓아 올리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빠뜨리치안 회원은 단
순한 덧셈이 아니라 곱셈을 한다. 빠뜨리치안 회에서는 이른바 살아 있는 벽돌을 쌓아 올린다. 새로운 의견 하나하나가 이미 발표된 다른 모든 의견들과 상호 작용을 일으키면서 서로 영향을 미치고 또다른 의견들을 생산해 낸다. 즉,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 의견이 수정되고 새로운 사상이 싹트는 것이다. 특히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이 복잡한 상호 작용은 각 사람의 마음에 풍부한 열매를 맺는 누룩의 역할을 하게 되며, 집단 전체에도 공동 효과를 가져온다. 이는 마치 밀물과도 같다고 할 수 있는데, 회원들의 각기 다른 성격이나 생각들을 한데 모아서 같은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침체된 믿음과 소극적인 신앙에 강한 추진력과 더불어 방향까지 제시해 주면, 삶은 틀림없이 변화를 가져온다.
6. 주관자의 역할 쁘레시디움의 운명이 간부들의 손에 달려 있는 것처럼 빠뜨리치안 회도 주관자들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주관자는 자신
의 역할이 지나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주관자가 너무 드러나게 행동하면 할수록 일반 회원들의 역할은 그만큼 줄어든다. 그렇게 되면 학교 교실과 같은 분위기로 빠져 들고 만다. 영적 지도자, 사회자 및 주제 발표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시간과 그 밖의 규정들을 잘 지켜야 한다. 참석한 회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보통 사람들은 전문가나 권위자 앞에서는 불편을 느낀다. 그러므로 이 회를 주관하는 사람들은, 회원들에게 지식을 성공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주님께서 진리를 가르칠 때 쓰신 방법을 따라야 한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 29)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주관자들이 두드러진 행동을 하지 않을수록 토론은 더욱 자유롭게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주관자들이 꼭 정해진 시간에만 제한적으로 발언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주관자들도 일반 회원과 마찬가지로 토론에 참여할 수 있다. 다만, 되도록이면 자제하라는 뜻이다.
7. 해석의 원리 빠뜨리치안 회의 특성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은 '해석의 원리'이다. 토론중에 대다수의 회원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발언 내
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는 수가 있다. 그런 경우에 이 해석의 원리는 회원 모두가 발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이는 아무리 수준 높은 사상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발표되었다 하더라도, 마지막 단계에서는 토론을 거치면서 보통 회원들도 모두 이해하게 된다는 뜻이다.학식이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서로 다 이해할 수 있는 공동의 발판을 마련하는 능력은 값비싼 보석처럼 귀중한 것이다. 이제 이처럼 귀중한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가령, 주제 발표 (또는 어떤 다른 발언) 내용이 수준이 너무 높아서, 참석한 회원 가운데 10 %만이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 하자. 만일 일반 강의의 내용이 그처럼 어려웠다면 그 강의는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빠뜨리치안 회합에서는 내용을 이해한 10 %의 회원 가운데 몇 명이 그 발언을 놓고 토론을 벌이기 시작한다. 실제로 그들은 대다수의 회원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으로 토론을 벌이기 때문에, 어려웠던 내용이 일반적인 수준으로 낮아진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다른 회원들도 발언에 참여하게 되고, 마침내는 밀을 갈아서 고운 밀가루를 만들어 내는 결과가 나온다. 당초 발표된 내용에 들어 있던 불명확한 점이 풀이가 되고 설명이 가해져서 모든 회원들은 자신의 지적 수준에 알맞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빠뜨리치안 회에서는 누가 무슨 발언을 하든, 어느것 하나 잃어버리는 것이 없다.이러한 빠뜨리치안 회의 특성은 선교 활동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에서 매우 독특한 가치를 발휘한다. 이 곳에서 선교사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가 다르고 사고 방식이 전혀 다른 현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가톨릭 교리를 충분히 이해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경우에, 빠뜨리치안 회의 '해석의 원리'는 마치 깊은 구렁에 다리를 놓는 것과 같은 큰 힘을 드러낼 것이다.
8. 하느님께 일거리를 드리는 일 이 일에는 단순히 벽돌을 쌓아 집을 짓는 것 이상의 현상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은총의 원리이다. 즉,
은총은 우리의 자연적 본성을 초월하여 우리가 가진 재료와 능력으로 지을 수 있는 집보다 훨씬 더 큰 집을 지을 수 있게 해준다. 계시 종교에서는 신앙에 관한 어떤 문제에 대하여 아무도 완전한 해답을 제시할 수 없다. 모든 일에 초자연적인 믿음과 은총이 늘 개입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훌륭한 토론이었다 하더라도 항상 아쉬움은 남게 마련이다. 하물며 토론이 다소 충분치 못했다고 느껴지면, 흔히 그 토론이 아무 쓸모 없는 것이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하느님께서는 지극히 미천한 우리의 노력마저도 당신 손에 받아 주시고 써 주시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풀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문제가 의외로 해결된다. 과연 그 문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소한 것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문제의 정도에 비추어 우리의 노력이 훨씬 컸던 것인지, 혹은 하느님께서 모자란 부분을 대신 채워 주셨기 때문인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일은 우리가 바랐던 대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항상 우리의 철학으로 삼아야 할 내용이다. 물론 이 철학은 단지 빠뜨리치안 회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철학을 통해서 빠뜨리치안 회합에 참석하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능력으로는 훌륭한 발언을 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발언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미약한 노력이라도 전혀 노력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러므로 온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은 결국 가톨릭 신자들이 얼마만큼 노력을 기울이느냐 기울이지 않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차라리 가만히 앉아 있는 편이 낫지' 하며 우물거리기만 하는 한, 그러한 노력은 기대할 수 없다. 가톨릭 신자 공동체에 이미 널리 퍼져 있는 현상이 이러하므로, 빠뜨리치안 회는 바로 이러한 현상을 치유하는 도움의 손길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빠뜨리치안 회 기도문
(다 함께 서서 바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사랑하올 주님,
빠뜨리치안 회를 축복해 주소서.
저희는 빠뜨리치안 회원으로서
주님께 가까이 가고자 하오며,
또한 주님의 어머니시며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다가가려 하나이다.
저희가 가톨릭 신앙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그리하여 진리가 저희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주님께서 항상 저희와 가까이 계심을 깨닫게 해주소서.
이로써 저희가 주님 안에서 생활하고
주님 안에서 서로 의지하며,
저 한 사람의 방심이 형제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멸망케 할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해주소서.
저희에게 내려 주신 짐이 비록 무겁지만
영광임을 알게 해 주시고,
주님을 위해 기꺼이 인내하게 하소서.
저희가 어떤 인간의 무리인지,
또한 저희 본성이 얼마나 게으른지 잘 아옵기에,
저희는 주님께 저희의 두 어깨를 바치기에도 합당치 않음을
고백하나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저희의 연약함보다는
저희의 믿음을 소중히 여기시어,
불완전한 저희를
주님의 도구로 불러 써 주심을
또한 잘 알고 있나이다.
이에 저희는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기도에
저희들의 목소리를 합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주님께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에게 성령의 은총을 내려 주시고
저희와 함께 머무르시며
생명의 말씀을 주시고
저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베풀어 주소서.
그리하여 저희가 풍부하게 받은 것을
아낌없이 나누도록 해주소서.
이 길이 아니고서는
주님의 강생과
처절한 십자가의 죽음이 얻어 주신 은총의 열매를
온 세상이 받지 못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옵니다.
주님, 그토록 크신 당신의 노고와 수난이
저희 안에서 헛되지 않게 해주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회합 순서
0:00 - 빠뜨리치안 회 기도문(다 함께 서서 바침)
평신도 주제 발표(15분 이내)
0:15 - 토론
0:59 - 회계 보고
영적 지도자 담화 후 비밀 헌금이 있음을 예고
1:00 - 다과, 휴식 시간
1:15 - 영적 지도자 담화(15분 이내)
1:30 - 토론 계속
헌금(비밀 헌금 주머니를 돌림)
1:55 - 공지 사항(주제 발표자에 대한 감사 표시 및 다음 회합 일자와 주제 등을 알림)
2:00 - 사도신경(다 함께 서서 바침)
사제의 강복(선 채로 받음)
대학 및 청소년 지회
정상적인 방식으로 회합을 갖기가 전혀 불가능한 경우, 예컨대
(가) 대학 및 기타 교육 기관에 지회가 설립되어 있거나
(나) 회원 모두가 18세 미만의 젊은이들로 구성된 지회의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단축된 진행 방식(소요 시간 1시간 30분)을 허용한다.
0:00 - 빠뜨리치안 회 기도문 및 평신도 주제발표(5분 이내)
0:05 - 토론(40분)
0:45 - 휴식 시간(10분) (다과를 생략할 수 있음)
0:55 - 영적 지도자 담화(10분)
비밀 헌금은 생략할 수 있음
1:05 - 토론 속개(20분)
1:25 - 공지 사항(일반 지회의 경우와 같음)
1:30 - 사도신경 및 강복(일반 지회의 경우와 같음)
"빠뜨리치안 회는 가정적이다. 우리 모두에게 관련되는 문제에 대해 마음을 터놓고, 솔직하고 진실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은 가정 생활에
서 맛보는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우리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형제들이므로 하느님의 가족에 속한다. 옛날 갈릴래아에서 사도들이 주님과 함께 하루의 선교 활동을 마치고 나서, 그날 주님께서 주신 가르침을 놓고 이야기 꽃을 피우던 바로 그 정신을 본받아, 우리의 믿음을 생각하고 믿음을 이야기하며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방법을 놓고 토론하는 것 ― 이것이 빠뜨리치안 회의 정신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더없이 훌륭하고 사랑에 찬 선생님이시고 스승이시며 주님이심을 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주님께서 마련하신 구원의 신비 속에 우리의 마음을 적시어, 마치 우리가 우리의 자녀나 가정이나 직장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듯이, 우리의 믿음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아주 편안함을 느껴야 한다는 뜻이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주신다. 우리는 이 통찰력을 빠뜨리치안 회합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서로 배운다. 빠뜨리치안 회합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증거자가 되며, 그리스도께서 우리 이웃의 입을 통해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들으며, 우리의 가슴은 활활 타오른다. 빠뜨리치안 회합 안에서 그리고 빠뜨리치안 회합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오시고, 하느님의 진리를 가슴속에 더욱 깊이 새기게 해주신다. 이로써 우리의 일터인 교회가 우리 안에서 더욱 확실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마음은 마음으로부터 빛을 얻고 가슴은 믿음으로 타올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들 안에서 자라시는 것이다."(브로피 신부 / Fr. P. J. Bro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