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프랑스와 이란 공동발굴단은 이란의 소사지방에서 석비조각 3개를
연이어 발견했다. 이 세 개를 나란히 놓았더니 완벽한 타원형의 비석형태를
갖추었는데 비의 높이는 2.25m, 상부 둘레가 1.65m, 하부 둘레는 1.9m였다.
비석은 양각(陽刻)으로 정밀한 조각과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중 보좌에
단정히 앉아있는 형태의 조각상은 바빌론 사람들이 숭배하던 태양신 샤마쉬였고,
신상 앞에 정중한 자세로 서 있는 사람은 바빌론의 왕 함무라비였다.
태양신이 권력의 상징인 지팡이를 함무라비에게 건네주는 장면은 비석 위쪽에,
아래쪽에는 함무라비가 제정한 법전이 설형문자(楔形文字-오리엔탈 문자.
점토 위에 금속이나 갈대로 쓴- 쐐기문자)로 새겨져 있었다.
법전은 서문, 본문, 결문으로 구성되어 서문은 함무라비가 신에게 권력을 부여
받았음을 널리 선포한 내용과 함무라비의 공적을 치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문은 함무라비가 신의 뜻을 따라 법전을 제정했고 후세에 법전을 따르지 않는
자는 신이 벌을 내릴 것임을 선언하는 내용이다.
본문은 모두 282조로 소송하는 절차, 절도, 소작, 고용, 혼인, 채무, 상해,
고리대, 노예 등 여러 방면의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 법전은 주 계급의 이익을
보호하면서 노예와 자유시민의 반항을 엄격하게 다스리고 있다.
예로 노예가 주인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두 귀를 잘랐고,
노예의 도피를 돕거나 숨겨준 자는 사형에 처했다.
또 이발사가 노예 주인의 허락 없이 노예의 머리를 잘라주면
도끼로 이발사의 손을 잘랐으며,
시민이 지위 높은 사람의 뺨을 때리면 여러 사람이 모인 회의장에서
가죽 채찍으로 60대의 매를 때렸다.
노예의 눈을 멀게 한 일은 마치 밭 갈던 소의 눈을 멀게 한 것과 같이
대수롭지 않은 일로 간주했다. 함무라비는 오직 법전에 의거해 나라를 다스렸고
노예를 거느리는 주 계급의 이익을 지켰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법전을 알리기 위해 그것의 내용을
비석에 새겨 바빌론 마르두크 대신전 앞에 세워두었던 것이다.
고대 바빌론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유역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바빌론의 영토 대부분은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 해당되며 기원전 1163년에는
지금의 이란 국경 안에 위치하였던 옐람국의 공격을 받았다.
예람국이 전리품으로 획득한 함무라비 법전 비석은 예람국의 수도인 소사로
운반되던 중 비석의 윗부분이 조금 벗겨졌고 당시 사라진 내용은
후에 다른 문헌과 비교하여 보완하였다.
훗날 예람국은 페르시아에게 멸망했으며 옐람국을 점령한 페르시아 제국은
소사를 수도로 정하였고, 함무라비 법전 비석 또한 페르시아로 넘어갔다.
함무라비 법전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문 법전이다.
그 역사적인 가치가 얼마나 큰지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현재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