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 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릇된 것과 바른 것이 있다. 자세히 듣고 잘 관찰·사유해보라. 지금 여러분을 위해 설명하리다. 어떤 것을 그릇된 것이라고 하는가? 그것은 소위 그릇된 견해와……(내지)……그릇된 선정을 말한다. 어떤 것을 바른 것이라고 하는가? 그것은 바른 견해와……(내지)……바른 선정을 말한다.
어떤 것이 바른 견해[正見]인가? 바른 견해는 보시[施]의 공덕이 있고, 성현의 가르침[說]이 있으며, 삼가함[齋], 즉 계율이 있고, 선한 행위[善行]가 있고, 악한 행위[惡行]가 있으며, 선하고 악한 행위에 따른 과보(果報)가 있고, 이 세상[此世]이 있고, 다른 세상[他世]이 있으며, 부모와 중생의 태어남이 있고, 아라한의 경지에 잘 이르고, 잘 향함이 있고, 이 세상과 다른 세상이 있고, 거기서 증득한 줄을 스스로 알아, 구족하게 머물면서, 나의 태어남은 이미 다했고, 거룩한 행은 확립되었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다음 존재를 받지 않을 줄 스스로 아는 것이다.
어떤 것이 바른 뜻[正志] 지님인가? 바른 뜻 지님은 번뇌·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나겠다는 뜻[出要志], 성내지 않겠다는 뜻[無恚志],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겠다는 뜻[不害志]을 지니는 것이다.
어떤 것이 바른 말[正語]인가? 바른 말은 거짓말[妄語]을 하지 않고, 이간질[兩舌] 하지 않으며, 욕설․악담[惡口]을 하지 않고, 이치에 맞지 않거나 겉과 속이 다른 말을 교묘하게 꾸며내는 말[綺語,無義語]을 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바른 행위[正業]인가? 바른 행위는 살생[殺], 도둑질[盜], 음행[淫] 등을 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바른 생계[正命]인가? 바른 생계는 의복, 음식, 침구, 탕약 등을 법답게 구하고, 법답지 않은 방법으로 구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바른 노력[正方便]인가? 바른 노력은 항상 알아차리려고 노력하고 있고, 정진하고 있고, 항상 집중하는 방법[方便]을 쓰고 있으며, [탐, 진, 치에서] 벗어나 있고, 부지런히 나아가고[勤競] 있고, 어떤 어려움도 잘 견디어내며, 늘 수행하고 있어서 한 걸음도 퇴보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바른 알아차림[正念]인가? 바른 알아차림은 [관찰대상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놓치지 않고] 쭉 따라가며, 알아차리는 것이다. 알아차림 함으로써 망상(妄想)과 허상(虛想)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바른 선정[正定]인가? 바른 선정은 마음이 줄곧 한 대상에 머물러 있는 것이고, 어지럽지 않은 것이며, 마음이 단단히 고정돼 있는 것이고, 마음을 안으로 거두어들여 지니고 있는 것이며, 마음이 고요하게 멈춘 상태이고, 삼매에 들어 있는 것이고, 일심을 이룬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수행하였다.
*이 글은 다음카페 <위빠사나금정선원> 조성래 원장이 번역해 올린 것입니다. 주변의 귀한 분들께 카톡으로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203a01 (七八四)如是我聞。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
203a02 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有邪․有正。諦聽。
203a03 善思。當爲汝說。何等爲邪。謂邪見。乃至邪
203a04 定。何等爲正。謂正見。乃至正定。何等爲正
203a05 見。謂說有施․有說․有齋。有善行․有惡行。
203a06 有善惡行果報。有此世․有他世。有父母․
203a07 有衆生生。有阿羅漢善到․善向。有此世․他
203a08 世自知作證具足住。我生已盡。梵行已立。
203a09 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何等爲正志。謂
203a10 出要志․無恚志․不害志。何等爲正語。謂離
203a11 妄語․離兩舌․離惡口․離綺語。何等爲正
203a12 業。謂離殺․盜․婬。何等爲正命。謂如法求衣
203a13 服․飮食․臥具․湯藥。非不如法。何等爲正方
203a14 便。謂欲․精進․方便․出離․勤競․堪能常行不
203a15 退。何等爲正念。謂念隨順。念不妄․不虛。何
203a16 等爲正定。謂住心不亂․堅固․攝持․寂止․三
203a17 昧․一心。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
203a18 喜奉行
첫댓글 한국에는 '붓다의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는 팔정도에 대한 정확한 해설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경전은 보지 않고 모두들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 급급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소리보다는 붓다의 말씀을 중요시하는 착실한 불제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쌍윳다니까야에서는 <正見>을 사성제에 비추어 설했는데, 아함경은 사성제를 더 풀어서 설명한 듯 합니다.
<正思惟>는 탐진치를 없애겠다는 바른 의도,
<正語>는 망어, 양설, 기어, 악구를 하지말고,
<正業>은 살생, 투도, 음란행위 금지,
<正命>은 출가한 스님의 4가지 바른 보시에 대함,
<正方便>: 쌍윳다니까야에서는 4가지 선법의 증장에 대해 설하였고, 아함경에서는 방편으로 노력하라고만 되어있고 어떤 방편인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正念>: 니까야에서는 사념처를 상세히 설했는데, 아함경은 알아차림을 따라가라고만 되어있고 어떻게가 설명이 안되어있고,
<正定進>: 니까야에선 4선에 대해 자세히 설명
두개의 경을 놓고 비교해보니 니까야가 참말로 상세하게 설명이 되어있습니다. 염처경과 대념처경의 차이처럼 니까야가 아함경보다 늦게 쓰여졌는가요?
@서은 그리고 이렇게 제가 또 스스로 비교해보니 팔정도에 대한 개념이 분명해지는 것 같아 원장님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_()()()_
@서은 그래요. 서은님, 니까야는 그동안 전해 오는 동안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아함경은 번역만 되어있었지 유통이 되지 않고 원래 형태로 그대로인 것으로 보입니다. 직접 두 개를 비교해 주시니 불법에 대한 공부의 열정이 대단하십니다. 먼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자세히 보시면 아함경이 간단 명료하게 더 잘 된 부분도 있을 겁니다. 니까야 번역은 제가 번역하는 과정에서 잘 살려놓아서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오늘 아침에 다시 번역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