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스트] 13
1. 더 클럽 / 내실 ( 과거, 저녁 ) 과N
술쟁반을 챙겨든 종업원이 들어선다.
미주는 흥삼 옆에, 최사장(50대) 옆에는 다른 여자가 앉아서 시중을 들고 있다.
머리를 맞댄 채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흥삼과 최사장.
미주는 있는 듯, 없는 듯한 태도로 폭탄주를 만들고 있다. 그런 장면 위로.
미주 : (소리) 정사장은 대동바이오 최사장이 한통속이라고 믿었지만, 실은 회장님한테 매수돼서 다른 계획을 짜고 있었어요.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흥삼. 최사장은 불안하지만 고개 끄덕인다.
2. 더 클럽 / 홀 ( 과거, 저녁 ) 과N
여자를 끼고 내실을 나서는 최사장. 흥삼과 미주가 최사장을 배웅하고 사마귀는 그 뒤를 따른다.
거나하게 취한 최사장과 악수하며 호탕하게 웃는 흥삼. 시종일관 무표정하게 옆을 지키는 미주.
미주 : (소리) 작전 당일에 최사장이 주식을 처분하고 공금까지 횡령해서 잠적하면 회장님이 숨을 곳을 마련해주기로 했죠.
해외 도피까지 책임지는 조건으로요.
최사장이 여자와 나가면, 흥삼의 표정에 웃음이 사라진다. 싸늘하게 변하는 눈빛.
미주 : (소리) 그 다음 일은 장태호씨가 겪은 그대로에요.
3. 더 클럽 / 홀 ( 현재, 아침 ) D1
기억을 떠올리듯 앞 씬에서 흥삼이 서 있던 곳을 바라보는 미주.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굳어 있는 태호.
미주 : (태호를 돌아보며) 회장님두 정사장이 구했다는 주포가 누군지는 몰랐어요. 그랬는데... 그 당사자가 서울역에 나타난 거죠.
태호 : (고개를 떨군 채, 분노와 배신감이 턱이 떨리는) ...
미주 : 장태호씨는... 처음부터 실패할 작전에 뛰어든 거에요. 그땐 그게 거미줄인지도 몰랐겠지만.
태호 : (목이 타는 느낌) 50억을 날렸다는 것도 거짓말이겠지. 내가 작전할 때 따라 들어왔다가, 중간에 물량을 다 풀고 튀었어.
차액은 고스란히 챙겼을 테구... (고개 들어 미주를 보는) ...맞지?
미주 : (담담한 시선으로 본다, 맞다는 뜻) ...
태호 : (그제야 파악이 끝나는, 어이없고) 처음부터... 정사장을 노린 건가?
미주 : 내가 한걸음 갈 때, 상대도 똑같이 가면 제자리 걸음이잖아요.
태호 : 비록 반걸음 가는 대신... 조만간 적수가 될 상대는 뒤처지게 만든다... (허탈해지며, 혼자 말로) 곽회장답네.
치밀하고... 완벽해.... (그러다 자책감에 휩싸이며 이마를 짚는) 그런 것도 모르고 난... 선배까지 끌어 들였어.
(목이 메이는) 하기 싫다고 했는데... 내키지 않는다고 그랬는데...
고개 떨군 채, 괴로워하는 태호. 물끄러미 보던 미주, 일어나서 BAR로 가더니 물병과 컵을 챙긴다.
우당탕! 의자 밀고 일어나는 태호. 흠칫 돌아보는 미주.
거친 걸음으로 클럽을 나가는 태호의 뒷모습.
4. 거리 일각 ( 아침 ) D1
휘청거리며 걸어오는 태호,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엉망으로 흔들린다.
뒤엉키는 거리의 소음. 위 아래, 좌우가 어지럽게 뒤섞이고...
/ 1부 3씬. 클라이밍하는 태호와 민수.
민수 : ...불안하지두 않냐, 넌?
태호 : 어차피 이기면 살고, 잃으면 죽는 판이에요. 그리고 이 판, 내가 먹을 겁니다.
/ 1부 17씬. 물에 잠기는 자동차 안.
흠칫 놀란 태호, 다시 손을 뻗지만 이미 숨을 놓아버린 민수, 차체와 함께 시커먼 수심 아래로 사라진다.
으아!! 태호의 절규가 묵음으로, 물거품으로 터져 나오고...
/ 3부 54씬. 장례식장. 웃고 있는 민수의 영정 사진 앞.
차마 일어나지 못하는 태호, 엎드린 채 울음을 삼킨다. 눈물이 툭툭 떨어진다.
/ 다시 현재.
현기증에 극에 달한 태호, 온 몸에 힘이 빠진다. 버스 정류장 의자를 짚고 겨우 걸터앉는 태호.
버스 기다리던 고등학생 둘이 ‘노숙잔가봐’ ‘재수없게...’ 수근거리며 의자에서 일어난다.
푸대자루처럼 옆으로 쓰러지는 태호. 그렇게 누워서 넋 나간 듯 허공을 올려다보는...
5. 펜트 하우스 ( 아침 ) D1
테이블 위 커피잔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샤워를 하고 나온 듯, 가운 차림에 젖은 머리로 소파에 앉아있는 흥삼.
/ 12부 59씬.
흥삼, 지포 라이타를 들고 있다. 무릎 꿇은 종구와 그 옆에서 기대어 앉은 미주. 형형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흥삼.
/ 현재.
미련을 털어버리듯 벌떡 일어나는 흥삼, 수건으로 머리 말리며 거울 앞에 서는데...
사마귀를 따라 들어서는 독사와 악어.
독사 : (목례하고 서는) 부르셨습니까?
악어 : 평안히 주무셨슈?
흥삼 : (거울 보며 머리를 터는) ...아니. 서울역 걱정에 잠이 안온다.
독사, 악어 : ...?
흥삼 : (고개 돌리는) 밥 먹여, 술 먹여... 안그래도 나태한 인생들인데, 대책 없이 풀어줬나 싶어서.
독사 : (눈치 빠르게) 다시 목줄 죄고 당기면, 정신이 번쩍 들 겁니다.
악어 : 떨거지들이 문제것어유? 사사건건 종구 성님이 초를 치니께 탈이쥬.
흥삼 : 류씨는 신경 꺼. 이제 서울역 일엔 나서지 않을 거다.
악어 : 야? 고것이 먼 말씀이래유?
대꾸없이 옷 갈아 입으러 침실 올라가는 흥삼.
독사와 악어는 서로 쳐다보며 어리둥절하고.
6. 펜트 하우스 / 복도 ( 아침 ) D1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혼란스럽던 표정은 사라지고, 얼음장같은 눈빛으로 변한 태호.
마침 문이 열리고 독사와 악어가 나온다.
악어 : (다가오며, 실실 웃는) 음마... 아무리 우덜이 견원지간이지만 아침에 보믄 해피 스마일혀야지,
낙태한 고양이상을 허구 자빠졌냐? 왜 그려? 오다가 개똥이라두 밟은겨?
태호 : (냉랭한) ...지금 밟았어.
악어 : (발끈! 웃음기 식는) 머여?
독사 : (손을 들어 악어 제지하고) 종구 형님 소식, 뭐 들은 거 있냐? 큰형님 말로는 앞으로 조직 일에 방해되지 않을 거라는데.
태호 : 알 게 뭐야? 몰라, 나두.
무시하고 지나쳐가는 태호, 안으로 들어간다.
표정 구기는 악어.
악어 : 저 싸가지... 자세 교정 한번 들어가야 되지 않것슈?
독사 : 어설프게 건드렸다간 우리가 당한다. (차분하게 증오를 드러내는) 조용히 기다리자.
장태호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온다, 분명히...
7. 펜트 하우스 ( 아침 ) D1
옷을 갈아입은 흥삼이 침실에서 내려온다. 굳은 표정의 태호가 기다리고 있다.
흥삼 : 아침에 들어오라고 했던가?
태호 : (무표정하게 서 있는) ...
사마귀 : (흘끔 태호를 보고) 그런 말씀은 따로 안하셨습니다.
흥삼 : (업무 책상으로 가며) 부르지도 않았는데, 무슨 일이야?
태호 : (담담히) 작전용 계좌를 열어야 할 거 같습니다.
흥삼 : (쳐다보는) 벌써?
태호 : 미리 열어놓고, 외국계 은행으로 몇 바퀴 돌려야죠. 그렇게 몇 번 쪼갰다 합쳐서 돈냄새를 지워야...
자금 추적을 피할 수 있습니다.
흥삼 : (썩 내키지 않지만) 언제까지 필요한 거냐?
태호 : (표정)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흥삼 : (피식 웃는) 그 돈 들고 튀면, 난 보기좋게 깡통차는 건가?
태호 : (미소) 출국 금지에, 여권도 없는 놈이 어딜 도망치겠습니까?
흥삼 : (농담 속에 스치는 살기) 해외로 튄다고 무사하겠니? 내가 지옥 끝까지 잡으러 갈 텐데.
태호 : (미소 머금은 채) 명심하겠습니다.
흥삼 : 알았어. 그건 다음 주에 처리하자.
태호 : 네.
흥삼 : 보고할 거 있으면 온 김에 하구 가. 미래도시 건 때문에 며칠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거다. 따로 보고받을 시간 없어.
태호 : 아뇨. 없습니다.
끄덕이는 흥삼, 이만 가보라고 손짓. 태호, 돌아서는데 사마귀가 따라간다.
옆에 세워둔 두루마리를 책상 위에 펼치는 흥삼. 서울역과 주변이 한 눈에 보이는 지적도.
흥삼, 야심에 찬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8. 펜트 하우스 / 복도 ( 아침 ) D1
태호를 따라 나오는 사마귀.
사마귀 : 사무실은 미안하게 됐습니다.
태호 : (돌아보는) ...?
사마귀 : 기름 냄새 빠지려면 시간이 걸릴 겁니다.
태호 : 기름이라니?
사마귀 : (살짝 갸웃) 종구 형님... 만나지 않았습니까?
태호 : 무슨 일인데?
사마귀 : (표정 고치고) 직접 듣는 편이 나을 겁니다. ...그럼.
눈인사하고 들어가버리는 사마귀.
태호, 좀 전에 독사 얘기도 떠오르면서 종구에게 무슨 일이 있구나 직감하는.
9. 폐버스 안 ( 낮 ) D1
깨진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매는 종구. 한쪽엔 다 꾸려진 가방이 놓여 있다.
선반 위에 어수선한 잡동사니들도 차곡차곡 박스에 정리된 상태.
불쑥 고개 들이미는 태호.
태호 : (가방을 발견하고 표정, 종구 보는) 인사두 없이 가려구요?
종구 : (돌아보는) ...
태호 : (버스에 올라서는) 서운하네.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대신... 작별 인사는 할 수 있잖아요.
종구 : (묵묵히 양복 재킷을 걸치는) ...
태호 : (박스에 걸터 앉고) 마담하고 같이 가는 거죠?
종구 : 알아서 뭐하게?
태호 : (가만히 보는) 곽회장이... 포기한 겁니까, 두 사람?
종구 : (착잡한) 내가 항복했다. 흥삼이 앞에서 무릎 꿇었구... (태호를 똑바로 보는) ...됐냐?
태호 : (뜻밖인 표정, 그리고 씁쓸히 웃는) 형님을 그 지경으로 몰아붙인 주제에 이런 말은 우습지만...
(진심어린 눈빛으로 보는) ...미안해요.
종구 : (헛헛한 미소로) 미안할 거 없다. 되려 내가 고맙지. 좋은 기억이라군 하나도 없는 서울역, 니 덕분에 훌훌 털어버리게 됐어.
게다가... 나같은 퇴물도 좋다는 여자랑 새출발까지 하게 됐잖어.
태호 : (미소) 무조건 행복하세요. 그동안 여기서 까먹은 시간, 전부 보상 받아야죠.
종구 : (묵직하게 보는) ...
태호 : (문득 생각난) 할매 식당은요?
종구 : 외상값두 갚아야 되니까 들러야지. 서울역 뜬다고 하면 욕 한바가지, 그 담엔 눈물, 콧물... 난리두 아닐 거다.
태호 : (능히 예상 가능한, 함께 웃는) ...
종구 : (버스를 둘러보며) 이 버스, 니가 들어와 살래?
태호 : (그 시선 따라 둘러보는) ...
종구 : 세상이랑 담 쌓구 살기 좋다, 여기.
태호 : (박스에서 일어나는) 아뇨. 전 따로 갈 데 있습니다.
(분노를 억누르는 차가운 눈빛) 곽회장 펜트하우스, 거기까진 올라 가야죠.
종구 : 흥삼이가 물려준다든?
태호 : 그 전에 뺏어 버리죠, 뭐.
종구 : (멈칫, 태호 눈빛이 맘에 걸리는) ...
태호 : (표정 고치고, 웃어 보이는데)
종구 : 간단하게 이별주나 하자.
태호 : 술... 끊으셨잖아요?
종구 : (재킷 벗으며) 사제 간에 마지막인데... 한잔 빨아야지.
태호 : ...?
10. 부동산 사무실 안 ( 낮 ) D1
트렁크를 옆에 놓고 앉아 있는 미주.
부동산 거래 화면을 띄워놓고 보던 중개사(50대 여성), 고개를 든다.
중개사 : 아무리 급매라두 너어~무 급하시다. 손해 많이 보실 텐데...
미주 : 빨리 처분할 수 있으면 상관없어요.
중개사 : 아유, 시세보다 이렇게 싸게 내놓으면 금방 나가죠. (트렁크를 흘끔 봤다가) 아무 걱정마세요.
미주 : (차분하게) ...부탁해요.
11. 폐차장 ( 낮 ) D1
낡은 소파에 마주 앉은 태호와 종구.
소주를 병째 들이키는 태호, 심란하던 차에 술이 물같다. 크으! 입을 닦고, 소주병을 건넨다.
한모금 삼키는 종구. 다시 받아서 기세좋게 들이붓는 태호.
종구 : 누가 쫓아 오냐? 천천히 마셔.
태호 : (취기가 올라오는, 후... 한숨 쉬고) 예전에 제가 정사장 해치우려고 했을 때, 형님이 그랬죠?
종구 : ...?
태호 : 아직 곽흥삼 이빨도 못본 거라고... 결국 이용만 당하고 물어 뜯길 거라구요.
(배시시 웃는) 그 얘기... 반은 맞구, 반은 틀렸어요. 곽회장이 감춘 이빨, 제가 봤거든요.
종구 : (표정) 무슨 소리야?
태호 : (손 내저으며) 아, 형님은 몰라두 돼요. 나하구 곽회장 일이니까.
종구 : ...
태호 : (흔들거리는 몸을 가누며) 근데요, 전... 호락호락 안당할 겁니다.
(주먹 움켜쥐고) 주먹이면 주먹! (이마 가리키고) 머리면 머리! 얼마든지 상대해 줄 거에요.
종구 : 흥삼이하구... 무슨 일 있었냐?
태호 : 별 거 아니에요. 머리부터 발 끝까지 누가 더 나쁜 새끼냐... (큭큭, 괴롭게 웃는) 결국 그 싸움이거든요.
태호, 소주병을 드는데 벌써 비었다. 새로 뚜껑을 비트는 태호, 벌컥대며 마시고... 묵묵히 바라보는 종구.
태호 : 제가요... 곽회장 털어버릴 겁니다. 더 지독하고, 악랄해져서... 갈기갈기 물어뜯어 버릴 거에요.
(가슴을 팍팍 치며) 자신있어요, 나!! (소주병을 입에 가져가는데)
종구 : (병을 뺏고) 낮술이야. 그만 해.
태호 : (찌푸리며 보다가) 에이... (등받이에 털썩! 몸을 파묻는, 허공을 올려다보며) 형님하구 마담은 빨리 떠나세요.
곽흥삼 거미줄은... (가물가물 눈이 감기며) 제가... 걷어낼 테니까... 자신... 있다니까요...
뜬 눈으로 밤새고, 술기운까지 겹친 태호,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며 스르르 잠이 든다.
일어나서 다가가는 종구, 태호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준다. 이 녀석 인생도 참 꼬였구나, 싶다. 그러나.. 착잡해도 내 몫은 여기까지.
종구, 품에서 돈봉투를 꺼낸다. ‘할매식당’이라고 적힌 봉투. 그 안에 지폐를 확인하는 종구, 휘적휘적 걸어간다.
12. 건물 옥상 ( 낮 ) D1
서울역 일대가 보이는 위치. 지적도를 펼치고 부지런히 설명하는 양복쟁이 사내.
흥삼, 설명 들으면서 눈 앞에 펼쳐진 서울역 전경을 내려다본다.
독사와 부하 몇이 황급히 다가와 인사한다.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서울역을 눈에 담는 흥삼. 그 눈빛에 드러나는 야망...
13. 골목 일각 ( 낮 ) D1
흥삼, 사마귀와 독사 등등을 거느리고 걸어온다. 문득 걸음 멈추는 흥삼, 양복쟁이에게 지적도를 받아서 훑어본다.
그리고는 실제 풍경을 둘러보는 흥삼. 오래된 골목에 낡은 건물이 어깨를 맞대고 이어져 있다.
퇴락한 모습에 피식 웃는 흥삼, 문득 떠오른.
흥삼 : (사마귀에게) 할매 식당이 이 근처 아닌가?
사마귀 : 맞습니다.
흥삼 : (손목 시계 보더니) 점심이나 먹자.
독사 : (얼른 나서며) 요 앞에 괜찮은 일식집이 있습니다.
흥삼 : 일식집에서 김치찌개두 파냐?
독사 : 예?
흥삼 : (바로 걸어가버리는)
14. 할매 식당 ( 낮 ) D1
먹성 좋게 식사하는 흥삼. 독사와 사마귀, 양복쟁이가 한 테이블이고, 독사 부하들은 다른 테이블에 빈 자리없이 앉아 식사 중.
주방 앞에 장군다운 풍모로 팔짱 끼고 선 할매, 마뜩찮게 지켜본다.
흥삼 : (뚝배기를 바닥까지 긁고 수저 내려놓는) 옛날 손맛, 여전하시네요.
할매 : 겁나게 출세했나베? 양복입은 꼬라지 보니께.
독사 : (발끈) 할머니! 이 분이 누군 줄 알고...
흥삼 : (가볍게 저지하고, 미소) 저, 기억나세요?
할매 : (혀를 끌끌) 허구헌 날 쌈박질에 상판대기가 성한 날이 없드만... 참말로 용 되얏다, 용.
독사 : (일어나며) 근데 이 노친네가...
그때 드르륵! 문 열리고 나라가 들어선다. 식당에 가득 찬 손님에 놀라는 나라, 흥삼 발견하고 표정!
흥삼 : (미소) 여기서 보니까 더 반갑네요.
나라 : (살짝 인사) 식사하러 오셨어요?
할매 : (멈칫, 나라에게) 뭐여? 나라 니가 이 잡것은 워치케 아는겨?
나라 : (얼른 할매에게 다가가서) 그러지 마, 할머니. 우리 병원, 후원해주기로 하셨어.
할매 : (뜨악해서 흥삼을 보는) 먼 구린 짓을 혀서 번 돈으루다 사람 숭내까정 낸다냐?
나라 : (화들짝) 할머니! (흥삼에게) ...죄송합니다.
흥삼 : (일어나는, 웃으며) 돈에 귀천이 있습니까? 천하게 벌어도 귀하게 쓰면 되는 거지요.
이제 연세도 있으신데, (나라를 보고) 고운 손녀 따님 효도 받으면서 편하게 사세요.
할매 : 배가 부르니께 사설이 청산유수구먼. (사내들 둘러보며) 아, 다 처먹었으면 싸게들 인나!
흥삼 : (욕설이 익숙한, 태연하게) 잘 먹구 갑니다.
나라에게 눈인사하고 나가는 흥삼. 나라도 얼결에 꾸벅. 뒤따르는 사마귀와 양복쟁이.
독사, 지갑에서 5만원권을 제법 꺼내더니 세지도 않고 테이블에 놓는다.
할매 : 시방 거렁뱅이 적선허냐? (밥값만 챙기고 나머지 돌려주는) 옛다!
독사 : 사양하지 말구 챙겨 두쇼. (가게 둘러보며) 어차피 장사두 몇 달 못할 텐데...
할매 : (흠칫) 고것이 먼 소리여?
독사 : 올해 안에 이 동네, 불도저가 싹 밀어낼 거요.
나라 : ...!!
독사 : 밀어내구, 대형 쇼핑몰에 주상 복합 오피스텔까지... 서울역이 새로 태어나는 셈... (하는데)
할매 : (덥썩 독사 멱살을 쥐어트는) 에라! 이눔아!!
나라 : (놀라며 말리는) 할머니!
할매 : (옷깃을 쥐고 흔들며) 누구 맘대루 워딜 밀어! 서울역이 니들 꺼여?
나라 : (할매 팔을 잡고) 진정해요, 할머니!
할매 : 내 눈에 흙을 뿌려봐라! 나가 고분고분 물러날 성 싶은가!
피식 웃는 독사, 할매가 흔드는 대로 흔들리다가 부하를 돌아본다. 조금 거칠게 할매를 잡아 뜯는 부하.
나라가 부축했는데도 테이블까지 뒤로 떠밀리는 할매. 그 바람에 뚝배기와 반찬 그릇들이 바닥에 떨어지며 와장창 박살!
15. 폐차장 ( 낮 ) D1
뚝배기 깨지는 소리에 연결되듯 흠칫! 눈 뜨는 태호, 잠시 멍해서 여기가 어딘가 두리번거린다.
종구는 보이지 않고, 버스 출입구에 여행 가방만 놓여 있다.
마른 세수를 하고 일어나는 태호, 취기가 남아서 찌부등하다.
그러다 문득 시선에 들어오는 것, 종구와 연습할 때 쓰던 글러브와 미트.
태호, 손때 묻은 글러브를 만져본다. 이제 다시는 이걸 끼고 함께 연습할 일은 없을 것이다.
종구 형님이 진짜 떠나는구나, 이별을 절감하고 먹먹해지는 태호.
16. 지하도 일각 ( 낮 ) D1
부동 자세로 정렬한 양씨, 최군, 노숙자들. 그 앞에 악어와 부하들, 서슬 퍼런 눈빛으로 서 있다.
각목을 어깨에 걸치고 왔다갔다하며 일장연설 중인 악어.
악어 : 하루에 서울역 드나드는 사람만 22만 명이여. 거기서 딱 1푸로, 2천2백명한테만 적선 받아두 그 돈이 다 월매여?
요렇게 알토란같은 구역에서 손가락만 빨구 있을겨? 잉?
최군 : 죄... 죄송합니다.
악어 : 말루 혀서 되것냐? 몸으루 죄송혀야지. (손바닥에 침 퉤 뱉고) 나가 요 러브 스틱을 휘두를 때마다,
각자 하루치 목표 금액 복창혀! 전부 엎드려 뻗쳐!
노숙자들 : (눈치 보며 주춤거리는데)
악어 : 월래? 개기는겨?
양씨 : (시선 돌리다가 반색하는) 류씨!!
악어 : (흠칫 돌아보는) ...!
종구 : (찌푸린 얼굴로 다가오며) ...뭐하는 짓이냐?
악어 : (긴장하는, 그러나 보는 눈이 많아 허세) 아그들 정신교육 중이니께, 성님은 신경쓰덜 말구 가던 길 가세유.
종구 : (눈빛 매서운) 뭐?
악어 : (찔끔! 그래도 꼬리를 내릴 순 없다) 인자 성님은 서울역에 볼 일 없을 거라구... 큰성님이 그러든디?
종구 : (멈칫) ...!
망설이던 종구, 흘끔 돌아본다. 간절한 눈빛으로 보는 양씨, 최군 등.
종구 : (결국 시선을 외면하고, 한풀 꺾인 말투로) 적당히 해라, 적당히...
악어 : (오잉? 했다가 우쭐대며) 워디 좋은 데 가시나본디, 살펴 가세유.
낙담하는 양씨와 최군을 쳐다보지 못하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종구.
악어 : (각목 치켜들며) 엎드려 뻗쳐!
참담한 기분으로 걸음 옮기는 종구. 그 뒤에서 악어의 각목이 춤을 춘다. 엉덩이 맞으면서 ‘만원!’ ‘이만원!’ 외치는 노숙자들.
종구, 그 소리 들으며 묵묵히 멀어진다.
17. 할매 식당 ( 낮 ) D1
문 열고 들어서는 종구, 시무룩한.
종구 : 할매, 밥... (하다가 멈칫!)
바닥에 부서진 뚝배기와 그릇, 지저분하게 흩어진 반찬 찌꺼기들.
해진은 테이블에 행주질, 오십장은 빗자루로 쓸며 치우는 중.
종구 : 무슨 일이야?
해진 : (속 상한) 독사한테 물어봐요. 그 자식이 난장치구 갔다니까.
종구 : ...!!
오십장 : (빗자루질 멈추고) 미래도시 개발인지 머시깽인지... 이 동네를 싸그리 갈아 엎는다는디... 성님은 알구 계셨소?
종구 : (흠칫 놀랐다가) 할매는?
해진 : 싸매고 누우셨지 뭐. (행주를 툭 내던지는) 에이...
해진,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낸다. 얼른 주방 통로로 들어가는 종구.
18. 할매 식당 / 안방 ( 낮 ) D1
누워 있는 할매. 나라가 머리맡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이고.
나라 : 식당은 걱정 마요. 아무 일 없을 거야. 몇 십년이나 한 자리에서 해온 가겐데, 자기들 맘대루 없애구 말구 못해요.
할매 : (끄응, 이마에 팔을 얹는) ...
나라 : 병원 가서 영양제라두 하나 맞을까, 응? 할머니.
할매 : (기운없이 손짓만) 어여 나가. 정신 사나우니께.
나라 : (걱정스럽고) ...
19. 할매 식당 / 안채 ( 낮 ) D1
서둘러 주방 뒷문으로 나오는 종구. 나라가 마루를 내려서다가 보는.
나라 : 아저씨?
종구 : (안방을 보는) 괜찮으셔? 병원으로 모시지 않구.
나라 : 안가신대요. 다행히 다친 데는 없구, 조금 놀라셔서... 청심환 한알 드셨어요.
종구 : (그나마 안도하는) ...
나라 : (양복 차림이 눈에 들어오는) 어디... 가시는 길이에요?
종구 : (멈칫, 할 말 찾다가 안주머니에서 봉투 꺼내는) 할머니 드려. 그동안 밀린 외상값이다.
나라 : (봉투를 받고, 내려다보며 쓴웃음) 와, 아저씨한테 외상값두 받구... 우리 할머니 청심환 한알 더 드셔야겠네.
종구 : (안스럽게 보다가) ...니가 할머니한테 잘 말씀드려.
나라 : (고개 드는) ...?
종구 : 이 동네 재개발되면 어차피 떠나셔야 된다. ...어쩔 수 없어.
나라 : (표정 굳는) 전... 안떠나요.
종구 : 뭐?
나라 : 떠날 때 떠나더라두, 이렇게 쫓겨나구 싶진 않아요.
종구 : (나무라듯) 니가 고집 피운다구 되는 게 아냐. 나라 법이 그렇구, 가진 사람들이 결정해!
나라 : 그럼 할머니하구 같이 서울역 지하도에 가면 돼요.
종구 : 나라야!
나라 : 있죠, 아저씨. 전 진짜 궁금해요. (속상하고 원망스러운) 다같이 가다가 누구 하나 넘어지면, 그 사람 일으켜서
같이 가야 되잖아요. 아프다 그러면 약부터 줘야지, 왜 아프냐, 아픈 니가 못난 거다... 그렇게 손가락질하면 안되잖아요.
종구 : (착잡하게 보는) ...
나라 : 저 밖에 노숙자들... 한때는 남편이구, 사장이구, 친구였는데 다들 그렇게 넘어지구 버려졌어요.
(눈빛 단단해지며) 저는요, 넘어지는 거 하나도 겁 안나요, 아저씨. 힘있는 사람이 힘으로 밀어붙여두,
밀려날 때까지 싸울 거에요.
종구 : (말문이 막히는, 그러다 자조적인 웃음) 그래... 니가 나보다 낫다.
태호 그 놈도 그렇구... 어떻게든 싸우겠다는 니들이 나보다 백배, 천배는 용감해.
나라 : ...?
종구 : (웃음 끝에 깊은 한숨) 도와줘야 하는데... 미안하다.
조용히 돌아서는 종구, 대문으로 간다. 나라, 물끄러미 보다가 불쑥.
나라 : 아저씨.
종구 : (돌아보는) ...
나라 : 태호씨두 이번 일... 알구 있었을까요?
종구 : (고개 젓는) 아마 몰랐을 거다. 알았으면 나라 너, 지켜주려고 무슨 짓이든 했을 놈이니까.
나라 : (표정) ...
20. 사우나 ( 낮 ) D1
탕에 몸을 담근 태호, 술기운도 사라지고 맑은 표정이다. 생각에 잠기면서 물 속으로 천천히 잠수하는.
/ 7부 56씬. 흥삼을 따라서 비밀 금고에 들어서는 태호. 압도적인 현금을 보자 놀라는.
태호 : (소리) ...곽흥삼의 돈, 백 억.
/ 현재.
참았던 숨을 토하며 물 위로 올라오는 태호, 얼굴을 씻어낸다. 그리고 드러나는 결연한 눈빛.
태호 : (소리) 더도 덜도 말고, 딱... 백 억만 챙긴다.
21. 지하도 일각 ( 낮 ) D1
아까와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종구.
한바탕 빠따 세례가 끝난 노숙자들이 흩어져서 쉬고 있다. 엎드려 있는 양씨에게 파스를 붙여주는 최군.
종구, 그 모습을 못본 척 지나치려는데.
양씨 : 이거 봐, 류씨.
종구 : (멈추고 돌아보는) ...
양씨 : (추스르고 일어나 앉는) ...미안하게 됐네.
종구 : (뜻밖인) ...뭐가요?
양씨 : 재워주고, 돌봐주고, 여러가지루 챙겨줬는데... 그 놈의 밥이랑 술이 뭔지... 참말루 면목이 없어, 우리가.
최군 : (머쓱해서) 일 빠져서 죄송해요, 형님.
갑자기 먹먹해지는 종구, 시선 돌려서 지하도를 둘러본다. 추레하고 힘없는 노숙자들, 늘 봐왔던 무채색 풍경.
그런데 종구, 가슴 한쪽이 자꾸 저릿저릿해진다.
22. 폐버스 안 ( 낮 ) D1
버스에 올라서는 종구, 가방을 집어 들려다가 멈칫 본다.
침상 위에 놓인 챔피언 벨트. 그 앞에 낡은 글러브 두 켤레가 주먹을 맞대고 있다. 태호가 남겨놓은 장난 겸, 작별 메시지.
종구, 묵묵히 보다가 생각난 듯 선반에서 뭔가를 꺼낸다. 작두가 주고 간 성경책.
/ 짧은 시간경과.
깨진 거울 앞에 서 있는 종구, 무표정하다. 그렇게 자기 얼굴을 낯설게 응시하다가...
재킷을 벗고 넥타이를 풀기 시작하는 종구. 결심한 남자의 표정은 어느새 평온하다.
23. 거리 일각 ( 낮 ) D1
트렁크를 세워놓고 벤치에 앉아 있는 미주. 손목 시계를 보고, 다시 고개를 든다. 다가오는 종구를 발견하고 환해졌다가 멈칫!
종구는 평소처럼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다.
미주 : (일어나는) 뭐에요? 옷도 안갈아입고... (빈 손을 보자) 가방은요?
종구 : (평소 말투인) 너... 먼저 가서 기다려야겠다.
미주 : (주춤) ...왜요?
종구 : 할매가 좀 편찮으시대. 가서 들여다보구, 외상값도 갚구... 그래야 될 거 같어.
미주 : 같이 가요, 그럼.
종구 : 아서라. 너까지 가면 할매 잔소리, 따따불로 들어야 돼.
미주 : 여기서 기다려두 되는데...
종구 : 독사나 악어한테 들키면 어쩌려구?
미주 : (멈칫) ...!
종구 : 먼저 가서 표 끊어놓구 기다려. 할매한테 인사만 하구 얼른 갈께.
미주 : (불안하게 보는) ...
종구 : 허허... 이러다 길바닥에서 날 저물겠네. (미주 어깨를 다독이며) 걱정 말구 가 있으라니까.
미주 : (말갛게 보다가) 내가 왜... 서울역에서 기차를 안타는지 알아요?
종구 : ...?
미주 : (아프지만 잔잔하게) 여긴... 버리고 싶은 기억이 너무 많아요. 어디선가 회장님이 내려다보는 기분도 들구요.
아저씨하고 떠날 땐... 그런 불안두, 미련두 없이 홀가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거기까지 가서 기다린 거에요.
아저씨가 안올 거 알면서두 말일마다...
종구 : (무거워지는) ...미주야.
미주 : 너무 오래 기다렸어요. (가만히 종구 뺨에 손을 갖다대는) 다른 데 가지 말구... 나한테 와요.
종구 : ...
아무 말 못하는 사내를 보면서... 미주는 꽃처럼 웃는다.
택시가 멈추고, 운전 기사가 트렁크를 싣고, 미주가 차문을 열 때까지... 종구는 아프게 지켜본다.
어쩌면... 이 모습이 마지막이다. 지금이라도 같이 가자는 말이 목 아래까지 차오르지만, 종구는 그냥 본다.
미주, 각인처럼 짧은 미소를 남기고 택시에 오른다. 차가 출발한다.
미주가 택시 뒷창으로 돌아본다. 종구는 붙박힌 듯 서 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점점 멀어진다.
24. 서울역 일각 / 공터 ( 낮 ) D1
건물 사이로 널찍하지만 황폐한 공터(현장 상황에 따라 파티가 가능한 아무 곳이나).
흥삼과 독사, 사마귀, 양복쟁이 등이 주변을 둘러본다. 지적도를 펼치며 설명하는 양복쟁이.(부동산 컨설턴트)
양복 : 저쪽에 진입로를 뚫으면 이 일대가 하나의 상권으로 통합되는 겁니다. 바로 이 자리가 그 상권의 중심부가 되구요.
끄덕이며 듣다가 고개 드는 흥삼. 황량한 공터와 낡은 건물 뿐이지만 흥삼의 시야엔 화려한 빌딩 숲이 보이는 듯, 눈빛이 형형하고.
25. 서울역 일각 / 거리 ( 낮 ) D1
단단히 각오한 표정으로 걸어오는 종구. 해진과 오십장, 영칠, 노숙자 몇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이미 종구에게 귀뜸을 들은 듯, 긴장해서 걸음을 서두르는 해진과 오십장.
26. 서울역 일각 / 공터 ( 낮 ) D1
실사를 마친 흥삼이 돌아선다. 그러다 멈칫! 본다. 반대편에서 나타나는 종구와 해진 일행.
흥삼, 언뜻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인데 종구는 굳은 얼굴로 다가온다.
분위기 읽고 눈빛 싸늘해지는 사마귀. 독사와 그 부하들도 경직되고...
흥삼 : (미소) 아직 안떠났나? 진작에 야반도주라도 한 줄 알았는데.
종구 : (웃는) 발목 잡는 일이 많아서요. 그거 다 수습하고 갈랍니다.
흥삼 : 수습? (코웃음) 류씨가 그럴 능력은 되구?
종구 : 언제는 능력돼서 했습니까? 부탁 드리구, 안되면 강짜 부리는 거죠.
흥삼 : (눈빛 매서워지는) ...
종구 : (역시 웃음기 사라지고) 서울역... 회장님 거 아닙니다.
여기서 근근이 살아가는 노숙자들두... 회장님 배나 불리는 가축이 아니구요.
흥삼 : ...그래서?
종구 : 지금까지 쥐어짜고 긁어모은 걸루 충분하잖습니까? 이젠 그냥 내버려 두십쇼, 서울역.
흥삼 : (허탈하게 웃는) ...
종구 : (묵묵히 기다리는) ...
흥삼 : (혀를 끌끌 차며) 류씨는 이래서 탈이야. 사람이 늘 똑똑할 필요는 없어두, 결정적일 때 미련한 짓은 하지 말아야지.
미주가 기다릴 텐데 여기서 뭐하는 짓이야, 지금?
종구 : (멈칫) ...!
흥삼 : 기회를 여러 번 줄 만큼 통 큰 사람이 못돼. 내 아량이 바닥나기 전에, 얼른 가보쇼.
종구 : (흔들리던 눈빛을 고치고) 말씀드렸습니다. 수습하고 간다고.
흥삼 : (표정) ...!
종구 : (담담하게 보는) ...
흥삼 : 류씨 힘으론 수습 못해요. 왠줄 알아? (한발 다가서는) 서울역... 그리구 거기 붙어사는...
(종구 뒤에 노숙자들 보며) 저 가축들... 그거 다 내 꺼거든.
종구 : (눈에 힘이 들어가는) ...!
흥삼 : 누가 뺏어가지 않는 한... (힘주는) 난, 내 꺼 안뺏겨.
종구 : ...안되겠습니까?
흥삼 : ...안되겠는데.
종구 : (미묘하게 눈빛이 변하며) 그럼... 뺏어야죠.
흥삼 : ...?
종구 : ...흥삼아. 너하구 나... 파티다.
흥삼 : (꿈틀) ...!!
27. 사우나 앞 ( 낮 ) D1
말끔해진 모습으로 사우나를 나서는 태호. 양씨와 최군 등이 수군거리며 지나간다.
뭔가 직감하는 태호, 얼른 다가서는.
태호 : 무슨 일이에요?
양씨 : (경황없는) 파티가 붙었대! 파티!
태호 : (의아한, 그럴 만한 사람이 없는데) 누가요? 악어하구 독사?
양씨 : (답답하다는 듯) 넘버 원! 넘버 투! 곽회장하구 류씨가 붙는다니깐!
태호 : (경악, 충격) ...!!
28. 서울역 일각 / 공터 ( 낮 ) D1
허겁지겁 달려온 악어와 부하들, 파티 준비하는 흥삼과 종구를 보고 놀란다.
반대편에서도 소문 듣고 모여드는 노숙자들.
악어 : (어안이 벙벙한) 이... 이게 워치케 된 일이래유?
독사 : (긴장한) 입 다물어. 큰 형님 파티다.
싸늘한 표정으로 재킷을 벗고 소매를 걷는 흥삼. 옆에 서서 옷을 받아주는 사마귀.
사마귀 : (나즈막히) 오른 손 훅이 강합니다. 주의하십시오.
흥삼 : (피식) ...알어. (건너 편의 종구를 보는) 내 우상이었으니까.
맞은 편의 흥삼을 응시하는 종구, 어깨를 움직이며 몸을 푼다.
사색이 된 해진과 오십장, 종구 뒤에서 만류하는.
해진 : 지금이라두 관둬요, 형님. 이건 자살 행위야!
오십장 : (울상돼서) 그라요. 우덜 땜시 이럴 거 없소.
종구 : ...
못들은 척, 앞으로 걸어 나가는 종구. 흥삼도 다가온다.
긴장, 초조함으로 지켜보는 독사와 악어, 해진과 오십장 등등.
흥삼 : (몇 걸음 앞에 마주 서는) 내가 아는 멍청이들이 좀 있는데... 오늘부로 류씨가 탑이 됐어.
종구 : (차분한) 멍청해도 기억력은 좋거든. 흥삼이 너... 예전에는 제법 괜찮은 놈이었다.
흥삼 : 또, 또... 옛날 얘기. 류씨는 그게 문제라니까.
종구 : 우리끼리 남은 빚, 빨리 계산 끝내자.
흥삼 : (눈빛) ...그럽시다.
자세 잡는 흥삼과 종구. 숨 막힐 듯한 긴장감. 지켜보는 시선들도 팽팽하고...
서울역 어딘가에서 발차를 알리는 기차의 경적 소리.
순간, 서로를 향해 쇄도하는 흥삼과 종구. 퍽! 주먹이 부딪히면서, 흥삼과 종구의 치열한 파티가 시작되고.
29. 간이역 ( 낮 ) D1
화장기 없이 수수한 옷차림의 미주, 대합실 의자에 앉아 있다. 옆에는 제법 큰 트렁크가 세워져 있고...
손에 쥔 열차표 두 장을 만지작거리는 미주, 기대감으로 들뜬 표정.
30. 거리 일각 ( 낮 ) D1
헐떡거리며 달려오는 태호, 눈가에 땀이 흘러 내린다.
골목에서 굴러 나오는 승용차. 달리던 가속도 때문에 미처 피하지 못한 태호, 차 모서리에 부딪히며 나동그라진다.
놀라면서 내리는 운전자. 다급한 태호, 튕기듯 일어나 그대로 달려간다.
31. 서울역 일각 / 공터 + 간이역 ( 낮 ) D1
흥삼과 종구의 격투가 이어진다. 다리보다 주먹을 쓰며 공격하는 종구. 흥삼은 악으로, 깡으로 밀어 붙인다.
서로 맞고, 때리고...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두 사람. 마른 침을 삼키며 지켜보는 해진 등등.
그러다... 흥삼의 파상 공격에 종구, 수세에 몰린다. 흥삼의 킥에 상당한 충격 받으며 나가 떨어지는 종구.
긴장하던 독사와 악어패, 와! 환성 지른다.
/ 대합실
시계를 보는 미주, 조금씩 걱정스러워진다. 승객이 들어설 때마다 돌아보지만, 종구는 아니다.
초조한 마음에 앉아 있지 못하고 일어나는 미주.
/ 비틀거리며 일어난 종구, 다시 격투 자세. 두 사람 모두 얼굴에 피가 흐르고 옷에도 핏방울이 튀었다.
어지간히 지쳤지만 2라운드를 시작하듯 격렬한 육박전이 이어지고...
/ 공터 근처.
신물이 나도록 뛰어온 태호, 저만치 모여있는 노숙자 무리 발견하고 이를 악문다. 파티 현장으로 달려가는.
/ 소나기 펀치를 퍼붓는 종구. 흥삼, 방어해가며 역습을 노리지만 틈이 보이지 않는다.
특유의 근성으로 회심의 일격을 치는 흥삼. 종구, 예상한 듯 피하며 훅을 꽂는다. 흙먼지와 함께 나뒹구는 흥삼.
이번엔 해진 패거리에서 와!! 함성이 터진다.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는 독사와 악어. 해진와 오십장, ‘왜? 뭐?’ 하는 눈빛으로 쏘아본다.
어금니를 깨무는 흥삼, 일어나려다 비틀거린다.
독사 : (안되겠다 싶어 얼른 나서려는) 저거...
사마귀 : 멈추세요.
독사 : (흠칫 돌아보는) ...!
사마귀 : (낮고 엄하게) 회장님 파티입니다. 방해하면 용서하지 않으실 겁니다.
겨우 버티고 서서 자세를 잡는 흥삼.
피투성이가 된 두 남자, 헐떡거리며 서로를 노려본다.
흥삼 : (가쁘게 숨을 쉬며) 미쳐 버리겠구만, 신나서... 내 평생 꿈꿔온 파티였거든!
종구 : (역시 헉헉거리며) 나쁜 꿈은... 빨리 깨야지.
태호가 사람들을 헤치고 해진 옆에 들어서는 순간, 흥삼과 종구가 다시 격돌한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두 사람을 보자 충격으로 굳어버리는 태호.
/ 철로 앞
소원나무 곁에 서 있는 미주, 나무에 묶인 소원종이들이 미주의 바람처럼 상행선 방향으로 나부낀다.
미주, 역 앞을 바라보며 애타게 기다리는.
/ 때린다, 맞는다, 쓰러진다, 일어난다. 막바지로 치닫는 흥삼과 종구의 파티.
옆에선 환호, 혹은 탄식이 터져 나오지만 태호는 몸도, 입도 얼어붙은 듯, 꼼짝 못하고 지켜본다.
피와 땀이 뒤섞이는 처절한 혈투, 으르렁대는 두 마리 야수의 충돌이기에!
/ 악에 받친 뻗은 흥삼의 정타를 맞고 뒤로 튕겨 나가는 종구, 시멘트 벽(혹은 기둥)에 뒤통수를 부딪힌다. 쩍! 둔탁한 소리.
다른 사람들은 눈치 못챘는데 태호만 직감하고 흠칫!
종구, 약간 멍해지는 표정. 얼른, 고개를 털고 흥삼 앞에 나선다. 눈 앞이 흔들리면서 흥삼이 둘, 셋으로 보인다.
흥삼은 계속 공격을 퍼붓고, 어지러운 종구는 처참하게 두들겨 맞는다.
저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리는 태호.
순간, 종구가 멈칫 선다. 아무런 공격도, 가드도 하지 않은 채 망연자실한 종구, 멍한 시선으로 돌아본다.
태호와 마주치는 시선!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태호.
영원같은 몇 초 동안 서로를 응시하는 태호와 종구. 순간, 종구의 코에서 주르륵... 코피가 흐른다.
/ 소원나무 옆 돌턱에 앉아있는 미주, 나무가지에서 팔락거리는 종이를 보며 마음이 동한다.
핸드백 열고 다이어리와 펜을 꺼내는데... 잠깐 옆에 놔둔 열차표가 바람에 날려간다.
흠칫 놀라 잡으려는 미주. 손닿지 않는 곳으로 멀리 날아가버리는 열차표.
미주, 불길한 느낌에 가슴이 서늘해지는데.
/ 퍽!! 흥삼의 카운터에 턱이 돌아가는 종구, 영혼이 빠져 나간 듯, 스르르 무너져 내린다.
파란 하늘이 빙 돈다. 지켜보던 노숙자들 얼굴이 스쳐간다. 쿵! 바닥에 쓰러지는 종구.
탈진한 흥삼, 휘청거리며 어딘가 걸터 앉는다. 얼른 수건을 건네주는 사마귀.
태호, 허겁지겁 달려가 종구 앞에 엎어진다.
태호 : (울먹이는) 형님! 형님!!
종구 : (거의 의식이 없는) ...
태호 : (발악하듯) 정신 차려요, 형님!!
흠칫, 고개 돌려 흥삼을 노려보는 태호. 피와 땀을 닦으며 숨을 고르는 흥삼, 무표정하다.
이를 악무는 태호, 해진의 도움을 받아 종구를 들처 업는다.
32. 거리 일각 ( 낮 ) D1
태호, 종구를 업고 미친 사람처럼 달린다. 어리둥절한 행인들에게 비키라고 손을 내젓는 해진과 오십장, 영칠.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태호, 이를 악 물고 달린다. 태호의 등에서 맥없이 흔들리는 종구.
33. 무료 병원 / 대기실 ( 낮 ) D1
문을 박차고 들어서는 태호. 오십장이 얼른 이동 침대를 끌고 온다.
해진 : (간호사 향해 소리치는) 응급실! 빨리, 빨리!!
이동 침대에 종구를 눕히는 태호. 간호사가 침대를 밀고 간다.
태호와 해진, 오십장, 영칠이 따라 들어가려는데.
동료 간호 : 밖에서 기다리세요!
종구를 실은 침대에 안쪽으로 들어간다. 초조하게 서성거리는 태호 일행.
탈진한 듯 벽에 기대서는 태호, 종구가 사라진 안쪽을 보는.
34. 무료 병원 / 진료실 ( 낮 ) D1
종구의 옷을 벗기고, 수혈용 바늘을 꽂고, 산소 마스크를 씌우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의사와 간호사 두 명(나라는 비번).
피투성이가 된 종구, 여전히 의식이 없다.
35. 펜트 하우스 ( 낮 ) D1
치료를 마친 왕진 의사와 간호사가 문으로 향한다. 배웅하고 문을 닫는 사마귀, 침실로 올라간다.
어깨에 붕대를 감고, 얼굴엔 반창고 붙인 흥삼, 침대에 기대 앉아 있다.
범접할 수 없는 침묵에 휩싸인 흥삼. 사마귀, 잠시 대기하다가 조용히 물러난다.
허공을 응시하는 흥삼의 눈빛, 무겁고, 깊어진다.
36. 무료 병원 / 대기실 ( 낮 ) D1
초조함을 달래려 눈을 감고 있는 태호. 다른 사람들도 입을 굳게 다물고 걱정되긴 마찬가진데...
황급히 들어서는 나라.
나라 : 어떻게 된 거에요? 아저씨는요?
해진 : 우리도... 기다리는 중이야.
나라 : (태호에게 다가서는) ...별 일 없겠죠?
태호 : (괴롭고 먹먹한 눈빛) ...
동료 간호 : (안에서 나오며) 장태호씨?
태호 : (멈칫 돌아보는) ...!
동료 간호 : 환자 분이 찾습니다. 들어가 보세요.
태호 : (서둘러 들어가는)
나라 : (다가서며) 괜찮은 거에요?
동료 간호 : (착잡한, 다른 사람 못듣게 나즈막히) 뇌 안쪽에 출혈이 있는데... 상태가 안좋아.
나라 : ...!!
37. 무료 병원 / 진료실 ( 낮 ) D1
멍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태호.
약하게 이어지는 바이탈. 산소 호흡기를 쓴 종구, 겨우 눈을 뜨고 본다. 힘겹게 손을 더듬어 호흡기를 빼려 하는...
태호 : (안타까운) 안돼요. 그러지 마세요.
손을 까닥까닥, 부르는 종구. 태호, 침대 옆에 무릎 꿇고 종구와 눈높이를 맞춘다.
실낱같은 호흡하며 태호를 보는 종구.
종구 : (호흡기 사이로 새어 나오는) 태...호야.
태호 : (떨리는 목소리를 가누며) ...예.
종구 : ...약해지지 마.
태호 :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
종구 : 악해지지두 말구...
태호 : 예...
종구 : 너... 착한 놈이다.
태호 : (주르륵, 눈물이 흐르고) 형...님...
종구 :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는) ...
태호 : (다급해지며) 형님!!
가물거리는 종구 시선에 섬광처럼 스치는...
/ 6부 15씬. 할매 식당을 나와서 함께 걸을 때, 종구를 바라보는 미주의 맑은 표정.
/ 종구 입가에 미소가 어리는가 싶더니... 눈이 감긴다. 그와 동시에 평탄해지는 바이탈 사인.
충격으로 숨이 턱 막히는 태호, 믿기지 않아 파르르 떨리고...
前 동양 챔피언 류종구는 이제 완전히 링을 떠났다.
38. 펜트 하우스 ( 저녁 ) N1
붕대 위로 웃옷을 걸친 흥삼, 창가에 우두커니 서 있다.
벌컥 문이 열리고 독사가 다급하게 들어선다. 돌아보는 흥삼과 사마귀.
독사 : (난감한) 저... 종구 형님이...
흥삼 : (표정) ...?
독사 : (면목없는 듯 고개 숙이며) ...죽었습니다.
흥삼 : (미간이 꿈틀!) ...!!
흥삼을 살피는 사마귀. 예기치 못한 충격, 알 수 없는 분노로 격해지는 흥삼, 홈바로 가서 양주병을 딴다.
황급히 다가서는 사마귀, 병째 마시려는 흥삼의 팔을 잡고.
사마귀 : 상처가 악화될 수 있습... (하는데)
흥삼, 그대로 주먹을 날린다. 퍽! 바닥에 나가 떨어지는 사마귀. 흠칫, 불똥이 튈까 긴장하는 독사.
살벌한 눈빛으로 사마귀를 노려본 뒤, 양주를 들이키는 흥삼. 사마귀, 조용히 일어나서 옆을 지킨다.
탕! 소리나게 병을 내려놓는 흥삼, 거친 호흡을 몰아쉰다. 우상을 잃은 흥삼, 참담하고 괴로운데...
39. 무료 병원 / 대기실 ( 저녁 ) N1
천천히 걸어오는 미주.
소문 듣고 몰려든 노숙자들이 병원 곳곳을 차지하고 소리내서 울거나, 훌쩍거리거나, 망연자실하다.
미주를 발견하고 일어나는 태호와 나라.
나라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한데, 미주는 오히려 무표정하다. 말없이 사람들을 지나쳐 안으로 향하는 미주.
40. 무료 병원 / 진료실 ( 저녁 ) N1
종구의 시신이 시트에 덮여 있다.
말갛게 내려다보는 미주. 잠시 그렇게 보다가 시트를 살짝 걷는다. 깊은 잠에 빠진 듯, 평온한 종구.
미주 : (물기없이, 담담한) 나한테 오라니까... 어딜 간 거에요? (쓴웃음) 진짜... 대책없이 이상한 아저씨야.
(표정 고치고, 차분히) 미안하지만... 안울 거에요, 나. 아저씨같은 구제불능한테는 눈물 한방울도 아까워.
그러니까 서운해하지 말구... 잘자요.
종구의 시신 앞에 정물처럼 서 있는 미주. 그 모습이 길게 보인다.
41. 폐차장 ( 아침 ) D2
쏴아... 빗소리가 들린다. 폐버스 앞에 놓인 소박한 관. 빗방울이 폐차장 지붕을 때린다.
태호와 해진, 관 위에 챔피언 벨트를 묶는다. 침통한 얼굴로 지켜보는 조회장, 오십장, 영칠 등 노숙자들.
운구 위해 각자 위치에서 끈을 잡는 태호와 해진. 다가와서 관을 드는 오십장과 영칠, 최군, 그 외 노숙자들.
퍼붓는 빗줄기 속으로 출발하는 운구 행렬. 노숙자들이 묵묵히 따라간다.
42. 거리 일각 ( 아침 ) D2
거센 빗줄기가 퍼붓는다. 관뚜껑을 두드리는 빗방울.
흠뻑 젖은 채, 운구 행렬을 이끄는 태호.
우산 쓰고 지나가던 행인들, 신기한 듯, 혹은 찌푸리며 본다.
그런 시선은 아랑곳 없이, 입을 굳게 다문 채 걸어가는 노숙자들.
43. 거리 일각 / 다른 곳 ( 아침 ) D2
관 앞에 놓이는 작은 밥상. 뚝배기와 반찬과 밥, 그리고 소주. 평소 종구가 할매 식당에서 먹던 메뉴다.
흐느끼면서 관을 쓰다듬어주는 할매. 밥상 위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울음을 참으며 지켜보던 나라, 화단에서 가져온 꽃을 관 위에 놓아준다.
할매를 부축해서 일으키는 나라, 태호에게 고개를 끄덕한다.
훌쩍거리는 할매를 다독이며 우산을 씌워주는 나라, 골목 안으로 사라지고...
묵묵히 지켜보던 태호, 다시 출발하려는데 반대편에 우산을 쓰고 나타나는 독사와 악어, 그 부하들.
순간 눈빛 험악해지는 운구 행렬의 노숙자들.
태호 : (독사 앞에 다가서는) ...뭐야?
독사 : 나랏님이 돌아가신 것도 아닌데... 이게 뭐하는 생쑈냐?
태호 : (꿈틀) ...!
악어 : 거시기... 간 사람은 간 사람이구, 규칙은 규칙이잖여. 파티에서 지믄 워디로 가야 하는지 알건디?
태호 : (어금니에 힘이 들어가는) ...꺼져.
독사 : (싸늘한) 넘버2 자리도 비었는데... 여기서 서열 정리 한번 할까?
태호 : (이글거리며) 형님 편하게 보내 드리자. ...부탁이다.
독사 : 그건 부탁하는 놈 말투가 아니지.
태호 : (울컥! 그래도 참고) 오늘은... 그냥 넘어 갑시다. ...부탁합니다.
독사 : ...싫은데.
태호 : ...!!
듣고 있던 해진과 오십장, 노숙자들이 험악해지며 나선다. 독사와 악어 패거리들도 빠르게 펼쳐 선다.
일촉즉발의 팽팽한 분위기! 그때, 클랙션 소리와 함께 나타나는 흥삼의 차. 썰물처럼 비켜주는 독사 패거리들.
차에서 내리는 흥삼, 파티의 상처가 남아있다. 얼른 우산을 받쳐주는 사마귀.
흥삼 : (상황 파악이 끝난) 독사야.
독사 : 예, 형님.
흥삼 : (조용하고 메마른) 젠틀하게 살자, 젠틀하게. 오바하지 말구.
독사, 입맛이 쓰지만 고개를 숙인다.
사마귀가 받쳐준 우산을 무시하고 빗 속으로 걸어오는 흥삼. 냉담하게 지켜보는 태호.
흥삼, 관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소주병을 들고 그 위에 휘휘 붓는다. 비에 젖은 챔피언 벨트를 보면서 붉게 충혈되는 흥삼의 눈동자.
태호는 가만히 응시하고...
짧은 애도를 끝내고 고개 드는 흥삼, 특유의 서늘한 눈빛으로 태호를 일별한 뒤, 차로 향한다.
태호와 노숙자들이 다시 관을 든다. 흥삼의 차가 출발하는 동시에 걸음을 옮기는 운구 행렬.
태호와 종구의 관이 흥삼과는 반대 방향으로 멀어진다.
44. 편집 화면 D2
/ 할매 식당.
책상 다리를 하고 앉은 채, 망연자실한 할매. 기척에 돌아보면 나라가 소주와 안주를 챙겨서 갖고 온다.
할매에게 술을 따라주는 나라. 할매, 뜻밖인 듯 나라를 보더니 술잔을 비운다.
잔을 건네는 할매. 잠시 망설였다가 할매가 따라주는 술을 받는 나라, 한모금 쓰게 삼킨다.
할머니와 손녀는 그렇게 서로를 위로해주고.
D2 / 서울역이 보이는 건물 옥상.
장례를 다 마치고 온 듯, 초췌해진 태호가 말없이 서 있다.
종구가 세상을 떠났지만 저 아래 사람들, 차들은 아무런 상관없이 무심하고, 바쁘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태호, 슬픔이 잦아드는 대신, 차분히 단단해지는 결심.
D2 / 폐버스 안.
조용히 올라서는 미주, 텅 빈 버스를 둘러본다.
종구가 누워있던 침상, 손때 묻은 잡동사니들. 한쪽엔 짐 정리한 박스가 쌓여 있고...
미주, 종구의 짐가방을 발견하고 가만히 연다. 옷가지와 소지품 사이로 보이는 곰인형!
미주, 곰인형을 꺼내서 먹먹하게 본다. 보다가...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온다.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휩싸이는 미주, 곰인형을 꼭 끌어안고 오열한다.
어깨를 떨며 흐느끼는 미주의 실루엣에서 화면 어두워지고...
45. 폐차장 ( 다른 날, 낮 ) D3
화면 시작되면... 어깨 너머로 가방을 걸친 태호가 걸어온다. 담담하고, 의연한 표정.
버스 앞에 멈추는 태호, 주인 잃은 폐차장을 둘러본다.
가방을 소파에 던져 놓고 팔을 걷어 부치는 태호, 본격적인 대청소를 시작한다.
46. 미주의 오피스텔 ( 낮 ) D3
촤르륵! 커텐을 걷는 흥삼. 침대에 웅크린 미주, 눈을 찌르는 햇살에 찌푸리며 돌아 눕는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소주병과 양주병. 인상 쓰는 흥삼, 침대로 다가가 선다.
흥삼 : (화를 참으며) ...일어나.
미주 : (꼼짝도 하지 않는) ...
흥삼 : (확 시트를 걷으며) 일어나라구!
미주 : (부스스한 꼴로 겨우 눈을 뜨는) ...
흥삼 : 정신차리구 움직여. 그래야 나한테 복수를 할 거 아냐?
미주 : (표정) ...
흥삼 : 이따위로 술에 쩔어선 아무것도 못한다, 너.
미주 : (잔뜩 갈라진) 몰라요, 복수같은 거.
흥삼 : 그럼 일을 하든가.
미주 : 것두... 귀찮아요.
흥삼 : 미주야!
미주 : 졸려요... 가세요.
미주, 시트를 끌어 올려서 덮는다.
분을 삭히는 흥삼, 돌아서는데 발에 뭔가 걸린다. 침대 아래 떨어져 있는 곰인형. 의아해하며 주워 드는 흥삼.
순간... 탁! 나꿔채는 미주, 곰인형을 안은 채 등 돌리고 눕는다.
어이없이 보던 흥삼, 현관으로 나간다.
문 닫히는 소리 들리자 천정을 보고 눕는 미주, 초점이 없는 허탈한 눈빛.
47. 달리는 차 안 ( 낮 ) D3
심기가 불편한 흥삼, 창 밖을 보고 있다. 룸미러로 살피는 사마귀.
사마귀 : 김의원이 연락 달랍니다.
흥삼 : (귀찮은 듯) 왜?
사마귀 : 차기 원내 대표 경선에 나갈 모양입니다.
흥삼 : 그새 지갑이 비었다 이거지? (코웃음) 국회의원 해먹기 편해요. 돈만 넣으면 굴러가는 자판기야.
사마귀 : 얼마나 준비할까요?
흥삼 : 너무 많이 먹여두 버릇 나빠진다. 일단 만나서 간부터 봐야지.
사마귀 : (잠시 지켜보다가) 마담은... 계속 내버려둡니까?
흥삼 : 을러댄다고 겁 먹을 여자 아냐. 달래서 풀어질 성격도 아니고... 자기가 추스를 때까지 놔둬.
사마귀 : ...네.
신호대기에 차가 멈춘다. 무심코 밖을 보던 흥삼, 눈이 빛난다.
거리 일각, 손글씨로 쓴 ‘서울역은 삶의 터전입니다. 무분별한 재개발을 막아주세요’ 보드판을 든 나라가 서 있다.
옆에 책상에는 서명 용지가 있고, 조회장이 앉아 있다.
무심히 지나치는 행인들을 향해 열심히 호소하는 나라.
지켜보던 흥삼, 입가에 쓴 웃음이 번진다.
흥삼 : (문득) 장태호는 2단계 착수했나?
사마귀 : 멤버들은 다 꾸린 거 같습니다.
흥삼 : (잠시 생각하다가) 그쪽 사무실로 가자.
서명 호소하는 나라를 뒤로 하고, 다시 출발하는 차.
48. 상가 사무실 ( 낮 ) D3
태호와 해진, 오십장이 소파에 모여 앉았고 영칠이 컴퓨터 앞에서 작업 중이다.
서류를 보다가 고개 드는 해진.
해진 : 세화 네트웍스... 정말 이 회사로 할 거야?
태호 : 왜요? 뭐가 걸려요?
해진 : 연구 내역하구 영업 실적 봐봐! 잡주 중에서도 완전 개잡주야, 이거!
태호 : 그러니까 전신 성형 시켜야죠. 오늘 중으로 회사 대표한테 연락해봐요. 투자 의향 내비치면 버선발로 달려올 겁니다.
해진 : (입맛 다시는) 하아... 껄쩍지근한데...
오십장 : (오가는 얘기를 묵묵히 듣다가) 거시기... 동상.
태호 : 네?
오십장 : 나가 엥간하믄 요런 야그는 안할라구 혔는디... 참말 이려도 되는가?
태호 : 무슨 말씀이세요?
오십장 : 동상이 작업하는 요거, 결국 요거시 다 뭔 수작이여? 곽흥삼이 오다 받아서 그 잡눔, 배때지 불려주는 짓 아녀?
태호 : (표정) ...
해진, 영칠 : (멈추고 태호를 쳐다보는) ...
오십장 : (한숨) 억울허게 시상 떠난 종구 성님 생각허믄, 요것은 도리가 아니지 싶구마.
태호 : (담담한, 돌아보며) 해진씨도 그렇게 생각해?
해진 : (착잡해지며) 아니라군 못하겠네. 곽흥삼한테 이로운 짓 하는 게, 이래도 되나 싶구.
태호 : (화난 것은 아닌, 씁쓸한 미소) 알았어요. 그럼 어떻게 할까? 지금 당장 곽회장한테 파티 걸구, 이판사판 끝장내?
(오십장을 보는) 그렇게 하면 덜 서운하겠어요?
영칠 : (눈치없이 불쑥) 에이, 그건 아니죠. 실력 차가 뻔한데, 그랬다간 태호형 개박살나게?
해진 : (째려보는) 저 자식은 대화의 맥락이란 걸 몰라.
영칠 : 왜요? 내 말 맞잖아요. 파티할 때 싸우는 거 보니까 곽흥삼 완전 후덜덜... (하는데)
느닷없이 문이 열리고 흥삼과 사마귀가 들어선다.
허걱! 입 다무는 영칠. 태호와 해진, 오십장은 긴장하며 일어나고.
태호 : (태연하게) 연락도 없이 오셨습니까? 무슨 급한 일이라두...
흥삼 : (소파로 가며) 큰 돈 들어가는 큰 사업인데, 첫 단추를 어떻게 꿰는지 들여다봐야지.
해진 : (불편하고 어색한) 태호씨, 우리 먼저 밥 먹구 올께.
태호 : ...그래.
흥삼 : (돌아보는) 마귀야.
사마귀 : (점심값 주려고 지갑 꺼내는데)
오십장 : (사마귀에게 부루퉁) 우덜도 밥값 있구마.
흥삼 : (지켜보다가 씩 웃는) ...
49. 상가 사무실 / 계단 ( 낮 ) D3
해진, 오십장, 영칠이 사무실을 나선다.
영칠 : (가슴을 쓸어 내리며) 어우... 간 떨어질 뻔 했네.
오십장 : (문을 돌아보며) 사람을 조사놓구선 암시랑토 안한 표정 봤는가? 저것은 인간이 아니여, 인두겁을 쓴 짐승이제.
영칠 : (들을까봐) 쉿!
해진 : (착잡한) 그러니까 서울역 넘버1이 됐겠죠.
오십장 : ...?
해진 : 종구 형님같은 상대, 수도 없이 해치우면서 그 자리까지 올라갔구, 지킨 거에요.
태호씨도 그걸 아니까... 당장 어떻게 방법이 없으니까 조심하는 거구요.
오십장, 영칠 : (표정) ...
50. 상가 사무실 ( 낮 ) D3
서류를 검토하는 흥삼. 묵묵히 지켜보는 태호.
흥삼 : (눈으로는 서류 보면서, 툭 던지는) 요새 폐차장에서 지낸다며?
태호 : ...네.
흥삼 : (고개 드는, 웃으며) 잘 데 없으면 호텔로 와. 아래층에 방 하나 비워 줄 테니까.
태호 : 종구 형님이 했던 얘기가 있어서요.
흥삼 : (표정) ...?
태호 : 자기가 떠나면, 대신 들어와 살라구 했거든요. 지내 보니까 생각보다 아늑합니다.
흥삼 : (가만히 보다가, 서류 내려놓고, 쓴웃음) 애쓰지 마라.
태호 : ...?
흥삼 : 내 앞에서 태연하게 류씨 얘기 꺼내는 거, 속으론 태연하지 못하다는 뜻이거든.
(꿰뚫는 시선으로) 맘 같아선 나한테 파티라도 걸구 싶을 거야, 안그래?
태호 : (동요하지 않고 담담한) 그런 마음도 있습니다. 1프로 정도.
흥삼 : (지켜보는) ...
태호 : 사부님으로 모시면서 정이 많이 들었으니까요. 그치만, 정식으로 붙은 파티였구, 실력 부족으로 졌습니다.
뇌출혈은... 종구 형님이 그냥 불운했던 것 뿐이구요.
흥삼 : 그래서? 딱 1프로만 분하다?
태호 : 회장님이 그러셨잖습니까? 감정도 사치라고. 지금 전 그런 사치를 부릴 때가 아니거든요.
99프로, 비지니스만 생각해도 모자랍니다.
흥삼 : (가늠하듯 보는) ...
태호 : (담담하면서도, 결연한 눈빛) ...
흥삼 : (표정 풀어지며) ...100프로 채워. 그래야 실패하지 않는다.
태호 : 명심하겠습니다.
흥삼 : (일어나는) 아, 근데 그 간호사 말야, 할매 식당 손녀.
태호 : (따라 일어나다가 멈칫) ...?
흥삼 : (뼈있는 농담) 데이트 좀 해주지 그러니? 시간이 남아도는 거 같던데.
태호 : (표정) ...!
51. 거리 일각 ( 낮 ) D3
땡볕 아래 땀을 흘리며 서명을 호소하는 나라. 조회장은 더위에 지쳐 꾸벅꾸벅 졸고 있고...
나라 :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서명 부탁 드립니다. 재개발 반대에 뜻을 보태 주세요. (다른 사람에게) 바쁘시겠지만 잠깐...
관심없는 사람들, 무시하고 지나간다.
더위에, 피로에... 한숨 쉬며 땀을 닦는 나라, 졸고 있는 조회장을 돌아본다.
나라 : 회장님.
조회장 : (화들짝 깨는)
나라 : (안스럽게 웃는) 들어가 쉬세요. 안나오셔도 된다니까 무리하시구.
조회장 : 자네야말로 무리하지 말게. 정 안되면 내가 청와대 가서 건의해줌세.
나라 : (아쉬운 웃음) 말씀만 들어두 고맙네요.
나라, 다시 기운내서 행인들 돌아보는데... 태호가 다가온다.
나라 : (경계하는) 가까이 오지 마요.
태호 : (웃으며 보다가) ...?
나라 : 태호씨하구 나, 지금 서로 적이거든요.
태호 : (멀뚱히) 우리가요?
나라 : 재개발 사업, 그쪽 회장이 추진하는 거잖아요. 난 그거 반대하는 서명 운동하구 있어요. 그러니까 적이죠.
태호 : (보드판의 문구를 보는) 이러면... 바꿀 수 있을 거 같아요?
(다가가서 서명된 용지를 들고 보는) 이렇게 천 명, 만 명한테 서명받으면 그 사업, 중단시킬 수 있냐구요?
나라 : (발끈해서) 최소한 시민들의 뜻이 이렇다, 알릴 수는 있죠.
태호 : (미소 잃지 않고) 그 뜻을 알린다구 해서, 달라지는 건 없어요.
나라 : (표정 굳는) 그래서요? 쓸데없는 짓이니까 관두라구요?
태호 : 내가 충고한다구 그만 둘 사람이 아니잖아요, 나라씨. (웃음기 거두고, 진지한) 근데... 나라씨가 아무리 애써도,
진심만으로 안되는 일이 있어요. 싸움은... 이런 종이 쪼가리로 하는 게 아니거든요.
나라 : (울컥) ...!
마음 상한 나라, 돌아서서 서명지를 추린다. 물끄러미 보는 태호.
조회장은 ‘얘들이 왜 이러나’ 싶어서 둘의 표정을 살피고.
나라 : (등 돌리고 선 채) 나두 알아요. 쓸데없는 짓인 거 아는데...
(돌아본다, 서글픈 눈빛) 그날... 아저씨한테 주제 넘은 소릴 했거든요. 서울역 위해서 싸우네 어쩌네...
태호 : (표정) ...
나라 : 돌아가신 아저씨 생각하면 뭐든 해야될 거 같아서... (먹먹해서 말을 잇지 못하고)
태호 : (안스럽게 보는) ...
조회장 : 장이사.
태호 : 네?
조회장 : (불쑥 서명 용지를 내미는) ...서명해. (태호가 멀뚱히 보자) 늙은이 팔 떨어지겠구만. ...어서.
잠시 보던 태호, 볼펜을 잡고 이름을 쓰기 시작한다. 히죽 웃는 조회장.
나라, 한글자씩 힘주어 쓰는 태호를 먹먹하게 지켜보고.
52. 미주의 오피스텔 ( 낮 ) D3
현관벨이 요란하게, 계속 울린다. 귀를 막고 돌아눕는 미주. 이번엔 쿵쾅대며 문을 두드린다.
참다 못해 벌떡 일어나는 미주, 현관으로 간다. 문 열고 보면... 태호가 서 있다.
미주 : (멈칫) 뭐에요?
태호 : (미소로 보는) 언제까지 숨어있을 겁니까? 이제... 잡으러 가야죠, 곽흥삼.
미주 : ...!!
/ 시간경과.
대충 걸터 앉은 태호. 얼음통과 잔, 술병을 갖고 오는 미주, 태호 앞에 앉는다.
미주가 잔을 주려는데 손짓으로 사양하는 태호. 미주, 심드렁히 자기 잔에만 얼음을 채운다.
미주 : 상대가 된다구 생각해요?
태호 : 나 혼자선 힘들죠. 근데... 마담이 도와주면 가능해요.
미주 : (코웃음) 내가 왜요? 설마... 아저씨 복수하겠다고 나설 만큼 날 순진하게 보는 거에요?
태호 : (표정) ...!
미주 : ...장태호씨. 곽회장 때문에 작전 실패하고 인생 망쳐서 억울한 기분은 알겠는데, 현실을 똑바로 봐요.
지금도 그 사람 밑에서 명령 받고, 이용 당하고 있어요, 당신.
태호 : (결기 드러내며) 첫 끗발이 개끗발이죠. 승부는 새벽 마지막 판, 올인으로 결정되는 겁니다.
미주 : (흐흥 웃고 술잔 드는) 그런 위험한 판에 낄 생각없어요, 난.
매섭게 응시하는 태호. 미주는 나른한 눈빛으로 술잔을 기울인다.
결국 일어나는 태호, 현관으로 가려다가...
태호 : 종구 형님이 그런 얘길 했습니다.
미주 : (언짢은 눈초리) ...
태호 : 복싱도, 인생도...
종구 : (소리 겹쳐지며) 복싱도, 인생도...
과D / 시간상 태호가 트레이닝 받는 3, 4부쯤.
폐차장에서 러닝셔츠 입은 태호와 미트 들고 서 있는 종구.
종구 : ...스텝에 달렸다. 스텝이 엉키면 둘 중 하나야. 똑바로 서려다 펀치를 맞던가, 발이 꼬인 채 그대로 흘리던가.
태호 : (의아한) 꼬인 채로요?
종구 : (스텝이 엉킨 시늉하며) 몇 걸음 흘려서 상대가 방심했을 때...
순간 자세 잡고 펀치 날리는 종구. 기습 충격에 헉! 허리가 꺾이는 태호.
씨익 웃으며 내려다보는 종구. 그 표정에서 화면 멈추는.
D3 / 종구 얼굴이 태호로 바뀌면서... 각오로 단단한 태호의 눈빛.
태호 : 곽회장이 보기엔 나두, 마담두 비틀거리고 있겠죠. 난... 그렇게 비틀 거리는 척 하다가... 한방에 끝낼 겁니다.
미주 : (동요하는 속내를 감추고) ...행운을 빌어요.
태호 : (멈칫, 그러나 포기하고) ...마담두요.
현관을 나가는 태호. 문이 닫히는 소리.
술잔을 입에 대려다 멈추는 미주, 멍하게 생각에 잠기고.
53. 폐차장 ( 밤 ) N3
줄넘기를 어깨에 걸친 태호, 버스에서 내려선다.
/ 신발끈을 단단히 묶는 태호, 어깨와 팔을 움직이며 몸을 푼다.
/ 타닥타닥! 빠르게 줄넘기하는 태호.
/ 땀 흘리며 푸시업하는 태호.
/ 글러브를 낀 채, 타이어를 두들기는 태호.
/ 태호의 숨소리와 발소리, 타격음만 들리는 폐차장 전경. 초심부터 다시 시작하는 태호의 진짜 트레이닝!
54. 윤회장 저택 / 서재 ( 낮 ) D4
소파 상석에 윤회장, 세훈과 정민이 나란히, 맞은 편에는 재성이 앉아 있다. 다 함께 보고서를 검토하는 중.
재성 : 이건 좀 말이 안되죠. 미래도시 개발 권역이 총 여섯 군데, 그 중 서울역 주변이 알짜배긴데,
거기 사채업자가 끼면 되겠어요? 곽회장은 다른 권역으로 배정하시죠?
윤회장 : (의중을 알 수 없는 표정) ...
세훈 : 투자 단계에서 합의한 내용입니다. 명분없이 변경하면...
재성 : (말 자르는) 합의야 깨질 수도 있고, 명분은 만들면 되는 거 아뇨?
세훈 : (꿈틀, 하는데)
정민 : (냉소를 머금는) 막무가내도 정도껏 해요. 시장 바닥에서 흥정하는 것두 아닌데.
재성 : (노려보는) 뭐?
윤회장 : 조용히 해.
정민,재성 : (입 다무는, 서로 눈빛은 싸늘하고)
윤회장 : 곽흥삼 회장은 민우당 김수한 의원이 뒤를 봐주고 있다. 그룹에서도 김의원 입김을 무시하긴 어려워.
재성 : 어차피 돈으로 맺은 커넥션인데, 우리가 더 지르면 되죠.
윤회장 : (찌푸리는) 말 조심하거라. 여기가 시장 바닥이냐?
재성 : (주춤) ...!
정민 : (내심 고소한, 흘끔 세훈을 보는)
세훈 : (단정하게 포커 페이스 유지하는) ...
윤회장 : (세훈을 보며) 자네가 곽회장을 만나보게. 다른 잇권을 보장하면 서울역 일대를 포기할 수 있을지.
세훈 : 말은 꺼내 보겠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윤회장 : (살짝 나무라는) 안되는 일도 되게 만드는 직책이 한중 기전실장일세.
세훈 : (자세 고치고, 충복답게) ...알겠습니다, 회장님.
55. 더 클럽 / 내실 ( 저녁 ) N4
여자를 끼고 앉은 김의원. 흥삼과 태호가 동석했고, 문가엔 사마귀가 서 있다.
상자 안에 든 수석 한 점을 이리저리 살피는 김의원.
김의원 : 내가 뭐... 수석을 볼 줄 알아야 말이지.
흥삼 : (웃는) 저도 문외한입니다. 그래도 필요하실 때 현금으로 바꿔 쓰시라고... (김의원에게 다가가 낮게 속삭이는)
김의원 : (액수를 듣고, 눈이 휘둥그래지는) 이게... 그렇게 값이 나가나?
흥삼 : 뒤탈 없는 물건으로 준비했습니다.
김의원 : (흡족하게 웃으며 상자를 덮는) 만사 불여튼튼이라구, 지난 번 라운딩 나갔을 때 내가 문차관하고 남국장한테
단단히 일러 놨어요.
흥삼 : 원내 대표 경선 앞두고 정신없이 바쁘실 텐데...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의원님.
김의원 : (정색하며) 에끼, 이 사람! 우리 사이에 공치사는 무슨! (태호를 보며) 장과장이라구 했던가?
태호 : (예의 바르게) 장태호라구 합니다.
김의원 : 그래, 우리 곽회장 잘 모셔. 나한테는 친형제나 다름없는 분이니까.
태호 : (냉소 감추고 수작에 맞춰주는) 부족하나마 최선을 다하구 있습니다.
김의원 : (술잔 들며) 자, 한잔 합시다!
폭탄주를 건배하는 세 사람. 김의원, 옆에 앉은 파트너를 흘끔 보고.
김의원 : 거, 마담이 요새 안보이는데... 어디 아픈가?
흥삼 :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쉬고 있습니다.
태호 : (흥삼을 흘끔 보는) ...
김의원 : (입맛 다시며) 마담이 없으니까 도무지 흥이 안나는구만.
흥삼 : (내심 짜증나지만) ...죄송합니다.
56. 더 클럽 / 홀 ( 저녁 ) N4
또각또각 걸어오는 하이힐. 다리를 따라 위로 올라가면, 화려하게 한껏 치장한 미주!
고혹적인 미소를 머금은 채, 홀에 앉아있는 손님에게 눈인사하며 내실로 향한다.
57. 더 클럽 / 내실 ( 저녁 ) N4
자신만만하게 들어서는 미주.
흥삼과 태호, 흠칫 놀라서 보고 김의원은 반색하는...
김의원 : (손 흔들며) 어서 와! 어서!
미주 : (김의원 옆에 앉으며) 늦어서 죄송해요, 의원님.
김의원 : 아냐, 이제 시작인데 뭐. (흥삼을 흘겨보는) 이 사람, 이거... 이런 깜짝쇼까지 준비하고... 사람이 의뭉스러워.
어색하게 웃어 보이는 흥삼, 미주를 본다. 교태어린 표정으로 김의원의 잔을 채워주는 미주.
태호도 의미심장하게 미주를 보는데...
각기 다른 의미의 흥삼, 태호 시선을 느끼면서도 태연한 미주.
58. 더 클럽 / 홀 ( 저녁 ) N4
기분좋게 취한 김의원을 부축한 미주, 출입문으로 간다. 배웅하러 나온 흥삼과 태호가 고개 숙여 인사.
사마귀는 수석 상자를 들고 김의원을 따라 나간다.
미심쩍은 표정으로 기다리는 흥삼. 잠시 후... 미주가 다시 들어온다.
흥삼 : 사람 놀래키는 방법도 여러가지구나.
미주 : (건조한) 회장님두 놀라는 일이 있어요? 몰랐네요.
흥삼 : 왜 갑자기 마음이 변한 거냐?
미주 : 글쎄요. 아저씨처럼 폐인이 될까 싶었는데, 것두 체질에 안맞구... (흥삼을 똑바로 보며) 복수나 하려구요, 회장님한테.
태호 : (내심 긴장) ...
흥삼 : (피식 웃는) 어떻게?
미주 : 방법은 이제부터 찾아 봐야죠.
흥삼 : 그래.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보다 훨씬 낫다. 니 복수, 기대하마.
이런 농담이 즐거운 흥삼, 큭큭 웃으며 출입구로 간다.
얼른 따라 나서면서 미주를 돌아보는 태호. 미주, 표정 변화 없이 서 있고.
59. 폐차장 ( 밤 ) N4
태호,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 구두 소리와 함께 걸어오는 미주, 태호 앞에 선다.
미주 : (냉랭한) 어설픈 계획이면 말두 꺼내지 말아요. 곧장 돌아갈 테니까.
태호 : (일어난다, 차분히 보는) 순서가 있습니다. 그 순서대로 하나씩... 곽회장 촉수를 잘라내는 겁니다.
미주 : (가만히 보다가) ...첫번째는요?
태호 : 미래도시 프로젝트.
미주 : (표정) ...!
태호 : (결연한) 종구 형님이 지키려구 했던 서울역, 거기서부터 시작합니다.
차가운 복수를 계획한 태호! 그 날선 눈빛에 긴장하는 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