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생에 결혼식에 참여해 본 적이 몇 번이 안 된다. 그 몇 번도 참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친족의 결혼식이었다. 이유는 간단해서 결혼식에 가면 축의금을 가지고 가야 하는데 부끄럽지만 나는 한 번도 타인의 경사스러운 일을 돈으로 축하를 해줄 수 있을 만한 형편에 있지를 못했던 까닭이다.
한국에서 빈민운동을 할 때 내가 가는 곳에 늘 나를 은밀하게 수행(?)하던 부천경찰서 정보과의 박 형사라는 이가 있었다. 그는 늘 양복을 입고 다딘데다가 몸집도 푸짐한 것이 꼭 목사같이 푸근하게 생겨서 바싹 마른데다 날카롭게 생긴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두 사람이 같이 나타나면 그가 목사이고 내가 형사인 줄 말았다.
한 번은 박 형사가 조심스럽게 “지 목사님! 뭐 하나 물어 보아도 되나요?” 했다.
“뭔데요?” 했더니
“목사님은 도대체 생활은 어떻게 하십니까?”
나에 대해서 웬만한 것은 다 알아도 직업도 없이 하는 일마다 돈 안 되는 일만 하는 내 생활은 도저히 이해가 안됐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도 뜯어먹고 삽니다.”라고 했더니 “에이, 설마 그럴 리가?”라고 했다.
그러나 사실 내 손으로 돈을 벌어먹고 살지 못하고 누군가의 후원으로 살아가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 처지에서 경조비까지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경조비 면제(?)를 받아 몸만 갈 수 밖에 없었지만 장례식에는 빠지지 않았다.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의 모습을 비교하면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는 오랫동안 소식을 모르고 살았던 친척이나 친구를 만니거나 소식을 들을 수도 있고 때로는 계돈 떼어먹고 도망간 사람도 만날 수 있기도 하다.
그러나 결혼식에 올 때에는 저마다 차려 입을 대로 차려입고 오는 법이기 때문에 여간 세상살이에 눈치 빠른 사람이 아니고서는 상대방의 진짜 모습을 알기는 좀 어렵다.
결혼식에서 신랑과 신부간의 사랑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남들이 이 결혼을 어떻게 볼까?’ 가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신랑은 뭐하는 사람이고, 신부의 집안 배경은? 혼수도 얼마나 했는지? 예식장은 어디? 신혼여행은? 이 모든 사항들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조정되고 꾸며진다.
그러나 장례식은 오히려 감추어져 있던 것을 들어내는 자리이다. 결혼식을 보아서는 잘 알 수 없어도 장례식을 보면 대충 그 집안의 형편이나 고인의 면모를 알 수가 있다. 수백 개의 화환이 도열해 있는 명사의 장례에서부터 달랑 촛불 한 자루 켜있는 무연고행려자의 장례까지 당사자의 주변 환경 즉 신분, 재산, 가족 관계 등 모든 것이 들어나게 되어 있다. 심지어는 숨겨 둔 자식이 갑자기 나타나듯이 죽은 당사자가 숨겨지기를 원하는 일들 조차도 알려질 수 밖에 없다. 생전에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주변과의 관계는 어떠했는지 하는 것들이 대강 들어날 수 밖에 없다.
때로는 살아서 관계 맺고 싶지 않은 일이 죽어서 관계가 맺어지는 일도 있다. 예를 들면 고인과 불편한 관계여서 살아서는 물론이고 죽어서도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죽었다고 찾아오면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죽은 자는 더 이상 자기를 감출래야 감출 수 없고 남은 자들은 무엇을 가려줘야 할지로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가공적인 결혼식 보다는 실체가 들어나는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을 더 의미있게 생각한다.
첫댓글 신량, 신부, 신혼여행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 없고(전혀 알지 못하기에), 혼주에게 얼굴 도장 직고 하례비 내고 식당 물어 바로 바로 식사하러 가는게 대부분입니다. 때로 혼주도 잘 몰라(동창회 명부를 보고 베껴서 보냈기에) 건성으로 악수하고 바로 식당으로 직행하는 경우도 많지요.^^
그러니까 결혼식은 가식이 다분히 씌어져 있고 장례식은 진면목이 들어나는 자리임이 딱 맞네요...미쳐 생각치 못했습니다!
가식이라기 보다는.... 백설 공주에 나오는 계모 왕비가 자신을 잊어 버리고 거울을 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예쁜 얼굴을 바라는 것과 같은 심리이지요.
아하!! 정말 그렇군요...탁월하신 통찰력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