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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예술과 현대의 문화
쇠락과 구원의 희망 사이에서
ARTE CRISTIANA
E CULTURA CONTEMPORANEA
Tra declino e speranza di riscatto*
안드레아 달라스타 신부(예수회)**
임숙희 레지나(혼인과 가정대학 신학원) 옮김
예술과 신앙의 계약: 점진적인 이혼 역사
오늘날 서양 문화에서 집단적인 상상과 세계관을 다루는 주요 주제들은 지난 몇 년 동안에 퇴색된 종교나 이데올로기가 담긴 신화보다 예술에서 더 많이 알 수 있다. 그리스 신들이 죽고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이 힘을 잃은 이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학적 표현이 현대의 의미를 해석하려고 갈망하면서 이 시대의 새로운 신화로 부상하는 듯하다. 한 예술 작품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단지 그 작품의 고유한 의미만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작품이 사회와 각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상징적 차원을 이해하는 것을 뜻한다. 작품이 어떤 방식으로 과거를 재독(再讀)하고 현재의 시간을 해석하며 미래의 시간을 가리키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와 시각 예술 사이의 관계는 유럽 세계에서 여러 기복이 있었다. 그러나 항상 밀접하고 풍요로운 결실을 맺는 계약의 역사라는 형태로 전개되어 왔다.1)
서양 예술 작품의 생산은―스페인에서 러시아, 이탈리아에서 스칸디나비아 국가에 이르기까지―그런 작품들이 형성된 그리스도교의 뿌리와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다. 초세기의 상징적이고 본질적인 표현에서부터 신고전주의의 차가운 묘사에 이르기까지 예술 작품의 이미지는 항상 그리스도교와 친숙한 관계를 맺어왔다. 교회는―가톨릭 교회나 정교회를 모두 포함하기 때문에 ‘교회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항상 역사 안에서 예술 작품의 탁월한 고객이었다.
그러나 예술과 신앙 사이의 계약은 몇 세기가 흐르면서 점차 느슨해지고 있는 듯하다. 특히 18세기 계몽주의의 등장 이후, 그리스도교 신앙 체험에서 탄생한 예술적 영감은 과거 뛰어난 회화, 조각, 건축 제작의 기원이 되었던 창조력과 추진력을 서서히 상실하고 있다.
예술과 신앙 사이의 이런 균열이 오늘날 메꾸어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현대 예술과 더 구체적으로 이런 예술이 종교를 대하는 방식을 생각해보는 것만으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비가시적인 것의 차원은 현대 예술의 표현을 이해하는 데 근본적이다. 그러나 그러한 차원에서 현대 예술은 성경에 나오는 이미지들, 복음서에 묘사된 예수님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는 하느님, 역사 안에 육화한 하느님을 더 이상 공유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오늘날의 예술은 신앙 공동체 체험을 알려주는 내레이션, 신앙의 ‘역사(historia)’ 묘사와는 거리가 있다. 예술을 상징적컬틱적 차원을 지닌 작품 생산과의 관계 안에서 생각하기는 힘들게 되었다. 요약하면 현대 예술은 성경의 하느님, 그리고 그분과 인간 사이의 이야기를 잊어버린 것 같다.
19세기는 신은 죽었다는 비극적 선포로 시작되었다. 그리스도교의 종말이 서서히 지평선에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였다. 미학(美學)과 무관한 형식의 세계가, 조화, 아름다움, 진리, 고전 예술 이해의 토대가 되는 원리들을 인식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보다 우선시되었다. 예술은 좋은 작품을 생산할 수 있는 비옥한 표현적 토양의 공간을 그리스교적 영감에서 채우지 아니하게 되었고, 이로써 점점 자기애에 사로잡히는 위험에 빠져들고 있다.
20세기에 많은 예술가들이 미학적 현상을 해석하는 모델로 예술의 자율적 특성을 강조한 작품들을 제시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런 현상의 바탕이 되는 것은 프로이트(Freud)의 정신분석과 소쉬르(de Saussure)의 언어학 연구에서 출발하여 인문학 분야에서 성취한 업적들이다. 많은 예술가들은 이런 인문학적 기초 위에서 자신들이 세상과 갖는 체험의 기원에 있는 정신적 과정과 기능을 성찰하면서 창조 행위에 집중한다. 그리하여 과거에 비해 진정하고 고유한 인식론적 파괴가 일어난다. 2)
이것이 20세기 중반부터 부상한 예술표현의 자기 참조(self-referentiality)이다.
세속화 과정
지난 몇 세기 동안 서구 역사에서 일어난 일들과 관련해서 느리고 점진적인 세속화 과정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세속화(secolarizzation) 과정이란 비교적 최근에 우리가 현실을 이해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는 서구 근대 사회 기저에 있는 심오한 특징을 예리하게 해석한 인물이다. 베버에게 근대란 삶의 다양한 영역―경제, 정치, 지성, 예술, 성(性) 등―이 종교적 차원으로부터 점진적으로 자율을 획득하는 시기다. 근대 문명은 프로테스탄트 윤리로부터 추동되었으나, 그 이성화의 과정은 서구 전체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종교는 비이성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으로 서서히 물러나게 되었다. 프랑스 역사철학자 마르셀 고셰(Marcel Gauchet)3)
는 베버의 사고의 연속선상에서4)
탈마법의 세상, 비가시적 세계의 소멸에 대해 말한다.
세속화는 불가피하게 의미 구축과 교육의 기원에 있던 과정들이 분화되도록 이끈다. 그동안 세상에 대한 결정적인 해석은 이 과정들에 바탕을 두어왔다. 그런데 서서히 진행되지만 지속해서 일어나는 이런 변화는 근대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다양한 방식에서 기대하지 않던 복합성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근대에 들어와 수 세기 동안 삶에 필요한 원래의 원칙들을 많은 사람들이 의문시하면서 그동안 삶의 토대를 이룬 확신들이 불확실하게 되었다. 과거 사회에는 하나의 코드(code), 그 안에서 종교와 형이상학의 여러 측면이 역사와 자연을 해석하는 데 근본적인 역할을 하던 코드를 기반으로 살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계몽주의 이후 시기부터 시작해서 현대 세상에서는 극적으로 의문시하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세속화는 천천히 진행되는 과정으로 여길 수 있다. 세속화의 탄생은 르네상스와 일치하는데 처음에는 데카르트5)
, 나중에는 칸트의 철학 작업에서 현대 인간의 정체성 건설의 기초가 되는 단계를 본다. 이런 단계는 근대 인간 인식의 점진적인 진화와 관련된다.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자율적으로 살아가고 인간의 역사와 자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더 이상 하느님에게 의지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자신의 삶을 영위한다. 네덜란드 법률가 그로티우스(Grozio)6)
의 유명한 말, “etsi Deus non daretur”(하느님이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는 이런 인식을 잘 대변한다.
데카르트 철학 용어에서는 세상을 해석하는 출발점으로 더 이상 형이상학이나 종교적인 요소를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에 주체의 사고 행위, 곧 ‘나의’ 생각하는 행위를 강조하여 “Cogito ergo sum.”7)
라고 한다. 나는 인간, 현실, 세상을 이해할 때 하느님에서 출발하지 않고 나 자신, 나라는 주체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현대 이해에 근본이 되는 인간학적, 신학적 결과를 낳은 혁명이다. 인간은 고독 안에서 자신을 탐구하면서 자신과 세상의 의미를 찾는 삶을 지향한다. 이것은 몇 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강조되고 있다.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말처럼, 이렇게 여러 세기 지속된 여정 끝에 인간 이성이 사춘기에서 성숙기로 이행하게 되면서 세상의 “속화”(俗化, mondanizzzione)를 가져 온 것이란 말인가?8)
세속화는 교회처럼 사회의 토대가 되는 구조도 뒤흔든다. 교회는 서구 역사의 어느 지점까지는 사회의 자연스런 구조 조직이자 문화와 영성의 구심점을 형성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예술, 문학, 철학이 교회의 삶과 뚜렷하게 분리된다. 오늘날 이데올로기는 끝났고 신성한 것은 경시되고 과거에 문명의 기대와 희망을 선도한 주요 제도들의 역할은 죽었다고 말한다.
18세기까지는 교회가 사회의 상징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종교적 차원에서 구심점이었다면 현대 세계는 교회의 역할을 부차적인 것으로 여긴다. 여기에서 교회는 자신의 고통과 모순을 숨기지 않는 사회의 공격을 받으면서 자기 영역을 창출하려는 갈망 때문에 방어, 보호의 태도를 보일 위험이 있다. 결국 이른바 ‘성(聖)’ 예술의 문제는 교회가 수 세기 동안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문화적, 상징적 ‘리더십’에서 축출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에 태어난다.
서구문화의 겨울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포한 후에 많은 현대 예술은 계속해서 공유하는 의미들의 기원으로부터 해체, 파괴, 의문 제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예술의 분화(分化)는 세계의 분화를 표현한다. 이 분화는 모든 것의 인지가능성과 유기적이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총체성으로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여기에서 새로운 창조가 탄생할 것인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혼란한 분화 현상이다. 우리가 인본주의-그리스도교 전통의 발전 안에서 교회와 사회의 문화 전통 안에 인간 삶의 다양한 측면을 통합했다면 이런 의미 지평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세상은 치유할 수 없는 모순을 안고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는 듯하다.
예술-철학계에서 프랑스 예술 사학자 장 클레어(Jean Clair)는 “서양 문화의 겨울”9)
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경배 문화를 실천한 고대 시대에서 문화의 경배를 지향하는 오늘날로, 신성한 신들의 조각상 경배에서 아방가르드의10)
폐기물 숭배로 넘어갔다. 여기에서는 왜곡되고 통제되지 않은 상업적 논리들이 이윤이 남는 사업들에는 저마다 목소리를 높인다. 미국 철학자 조지 스테이너(George Steiner, 1929- )는 근대의 문화 ‘해체(deconstruzione)’를 한탄한다.
장 클레어가 기억하기에, 토마스 만(Thomas Mann)이 자신의 소설 『파우스트 박사』(Doktor Faustus)에서 메피스토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도록 한 것은 아닐까? 즉, 문화가 숭배에서 떨어져 나와 그 자체 숭배의 대상이 되면서, 이는 폐기물, 거부되는 것 이상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 오늘날 우리가 부여하는 의미에 따르면 문화란 신들이 사라져 버린 이때에 인간이 인간에게 바치는 경배 행위이다. 바로 인간이 자신을 우상 숭배하는 것이다. ‘우리의’ 겨울에 문화는 더 이상 세속의 종교 공간을 둘러싸지도 않으며 ‘살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도구도 아니다. 문화를 지배하는 것은 상업적 논리다. 우리는 신들의 경배에서 신들의 쇠락으로 건너갔다.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출구를 찾기 힘들다. 그러면 고대인들이 우리에게 가르친 것처럼 무한자, 초월자, 절대자를 향한 문으로 여긴 예술 이미지들의 신성성 회복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까?
존재론적 허무주의, 즉 말의 진실성이 비유적인 표상의 분해에서 기원하는 세계의 부재(不在)로 이어진다는 믿음은, 결국 모든 담론과 모든 의미를 상대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단지 이것만이 아니다. 미국 비평가 아서 단토(Arthur Danto)11)
는 헤겔이 주장한 예술의 죽음이라는, 항소 없는 판결의 연장선상에서 “예술의 종말 이후(After the End of Art)”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예술의 죽음 이후 작품은 더 이상 미학이나 물리적 차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더 이상 눈으로 볼 수 있는 특별한 방식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불확실성, 혼란…
예술에 대한 애도(Il De profundis)는 문명의 종말 선언과 동일한가? 허무의 바람이 서구 문명의 모든 측면에 전파될까? 사회학자 마르셀 고셰가 예언하둣 어떤 이들이 세상의 탈마법화, 비가시적 세계의 소멸을 선포한다면,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어조는 현대 문화에 대한 간단 없는 비판을 정당화하면서 더욱 묵시적으로 되어가는 듯하다.
교회는 이 세기적 위기, 공동 지평의 결핍에 무관심할 수 없다. 하지만 심판하는 진리라는 이름으로 십자군처럼 현재에 우리가 상실한 것의 원인을 찾아서 응징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교회는 그런 방향 감각의 상실, 난파와 낙하, 버림과 상처라는 실존 상태의 표현을 이해해야 한다. 교회가 더욱 심오한 삶의 의미를 말하고 오늘날의 세상을 해석하기 위해서다. 한편으로 전통 안에 포스트모더니즘을 다시 주입하고자 하는 유혹은 신화적이고 확신성을 지녔던 과거로 돌아가려는 향수를 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진정 도전이 되는 것은 이 시대에 대한 질문과 모순들을 경청하는 것이다. 현대 미술이 그토록 분화되어 있고 다양하게 표현되는 이유는―잭슨 폴록과 루시언 프로이드(Lucian Freud)12)
,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과 팝아트, 이탈리아 예술가 에토레 스팔레티(Ettore Spalletti)와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14)
사이의 거리만 생각해도 좋다―아마도 현대 예술이 항상 불만족스러운 의미 탐구에 익숙해져 있고, 교회는 이 앞에서 준비되어 있지 않고 혼란스럽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의 전례 예술: 과거에 대한 향수
이 심오한 의미 손실은 대부분 시대착오적이고 부적절한 것으로 보이는 현재의 전례 예술에 충분히 나타난다.15)
지난 수십 년간 어떤 작품들이 제작되었는지 보기 위해 교회를 방문한다면, 고전적 공간이나 현대적 공간 모두에서, 조각조각 갈라지고 급조된 모습에 충격을 받을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난 지 50년도 더 넘은 오늘날에도 예술 이미지들의 주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아직도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16)
이 다양한 은유적 표현들 사이에서 공통분모가 있는데, 이는 과거를 향한 시선이다. 카를로 레비(Carlo Levi)17)
에 따르면 미래는 고대의 마음을 갖고 있다. 굉장한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경우에 영감, 전통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얼어붙은 고대의 세계 안에 잠긴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정형화된 양식과 금색 배경, 중세의 건조한 네오프리미티즘(neoprimitismo), 특히 프란치스칸적 전통에 입각하여 재현한, 화려하게 빛나는 신(新) 비잔틴 양식을 보거나, 감각적이거나 모호하지만 훌륭하게 재해석한 르네상스 및 바로크 양식들을 보거나, 이들 전례 예술품은 모두 현 시대를 외면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과거에 대한 아쉬움이 지배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새로움(neo)’으로의 복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미지들이 제작되는 방식을 보면 작품들의 조악함을 보지 않을 수 없다. 한편으로는 누가 감히 중세나 르네상스 시대 우리 스승들의 천재성과 비교되는 것을 받아들이겠는가? ‘거룩함’의 복잡하고 구불구불한 길을 탐험하는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들―유명한 비평가들이 추천하는 것들도―을 관찰할 때에도 그 작품들의 평범함에 당황하게 된다.
교회 공간에서 그것을 아주 쉽게 만날 수 있다. ‘귀도 레니’18)
작품을 변형시킨 얼굴들과 ‘미켈란젤로’를 모방한 에로틱하고 근육질의 새로운 신체들 사이에서―장엄한 비잔틴의 새로운 ‘고행주의’나 조토의 천상적 재현은 차치하고서라도―전례 예술이 신심 행위의 도구 정도로 축소되지 않을 때에, 이들은 불확실하고 문제가 많은 영역으로 향하고 있는 듯 있다. 전례 작품의 예술적인 질이 낮은 것으로 보인다면―수 세기 동안 교회는 결코 18세기 칸트식 성찰에 기인하는, 현대 예술의 이른바 ‘아름다운 예술(belle arti)’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우리는 과거에 대한 향수어린 시선 앞에서 왜 전례 작품이 현재를 거부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즉, 오늘날과 오늘날의 언어를 바라볼 수 없는 무능력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시대의 문제들로부터 도망치는 표징은 아닐까?
많은 현대 미술은 우리 시대의 여러 모순을 오가는 인간의 나약함과 어려움 안에서 인간적 측면을 성찰한다. 수시로 ‘감각적인 뉴스’를 찾는 데 몰두하는 신문들의 무용하고 불경한 표현들을 배제하고서도 말이다. 대신에 현대의 전례 그림들은 대체로 모든 갈등이 이미 평정되고 폐기되었으며 더 이상 비극이 존재하지 않는 평화로운 세계로서의 영광스런 과거 묘사를 지향하는 것 같다. 공허하고 일관성 없는 부드러움을 지닌 그림들 안에서 우리 인생의 온갖 힘든 측면들은 지워진 듯하다.
성물 시장에서 다양한 작품들을 보게 되는데 대부분 카르타페스타(cartapesta)19)
로 만든 작품들―조각품, 회화 및 벽화들―이 우리의 그리스도교 전통에 대해 중요한 증언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전례 예술품이 현재 언어로 믿음의 내용들, 말하자면 성서와 신학의 측면들을 어떻게 전달하는지 이해하려 할 때 그 이미지들을 보면 얼마나 피상적인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들은 공적인 예술 세계와 어떤 관련도 없이, 너무 급작스럽고, 무용하고, 병적이고, 도발적이고, 난해하고, 세련되고, 엘리트들의 취향에 맞춘 듯하다.
어떤 측면에서 이는 사실이다. 현대 미술의 커다란 한계는 구원과 구속(救贖)의 가능성을 인식하지 않고 인간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의 지평이 무의미, 허무, 무관심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대신에 전례 그림들의 부끄러운 측면은 인위성과 진부함에 있으며, 더욱이 황금빛과 영웅들, 억지스런 제스처와 애처로운 얼굴들이 찬미를 받고 높여진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의 영성 전통을 비현실적이고 무의미하게 담아낸 것이다. 완전히 실제의 삶과 분리된 우주이다.
종종 예술은 교리 교육에 봉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콘의 정확성이나 이콘이 전달하고자 하는 다양한 상징들에 주목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렇게 끝난다면 이미지들은 단순히 자막, 설명, 묘사 정도로 축소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미지들이 무엇보다 먼저 형태와 색깔을 통해서 자신을 표현하는 신앙의 증언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만다. 다시 말하면 이미지들은 성령의 선물이다.
물론 한 작품은 도상학(圖像學)적 관점에서 수정될 수 있다. 이것이 필수 조건이지만 ‘아름다운’ 전례 작품을 성취하기에는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이는 이탈리아 화가 조토나 카라바조의 원작과 현대적 ‘조토’ 작품이나 현대적 ‘카라바조’ 작품 사이의 거리와 같은 것이다.
원작에 대한 그러한 재현은, 비록 멋지게 재현될 수는 있겠지만, 생명력과 심오함이 없으며 공허하고 인위적이고, 원작이 지닌 영감의 근원인 신학적, 영적 밀도와는 대단히 거리가 멀다. 이 새로운 이미지들은 그들이 속한 시대가 던지는 도전을 수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주 쓸모없고 서투른 복사본처럼 자신을 소개한다.
오늘날 확신을 가지고 복음을 선포하라: 예술에 대한 도전은 무엇인가?
우리가 복음을 선포하려면 우리가 사는 시대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복음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이 시대의 상처와 모순을 완전히 살아내야 한다. 그리스도는 상실한 신화의 시간을 동경하지 않고 그의 시대 안에 육화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예술 세계 안에서는 그런 사례를 참조할 수 있는 단서들이 보이지 않는다. 암브로시아 교회의 에반젤라리오(Evangeliario), 갈마돌리 은수처의 스페치오사 문(Porta Speciosa), 이탈리아 예술가 클라우디오 파르미지아니(Claudio Parmiggiani)20)
의 작품들, 레지오 에밀리아(Reggio Emilia) 프로젝트의 작품들, 이탈리아 추상화가 발렌티노 바고(Valentino Vago, 1931-2018)의 유화 그림들, 미국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Bill Viola, 1951-)의 실험들을 보라. 그리고 쾰른 대성당에 있는 독일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1932-)21)
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같은 유럽의 작품들은 아주 훌륭한 그리스도교 예술 작품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어떤 의미를 지니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자코모 만추(Giacomo Manzù)―만추가 제작한 성 베드로 대성당의 너무나 아름다운 「죽음의 문」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의 뛰어난 작품들은 이 예술가들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시기에 살면서 참으로 새로운 어떤 것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결실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작업이 이루어졌던 귀중한 시간에서 많이 멀어졌다. 나아가 신앙의 영감을 새롭게 표현하고자 하는 그런 개방성이 오늘날 항상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반대로 개방성은 오히려 큰 의심과 불신의 대상이 될 위험이 있다. 과거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용기와 하느님의 성령이 오늘 안에서 일하신다는 심오한 믿음, 크나큰 겸손이 필요하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로 이 시대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뛰어난 창의력으로 교회 복음화의 여러 분야를 다시 생각하고 있는 반면, 예술 이미지의 세계는 아직도 무표정한 모습으로 사람들과 차가운 거리를 유지하면서 과거를 바라보며, 변화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예술은 의미의 새로운 지평을 가리키면서 다시 예언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오늘날의 인간이 현대와 현대의 언어들이 제기하는 도전을 받아들일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오늘날 어떤 예술이 절대성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그런 예술은 생각하는 예술, 믿고 사랑하고 희망하기 위해서 탐구할 용기를 가진 예술일 것이다. 그런 예술은 이 세상의 지평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삶에 의미를 제공하려고 노력하면서 존재의 궁극적인 신비에 응답하려는 갈망에 빛을 비출 것이다. 그런 예술은 삶의 모든 측면에서 급속한 소비를 지향하는 사회의 끈질긴 소음을 조용히 마주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존재하는 참된 질문을 주의 깊게 경청하며 성찰하는 능력을 가질 것이다.
베네딕토 16세가 확신하듯 우리는 현대 문화 앞에서 그 문화를 제대로 인식하고 충분히 신뢰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역사의 모든 시기에 항상 새로운 복음(Vangelo)의 말씀과의 만남은 솟아나는 문명의 샘입니다. 이 만남은 문화, 예술, 그리고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다양한 애덕의 형태 안에서 자신을 표현하면서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건설하고, 우리 도시의 모든 요소들을 풍요롭게 합니다.”22)
우리에게는 크나큰 용기가 필요하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2013) 167항에서 이렇게 말한다. “각 개별교회는 복음화 활동에서 예술을 활용하도록 독려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과거의 보화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다양한 현대적 표현을 활용하여 새로운 ‘비유의 언어’로 신앙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전달하는 데에 필요한 새로운 표지와 새로운 상징과 새로운 형체를 찾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이는 다양한 문화적 상황에서 소중히 여겨지는 아름다움의 다양한 형태들을 찾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비전통적인 미의 양식도 포함됩니다. 이는 복음선포자들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복음 선포를 위해 새로운 표징, 새로운 상징, 새로운 형태를 탐구하면서 복음이 오늘날 우리 문화를 비옥하게 하고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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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Civiltà Cattolica 2017 III 305-315 | 4011-4012 (5-19 ago/2 set 2017)**
Andrea Dall’Asta S.J.1)
A. Dall’Asta, Dio alla ricerca dell’ uomo. Dialogo tra arte e fede nel mondo contemporaneo, Trapani, il Pozzo di Giacobbe, 2011, 7-15 참조..2)
이탈리아 세계에서 필리베르토 멘나(Filiberto Menna)는 자신과 자신의 언어에 대해 성찰하는 예술의 “분석적 노선”에 대해 말할 것이다. 그런 예술은 예술 작품 창조로 이끄는 과정에 대한 분석이 된다. F. Menna, La linea analitica dell’arte moderna. Le figure e le icone, Torino, Einaudi, 1983 참조.3)
프랑스의 역사철학자, 레이몽 아롱 정치연구센터(Centre de recherches politiques Raymond Aron)의 교수이다. ― 역자 주4)
M. Gauchet, Il disincanto del mondo. Una storia politica della religione, Torino, Einaudi, 1992 참조.5)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는 프랑스의 물리학자, 근대 철학의 아버지, 해석기하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그는 합리론의 대표주자이며 본인의 대표 저서 『방법서설』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계몽사상의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주체’의 근본 원리를 처음으로 확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 역자 주6)
휴고 그로티우스(Ugo Grozio, 1583-1645)는 ‘국제법의 아버지’, ‘자연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네덜란드의 법학자이자 정치가이다. ― 역자 주7)
‘Cogito ergo sum’은 라틴어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cogito는 ‘숙고하다, 명상하다, 계획하다’라는 뜻이다. ― 역자 주8)
이 주제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는 J. Moingt, L’ homme qui venait de Dieu, Paris, Cerf, 1993 참조.9)
여기에서는 클레어의 이 유명한 텍스트만 기억하자. J. Clair, L’ inverno della cultura, Milano, Skira, 2011 참조.10)
아방가르드(Avant-garde)는 프랑스어로 군대 중에서도 맨 앞에 서서 가는 ‘선발대’(Vanguard)를 일컫는 말이다. 아방가르드라는 단어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에서 예술, 문화 혹은 정치에서 새로운 경향이나 운동을 선보인 작품이나 사람을 칭하는 말로 흔히 쓰인다. 한국어에서는 전위(前衛)로 번역되어 전위예술, 전위음악, 전위재즈와 같은 낱말에서 쓰인다. 대개 아방가르드는 문화적 맥락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경계를 허무는 표현의 일종이다. ― 역자 주11)
아서 단토(1924-2013)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가르쳤으며 미술비평가이자 철학자로, 예술의 본질에 대해 논하는 철학적 미학 연구로 잘 알려져 있다. ― 역자 주12)
루시언 프로이드(1922-2011)는 독일에서 태어났으나 나치의 박해로 영국으로 이주했는데 위대한 사실주의 화가이며 자전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다. “보통 나는 사람들 얼굴의 감정을 담고자 노력한다. 나는 사람들의 몸을 통해서 내 감정을 표현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오직 얼굴만 그렸었는데 마치 얼굴에 집착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그것들의 팔다리가 되고 싶은 것처럼…”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손자로, 유명한 가문 출신이지만, 대중들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했다. 작품 수가 적어 공공미술관에서 작품을 보기 어려운 편이다. ― 역자 주13)
에토레 스팔레티(1940- )는 이탈리아 화가로 빛을 받으면 온 방안이 작품의 색으로 물드는 효과를 내기 위하여 빛과 색의 원리에 대해 깊이 연구한다. 그의 그림은 종교적인 경건함을 느끼게 한다. ― 역자 주14)
데이미언 허스트(1965- )는 영국의 현대 예술가이며 토막낸 동물의 시체를 유리상자 안에 넣어서 전시하는 그로테스크한 작품들을 주로 선보이고 있다. 동시대 미술가 중 가장 주목받는 미술가이며 죽음과 부패를 표현한 포름알데히드 작품으로 터너상을 수상했다. ― 역자 주15)
A. Dall’Asta, Eclissi. Oltre il divorzio tra arte e Chiesa, Milano, San Paolo, 2016; Id., “Arte sacra, non solo immagine”, in Avvenire, 20 febbraio 2014 참조.16)
이 주제에 대해서는 L. Territo, ≪“Educarsi alla bellezza”. Una indagine sulla committenza di opere d’arte per il culto≫, in Civ. Catt. 2017 I 522-526 참조.17)
카를로 레비(1902-1975)는 유대계 이탈리아인으로서 의사, 작가, 화가이다. 1935년에 파시스트를 반대하는 활동을 해서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부의 지시로 남이탈리아의 한적한 지역에서 유배 생활을 하기도 했다. 정치적인 유배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레비는 관대한 환대정신을 지닌 이곳 사람들에게서 환대를 받았다. 그의 책, 『그리스도가 에볼리에 멈추었다』(이탈리아어 원제목: Cristo si è fermato a Eboli)은 루카지아 지역의 마을에서 그가 보낸 세월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 초점을 맞춘다. ― 역자 주18)
귀도 레니(Guido Reni, 1575-1642)는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의 화가이다. ― 역자 주19)
신문이나 일상에서 사용하는 종이를 찢거나 구겨서 물을 먹여 인물을 제작하는 기법. 종이인형이라고 할까? 16세기부터 이탈리아에서 많이 사용했는데 그 시대에도 이런 기법으로 나무와 유사한 성상을 제작하였다. ― 역자 주20)
이탈리아 예술가 클라우디오 파르미지아니는 부재, 피할 수 없는 시간의 통과, 분열과 침묵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는다. ― 역자 주21)
독일 드레스덴에서 출생한 전후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1960년대 이후 세계현대미술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이다. 사진과 회화, 추상과 구상, 그리고 채색화와 단색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회화라는 매체를 재해석하고 그 영역을 확장시켰다. ― 역자 주22)
Benedetto XVI, «Discorso nel 150° anniversario dell’unità politica dell’Italia», Roma, 26 maggio 2011.